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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105화 (105/188)

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105화

대항전이 시작하기까지 일주일.

일주일 동안 학생들은 제각기 팀을 짜기 바빴다.

3명씩 팀을 짜고, 또 경기를 치르려면 최소한의 합도 맞춰봐야 한다. 작전이나 전술 등도 합의를 해야 하고.

그걸 생각하면 일주일이란 시간은 결코 길지 않았다.

그동안 시안에겐 수많은 러브콜이 들어왔다.

몇 명이나 되는 선배들이 찾아와 팀으로 들어오라 얘기하였고, 거절당한 데미안조차 더 설득하러 왔었다.

물론 모두 거절했다.

‘일주일은 너무 짧다.’

모르는 사람과 팀을 이뤄 서로의 수준을 확인하고 전술을 짜내기엔 촉박한 시간이다.

일주일 동안 모든 시간을 쏟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업도 정상적으로 치러지기 때문에 더더욱 짧다.

그런 만큼 잘 아는 사람들로 팀을 이루는 게 승률은 훨씬 높을 것이다.

‘전위는 내가 하고 후위 한 명이랑.’

후위를 부탁할 만한 학생들은 꽤 많았다. 유설도 있었고 알렌도 충분히 후위를 맡을 수 있다.

이안도 레이나도 드론드도 따져보면 모두 후위가 어울리는 아이들이다.

아카데미에서 다소 친분을 쌓은 면면들을 보면, 란을 제외하곤 거의가 다 후위였다.

‘옛날엔 4명을 못 모아서 내기를 하고 다녔는데.’

과거 구울을 잡는 교외 수업에서 4명을 모으기 위해 대련광장을 돌아다녔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인맥이 꽤 많아진 셈이다.

‘후위는 걔네들 중에 한 명한테 부탁하기로 하고.’

나머지 한 자리가 문제였다. 후위를 한 명을 더 채우거나 혹은 전위를 채울 목적으로 란에게 말을 꺼내보거나.

어느 쪽이든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시안이 선택한 것은.

“저, 정말? 나로 괜찮아?”

“네가 따로 정해둔 팀이 없다면 말이지만.”

“없어, 없어! 나한테 팀 해달라고 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에르제에게 말을 걸어보니 폴짝 뛰며 기뻐했다.

듣자 하니 본래 참가할 생각도 없었다고 한다. 300위한테 말을 거는 사람은 없다면서.

‘반지 순위를 올려서 시선을 끌거나 먼저 얘기해 보거나 해도 될 텐데.’

원한다면 참가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텐데 왜 하지 않는 것일까. 귀찮아서라든가 그런 이유일 리는 없을 텐데.

시안이 보는 에르제는 이래 봬도 꽤나 부지런한 아이였다. 실력도 나쁘지 않으니 반지 순위도 지금보다는 더 올릴 수 있을 텐데.

‘뭐 란도 아직 292위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그냥 반지 순위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뜻이리라. 두 사람 다.

“잘 부탁해!”

“나도.”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자 에르제가 조심조심 손을 잡아왔다.

그래도 그녀가 300위를 유지하고 있던 덕분에 쉽게 영입할 수 있었다.

순위는 300위라고 하나 그녀의 능력은 1학년 중에서도 독보적이었다.

애초에 기척을 숨기는 암습에 특화된 아이들이 많지 않은 것도 있고, 몇 명 있는 아이들 중에서도 에르제가 가장 뛰어나다.

한 10:10이나 20:20 이런 단체전이라면 몰라도 3:3의 소수전이라면 암습에 능한 동료 하나는 소중했다.

3명 가지곤 뒤도 앞도 모두 신경 쓰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 같이 행동하는 거 그레이트 힐 이후로 처음이지?”

“하이오크 잡으러 갈 때 같이 있었잖아?”

“에이, 그때는 다른 애들도 다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한 명 더 있을 예정인데.

“시안, 방학 때는 어떻게 지냈어? 어디 놀러 가거나 그랬어?”

“아니. 수련만 했다.”

천둥마탑의 일이나 벤델 영지에서의 일이나 파멜라의 일이나 이런저런 일이 있긴 했지만, 그걸 빼고 보면 결국 영지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애초에 한가하게 놀러 다닐 처지 따윈 아니었다.

“일단 세 번째 멤버부터 찾고 얘기하자.”

“아, 응. 세 번째는 누구야?”

“후위로 들일 건데 흠…… 먼저 찾아가 볼 녀석은…….”

후위의 후보군이라면 여럿 있다.

개중에 가장 먼저 떠오른 아이를 향해 시안이 발걸음을 향했다.

