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91화
클로드는 자신이 습격당했을 때를 떠올렸다.
분명히 생각지도 못한 제자의 기습에 먼저 보석검이 꽂히긴 했다.
하지만 박히는 순간, 그 일순간이라면 클로드는 충분히 헥토르를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제자 놈은 최상급이라곤 하나 하이메이지의 경지, 반면 자신은 마스터.
고작 벽 하나의 차이라곤 하나 그 하나의 벽은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평범한 메이지급의 마법사는 술식을 커스텀해 사용하는 하이메이지를 결코 이길 수 없고, 하이메이지는 공간 자체를 지배하는 마스터를 결코 이길 수 없다. 괜히 경지가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길 수 없었다.’
그런데 졌다. 악마의 힘을 받아들인 제자 놈에게.
그것은 뇌력천주의 힘을 얻은 헥토르가 마스터에 달하는 힘을 일으킨단 뜻이었다.
“공자, 도망치게! 자네가 상대할만한 놈이 아니네!”
당연히 그것은, 고작 17살 먹은 아이가 당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기록 중 최연소로 마스터를 달았던 것이 24살일 때의 파멜라 드레이크. 현재 정화교단의 기사단장을 맡고 있는 이.
시안은 그녀가 마스터에 다다랐을 당시보다 7살은 어렸다.
“후우…….”
“……!”
그러나, 클로드는 스스로의 눈을 의심했다.
뇌운이 자욱이 깔리며 곳곳에 헥토르의 뇌기가 강하게 피어오르는 이 상황에서.
시안의 오러가 뇌기를 걷어내며 스스로의 공간을 확보해 가고 있었다.
‘설마!’
저 어린 공자가 벌써 마스터에 다다랐다고?
아니 그것까진 아니었다. 클로드가 보는 시안 아그리드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마스터의 공간에서 스스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말은 마스터에게 칼을 박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마룡왕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군.’
기도까지 저릿해지는 공간 속에서 시안이 생각했다.
마룡왕을 마주했을 때에 비하면 100배는 숨쉬기 편하다고.
헥토르가 안드라스보단 강할지 몰라도, 놈에게 깃든 악마의 힘은 마룡왕보다 훨씬 떨어지는 모양이다.
“망나니 놈이…….”
헥토르가 눈을 찡그리며 시안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공간에 침입해있는 불순물.
투명한 물에 떨어진 한 톨 흙먼지처럼 거슬리기 짝이 없었다.
“콜 라이트닝.”
그가 먼저 마법을 외웠다.
딱, 하고 튕기는 손가락과 동시에 저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분명히 여긴 지하였음에도.
콰과과광!
내리친 벼락이 시안의 신형을 찢었다.
그러나 당장에라도 새까맣게 탈 것 같던 시안의 몸이 사라졌다. 그냥 잔상이었다.
“쳇.”
[ 뇌룡창(雷龍槍) ]
그의 손에 용을 형상화한 창이 나타났다. 동시에 뒤로 돌며 창을 휘둘렀다.
어느새 그곳엔 시안이 나타나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파지지지직!
강렬한 스파크가 튀기는 뇌기가 시안의 오러를 침범하려 달려들었고 시안의 오러는 그 모두를 막아내며 동시에 옆으로 흘려내었다.
“…….”
시안이 검을 비틀었다.
[ 검륜(劍輪) ]
[ 상천검(霜天劍) - 참(斬) ]
그가 쥐고 있는 검륜을 당겨 헥토르의 신형을 갈랐다. 캉! 그러나 눈앞에서 대놓고 펼친 검술은 간단히 막혀버렸다.
다만 막힐 것은 이미 상정 내였다.
시안이 한 번 쥔 공세를 흘리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며 밀어붙였다.
“귀찮기 짝이 없는…… 음!?”
시안의 검을 막던 헥토르가 이내 크게 멈칫했다.
파직! 머리 위에서 스파크가 튀기며 동시에 섬뜩한 기운이 몸을 치달았다.
그가 다급히 고개를 쳐드니.
