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110화
“상품으로 줄 건 B급 아티팩트 중 하나일세. 아무거나 가지고 오게.”
그 말에 유설과 에르제가 눈을 빛내더니 쪼르르 흩어졌다.
두 사람은 곧바로 사라졌으나 시안은 바로 이동하지 않았다.
그에 제레흐가 의아해할 때 시안이 그에게 물었다.
“파멜라 드레이크의 수색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사실 아직 지지부진하다네. 우리들도 최대한 힘을 써보곤 있지만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아.”
제레흐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날 와이번을 타고 사라진 파멜라의 수색. 맹의 힘으로 최대한 찾아보고는 있으나 여의치가 않았다.
날아서 사라졌기에 흔적이 남지 않았고, 그 이후로 어디에서도 그녀의 목격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숨어 있나 보네요.”
“어딘가의 칠흑마탑에 몸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네.”
“그럼 칠흑마탑들을 찾아내다 보면 그녀의 흔적도 발견되겠군요.”
“아마도.”
마룡왕의 사도. 아마 여러 의미로 자신을 노리고 있을.
마룡왕이 자신 또한 사도로 삼고 싶어 하는 만큼 해코지를 하러 오진 않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다.
어떤 수작을 부려올지 모르는 상대니까.
“샤밀라는 어떻죠?”
“파멜라의 동생 말인가?”
“예. 교단엔 잘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만.”
“신변에 문제는 없네. 다만 언니가 그렇게 된 것에 마음고생이 심하다고 하더군.”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듣기로 파멜라와 샤밀라는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단둘뿐인 가족이라 들었다.
그런데 하나뿐인 가족이 악덕한 무리의 일원이었단 사실이 밝혀지다니 마음고생이 없을 수 없겠지.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쏟아지는 주변의 의심 어린 시선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 해도 시안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파멜라를 잡아낸 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자신은 파멜라를 잡아낼 것이다.
오히려 훨씬 더 철저하게 준비하여 완벽하게 잡기 위해 노력하겠지.
“흐음…….”
샤밀라의 얘기를 꺼내는 시안을 제레흐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바라보았다.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던 그가 이내 시안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뭡니까?”
“잠시 따라오겠나?”
그렇게만 말하며 제레흐가 어딘가로 향했다.
심상치 않은 그의 분위기에 시안이 갸웃거리며 뒤를 따랐다.
제레흐가 향한 곳은 이 안쪽 비고 중에서도 가장 심처. 그 어디보다 철저히 보안이 갖춰져 있는 장소였다.
거대한 철문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열렸다.
그걸 기다리며 제레흐가 얘기했다.
“자네는 묘하게 마룡왕의 관심을 끄는 모양이더군.”
안드라스를 잡아냈기 때문일까. 제레흐는 시안을 주목하는 마룡왕을 느낄 수 있었다.
천도맹의 다른 누구도 그리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만은 파멜라가 아그리드 영지에서 서성이던 것도 시안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그는 마룡왕이 시안을 노리는 진짜 이유는 알지 못한다. 그를 사도로 삼기 위해 주시하고 있다는 이유를.
때문에 제레흐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마룡왕은 시안을 죽이고 싶어 한다고. 파멜라가 아그리드 영지를 찾았던 것도 시안의 암살을 위해서였다고.
“자네도 한 번쯤 봐두는 것이 좋을지 몰라.”
“설마…….”
수백의 마법진과 수십의 아티팩트가 겹겹이 쌓인 그 장소. 그곳에 놓여 있는 것은.
“마룡왕이 제 물건이라고 주장하며 가져가려고 했던 물건일세. 현재 내가 아는 선에서 단둘, 자네와 마찬가지로 마룡왕이 집착하고 있는 녀석이지.”
원시(元始) 마법.
그것은 빛이 바랜 청동거울처럼 보였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평범한 거울은 아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도 더더욱 아니고.
“지난 기록들을 살펴보면…… 대륙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더군.”
“…….”
“자네가 혹여 마룡왕의 마수를 피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보여주는 것일세.”