* * *

강의실에도 복도에도, 그리고 바깥의 광장에도 대항전의 얘기와 팀을 이루는 얘기로 가득했다.

그들을 지켜보며, 시안이 눈을 찌푸렸다.

이전부터 알음알음 느껴지던 것이 있었는데 이번 대항전으로 그게 더 크게 다가왔다.

“하, 짐승 냄새 나는 놈들이 모여 다니는 꼴하곤.”

“뭐야 인마? 한번 붙어볼래?”

“흥, 무식한 놈들.”

아카데미에 있는 세 종족. 인간과 수인, 그리고 반요정의 사이가 생각보다도 더 나빴다.

1학년은 별로 그런 낌새가 없는데 2학년과 3학년은 대부분이 종족별로만 모여 다니며 서로에게 눈을 부라리는 일이 흔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야 종족이 다르니 잘 섞이지 않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저렇게까지 적대적일 필욘 없을 텐데.

“선배들은 뭔가 좀 흉흉하네.”

“그러게.”

에르제까지 그 분위기를 느끼고 있는지 시안에게 작게 속삭였다.

1학기 때는 시안이나 에르제나 선배들과 엮일 일이 많지 않았다.

시안은 한두 번 정도 만났을 뿐이고 에르제는 선배는커녕 동급생들과도 얘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래서 잘 모르고 있던 선배들의 사이가 이번 대항전을 계기로 보여온 것이다.

‘2, 3학년이라……. 데미안의 영향인가?’

시안은 짐작 가는 것이 하나 있긴 했다.

과거 데미안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했던 얘기.

―명심해라 시안. 그들이 점거하고 있는 그 땅은 언젠가 우리 제국이 짓밟아야 할 땅임을.

데미안은 제국연, 제국역사연구부의 부장이다. 아카데미 내 제국 귀족들의 우두머리나 마찬가지란 말이었다.

그런 놈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으니 제국 귀족들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겠지.

놈은 2학년이지만 놈의 집안과 지위를 생각해 보면 3학년들에게도 충분히 영향을 미칠 만했다.

‘가만 보면 사이가 나쁜 건 제국 귀족들뿐이고 수인이랑 반요정 사이는 썩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눈을 부라리고 있는 건 제국연의 학생이 있을 때뿐이고 반요정과 수인들 사이는 그렇게까지 험해 보이진 않는다.

그 사실이 시안의 추측을 더욱 뒷받침해 주었다.

“우리처럼 사이좋게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럴 수 없는 이유라도 있나 보지.”

“2학년이 되면 종족별로 경쟁하는 수업이라도 생기는 걸까?”

에르제의 의문에 대한 답은 다른 쪽에서 들려왔다.

“그런 수업은 없어. 학교는 종족 가지고 학생들을 나누거나 하진 않거든.”

아카데미 내 빙하백령 학생들의 우두머리, 웨일숲의 숲지기의 리더인 유연이었다.

그녀가 동생인 유설을 옆에 끼고 시안과 에르제 쪽으로 다가왔다.

“또 만났네, 1학년 꼬맹아.”

“……안녕, 시안.”

거만하게 보일 정도로 당당한 태도의 유연과 그 옆에서 움츠리며 손을 흔드는 유설이 무척이나 대비되었다.

그러고 보면 저번에도 언니 앞에선 꽤나 위축된 모습이었었지.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여전히 말투만은 공손하네.”

유연이 피식 웃으며 시안을 바라보았다.

시안이 그녀의 옆에서 고개 숙이고 있는 유설을 바라보았다. 마침 찾고 있었는데 제 발로 와줄 줄이야.

“선배님. 수업으로 가르는 것도 아니라면 선배님들은 왜 이렇게 분위기가 흉흉하나요?”

시안이 유설을 보고 있는 사이 에르제가 아까의 말에 이어 질문했다.

유연이 콧방귀를 뀌며 옆머리를 쓸어넘겼다.

“왜긴 왜야, 데미안 그 새끼 때문이지.”

역시.

혼자 납득하는 시안을 두곤 유연이 거칠게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 3학년도 1학년일 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거든. 근데 데미안 놈이 후배로 들어오면서 제국 출신 학생들이 죄다 맛이 가기 시작했단 말이지.”

“맛이 가요?”

“존나게 싸가지없어졌어.”

갑자기 훅 들어온 욕설에 면역이 없는 에르제가 살짝 당황했다.

작은 시골 마을 출신인 에르제에겐 저런 욕설 같은 것이 익숙지 않았다.

