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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142화 (142/188)

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142화

악어와 닮은 머리를 한 리자드맨이 형형히 눈을 빛내고 있었다.

지렌 카자르. 녀석이 그 단단한 턱주가리로 히죽 웃으며 얘기했다.

“미리 말하지만 숨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말아라. 우린 고문에도 일가견이 있거든.”

시안이 슬쩍 어둠 속을 둘러보았다. 적은 지렌뿐만이 아니다.

이 어둠 곳곳에 숨은 암살자들이 그 칼날을 시안에게 겨누고 있었다.

“어디 있는지 알려주면? 이길 수는 있고?”

“당연하다! 어떻게 대악마가 된 건지는 모르지만 그년은 나보다도 어린 데다 대악마 중에서도 가장 허접하거든. 지금의 나 정도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지렌이 킬킬거리면서 얘기했다. 그 말에 팔목에 감긴 프시케의 온도가 한층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선 넘네 저 새끼…….]

시안이 검을 들었다.

프시케가 자존심이 상했고 말고는 상관없지만, 애초에 선은 진작에 넘었었다.

이 오밤중에 습격하러 들어온 것부터 말이다.

타앙!

그가 바닥을 밟고는 지렌에게 쇄도했다.

“킬킬! 제 주인이 욕먹으니 기분이라도 나쁜가 보지!”

달려가는 시안의 앞을 막으며 위쪽에서 인영이 떨어졌다.

떨어진 암살자가 두 손에 든 단검을 교차해 시안의 목을 찔러 들어왔다.

그리고.

캉!

콰드득!

놈을 향해 휘둘러진 시안의 검은 검과 함께 놈의 대가리도 그대로 으깨놓았다.

튀는 핏줄기 너머로 지렌의 얼굴이 보인다.

부하가 죽는 모습을 본 녀석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생각보다 강하군.”

물론 그것은 부하의 목숨 때문이 아니라, 부하를 일격에 잡을 정도로 강한 시안 때문이었다.

쿵!

휘둘러지는 시안의 검.

녀석이 강하게 땅을 밟더니 뒤로 점프하여 창 바깥으로 몸을 던졌다.

안 그래도 소란 때문에 여관 곳곳에서 불이 켜지고 있는 참이다.

계속 이곳에서 싸울 수는 없다는 판단인 것 같았다.

[쫓아가자!]

‘당연하지.’

몸을 빼는 지렌의 뒤를 시안이 쫓았다.

이렇게 된 이상 녀석에게 해령궁주의 정보를 있는 대로 뽑을 생각이다.

“크하하하!”

새벽 밤하늘 아래, 도시를 가로지르며 녀석이 광소했다.

그 뒤를 쫓는 시안에게 계속해서 암살자가 덮쳤다.

시안은 녀석을 놓치지 않게 신경 쓰면서도 계속해서 기습하는 암살자들을 처리해야 했다.

“자신 있게 프시케를 사냥할 거라 하더니만, 꽤나 겁쟁이로군.”

도주하며 부하들을 이용해 시안의 체력만 깎는 녀석을 보며 시안이 얘기했다.

그러나 지렌은 한층 거리낌 없는 태도로 대답했다.

“잘못됐나? 부하들의 힘이 곧 나의 힘이다!”

뭐 맞는 말이긴 했다.

시안도 그냥 한마디 해본 것뿐이지 정말로 비겁하다거나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다 어차피.

‘목격자가 남으면 안 되니 다 죽여야 한다.’

라비의 힘으로 지렌에게서 정보를 뽑아내려면, 목격자가 있으면 안 된다.

그걸 위해선 이 날파리 같은 암살자들은 빠르게 정리해 둘 필요가 있었다.

“좋아, 이쯤이 좋겠군!”

그러던 중 지렌이 어느 한 장소에서 발을 멈추었다.

주변에 민가 하나 없이 모래만이 가득한 언덕이었다.

동시에 지금보다도 한층 더 많은 암살자가, 땅속에, 나무 위에, 이 어둠 속에 숨어서 시안을 쳐다봤다.

얼핏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음에도, 시안은 자신을 바라보는 수십 쌍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라비.’

‘웅!’

시안의 신호에 흑검이 푸른빛을 띄는 검으로 변해갔다.

검령 창해. 다수를 상대할 때 이만한 게 없는 수정검.

“잡아!”

자신이 넘치는 지렌의 명령과 동시에, 사방에서 시안을 향해 비수들이 날아들었다.

동시에, 시안이 검을 휘둘렀다.

