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99화
이렇게 혼자 떨어졌을 때 가장 먼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정해져 있다.
다른 일행과 합류하는 길.
다들 뿔뿔이 흩어져 있는 걸로 생각된다만, 그중에선 염노와 합류하는 것이 베스트일 것이다.
아니면 다른 기사들도 괜찮고.
‘내가 놈들이라면 나랑 헥토르를 합류하게 두진 않을 테니.’
시안이 천천히 지하 통로를 내려갔다.
발밑이 꽤나 축축했다. 안쪽이 습기가 많다는 말은 정말이었나 보다.
기온은 낮은 편이었으나 하도 습하다 보니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시야도 횃불로 보는 것이 전부였기에 더더욱.
그렇게 미궁 속을 나아가다 보니.
“꾸륵.”
놈들과 마주쳤다.
이곳에 서식하고 있다고 하던 나가들이었다.
‘정말 나가가 맞군.’
온몸을 덮고 있는 푸른 비늘, 손가락과 발가락에 있는 물갈퀴와 메기처럼 길게 찢어진 입.
그 손엔 고기잡이용 작살과 같은 무기를 들고 있었다.
“꾸륵, 꾸륵!”
“꾸이익!”
그런 나가가 다섯 마리.
적지 않은 숫자였지만 시안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나가는 까다로운 몬스터긴 했지만 그건 물속에서의 얘기다. 이렇게 물 바깥에선 그냥 좀 강한 고블린이나 다를 게 없었다.
‘라비.’
안 그래도 마침 시험해 보고 싶은 것도 있다.
‘웅!’
라비를 부르자 그의 손에 검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내 검신이 크게 휘어지더니 한 자루의 환도(環刀)로 변하였다.
기병이 주로 사용하는 세이버의 형태.
그 검신을 따라 파직거리며 하얀 전기가 피어올랐다.
검령 - 뇌명(雷鳴).
헥토르, 뇌력천주의 기운을 흡수하여 얻은 새로운 검이었다.
“케헥!”
“쿠르륵!”
뇌명의 검신을 타고 흐르는 이것이 뭔지도 모르는지, 나가들이 겁도 없이 달려들었다.
살짝 뒷걸음질을 치며 시안이 놈들을 향해 검을 그었다.
파지지지지직!
생각 없이 달려오던 다섯의 나가가 뇌명이 뿌리는 전격에 속수무책으로 말려들었다.
“끼아아아악!”
순식간에 새까맣게 탄 나가들.
신체의 겉이든 속이든 물이 많은 녀석들이다. 시안의 일검조차 견디지 못하고 전부 시꺼멓게 타 쓰러졌다.
‘성능 확실하군.’
어지간한 천둥마법사의 마법보다 확실했다. 검을 긋기만 하면 되므로 사용하기도 간단했고.
‘검의 형태도 나쁘지 않아.’
거기에 검의 모양도 사용하기에 딱 좋았다.
날이 휘어져 있는 만큼 말을 타거나 했을 때 특히 더 힘을 발하리라.
나가들의 사체를 뒤로하고 시안이 미궁 안으로 향했다.
갈림길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시안은 한 가지 기준을 가지고 이동했다.
그 기준이란 나가가 이동한 흔적이 있는 통로.
‘녀석들이 나타나는 장소를 찾는다면 뭐라도 있을 테니까.’
적어도 아무것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파지지지직!
조우하는 나가들을 모조리 태워버리며 그가 미궁 깊숙이 들어갔다.
* * *
“잡아라! 그쪽!”
“예!”
나가들과 싸우고 있는 것은 시안뿐만이 아니었다.
줄리오와 아델하이트의 기사들.
줄리오가 실을 펼쳐 붙잡은 나가들에게 기사들이 검을 찔러 넣었다.
깔끔한 연계에 몇이나 되는 나가들이 순식간에 절명했다.
“휘유~ 꽤 하네.”
뒤쪽에서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에 줄리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봐, 노예. 왜 따라오는 거지?”
휘파람의 정체는 그들을 따라오던 헥토르였다.
“굳이 따로 갈 필요 없잖아.”
“흥! 몬스터가 무서우면 무섭다고 솔직히 말하든가!”
성에서 약간의 시비가 있었다곤 하나 그것 때문에 노예 혼자 두고 갈 정도로 줄리오가 인성 파탄자는 아니었다.
줄리오 딴에는 그래도 생각해서 해준 말이었지만.
“별로.”
