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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70화 (70/188)

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70화

카앙―!

시안의 검에 비늘이 돋아난 사내가 멀리 튕겨 날아갔다. 철퍽! 스스로가 토해낸 피 웅덩이 위로 녀석이 엎어졌다.

[친숙한 기운에 흑정령이 흥분합니다!]

그리고, 녀석에게서 감지되는 지옥계의 기운.

시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누가 이 사건의 범인인지 모르겠지만.’

흑마법사가 분명하다.

검은 기운이 시안의 검을 감쌌다.

이런 방식으로 아카데미를 습격한 놈이다. 결코 좋은 목적으로 찾아온 놈은 아닐 터.

찾아야 한다.

“커허억!”

사내가 엎어진 채로 다시 한번 기침을 하더니, 입에서 다시 피를 쏟아내었다.

이미 바닥의 피들은 웅덩이 정도가 아니라 호수라고 부를 정도가 되었다.

그러곤 그 호수에서.

끼긱, 끼기긱!

끼기기긱!

마물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도마뱀과 닮은 머리에 전신이 매끄러운 비늘로 뒤덮여 있는 마물, 리자드맨.

신화 속에나 등장하는 용의 피가 섞였다고 하는 ―물론 진짜 섞인 것은 아니지만― 상급의 마물.

그 손에 들려있는 핏빛 창이 섬뜩한 예기를 발하고 있었다.

“꺄아아아악!”

“도, 도망가!”

“이쪽으로! 이쪽으로 오세요!”

곳곳에 배치되어 있던 교관들이 시민들의 대피를 유도했다.

일부는 사람들을 이끌고 일부는 리자드맨의 습격을 저지하고.

한창 시험을 치르던 학생도 리자드맨을 향해 무기를 들었으나.

“너희들은 대피를 도와라!”

“하, 하지만…….”

“잔말 말고 어서!”

버럭 소리를 지르는 교관들의 말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시민들 쪽으로 떠나갔다.

그들은 시민들을 지키며 본관 지하까지 유도했다.

다만 몇몇 실력에 자부심이 있는 학생들은 그 자리에 남아 리자드맨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대피소로 보내고 싶은 교관들이었으나 쳐들어온 리자드맨을 막느라 여념이 없었다.

쾅! 콰콰콰쾅!

불과 얼음이 날아다니고 검광이 번뜩인다.

리자드맨이 아무리 강력한 마물이라고 하나 교관들 대륙 곳곳에서 모인 내로라하는 인재들이다.

그들의 손에 리자드맨이 속속들이 썰려 나갔다.

그러나, 쓰러지는 이들보다 솟아나는 놈들이 더욱 많았다.

서걱!

“키엑!”

시안의 검이 한 리자드맨의 창대를 갈랐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의 검이 녀석의 머리를 찍었다.

푹! 피가 튀어나오며 눈의 빛이 사라진다. 이미 죽은 녀석의 시체를 발로 밀치며 시안이 검을 뽑았다.

“시안! 너도 대피소로 가!”

교관 하나가 시안을 발견하더니 그렇게 소리쳤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될 말이다. 그는 흑마법사를 찾아야 한다.

[친숙한 기운에 흑정령이 기뻐합니다!]

‘웅웅!’

리자드맨에게도 그 기운이 미약하게 깃들어 있다. 그 얼마 없는 기운마저 라비가 쪽쪽 빨아먹었다.

“시안! 잠…… 큭, 이 자식!”

시안을 말리러 오려던 교관은 어느새 다른 리자드맨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른 교관이나 학생들 역시 수 마리에서 수십 마리씩 리자드맨이 붙어 있다.

시안이 눈을 찌푸렸다.

숫자가 너무 많다. 우리 쪽의 숫자에 비해 솟아나는 리자드맨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다.

‘숫자가 많을 땐.’

이것만 한 게 없다.

시안이 창해를 꺼내 들었다.

촤르르륵!

물줄기와 함께 풀려나간 검편들이 몇 마리나 되는 리자드맨의 목을 긋고 지나갔다.

빽빽이 몰려있던 리자드맨들 중 한 무리가 그대로 피 웅덩이를 만들며 쓰러졌다.

아주 잠시 숨통이 트인 그곳에서 시안이 상황을 살폈다.

‘교관들은 딱히 거들 필요는 없고.’