학생을 편애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한 교육 기관의 장인 총장이 취할 만한 자세는 아니었다.
제레흐는 지금 총장으로서가 아니라 천도맹의 일원으로서 시안을 대하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마룡왕의 이목을 끌어버린 안쓰러운 아이를 향해서.
“얘기는 들어봤습니다만.”
시안이 그것에 가까이 다가갔다.
아직도 매끄러운 표면에 그 자신의 얼굴이 비쳐왔다.
거울 속의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설마 이런 형태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럼 어떨 거라고 생각했나?”
“음…… 아무리 해도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든가, 특정한 형태가 없이 변화하는 마력 덩어리라든가 뭐 그런 거라고 생각했죠.”
“허허, 나도 실물을 보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었지.”
시안이 쓰게 웃으며 물었다. 여전히 거울에선 눈을 떼지 않은 채였다.
“그래서 무슨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겁니까?”
“나도 몰라.”
“네?”
“기록상에도 나와 있지 않고 이리저리 만져보기도 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더군. 사실 마룡왕이 직접 나타나기 전까진 정말로 원시 마법이 맞는지 확신도 하지 못하고 있었네.”
시안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왜 데려온 거야?
현존하는 최고령의 하이마스터가 알지 못하는 것을 자신이 알 수 있을 리도 없지 않은가.
“확실히 물건 자체가 품고 있는 마나가 범상치 않은 건 알겠습니다만.”
“뭐 사실 아무 반응이 없으리란 걸 아니까 자네에게 보여주는걸세. 그래도 원시 마법이 이렇게 생겼다는 것은 알아두게. 이 정보만으로도 마룡왕에게 유용하게 쓰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배려 감사합니다.”
확실히 이건 제레흐의 배려였다. 그걸 생각하며 시안이 청동거울의 모습을 두 눈 깊숙이 각인했다.
단순히 모습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품고 있는 기운까지도.
‘마룡왕과 비슷한지는 모르겠는데.’
그때, 안드라스의 수작으로 현세와 지옥의 경계라는 곳에 갔을 때 느꼈던 마룡왕의 기운과 닮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청동거울을 만지던 시안.
그러던 중.
“!”
일순간 아찔한 느낌이 들어왔다.
‘우웅!’
라비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언제나 귓가에 들리던 그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시안의 눈이 크게 뜨였으나.
그 눈에 비치고 있는 것은 온통 새까만 광경뿐이었다.
* * *
“정말로 이렇게까지 하실 건가요?”
소메르 제국의 황실. 헬레네 황녀가 눈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이는 단 한 사람. 팔짱을 낀 채 가라앉는 눈으로 황녀를 응시하고 있는 노인.
제국 군부의 정점에 앉아 있는, 대장군 로데릭 발자크였다.
“이미 폐하의 윤허는 받았습니다. 제가 찾아온 것은 황녀님의 재가를 받기 위함이 아니라 미리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
“황녀님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두 분의 경쟁은 제국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나, 그것이 내부 분쟁으로 이어지면 결코 안 된다는 것을.”
“……물론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황녀님.”
딸깍.
로데릭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직접적인 부딪침만 없을 뿐이지, 전쟁은 이미 일어났습니다. 저는 군의 수장으로서 제국을 위해 헌신하는 장병들의 목숨을 최대한 아낄 의무가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이건 폐하의 명이기도 합니다. 개전과 동시에 반드시 그곳에 찾아가. 비고 깊숙이 숨겨져 있을 거울을 가져오라 하더군요.”
갑자기 무슨 거울인지는 모르겠지만, 폐하의 명인 이상 따르지 않을 수 없다며.
로데릭이 그리 얘기했다.
헬레네가 쓰게 웃었다. 그녀와 그녀의 오라비가 차기 황제 자리를 두고 다투고 있다곤 하나, 아직 둘 다 애송이에 불과했다.
저 대전 깊숙이 들어앉아 있는 늙은 구렁이에 비한다면.
“후우, 알겠어요. 그것이 폐하의 명이라면 저도 기꺼이 마법사들을 지원하도록 하죠.”
“감사한 말씀이군요.”