“우리 학년까지 그 지경이 됐는데 데미안이랑 동학년은 어떻겠냐. 지금 2학년은 거의 뭐 전쟁 분위기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짜로 집안끼리 전쟁이라도 하고 있는 줄 알걸.”

“예에…….”

그러거나 말거나 유연은 데미안과 제국연의 욕을 한가득 이어갔다. 바로 앞에 있는 시안과 에르제가 그 제국의 학생이었음에도.

“이상하네요. 우리 학년은 딱히 그런 분위기 없는데.”

에르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데미안의 영향이 선배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후배들은 더 손쉽게 당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지금 아카데미의 1학년들 사이엔 선배들같이 종족으로 나뉜 신경전은 딱히 없었다.

“그야 너네한텐 저 시안 꼬맹이가 있잖아.”

“시안이요?”

“……뭘 한 기억은 없습니다만.”

“아무것도 안 하니까 그렇게 된 거지.”

시안은 입학 직후부터 1위의 반지를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1학년들 중 날고 긴다 하는 아이들은 모두 시안에게 한 번 이상 도전을 하였으나 완벽히 깨져나간 상태.

덕분에 1학년들 중에도 있는 제국연 학생들은 시안을 두고 움직이기가 영 힘든 상태였다.

더욱이 그들 중에는 시안보다 작위가 높은 집안의 학생이 없다는 것도 한몫했다.

“1학년 제국연 놈들이 너 때문에 그냥 닥치고만 지내잖아? 거기에 쿠르간 말로는 란 아슬라가 널 신경 많이 쓴다고 그러고 우리 설아도 너, 너 같은 놈이랑 친하게 지낸다고 그러고!”

시안이 쳐다보자 유설이 뒤쪽에서 살짝 고개를 돌렸다.

친하다기보단 공범자 같은 느낌인데. 같은 지옥의 존재를 품고 있는 이들끼리의.

째려보는 유연의 시선은 무시하곤 시안이 생각했다.

역시 데미안의 손을 잡지 않은 것은 정답이었다.

‘녀석들이랑 한패 취급을 당할 뻔했어.’

그건 사양이다. 제국연 학생들과 친하게 지낼 거였음 진작 데미안의 살롱에 참석했을 것이다.

뭐 어찌 됐든, 2학년 3학년들의 관계가 어떻든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다.

시안이 유설을 보며 얘기했다.

“유설. 이번 대항전에 참석할 생각이겠지?”

“응? 으응, 그런데.”

“팀은 정했어?”

“아직…… 이긴 한데.”

유설이 그리 대답하자 옆에 있던 유연의 눈에 불이 튀었다.

“아직은 무슨! 나랑 하자니까? 당연히 나랑 해야지. 이번에 우리 숲지기에서 1, 2, 3학년으로 한 명씩 나가보자구.”

“으음…….”

유연이 그리 얘기하곤 있지만 유설은 썩 내키는 표정은 아니었다.

시안이 그녀의 망설임에 납득했다.

‘밸런스가 안 좋잖아.’

반요정들은 대개가 마법이나 정령술에 특화되어 있다.

물론 그들 중에도 검을 쓰는 이가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태생적으로 가녀린 몸과 뼈는 전위에 서기엔 적합지 못하다.

검을 쓴다고 해도 수인족은 물론 어지간한 인간들보다 떨어지는 일도 흔했다.

‘이기려면 섞어야지.’

아마 그래서 대답하지 않고 망설이는 것이겠지.

그러나 시안의 생각과 달리 유설은 대항전에서 그렇게까지 승리에 목을 매고 있진 않았다.

하지만.

[겨울의 뱀이 조릅니다.]

[이놈들 둘 다 별론데 다른 팀 가자, 응?]

그렇다고 불편한 언니와 함께 참석하는 것도 싫었다.

굳이 말하자면 언니와 함께하는 것이 크게 거부감이 느껴지진 않는다. 그냥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느낌?

하지만 시안과 같은 팀이 된다는 것에는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그의 손에 끼워진 1위의 반지.

그녀는 아직 그 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거기다 프시케가 시안을 피하고 이러는 걸 볼 때마다 괜히 청개구리 심보도 난단 말이지…….

“시안. 혹시 팀에 자리 남았어?”

그래서 그리 얘기했다.

“설아!”

[우우…… 차라리 얘 말고 그 란인가 걔랑 팀 하지…….]

주변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목소리들을 다 차단하며 그녀가 시안을 보았다.

시안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한다.”

1학년들만의 팀이 완성되었다.

그것도 1, 2위와 꼴찌인 300위가 함께하는 독특한 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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