수가 많다고는 하나 그들이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니다. 단지 손이 많이 바쁠 뿐.

‘우웅!’

잠시 멈춰있자 라비가 보채왔다.

빨리 놈들에게서 기운을 흡수하자면서.

라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시안이 검을 당겼다.

[ 창해(蒼海) ]

[ 상천검(霜天劍) - 참(斬) ]

촤촤촤촤촤촥!

창해의 검편이, 예기(銳氣)가 가득한 그 물줄기가 눈앞의 모든 리자드맨의 허리를 갈랐다.

라비에게 들어오는 기운의 양을 확인하며 시안이 눈을 빛냈다.

한 마리 한 마리는 미약하긴 했지만, 이만한 양을 잡고 있다 보니 쌓이는 것이 무시할 게 못 되었다.

―좋아! 이대로 버티면서 사냥한다!

교관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함성 소리를 들으며 시안이 눈에 보이는 리자드맨을 썰어갔다.

굳이 이동할 필요도 없었다. 한 놈이 쓰러지면 그 즉시 다른 한 놈이 자리를 메우며 들어왔다.

시안이 할 일은 그렇게 눈을 까뒤집고 달려드는 리자드맨을 처리하는 일뿐이었다.

부지런히 창해를 휘두르고 있다 보니 점차 놈들의 압력이 줄어가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놈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조금만 힘냅시다!

교관들도 같은 것을 느꼈는지 밝게 올라간 소리가 들려왔다.

이 정도 숫자의 리자드맨이라면 어지간한 영지 하나는 그대로 밀어버릴 수준이다.

그러나, 대륙에서도 불가침이나 다름없는 에버웨일에 가해진 습격이라고 하기엔 생각보다 손쉬웠다.

어쩌면 범인이 에버웨일의 저력을 잘못 판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쿠르르르릉!

허공이 일그러졌다.

저 높은 상공 수십 곳에 검은 마나가 엉켜 든다. 그 광경에 모두가 눈을 빼앗겼다.

“캬아아아아―!”

그 검은 마나 속에서 날개 달린 도마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와이번.

리자드맨과 비슷한 용종의 마물로, 리자드맨보다 몇 배는 까다로운 몬스터.

“와이번이다!”

“젠장! 일단 마법부터 퍼부어!”

교관들의 마법이 허공을 수놓기 시작했다.

얼마간은 제대로 착탄하여 떨어뜨릴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공중을 날아 피해냈다.

와이번이 리자드맨보다 몇 배나 까다롭다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때문이다.

날개가 있다는 것.

“라비!”

“웅!”

덮쳐오는 와이번을 보며 시안이 창해를 휘둘렀다.

일반적인 검보다 훨씬 사거리가 긴 무기다. 이거라면 충분히 닿을 법했지만.

“키긱!”

쏘아지는 물줄기를 본 와이번이 순간적으로 정지하더니, 그대로 다시 날아올랐다.

놈을 향했던 창해는 허공만 긋고 지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창해가 다시 땅에 떨어졌을 때. 그때를 노려 와이번이 다시금 강하했다.

‘머리가 좋군.’

촤르륵.

그의 손에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온 창해가 조용히 빛을 발했다.

“키아악!”

완벽히 빈틈을 노렸다는 듯이 와이번이 자신 있게 시안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커다란 발톱이 달린 발이 당장에 시안의 머리를 찍을 듯 달려들었다.

시안이 눈을 번득였다.

날아다니는 마물. 이럴 때 필요한 것은.

[ 검령(劍靈) – 비검(飛劍) ]

창해가 훨씬 더 기다란 장검으로 변화한다.

은은히 연둣빛을 띠는 검신. 손잡이 끝에 달려 있는 기다란 하얀 천.

서걱!

“케……?”

던져진 비검이, 와이번의 목을 가르며 지나갔다.

* * *

리자드맨까지는 할 만했다. 하지만 와이번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흐름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귀빈석에 있는 제레흐는 움직이지 않았다.

수비대장은 아까 진작 리자드맨을 상대하러 내려갔고 이곳엔 그 혼자.

검 손잡이에 손을 대고 있는 그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참아라…….’

제레흐가 당장 검을 뽑아 휘두르고 싶은 것을 애써 참았다.

놈은 지금 자신을 유도하고 있다.

리자드맨이나, 혹은 와이번을 일소하기 위해 먼저 손을 쓰도록.