* * *

‘멍청한 놈!’

정말이지 어리석은 놈이다. 부하들을 대기시켜 놓은 자리에 태연하게 쫓아 들어오다니.

녀석이 할 수 있는 가장 똑똑한 행동은, 여관을 벗어난 시점에서 자신과 정반대로 뛰는 것이었다.

그랬다면 도망칠 가능성이 실낱만큼은 있었을 테니까.

―서걱!

미리 준비시켜 놓은 부하들이 놈을 잡기 위해 달려들었다.

온갖 사방, 심지어 땅속에서도 검을 뻗어 놈의 발목을 노린다.

참으로 잘 훈련된 암살자들이었다. 자신이 애써 길러낸 자신의 병사들.

저깟 인간 놈 하나 잡는 데는 문제가 없으리라.

……그랬던 생각이 점점 뒤집히기 시작한 것은, 절반 가까이 되는 부하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을 때였다.

지렌의 눈이 파르르 떨려왔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자신이 손수 기른, 실력면에선 나무랄 곳 없는 수십의 정예 암살자들이.

고작 꼬마 하나에게 맥을 못 추고 있었다.

꼬마가 푸른 검을 휘두를 때마다 이쪽의 암살자들이 하나나 둘씩 반드시 나가떨어진다.

그런데 이쪽의 검은 결코 꼬마에게 닿지 않았다.

간신히 놈의 방어를 뚫고 접근해봐야 고작 생채기뿐.

심지어 그 생채기조차 난 순간 재생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더는 안 돼!’

점점 부하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며 지렌이 쿵! 땅을 찍었다.

이미 절반이 넘게 당했다. 이 이상 당하면 안 된다.

그랬다간 드라크 놈들에게 이 사막의 패권을 지키지 못하게 되리라!

“이 노오옴!”

결국 참다못한 지렌이 직접 달려들었다.

울컥, 근육이 펌핑되더니 그의 몸이 1.5배는 더 거대해졌다.

그가 시안에게 다가가, 전력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캉!

그러나 그 주먹은 시안의 검에 막히고 말았다.

검과 주먹 너머에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잔뜩 성이 난 지렌의 눈과 차분하기 짝이 없는 시안의 눈.

그때, 시안의 입이 달싹거렸다.

“넌 일단 박혀 있어.”

“뭣?”

영문 모를 소리에 지렌이 의문을 품을 때.

이미 라비의 사슬은 그의 목젖까지 올라와 있었다.

“컥! 커억!”

그제야 족쇄를 깨달은 지렌이 벗어나려 발버둥 쳤으나 이미 늦었다.

라비는, 프시케나 뇌력천주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렌에게 역시 꽁꽁 사슬을 채워 두었다.

시안의 말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 지렌은, 그 자리에서 가만히 눈을 깜빡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 처리할 때까지 기다려라. 네 차례는 마지막이니까.”

그렇게 한마디 남긴 시안이, 마저 암살자들을 처리하러 움직였다.

그에게 있어선 지렌을 상대하는 일보다, 이 암살자들을 한 놈도 놓치지 않는 쪽이 중요했다.

그런 시안의 눈빛을 보곤, 지렌이 극도의 모욕감을 느꼈으나.

“그아아아!”

아무리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대악마인 프시케조차 벗어나지 못했던 라비의 힘을 일개 악마에 불과한 그가 풀어헤칠 수는 없었다.

“……!”

“……!”

그렇게 지렌이 핏발 선 눈을 부릅뜨고 있는 앞에서, 암살자들이 비명 하나 지르지 못하고 처절하게 사냥당하고 있었다.

한 놈, 두 놈, 세 놈.

나가떨어지는 놈마다 항상, 최후의 눈빛은 똑같았다.

지렌을 쳐다보고 눈을 부릅뜬 채.

어째서 자신들이 이리 당하고 있는데 본인은 가만있는 거냐며.

원망과 의문이 뒤섞인 그런 눈빛으로 죽어갔다.

지렌은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걸로 얼추 됐나?”

이윽고 오랜 시간이 지나, 모든 암살자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모래 언덕을 시체가 뒤덮고 있었으며, 흘린 피들이 그 아래 모래들을 가득 적셨다.

그 가운데엔 검에 묻은 피를 터는 시안과.

꼼짝없이 못 박혀 있는 지렌만이 남았다.

“이, 이럴 리가 없다. 아무리 대악마의 사역마라고는 해도, 일개 사역마 하나가 이렇게 강하다니……! 프, 프시케가 이 정도로 강한 악마라는 소리냐!”