[ 비검(飛劍) ]
[ 상천검(霜天劍) - 천뢰(天雷) ]
대체 언제 띄워 올린 것인지 검 한 자루가 벼락처럼 헥토르의 정수리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감히!!”
천둥마법사인 자신 앞에서 저딴 잔재주를!
헥토르가 뇌룡창을 놓았다. 그러자 창이 눈이 부실 정도의 빛과 함께 터져나가며 커다란 전격의 구체를 만들어 내었다.
파지지지지직!
그 뇌기에 휩쓸려 시안도, 그리고 떨어지던 라비도 튕겨 날아갔다.
흐트러지려던 자세를 바로잡으며 그가 혀를 찼다.
“쯧.”
나름 회심의 노림수였는데.
그가 스스로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방금의 뇌기로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밤의 오러가 스며들더니 그 상처들이 빠르게 치유되었다.
본래도 있는 라비의 회복 능력은 밤이 깊은 지금 신성마법에 버금갈 정도로 빠른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상처를 회복해?”
상처를 치유하는 시안을 보며 헥토르가 혀를 찼다.
신성마법이 담긴 아티팩트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마법사도 아닌 검사인 주제에 회복 능력이 있을 거라 생각되진 않는데.
“몇 번이나 쓸 수 있는지 모르지만 아티팩트에 의지하는 걸론 얼마 못 버틸걸.”
그가 비릿하게 웃으며 마법을 쏘았다.
[ 뇌수(雷獸) ]
그의 손짓을 따라 전격이 하늘을 수놓더니 이윽고 수없이 많은 형상으로 화했다.
벼락으로 된 거대한 새와 멧돼지와 같은 짐승들이 그대로 시안을 휩쓸어 버리기 위해 쇄도했다. 압도적인 힘으로 눌러버리겠다는 듯이.
시안의 목덜미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저건 못 막는다.’
안드라스 때와는 다르다. 놈의 마법은 한눈에 약점인 핵이 보여 그걸 가르며 뚫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헥토르에겐 그런 것이 없다.
놈은 철저히 스스로의 술식 구조를 감추고 있었다.
훅.
헥토르의 공간에서 시안에게 숨통을 틔워주고 있던 밤의 오러가 동그랗게 시안을 감쌌다.
그 상태로 시안이 ‘섬’을 쓸 때와 같이 옆으로 뛰었다.
콰과과과과광!
바로 방금까지 그가 있던 자리에 뇌수들이 덮치며 푸른 번개를 흩뿌렸다.
옆쪽에서 느껴지는 저릿한 뇌기를 느끼며 시안이 다시 ‘섬’을 밟았다.
동시에 헥토르의 반대편에 놓여 있던 비검도 날아올라 ‘섬’의 묘리로 쏘아졌다.
“흥!”
헥토르가 양손을 펼쳐 시안과 비검을 막았다.
파지지지직! 전격의 장벽이 시안의 검과 비검을 모두 틀어막았다.
그 장벽에도 역시 술식의 핵은 감추어져 있었다.
“칠흑마탑에 안드라스 같은 놈들만 있는 건 아니군.”
시안이 장벽 안으로 검을 밀어 넣으며 얘기했다.
그러자 헥토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안드라스? 하, 그딴 노망난 노친네랑 비교하지 말아줬음 좋겠는데.”
5대 마탑이 어찌하여 흑마법사를 마법사라 인정하지 않는가.
그것은 그들이 스스로의 탐구 없이 받아온 힘만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저 받아왔을 뿐인 힘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그것이 마탑의 흔들리지 않는 견해였다.
그리고 그것은 칠흑마탑 또한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아직도 안드라스와 같이 받아온 힘에 취해 있는 자들이 적진 않았지만 헥토르와 같이 그것이 좋지 못함을 알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가 어린 나이에 천둥마탑에 들어와 수학한 것이었다.
“나는 내 스스로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딴 놈들과 나는 격(格)이 달라.”
클로드의 눈에 들기 위해 뇌력천주의 힘으로 체질을 조금 바꾼 것은 있다. 하지만 그걸 제하곤 헥토르는 스스로 여기까지 경지를 쌓았다.