자신이 먼저 움직이고 나면, 그 찰나의 틈을 녀석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만 쓰러뜨리면 에버웨일을 무너뜨리는 건 시간문제라 생각할 테니까.’

이 정도로 대규모의 일을 벌이는 녀석이다.

거기에 도시 바깥을 감싸고 있다는 정체 모를 마법진은 아직도 그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다.

피 웅덩이에서 소환된 리자드맨이나, 와이번을 소환하는 허공의 검은 마력 같은 건 바깥의 마법진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

그 마법진은, 이따위 것들보다도 훨씬 더 불길하기 짝이 없었으니.

‘당장은 부탁하네.’

아래에서 활약 중인 교관들을 보는 그의 눈이 한층 가라앉았다.

이 사태는 그들이 해결해 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다만, 리자드맨까지는 무난하게 승리할 것 같던 분위기가 와이번의 등장과 함께 반전되었다.

와이번에 대응할 수 있는 건 마법을 쓰는 교관들뿐.

그러나 그들만으로 대항하기에 와이번들의 개체 수가 너무 많았다.

더욱이 마법 교관들이 와이번을 상대하느라 리자드맨을 상대하는 검술 교관들의 부담 역시 배로 증가했다.

검 손잡이에 가져간 그의 손이 꿈틀거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신이라면 단칼에 와이번을 모조리 참살할 수 있는데.

“…….”

하지만 그 한칼이 부담스럽다.

녀석이 어디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지 모르기에 더더욱.

‘놈의 위치를 알아내거나, 아니면 와이번들을 더 수월히 떨어뜨리거나.’

어느 것 하나만 충족되어도 일이 술술 풀릴 텐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서걱!

특이할 정도로 기다란 검 한 자루가, 팽팽히 회전하며 와이번의 목을 가르며 지나갔다.

제레흐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저 아이는…….’

검을 던진 아이를 보며, 그의 눈이 살짝 크게 뜨였다.

* * *

시안이 비검을 조종하며 와이번들을 베어 나갔다.

주로 노리는 것은 목 아니면 날개.

목을 떨어뜨리면 즉사고 날개를 떨어뜨리면 그 즉시 교관들의 마법의 좋은 표적이 된다.

어느 쪽이든 효과적인 타격점이다.

‘웅!’

라비는 시안의 머리 위를 중심으로 하여 원을 그리며 와이번을 베어가고 있다.

그리고 시안 본인은.

“카악!”

과거 복사하여 각인에 넣어두었던 검륜(劍輪)을 꺼내 리자드맨을 상대하고 있었다.

챙!

놈들의 창을 피하고 팔을 잘라내며 시안이 다시 한번 제레흐를 바라보았다.

‘와이번의 등장으로 밀리고 있는데도 총장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리자드맨까지는 교관들을 믿고 가만히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와이번의 계속 나타나며 상황이 많이 불리해졌다.

당장 우리 쪽이 전멸하거나 그럴 일은 없지만, 아군의 체력은 무한이 아니다.

시간이 끌리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데도 총장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총장이 이 사태의 범인일 가능성.

‘아니…… 이 가능성은 낮아.’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은 둘째 치고, 총장이 흑막이라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적극적으로 움직여 교관들을 베어버리는 것이 일이 더 빠를 테니까.

‘나머지 하나는.’

다른 가능성은, 흑막을 견제하느라 움직이지 않고 있을 가능성.

이쪽이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제레흐 정도 되는 존재라면 여기 날고 있는 와이번쯤은 일검에 모두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런데 일검조차 없다는 것은, 그 한 번의 칼질조차 부담스러운 상태라는 뜻.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범인은 이 자리에 있다.’

소환만 하고 멀리서 감시하고 있다거나, 혹은 냅다 도주했다거나 한 것이 아니다.

이 자리에 남아 어딘가에 숨어, 지금 이 순간에도 총장의 목을 노리고 있다.

그 때문에 총장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먼저 움직이면 반격당할 것을 우려해서.

그렇다면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은 간단했다.

‘놈을 찾는다.’

이 사건의 범인, 흑마법사를 찾으면 해결이다.

―그쪽 막아!

―으아악! 뒤쪽에 새잖아!

수많은 리자드맨과 와이번, 그리고 교관과 학생들이 뒤엉켜 있는 이 혼돈의 경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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