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73화
안드라스는 칠흑마탑의 하이메이지다.
탑 내부에서도 충분히 간부라 불릴 정도의 위치. 그 지위 덕분에 많은 제자들을 들여 육체의 스페어를 만들어 놓는 것도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심지어 그는 지옥의 존재들 중에서도 가장 강대한 힘을 가진 마룡왕의 은총을 받은 몸이다.
비록 그의 사도는 되지 못해 마스터의 벽을 뚫지는 못했지만, 그분의 은총만으로도 탑에서 그에 비견할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왜!’
왜 자신이 이렇게 땅바닥에 엎어져 있는 것인가!
“으읍! 읍읍!”
시안의 손이 안드라스의 얼굴을 잡은 채 굳세게 땅바닥에 밀어내고 있었다.
이미 얼굴을 제외하고 전신이 비늘로 뒤덮이며 인간을 초월한 힘을 가진 안드라스였지만, 그런 그의 힘에도 이상하리만치 벗어나기 힘들었다.
“잠자코 있어.”
시안이 반대쪽 손으로 검을 치켜들었다. 푹! 차가운 검날이 안드라스의 복부를 꿰고 들어가 땅에 박혔다.
“으으으으읍―!”
안드라스의 눈에 핏발이 올라오며 그가 마구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그런다고 시안의 손에서 도망도 칠 수 없었고 배의 통증만 더 심해졌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가까이에서 폭발하면 자신도 무사하지 못하지만.
[ 브레스(Breath) ]
그의 입에 빛이 모이기 시작하며, 그 입을 막고 있는 시안의 손바닥을 향해 그대로 발사했다.
손을 치우라는 협박이었다. 가까이에서 터져 다 같이 곤죽이 되는 게 싫다면.
“쯧.”
시안이 혀를 차더니 뒤쪽으로 거리를 벌렸다.
빛나간 브레스가 허공을 수놓는다.
동반 자살은 피했고 놈도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건 좋았지만.
“끄아아아아악!”
시안이 땅을 박차며 적당하게 검을 빼간 것 때문에 복부의 상처가 마구잡이로 벌어졌다.
안드라스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러고 있을 수만은 없다.
밤의 오러를 펼치며 다시 달려드는 시안을 보며 그가 다급히 주문을 완성했다.
“꺼져!”
[ 흑염화(黑炎花) ]
처음에 쏘았었던 불꽃의 파도.
그러나 이걸론 안심할 수 없다. 처음에도 놈은 이 불꽃을 가르고 뛰어들었으니까.
‘다음!’
그걸 예상하여 그가 계속해서 마법을 완성하여 배치했다.
시안을 덮치는 불의 파도의 뒤편으로 불의 구체와 번개의 창이 몇 겹이나 겹쳐 날아간다.
일부러 투사 속도를 조절하여 파도보다 느리게 날아가도록 하였다.
불의 파도로 시야를 가리고 그 뒤쪽에 트랩을 까는 전략.
상대방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이로써 두 가지밖에 없다.
마법을 피하기 위해 크게 거리를 벌리든가, 아니면 아까처럼 뚫고 들어오려 하다가 걸레짝이 되든가.
어느 쪽이든 마법사인 자신에겐 좋은 상황이다.
마법사가 검사를 상대할 땐 어찌 됐든 거리를 벌려야 했으니까.
“…….”
안드라스의 예측대로 시안은 불의 파도 뒤쪽의 마법은 감지하지 못하였다.
시야는 물론이고, 흑염화의 기운이 너무나 강대하여 그 뒤쪽의 자잘한 마법들의 기운까진 구분할 수가 없다.
하지만.
‘뭔가 있군.’
시안은 바보가 아니었다.
칠흑마탑의 하이메이지씩이나 된다는 노괴가, 전투 중에 똑같은 수법을 반복한다? 그것도 처음에 한 번 막혔던 수를?
당연히 뭔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놈의 수작을 피하고자 뒤로 뺄 수는 없었다.
마법사를 상대로 스스로 거리를 벌리는 것만큼 치명적인 것이 없다.
안 그래도 브레스 때문에 한 번 뺐다고 바로 이런 수작이 날아오지 않던가.
‘그렇다면.’
이럴 때 가장 좋은 수는.
‘정면으로 돌파한다.’
역시, 처음처럼 정면에서 꿰뚫는 것.
시안이 몸에서 밀어내듯 오러를 더욱 쏟아냈다.
남들을 따라 압축하여 사용하기보단 그 영역을 넓히는 쪽으로 단련에 임했던 오러.
밤의 오러가 불꽃처럼 크게 피어올라 그를 감싸 안았다.
“멍청한! 그게 결국 네 한계구나!”
저 파도 너머에서 안드라스가 광소를 터뜨렸다.