물론 마지막, 하이메이지에서 마스터로 넘어가는 그 하나의 벽은 뇌력천주의 힘으로 넘긴 했다.
하지만 고작 하나다. 20년에 걸친 고련에서 단 하나.
시작부터 끝까지 남의 힘으로 행패를 부릴 뿐인 안드라스 같은 놈들과는 달랐다.
실제로 탑주인 클로드조차 이겼으니 자신이 옳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바.
“그래, 그런가 보군.”
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이 안드라스와 다름을 인정한다. 여기까지 올라온 게 스스로의 노력 덕택이었단 말도.
그리고 놈이 자신보다 높은 경지에 올랐다는 것도.
“흐흐, 처음부터 순순하게 나오면 좀 좋아? 격의 차이를 알았으면 이제 얌전히 있어라. 걱정하지 않아도 검왕이 신물을 건네주면 너도 무사히 풀려날 거야.”
쾅!
헥토르가 반대쪽 손을 휘둘러 그쪽에 있던 비검을 저 멀리 튕겨내었다.
그리고 비게 된 손으로 시안이 쥐고 있는 검륜을 잡았다.
파지지지직!
그 검신을 통해 놈의 뇌기가 시안에게 뻗어갔다.
“나보다 높은 경지란 건 인정했지만.”
츠츠츠츠츠!
검신의 중간에서 헥토르의 뇌기와 시안의 밤의 오러가 서로를 밀어내려 힘 싸움을 펼쳤다.
힘의 차이를 보여 굴복시키겠다는 듯이 뇌기가 오러를 밀어내며 점점 이쪽으로 다가왔다.
시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 그에게는 무엇보다 익숙한 일이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후로는 약한 상대와 싸울 일이 많긴 했지만, 애당초 그는 아카데미에 들기 전에는 항상 패배만 하던 이였다.
오직 한 명의 대련 상대인 염노. 그와의 대련에서 시안은 단 한 번의 승리도 한 적이 없다.
패배는 익숙했고 강한 이와 맞붙는 것은 숨 쉬는 것과 같은 것이었으니.
“항복이란 말은 안 했는데.”
그는 언제나 강한 상대를 이기기 위해 고심하고 노력하고 갈고닦았다.
서걱!
그의 검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며 핏물을 흩뿌렸다.
동시에 잘린 헥토르의 손목이 튀어 올랐다.
힘 싸움을 시도하던 놈의 뇌기가 허공에 흩어져 사라졌다.
“이 자식이……!”
으득. 헥토르의 얼굴이 울긋불긋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 *
‘어째서!’
떨어지는 벼락을 피해 쥐새끼처럼 돌아다니는 시안을 보며 헥토르가 잘린 손목을 주워 치유 마법을 불어넣었다.
통증은 딱히 상관없다. 손목도 잘린 직후라면 치유 마법으로 충분히 붙는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대체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고전하고 있는 거지?
분명 힘은 이쪽이 위다. 이 공간도 대부분을 자신이 점하고 있다.
그런데도 좀처럼 놈을 잡아 누를 수 없었다.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고, 계속해서 반격만 당하고 있는 상황.
‘…….’
그가 눈을 감았다.
그러면 자신이 깨달은 심상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폭풍이 불고 칼바람이 부는 거친 협곡. 그 사이로 떨어져 내리는 고고한 한줄기 벼락.
아직은 흐릿했다. 하지만 떠오른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마스터에 다다랐단 증표였다.
실제로 이 전장은 그 협곡과 같은 뇌기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숨만 쉬어도 폐부가 새까맣게 타들어 갈 만한 강렬한 뇌기.
하지만 밤의 오러로 싸여 있는 시안은 이 속에서도 너무나 수월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뇌력천주가 슬쩍 바라봅니다.]
[왜 그런지 알고 싶냐고 물어봅니다.]
‘주인!’
그의 악마가 보낸 사념에 헥토르의 눈이 크게 뜨였다.
본래는 만사를 귀찮아하며 이쪽이 요청한 일 외에는 별 신경도 쓰지 않는 주인이 왜 지금?
그때, 헥토르가 정신을 팔린 그 일순간을 놓치지 않고 시안이 달려들었다.
