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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141화 (141/188)

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141화

퉁!

천장이 갈라지고 검은 인영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검은 복면을 하고 있는 익숙한 차림새. 베일린의 마차를 습격했던 예의 암살자였다.

“보복이라도 하려고 온 건가?”

시안이 넘어진 놈을 향해 검을 겨눴다.

다만 정말로 보복을 하러 온 것이라 하기엔 묘한 점이 있었다.

첫째로 눈앞의 녀석 말고는 다른 기척이 전혀 없다는 점, 둘째로 혼자서 보복을 하러 왔다기엔 놈이 그리 강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카자르 가문의 종복인 테렌이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양손을 들어 공격의 의사가 없음을 보였다.

“그대의 실력을 높이 산 주인께서 그대를 고용하고 싶어 하신다.”

“고용?”

시안이 헛웃음을 뱉었다.

이제 보니 보복은커녕 역으로 고용을 하러 온 것이 아닌가.

“내가 왜? 곧 사막을 떠날 예정이라 바쁜데.”

“해령궁주의 근황에 대한 정보를 주마.”

그 말에 시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정보를 보수로 내거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자신이 해령궁주를 찾고 있다는 걸 저들이 어찌 안단 말인가?

“그 말, 마차 옆에서밖에 안 했는데…….”

“…….”

“허 참.”

테렌은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지만, 대충 알 것 같았다.

마차를 호위하던 이들 중에 첩자가 있는 것이다. 이 카자르 가문이란 곳에 정보를 흘리는.

‘이곳도 나름 치열하군.’

첩자를 심어놓고 정보전을 펼칠 정도로 다툼이 심한 모양이다.

그러나 시안은 딱히 흥미가 동하지 않았다.

해령궁주의 정보라는 것이 궁금하긴 하였으나, 그건 반드시 여기서 얻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애초에 동쪽 해역과 멀리 떨어진 이 서쪽 사막에서 알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지만, 내 주인은 네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계신다. 베일린이나 드라크 가문에 딱히 의리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뭘 알고 있는데.”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내 주인은 과거 겨울의 뱀을 섬긴 적이 있다. 너와 똑같지.”

뜬금없이 등장한 이름에 시안의 눈을 깜빡였다.

프시케가 갑자기 왜 등장한단 말인가?

[엥.]

심지어 프시케 본인조차 잘 모르는 눈치였다.

“이곳 사막에 오기 한참 전의 일이지. 아마 그때 해령궁주와도 연이 있으신 게 아닐까 한다.”

“‘아닐까’?”

“나는 정확히 모르니까.”

테렌이 그리 얘기했다.

그 말을 듣고 시안이 잠시 고민했다.

아니 고민하는 척을 하며 프시케에게 물었다.

‘너, 얘네 주인이란 놈이랑 아는 사이냐?’

[딱히 짐작 가는 게 없는데?]

‘얘넨 널 안다고 하잖아.’

[으응…… 아니, 나는 보통 혼자 지낼 때가 많아서……. 부하나 사역마 같은 것도 하나도 없었는데.]

시안이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자 테렌이 조금 빨라진 어조로 얘기했다.

“주인은 겨울의 뱀의 사역마라고 하는 네게 큰 관심을 보이고 계신다. 주인이 말하길 겨울의 뱀은 사역마를 두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밖에 없긴 한데.”

방금 들은 얘기니 사실이었다.

“그에 주인도 신기해하는 것이다. 더불어 얘기도 나누고 싶어 하고 계시고…… 사실 고용이라는 건 구실에 불과하고 대화를 더욱 원하시고 계신다.”

반드시 데려오라는 명령이라도 받은 듯 테렌이 조급해했다.

시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한번 만나보지.”

카자르와 드라크 사이의 다툼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얘기를 좀 나누는 정도야 충분히 가능하다.

그걸로 해령궁주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것이겠지.

물론 모두 거짓말이고 못된 계획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상관없지.’

시안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에겐 악마 한정으로 무적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뒤통수를 치려고 하면 라비로 제압하고 정보만 뽑아낸 후 정리하면 돼.’

가능하면 라비의 힘을 쓰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런 경우는 당연히 예외다.

시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테렌이 한숨 던 표정이 되었다.

“좋다. 따라와라, 겨울의 뱀의 종복아.”

“시안이라고 불러.”

“알겠다.”

겨울의 뱀의 종복이라고 하니 말이 참 이상하다.

물론 그 때문에 초대되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뭐 어때, 듣기 좋기만 한데.]

‘내가 싫어.’

시안이 테렌의 뒤를 따라 여관을 나왔다.

* * *

카자르 가문의 저택은 베일린보다도 훨씬 컸다.