둘의 얘기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그 길로 황녀는 화염마탑주에게 얘기해 로데릭이 직접 꾸리는 별동대에 마법사를 보내기로 했다.
무려 화염마탑주 본인이 가기로 합의가 되었다.
로데릭 역시 본인이 직접 별동대에 참여한다고 하였으니 조금이라도 밸런스를 맞춰주기 위해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헬레네가 두 남자를 생각했다.
그녀의 약혼자인 데미안과 그날 함께 춤을 추었던 시안.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겠군.”
이런 식으로 재회하고 싶진 않았는데.
헬레네가 쓴웃음을 지으며 찻잔을 들었다. 찻잔 속의 차는 이미 모두 식어 있는 채였다.
* * *
시안이 보고 있는 것은 온통 새까만 공간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자그마한 빛이 보였다. 까만 밤하늘에 점점이 박혀 있는 별을 생각나게 하는, 그런 미약한 빛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검은 공간 속, 작은 빛줄기만이 보이는 상황.
시안은 이런 풍경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라비가 있었던.’
아티팩트를 통해 살짝 엿보았던, 그 자신의 심상세계.
그때의 광경과 매우 닮아 있었다.
‘벽은 없네.’
하지만 그때와 같은 벽은 없었다. 주변에 걸리는 것은 그 무엇도 없었고 얼마나 걷든 손에 잡히는 것 또한 없었다.
그 광활한 우주와도 같은 공간에서, 시안은 생각보다도 더욱 편안한 상태였다.
이 공간이 그 자신의 심상세계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까.
두려움이나 긴장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마치 요람에 든 것과 같은 안정감이 느껴졌다.
‘그때는 절벽을 올라 빛을 발견하니 클리어가 되었는데.’
만약 이곳 역시 그때와 같은 곳이라고 한다면, 저 위쪽의 별에 닿는다면 된다는 얘기가 아닐까.
하지만 잡히는 것도 없고 걸리는 것도 없다. 대체 뭘 어떻게?
‘……오를 수 없다면.’
그 답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의 심상에 담겨 있었으니, 답 역시 바깥이 아닌 안쪽에서 찾는 것이 옳았다.
‘올라서 닿을 수 없다면, 떨어뜨리면 돼.’
그 순간 시안의 손에 한 자루 검이 나타났다.
라비의 흑검이 아닌 그냥 한 자루의 철검. 아무것도 아닌 그 검이 손에 들리자 신기하게도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하늘의 별을 떨어뜨리는 일조차도.
다음 순간, 그는 어느새 청동거울의 앞으로 돌아와 있었다.
시안이 한 발자국 거울에서 멀어졌다.
“다 보았나?”
제레흐는 방금 시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절 눈치채지 못하였다.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오직 시안뿐.
“예. 데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렇게 큰 도움이 될 일도 아닌데.”
아니,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시안이 청동거울을 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원시 마법.
옛 신화의 시대. 날카로운 이빨도 발톱도, 거대한 덩치도 아무것도 없던 인간이 강대한 마물들과 맞설 수 있게 해주었다던 인류 최초의 마법.
그것의 효능은 사실 정말 간단한 것이었다.
거울이란 것에서 알 수 있듯 그 스스로를, 스스로의 심상세계를 보여주는 마법.
시안이 스스로의 손을 보았다.
방금 보았던 풍경과 그 안에서 떠올렸던 해답이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동시에 그 해답이 정말 답인지에 대한 의심암귀 또한 얻었다.
자신은 앞으로 평생에 걸쳐 고뇌하고 고심해야 할 화두를 얻은 것이다.
평생을 구도의 길을 걷는 자.
그 말은 곧 마스터의 경지에 발을 내디뎠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난날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얇은 벽을 원시 마법을 계기로 넘어선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물건이었군.’
총장이나 다른 연구자들과 다르게 왜 자신에게만 발동했는지 그건 아직 모르겠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물건이다.
심상세계를 새겨주는 물건이라니.
사용 방법만 제대로 안다면 그것은 곧.
‘마스터를 찍어내는 물건이잖아?’
상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득한 물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