“젠장!”
눈치만 귀신같은 녀석 같으니!
헥토르가 이를 갈며 손을 뻗었다.
[ 뇌룡의 뿔 ]
그의 손에 이 공간의 뇌기가 모이더니 강렬한 전격의 파동이 쏘아졌다.
시안이 눈을 번뜩이며 검을 찔렀다. 그 검을 밤의 오러가 원뿔과 같은 형태로 단단히 감싸고 있었다.
평소에 넓은 영역으로 펼치던 것과 반대로, 단단히 압축된 형태로.
마룡왕과의 조우 이후로 오러의 운용을 집중해 단련하며 이쪽 역시 몸에 익혔다.
콰아아아아앙!
그의 검이 전격의 파동을 가르며 찔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뇌룡의 뿔로 밀려나지 않는, 오히려 이쪽으로 밀고 들어오는 시안을 보며 헥토르가 경악했다.
그런 그를 향해 뇌력천주가 하던 얘기를 마저 이었다.
[뇌력천주가 머리를 긁적입니다.]
[네가 본 그거, 네 심상세계 같은 게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예?”
시안이 헥토르의 앞에 다다랐다. 이미 전격의 파동은 그의 오러에 휩쓸려 허공에 흩뿌려졌다.
뇌기의 잔해가 온 사방에 퍼져나가는 와중, 시안이 흑검을 치켜들었다.
이번엔 사념을 보내 라비가 사용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손을 사용하여.
[ 상천검(霜天劍) - 천뢰(天雷) ]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헥토르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솜털이 쭈뼛거리며 서기 시작했다. 그가 다급히 손을 들어 뇌기의 장벽을 만들어냈다.
일순간에 수십 겹이나 되는 장벽을 만들어낸 것은 확실히 경탄할 만했지만.
콰과과과과과광!
천뢰는 그 모든 것을 부수고 들어왔다.
[뇌력천주가 입맛을 다십니다.]
[심상세계 같은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곳의 풍경 중 하나일 뿐이라 얘기합니다.]
‘그런…….’
하나, 둘, 셋, 넷……. 시안의 검에 장벽이 하나하나 부서지는 것을 보며 헥토르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나는…… 마스터가…….’
[뇌력천주가 얘기합니다.]
[스스로 껍질을 깨지 못한 새는 얼마 안 가 죽게 마련이라 얘기합니다.]
헥토르가 마스터의 경지를 엿본 것은 맞다.
하지만 마지막 한 겹.
하이메이지에서 마스터로 넘어가는 그 한 겹의 벽을 헥토르는 뚫어내지 못하고 뇌력천주의 힘을 빌렸다. 하나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며.
하지만 그 하나의 차이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남의 힘으로 껍질을 깨고 나온 새는 껍질 바깥의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버리게 마련.
[뇌력천주가 고개를 젓습니다.]
[좀 미안한 감도 있으니 네 마지막 일만은 이뤄주겠다 얘기합니다.]
그 직후 시안의 검이 그의 머리까지 떨어졌고.
헥토르의 영혼은 저 깊숙한 곳으로 떨어졌다.
* * *
까앙!
모든 장벽을 뚫고 떨어져 내린 시안의 검이 놈의 머리에서 굉음을 내며 멈추었다.
미칠 듯한 돌머리…… 같은 느낌이긴 했지만, 당연히 그런 말로 넘어갈 만한 일은 아니었다.
어느새 놈의 머리 양쪽에서 작은 뿔이 돋아나 있었다.
“…….”
시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느낌. 이제는 익숙했다.
놈이 강림했다.
“미안하구나, 인간아. 너한테 악감정은 없지만 얘를 착각하게 만든 빚이 있어서.”
뿔이 난 헥토르가 뿔을 긁적거리는가 싶더니 시안에게 손을 뻗었다.
헥토르의 마법보다 훨씬 느릿한 움직임이었지만, 그것은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처럼 다가왔다.
보이는 시야 전부가 놈의 손바닥으로 덮인 착각마저 들 정도로.
그걸 보며 시안이.
“라비.”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라비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