저택 내부에 아예 작은 오아시스 하나를 끼고 있었고 넓이도 위용도 베일린 저택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두 가문의 위세 차이가 단번에 드러날 정도였다.

“판데모니엄에는 크게 두 가문이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나가 드라크고 다른 하나가 이곳 카자르입니다.”

저택으로 들어가며 테렌이 간단히 도시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거대한 도시의 패권을 두고 두 가문이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다고 한다.

판데모니엄은 근방에서 가장 큰 오아시스인 데다 사막 바깥과도 그리 멀지 않은 자리에 위치해있다.

덕분에 이 도시를 손에 넣기 위한 싸움은 치열하기만 했다.

“베일린의 여식이 결혼을 위해 왔다는 건…….”

“드라크에서 전력 보충을 하고 싶었던 거죠. 최근 들어 우리 카자르에게 계속 밀리던 녀석들이거든요.”

그리고 카자르에선 그걸 막기 위해 암살자를 보냈다, 그런 이야기였다.

결국 시안의 탓에 실패했지만.

“잘도 나를 초대했군. 나만 없었다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저는 주인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요는 모른다는 소리였다.

시안이 안내된 곳은 저택 깊숙한 곳에 있는 작은 오아시스 옆이었다.

그곳에 세워진 거처에 카자르의 가주란 자가 있었다.

“크하하! 반갑소이다, 카자르의 가주인 지렌이라 하오.”

지렌 카자르. 그 역시 다른 이들과 같은 리자드맨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입이 무척 길어 꼭 악어와 같은 모습이란 점이었다.

“시안입니다.”

“크흐흐, 이미 알고 있소. 프시케님의 사역마시라고?”

“예.”

시안이 끄덕이자 지렌의 눈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그가 콧김을 뿜어내며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시안에게 물었다.

“내 알기로 그분은 사역마를 들이지 않는다고 하던데, 용케 그분의 눈에 들었소.”

“어쩌다 연이 닿아서요.”

“혹시 그분이, 내 얘기를 하진 않으시던가?”

“예?”

“이 지렌의 얘기를 하진 않았냐고 물었소.”

시안이 잠시 말을 아끼곤, 재빨리 프시케에게 물었다.

‘아는 놈인가?’

[으음…… 글쎄…….]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 예전에 얼어 죽으려고 하는 걸 구해준 적이 있어.]

‘그래?’

[그 뒤로 뭔가 뽈뽈거리며 다니면서 귀찮게 굴었었어. 뭘 하고 다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구면이긴 한 모양이다.

“예전에 직접 구원을 주었던 아이가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정말이오?”

“그 후에도 지내면서 무척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하하! 기억하고 계셨구려!”

바로 방금 전까지 까먹고 있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이었으니.

“이야~ 그땐 정말로 죽을 뻔했소이다. 한창 젊은 혈기 탓에 지겨운 사막을 벗어나고 싶어서 무작정 북쪽으로 향했었는데.”

“이런 더운 지역에서 추운 북쪽으로 말입니까?”

“지금 생각하면 좀 극단적인 면이 있었소. 일탈하고 싶은 나이였지……. 덕분에 너무 추워가지고 얼어 죽을 뻔했지만 말이오.”

그렇게 얘기하며 악어 대가리가 껄껄껄 웃었다.

무척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던진 듯한 웃음이었다.

“그나저나 프시케님은 아직 그곳에 계시오? 예전에 잠시 알아볼 땐 자리를 비웠다고 들었는데.”

“들으신 게 맞습니다. 지금도 자리를 비우고 계시죠.”

“허어! 그것참 아쉽구려. 항상 그때의 보답을 하고 싶었는데…….”

그 말을 듣고 프시케가 중간에 얘기했다.

[아 뭐 됐다고 전해줘. 뭔 보답을 받아, 기억도 안 나는 일 가지고.]

시안이 그대로 전달했다. 조금 살만 붙여서.

“보답은 안 해도 괜찮을 겁니다. 당신 얘기를 할 때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셨었거든요.”

“오오, 그렇소? 거 참 자비로우신 분이오.”

[내가 또 한 자비 하지. 마음씨가 넓고 곱다니까.]

시안은 이제 프시케를 대하는 방법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헛소리를 할 땐 그냥 무시해 주면 된다. 그러면 혼자 얘기하고 혼자 히죽거리고 알아서 논다.

“아, 그렇지. 고용 얘기로 불러왔었지 참. 뭐 간단한 얘기요. 근래 판데모니엄은 꽤나 긴장감이 넘치는 상태라오. 드라크랑 우리 카자르랑 눈만 마주치면 싸우고 있는 실정이지.”

“부하분께 대충 들었습니다.”

“그럼 얘기가 빠르겠군. 우리 쪽 용병이 되어주지 않겠소? 프시케님의 사역마라면 힘도 확실할 거고 믿을 만 한데.”