헥토르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표정에 줄리오의 미간에 주름 하나는 더 잡히었다.
“젠장! 주인이고 노예고 아주 짜증 나는 놈이로구만!”
그가 씩씩대며 기사들을 데리고 미궁 속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헥토르가 편안한 발걸음으로 뒤따랐다.
실제로 나가들 몇몇한테 겁을 먹은 그가 아니었고, 나름의 생각하는 바도 있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흑마법사 놈들도 접근하기 힘들겠지?’
그의 주인인 시안은 흑마법사가 접근하면 놈들의 동료인 척 연기를 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짓을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 귀찮은 일이었다.
그러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이것이었다.
놈들과 최대한 조우하지 말아보자.
‘여기 인간들을 다 잡아 죽일 게 아니라면 룰루랄라 등장하진 않겠지.’
헥토르가 칠흑마탑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는 알고 있다.
놈들은 최대한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한다는 것.
그러니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 다니면 놈들도 움직이기 힘드리라.
‘흐흐, 나도 좀 똑똑하단 말이지. 오우거 중에선 최고의 책사일지도?’
그가 스스로의 꿍꿍이에 자화자찬을 하며 줄리오 일행의 뒤에 붙었다.
실실거리는 헥토르의 표정에 줄리오는 뒷목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쪽은 몬스터를 경계하랴 길을 찾으랴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저 노예 놈은 아무것도 안 하고 헤실거리고만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뭘 하라고 시킬 수도 없다.
노예가 뭘 안다고 유적 탐사 일을 시킨단 말인가?
‘대체 시안 그놈은 노예를 왜 데려온 거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대충 잔심부름이나 시키려고 데려온 건가?
“어이! 따라올 거면 제대로 따라와!”
“예입.”
나중에 시안놈에게 이 값은 톡톡히 청구할 거라 마음먹으며, 줄리오가 헥토르를 챙겼다.
물론 굳이 그가 챙기지 않아도 알아서 따라왔을 테지마는.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운 좋게 길을 잘 잡았는지 줄리오 일행은 미궁의 꽤 깊숙한 곳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때 그들을 막는 이들이 있었다.
“그만.”
검은 로브로 몸을 감싼, 누가 봐도 수상한 인원들이 3명.
그들의 등장에 줄리오와 기사들이 긴장을 끌어올렸다.
누구지?
“용병이냐?”
일행의 대표로 줄리오가 질문했다.
그러나 검은 로브들 중 그 말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그나마 반응을 보인 이는 한 명.
그가 손바닥을 펴 살짝 허공을 내리누르자.
“헉!”
“으헛!”
쿠웅!
위에서 내려오는 압력에 줄리오와 기사들이 땅에 엎어졌다.
그들이 힘을 주며 몸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잘되지 않았다. 마치 공기에 무게가 생겨 그들을 빠짐없이 내리누르는 느낌.
그런 와중, 일행 중에서 유일하게 일어서있는 자가 있었다.
혼자만 공격당하지 않은 헥토르였다.
‘아니, 이 녀석들, 그냥 대놓고 나오잖아?’
헥토르가 검은 로브의 흑마법사들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 * *
시안이 계속해서 나가들의 흔적을 따라 지하 깊숙이 들어갔다.
가는 길에 마주치는 나가는 물론 모두 처치했다.
‘가면 갈수록 많아지고 있어.’
지하로 내려갈수록 조우하는 나가들이 많아진다.
이 정도 숫자면 흑마법사들이 어디서 포획해서 데려왔다든가, 그런 가설은 사라진다.
이건 100% 이 아래쪽에 둥지가 있단 얘기였다.
‘이런 함정을 준비했을 정도면 나가들의 둥지도 확인했을 테고.’
그러면 그곳엔 놈들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터.
“캬악!”
파지지직!
무지성으로 달려드는 나가들을 뇌명으로 지져가며 시안이 놈들의 둥지가 있을 만한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이윽고, 그가 커다란 공간에 도착했다.
바다를 연상케 할 정도로 널찍한 지하 호수가 위치한 공간.
시안이 검을 들었다.
‘여기다.’
호수 속에 개구리 알마냥 빼곡히 들어 있는 나가들의 알.
헤엄치고 있는 새끼 나가들도 있었고 여기까지 수없이 조우했던 성인 나가들도 있었다.
그리고 호수 중앙에 있는 작은 둔덕에 턱을 괴고 누워 있는 거대한 나가.
이곳 나가들의 보스가 분명했다.