마스터를 목전에 둔, 하이나이트 최상급의 경지에 이른 이들은 오러를 한없이 압축하여 사용한다.
단단하고 날카롭게. 마치 오러를 재료로 하여 보검을 벼려내듯이.
하지만 놈의 오러는 그렇지 않다.
하긴 당연했다.
학생이 오러를 쓴다는 것부터 이미 손에 꼽을 정도의 천재라는 말이다.
그 이상의 기예를 바라는 것이 이상한 일일 터.
“…….”
놈의 광소를 한 귀로 흘리며 시안이 집중했다.
이미 검을 감싼 그의 오러는 파도를 베어내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눈이 흑염화의 파도를 관찰했다.
처음 그 파도를 갈랐을 때처럼.
“……똑같은데.”
그러곤 눈을 찡그리며 김이 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가 검을 휘둘렀다.
[ 상천검(霜天劍) - 참(斬) ]
파아아아아아―!
불의 파도가 갈라진다. 너무나 쉽게 베인 그것을 향해, 시안이 처음처럼 뛰었다.
그런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안드라스가 파도 뒤에 설치해 놓았던 수많은 마법들.
시안의 눈이 일순간에 모든 마법들을 살폈다.
역시.
이것들도 똑같다.
“크하하하하!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날벌레 같구나!”
벌써부터 다 이긴 기분인 안드라스.
그는 웃으면서도 계속해서 마법을 쏘아내길 잊지 않았다.
파도가 돌파되었으니 이젠 일부러 느리게 쏠 필요도 없다. 가능한 한 빠르게, 마구 쏘아내었다.
콰과과과과광!
그 모든 마법들이 착탄되며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얼음마법과 불마법이 부딪혀 피어오른 수증기도 있었고 땅 마법으로 올라온 대지의 탓에 일게 된 먼지도 있었고.
여하튼 짙은 연기에 시야가 가려졌다.
‘마무리다.’
안드라스가 눈을 빛내며 팔을 당겼다.
그러곤 용의 손톱으로 단번에 그어내며 진공의 칼날을 쏘아 보냈다.
길게 날아가는 칼날을 보며 안드라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연기째로 놈을 단숨에 베어버릴 심산.
그러나.
챙!
“뭣……!”
칼날이 사라진다.
동시에 연기 속에서 저벅저벅 시안이 걸어 나왔다.
그렇게 많은 마법을 쏟아내었음에도 그에겐 긁힌 정도의 상처밖에 나지 않았다.
“어, 어떻게!!”
안드라스가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쳤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쏘아댔는데 대체 어떻게? 그걸 다 피하거나 막았단 말인가?
그것이 학생 따위에게 가능한 재주라고?
혼란에 빠진 그를 보며 시안이 눈을 찡그렸다.
“너, 진짜 하이메이지인가?”
“……뭐라고?”
“술식의 핵을 숨기지도 못하면서 정말 하이메이지란 이름을 댈 수 있는 건가?”
시안은 마법을 쓰거나 마법에 대한 지식이 많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법을 상대하는 것만큼은 전문가 수준이라 자부할 수 있었다.
5살 때부터 10년 이상 맨투맨으로 그를 교육했던 염노.
마스터급의 마법사인 그와의 대련 경험이 그토록 풍부한데 마법사를 상대하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염노가 말하길.’
마법은, 마나가 흐르는 특수한 술식을 겹치고 겹쳐 자아올리는 것.
그렇기에 그것엔 필연적으로 약한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건축물을 지을 때 기초공사를 다지는 것과 같이 술식을 쌓아 올리기 위한 핵심.
당연히 고위의 마도사들은 그것을 숨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더미의 술식을 추가해 가려놓는다든지 아예 깊숙이 가려놓는다든지, 가장 뒤쪽 구석에 배치하여 아예 건드리기 힘들게 만들어 놓기도 한다.
심지어 한 가지만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2중, 3중, 4중 이상의 보안을 걸어놓는 일도 흔한 일.
때문에 똑같은 마법이라도 마법사마다 사용하는 술식이 다르다.
일반 마법사인 메이지급의 경지까지는 탑에서 배운 기성의 마법을 사용하곤 하지만, 하이메이지쯤 되면 스스로 커스텀한 술식을 사용하게 마련이다.
최소한 주력기나 비장의 카드로 사용할 마법 정도는 무조건.
“네 마법은 다 똑같던데.”
“큭……!”
그런데 안드라스의 마법은 그런 것이 없었다.
다 너무 뻔하게 보였다.
가장 처음 시안이 놈의 공세를 받았을 때 옷가지가 넝마가 되는 정도로 탈출할 수 있던 것이 이 때문이다.
그때는 놈의 작전인 줄 알았다.
일부러 뻔하게 보여줘서 눈에 익게 만든 다음에 다음번에 현혹하기 위한 작전이라고.