“으음…….”

또 용병 일인가.

바로 이전 가르시아 여왕의 일이 있어서 그런지 그렇게 땡기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아직 뭔가를 결정하기엔 정보가 모자랐다.

“해령궁주의 정보를 원하신다고 들었는데.”

“가지고 있는 건 맞습니까?”

“물론이오. 이 사막이랑은 멀리 떨어진 동쪽 해역의 악마지만 그래도 대악마. 내 위치쯤 되면 당연히 소식이 들려온다오.”

시안이 잠시 고민했다. 리턴은 확실히 있었지만.

“일단 생각을 좀 해봐야겠군요.”

그러나 역시 결정할 때는 아니다. 판데모니엄의 세력 구도나 그런 것에 대한 것도 자신은 지렌과 테렌에게 들은 것이 전부다.

일을 받기 전에 탐문 정도는 해봐야 할 테지.

“좋소이다. 아, 방 하나를 내드릴 테니 자고 가시겠소? 남는 방이야 많은데.”

“괜찮습니다. 잡아논 여관이 있어서.”

“아쉽구려.”

거절할지도 모르는데 숙식까지 하고 갈 수는 없다.

시안이 깔끔하게 거절한 채 지렌의 저택을 나왔다.

[할 거야?]

나오자마자 프시케가 물었다.

‘글쎄. 해령궁주의 정보가 필요하다곤 하지만 반드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애는 괜찮아 보이던데.]

‘그건 네 칭찬을 해주니까 그런 거겠지.’

프시케에게 한소리 하며, 시안이 천장이 갈라진 여관방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저거, 카자르 가문에서 변상하는 거겠지……?

* * *

밤이 되었다.

풀벌레조차 잠든 새벽의 시간. 한 건물의 지붕 위에서 검은 인영 하나가 스르륵 미끄러졌다.

그 인영은 이윽고 창문 하나를 붙잡고 섰다.

그러고는.

콰드드득!

나무로 되어 있는 창을 단숨에 부수고 들어가더니, 쏜살같이 침대를 검으로 찔렀다.

“……!”

그러나 놈의 눈이 커져왔다.

침대를 찌른 검에서, 예상했던 감촉이 없었기 때문이다.

순간 싸늘한 한기를 느낀 인영이, 단숨에 몸을 돌렸다.

“이거 참.”

달빛도 비치지 않는 어둑한 방의 구석 자리.

그곳에서 흑검이 쏘아져 나왔다.

막 몸을 돌렸던 복면의 리자드맨은 비명 하나 지르지 못한 채 절명했다.

“잠을 잘 수가 없네.”

시안이 검을 휘둘러 암살자의 피를 털어냈다.

그러자 여관 주변에서 속속들이 기척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동료가 당한 것을 보고 이미 들켰음을 눈치챈 것이다.

그리고 개중에, 유독 커다란 기척 하나가 있었다.

바로 아까도 느낀 적이 있던 기운.

지렌 카자르.

[어떻게 알았어? 얘네가 뒤통수치려는 거.]

프시케가 떨떠름하게 묻자 시안이 대답했다.

“뭐 그냥, 악마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

[너…… 우리 악마에 대한 선입견이 너무 나쁜 거 아냐?]

“좋을 거라 생각하는 게 더 어이가 없다.”

그때, 예의 거대한 기척이 다가왔다.

여관 아래 위치한 그 기척은 이내 쿵! 하고 땅을 밟더니 시안이 있는 층까지 순식간에 올라왔다.

그러곤 창틀을 짓밟아 부수며 방에 침입했다.

어둠 속에서 형형히 빛나는 붉은 파충류의 눈동자.

“쯧, 잘도 알아챘군.”

녀석이 잡고 들어온 창틀을 그대로 뜯더니, 아그작 이빨로 씹어댔다.

악어를 닮은 그 입에서 날카로운 이빨이 달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프시케는 어디 있나?”

“왜? 보답이라면 필요 없다고 했다니까?”

퉤. 녀석이 이를 갈던 창틀 조각을 퉤하고 뱉었다.

그런 후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흥, 보답은 무슨. 그 말을 진짜 믿은 거냐? 그년은 내 사냥감이다!”

애초에 과거 북쪽 땅에 향했던 것도 대악마를 먹고 스스로의 힘을 드높이고 싶었기 때문.

과거엔 힘이 모자라 실패했으나, 그러나 지금은 자신 있었다. 오랜 세월을 걸쳐 자신 역시 이전과는 비할 수 없이 강해졌으니까.

그런 지렌의 말을 들으며 시안이 슬쩍 팔목을 내려다보았다.

[나, 나도 안 믿었지 당연히!]

전혀 믿을 수 없는 대답이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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