“크륵? 크케엑!”
보스 나가가 시안을 보더니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
직후 인근의 모든 성인 나가들이 시안을 보곤 무기를 챙겨 들었다.
달려드는 놈들을 보곤 시안이 발밑을 주의했다.
호수의 물기에 닿지 않게 주의하며 뇌명을 휘둘렀다.
파지직 소리와 함께 지하 공동에 밝은 빛이 몇 번이나 점멸했다.
이제까지와 다를 것 없었다. 일반 나가들은 그걸로 모두 나가떨어졌다.
“케, 케켁!?”
보스 나가가 당황스럽게 소리를 지르더니 훌쩍 뒤로 뛰었다.
그러곤 시안과 정반대 편 호수 바깥으로 대피했다.
놈은 그래도 뇌명이 자신들에게 치명적인 천적이란 사실은 깨닫고 있는 것 같았다.
‘거리가 있군.’
시안이 번개를 뿜는 검을 가지고 있다지만 어찌 됐든 그건 검이다. 마법처럼 벼락을 쏘아내거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검기를 쏘아 보내는 감각으로 벼락을 쏠 수 있긴 했지만 검기가 닿기엔 호수 반대편이 좀 멀었다.
뭐 이런 경우엔 비검을 날리면 그만이지만.
“케케케!”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보스 나가는 벌써부터 자신이 이긴 것처럼 웃어댔다.
놈이 창을 거꾸로 들어 올렸다. 그러곤 시안을 조준하여 힘껏 던졌다.
쌔애애애액!
창이 심상치 않은 속도로 날아왔다.
시안의 미간을 찍어버릴 것처럼 강렬하게 날아오는 그 창을, 시안이 맨손을 들어 잡았다.
창을 잡은 그의 손등에서 파워 건틀릿의 주술타투가 빛나고 있었다.
“흡!”
시안이 창을 돌려 똑같이 던져주었다.
보스 나가가 기겁을 하더니 상체를 푹 숙였다.
그런 놈의 머리 위를.
콰직!
어느새 날아간 비검이 찍어버렸다.
그대로 호숫가로 떨어진 보스 나가의 사체에서 피가 흘러 호수를 적셨다.
‘웅!’
다시 돌아온 라비를 시안이 뇌명으로 되돌렸다.
아직 남은 나가들이 보스 나가의 죽음에 눈을 까뒤집고 달려들었다.
한꺼번에 달려드는 나가들과 저 찰랑거리는 수면 아래로 보이는 나가들의 알들.
시안의 눈이 가라앉았다.
[ 뇌명(雷鳴) ]
[ 상천검(霜天劍) - 참(斬) ]
콰과과과과광!
가로 긋는 경로를 따라 벼락이 콰과과 떨어져 내렸다.
나가들은 물론이고 안에 있던 알들도 죄다 터져 나갔다.
이내 공동에 남은 것은 새까맣게 타버린 사체들과 피로 얼룩진 호수뿐이었다.
후우.
시안이 숨을 고르며 장갑 낀 손으로 검을 닦았다.
그때.
―꿈틀.
시안이 손을 멈추고 앞을 바라보았다.
뭐지? 잘못 봤나?
방금 묘한 광경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호수 전체가 꿈틀거린 것 같은…….
“…….”
시안이 가만히 주변을 경계했다.
잘못 본 것으로 치부할 수 있을 리 없다. 무언가 일어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동굴이 쿠구구구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또냐!’
시안이 이를 악물며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라비를 비검으로 바꿔 대비했다.
또 한 번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떨어지는 와중 시안이 비검을 박아 넣을 장소를 살폈다.
그런데, 떨어지던 시안의 눈에 믿기 힘든 광경이 들어왔다.
‘……!’
간신히 속도를 줄여 바닥에 착지한 그가 ‘그것’을 올려다보았다.
그것은 거인이었다.
약간의 돌과 이끼, 그리고 대부분의 물로 되어 있는.
시안이 방금까지 있었던 지하 호수는 겨우 놈의 어깨 부근에 불과할 정도로 거대한.
그 거인이 묘한 문자가 가득 새겨진 굵은 사슬에 포박되어 있었다.
「그으으…….」
시안의 기척을 감지한 것일까? 녀석이 게슴츠레 눈을 뜨곤 시안을 바라보았다.
「……이 죄인을 벌하러 오셨는가, 네메시스(Nemesis)여.」
그러곤 초점 없는 눈으로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