“그건 됐고.”

[뭐가 됐어!]

씩씩거리는 프시케는 무시하곤 시안이 지렌의 턱에 검을 들이댔다.

“해령궁주의 정보를 대가로 날 고용하려 했었지? 뭘 알고 있지?”

지렌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묶은 사슬은 지렌의 반항을 허락하지 않았다.

“해, 해령궁주는 동쪽 해역의 해령궁에서 살고 있다.”

“그게 단가?”

“최, 최근엔 무슨 일에 심취해 있는지 궁에 박혀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바깥에서 목격담도 없고 궁 밖으로 나온 흔적도 없다고…….”

지렌이 말하는 해령궁주의 근황을 들으며, 시안이 생각했다.

어째서 궁에 틀어박혀 있는지. 확신은 아니지만 짐작 정도는 갔다.

‘제국이랑 붙어먹고 현계 쪽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이군.’

칠흑마탑의 흑마법사들과 계약하는 악마들은 다양했지만, 프시케와 같은 대악마들 중에선 주로 둘이다.

해령궁주와 마룡왕.

그중에서도 특히 해령궁주가 현계 쪽에 더욱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바다 거인 아틀란타의 기억에서 보았던, 최초로 거인과 계약한 악마 역시 그였으니까.

“그래서?”

“에?”

“그게 다야?”

“그, 그렇다만…….”

지렌의 말에 시안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아니, 대가로 걸었던 해령궁주의 정보가 고작 이게 전부라고? 자기 집에 틀어박혀 있다는 정보 하나?

‘도움이 안 된다는 건 아닌데.’

녀석의 영역에 들어가야 하는 시안 입장에서, 놈이 영역에 틀어박혀 있다는 말이 전혀 쓸모없는 정보는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놈과 부딪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너무 아쉽지 않은가?

“쓸모가 없는 녀석이군.”

“어, 어쩔 수 없다! 이곳 서쪽 사막에서 어떻게 동쪽 해역의 정보까지 빠삭하겠냔 말이냐!”

“네 위치쯤 되면 소식이 들어온다며?”

“그게 방금 말한 그것이다만…….”

후우.

이 오밤중에 잠도 안 자고 전투를 한 대가가 고작 이건가.

시안이 검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지렌이 죽을 때를 감지했는지 필사적으로 외쳤다.

“자, 잠깐! 제발 살려다오! 뭐든지 듣겠다! 아니 애초에, 날 묶었으니 죽일 필요는 없지 않느냐!”

“필요가 있어서.”

지렌 카자르가 웬 인간 하나에게 부림당한다는 소문이 해령궁주의 귀에 들어간다면, 녀석이 라비를 경계할 수 있으니까.

“제, 제발 살려줘!”

검을 내리치기 직전. 시안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물었다.

“마룡왕에 대해서는 뭘 알고 있지?”

“그, 그건 잘…….”

거기까지 듣고는, 그가 검을 내려쳤다.

* * *

아침부터 판데모니엄 전역이 시끌시끌했다.

여관과 도심지, 그리고 어느 한적한 모래 언덕에서 발견된 카자르의 암살자의 시체들.

그리고, 그 사이에 목이 잘린 채 쓰러져있는 카자르의 가주, 지렌 카자르의 시체.

그는 드라크와 함께 이 판데모니엄의, 나아가 서쪽 사막의 패권을 다투던 이였다.

그런데 그런 이가 깔끔하게 한 방에, 저항의 흔적도 없이 목이 잘려 죽어 있었다.

이 사실에 도시는 비상이 걸렸다.

카자르와 대립하여 경쟁 중이던 드라크 가문은, 때는 이때다 하며 병사를 일으켜 도시를 장악했다.

남아 있는 카자르의 잔당들을 토벌하며 시민들을 핍박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도시를 장악한 드라크.

동시에, 그들이 한 일은 하나였다.

“누가 지렌을 죽였지?”

지렌 카자르를 죽인 범인을 탐문하고 다니는 일.

하룻밤 사이 지렌 카자르를 죽일 정도의 강자가 도시에 숨어있다.

그 사실을 드라크의 가주는 앉아서 두고 보지 못했다.

그들이 그러는 사이.

[시안. 동쪽으로 가기 전에 일단 북쪽으로 먼저 가자.]

“왜?”

[내 힘도 조금은 회복하고 가야지. 해령궁주는 어제 그놈처럼 쉽게 잡힐 놈이 아냐.]

시안은 이미 도시를 뜰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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