그런데 지금의 공세를 받아보니 아니었다.
놈에겐 술식을 가리거나 숨긴다는 개념이 없다.
“역시 받았을 뿐인 힘엔 한계가 있다는 말인가.”
“뭣이!?”
시안이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듣고는 안드라스의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뿐만 아니라 머리끝까지 잔뜩 피가 쏠렸다.
“네놈은 진정한 마법사가 아니야. 그런 실력으로 잘도 마법이 어떻고 지껄였군.”
시안이 쐐기라도 박듯 얘기했다.
5대 마탑에서 왜 그들을 마법사라 부르길 거부하고 굳이 흑마법사 같은 용어를 만들었는지 잘 알았다.
진정으로 마도를 탐구하는 그들이 보기에 얼마나 같잖았겠는가.
“네 이노오오옴! 그딴 가짜 마법사들과 날 비교하지 마라! 이 힘이야말로 진짜 마법이다!”
안드라스가 잔뜩 시뻘게진 얼굴로 크게 입을 벌렸다. 그곳에 모이는 한 무리의 빛.
세 번째의 브레스였지만 지난 두 번에 비해 훨씬 더 거대한 기운이 응축되고 있었다.
그사이.
시안은 이미 땅을 박차고 있었다.
[ 상천검(霜天劍) - 섬(閃) ]
시안의 몸이 공간을 갈랐다. 그에 비해 안드라스는 아직도 힘을 다 모으지 못했다.
울분에 가득 차 한껏 힘을 모으려고 했던 게 패인이었다.
성문을 부수는 것도 아니고 1:1의 결투에서 과하게 화력을 모으는 일은 하등 의미가 없는 일.
“커헉!”
시안의 검이 안드라스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아쉽다. 이놈에게서 칠흑마탑의 정보를 좀 더 캐내고 싶었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놈이 죽기 전까지 이 공간에선 나갈 수 없었으니까.
지금은 바깥으로 나가는 일을 우선하는 것이 먼저다.
“이 꼬마…… 놈이……!”
안드라스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시안의 뒷덜미를 잡곤 떼어내려 하였다.
하지만 그에 꿈쩍할 시안이 아니었다.
녀석이 컥컥거리며 피를 토하더니, 서서히 눈의 빛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
“……!”
시안이 크게 움찔거렸다.
순간적으로 전신에 소름이 올라온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오싹한 느낌에 다급히 거리를 벌리곤 놈을 바라보았다.
심장에 구멍이 뚫린 채 의식이 흐려지던 안드라스.
그 안드라스의 눈에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기이한 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마룡왕이 흑색지대의 땅을 밟습니다.]
공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땅이 흔들리며 하늘이 어두워진다.
이미 어둡기만 한 공간이었음에도, 그보다 더욱 짙은 어둠이 이 공간을 침식하고 있었다.
한없이 모든 것을 짓누르는 이 공기.
바깥에서, 하늘에 눈동자가 나타났을 때의 공기와 똑같았다.
“아아! 왕이시여! 이 비천한 몸을 구원하기 위해 행차하셨나이까!”
안드라스가 환희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한줄기 기운이 스며드는 것을 그는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실낱같은 존재만으로도 인간 따위는 손쉽게 파괴할 수 있는 힘.
그는 그것을 거부할 수 있었다. 제아무리 강대한 힘이라 할지라도 숙주의 동의 없이 일을 진행할 수는 없는 법.
하지만 거부하지 않았다.
이 힘이 그의 왕의 것임을 알기에.
그 직후.
뿌직!
그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어?”
안드라스가 바보 같은 목소리를 흘렸다.
뿌직, 뿌지직! 콰드드득!
전신이 터져 나간다. 피가 역류하며 눈과 코, 온갖 곳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쿨럭. 입에서 한 움큼의 핏물과 함께 내장 조각이 튀어나왔다.
끔찍한 고통이 올라왔다. 그 생생한 고통에도 안드라스는 비명 한번 지르지 못했다.
이미 그 입은 그의 것이 아니었기에.
[역시 하등 생물에게 강림하는 것은 매우 힘이 드는군. 어찌 이토록 그릇이 작을 수 있는지.]
안드라스의 영혼은 한없이 깊은 바다에 침전해 갔다. 다신 떠오를 수 없을 저 깊은 해저로.
태양 앞에 선 촛불과 같이, 비할 수 없을 강대한 령에게 완전히 삼켜지고 말았다.
정작 그 강대한 령은 그저 그곳에 존재하고 있을 뿐임에도.
“…….”
시안이 침음을 삼켰다.
남은 것은 한창 뒤틀리고 부서지는 중인 안드라스의 껍데기와.
[너는 나를 담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구나.]
그 안에 강림한 마룡왕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