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67화
캐러밴의 방문에 도시가 훨씬 시끌벅적해지자 실라페가 괜스레 좋아하더라. 그래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놀라고 하고 본인은 근처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실라페가 뭔가를 발견했다고 하길래, 당장에 달려와 보았다.
그게 융의 설명이었다.
“그 발견한 물건이 이거인가 보군요.”
“그런 거죠. 설마 그사이에 다른 사람이 사갈 줄은…….”
융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늦은 건 늦은 것이다. 결국 구매한 것은 시안이었으니.
“그래서, 이게 뭡니까?”
“흠. 잠시만 보여주시겠어요?”
시안이 그녀에게 붉은 깃털을 내밀었다. 융이 그것을 이모저모 살펴보았다.
깃털에서 느껴지는 정령의 기운.
그리 강하지는 않았다. 어지간히 민감한 정령이 아니라면 발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노점은 다른 반요정의 정령사들도 여럿 지나다니고 있었지만 이 깃털을 알아챈 것은 실라페뿐이었다.
“…….”
아니, 정정. 눈앞에 있는 시안의 정령도 알아챘지 참.
융이 힐긋 시안을 바라보았다.
그가 가진 정령은 대체 뭐지? 밤의 정령이라고는 들었으나 도저히 평범해 보이진 않았다.
마력 측정에서 그만큼의 힘을 보여준 데다, 실라페 수준의 감응력까지 가진 밤의 정령이라니.
일전보다도 조금 더 신경이 쓰이는 그녀였지만 묻진 않았다.
물어봤자 알려줄 것 같지도 않고.
“생긴 걸 보면 아마 불새의 깃털이네요.”
“불새의 깃털이요?”
“화염산 쿠룬델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쿠룬델. 소메르의 국토 중에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끝없이 타오르는 산이라고 한다.
실제로 가본 적은 없으나 제국의 지리를 공부하며 들어본 적은 있다.
“화염마탑의 성지라는 그곳 아닙니까?”
덧붙여 그곳은 화염마탑의 성지였다. 마탑의 본산이 세워져 있는 곳이기도 했고.
“맞아요. 불새는 거기 서식한다고 알려져 있는 정령체 중 하나예요. 단지 모습을 본 이도 없고 계약에 성공한 이도 없어서 말로만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요.”
“본 사람도 없는데 거기 사는지는 어떻게 압니까?”
“이게 있잖아요.”
융이 불새의 깃털을 한번 흔들거리더니 다시 시안에게 돌려주었다.
시안이 깃털을 받았다.
“그 산에서 이 깃털이 간혹 발견되거든요. 그래서 불새가 사는구나 아는 거죠.”
“이 깃털이 증거라…….”
시안이 깃털을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혹시 누가 장난을 치고 있다거나, 화염마탑에서 홍보를 위해서 퍼뜨린 일화라거나 그런 건 아니죠?”
“그런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으으! 꼭 그렇게 비뚤어져서 받아들여야겠어요? 불새의 구전은 정령사들에겐 환상처럼 전해 내려오는 얘기라구요!”
“그런가요?”
“화염마탑의 초대 탑주가 위대하고 지혜로운 불새의 도움으로 사악한 이들을 회개시켜 마탑을 세운 일화는 빙하백령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에요.”
“아- 그 책이라면 저도 본 적 있습니다. 초대 화염탑주의 위인전 같은 느낌의 책이었죠.”
“저희 쪽에선 불새가 주인공인 동화책이지만요. 탑주는 그냥 동료로만 나와요.”
그쪽에선 아예 주인공이 다른가 보다.
마법사가 많은 소메르와 정령사가 많은 빙하백령의 차이가 반영된 것일까.
뭐 그건 그렇고, 아무래도 이 깃털은 생각보다 유명한 물건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효능이나 쓰임새에 대해서도 잘 알려져 있을 터.
그런 기대감을 가져 았으나.
“딱히 없어요.”
“없어요?”
“정령의 기운이 조금 담겨 있긴 하지만 그래 봤자 그냥 깃털 하나니까요. 아, 행운의 부적으로 들고 다니는 사람은 있다고 하던데.”
“부적…….”
결국 별다른 쓰임새는 없다는 뜻이다.
살짝 올라오는 아쉬움에 시안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 길거리 노점 같은 곳에서 보물을 발견하길 바라는 게 도둑놈 마인드지.
‘은화 하나로 점이나 한번 본 셈 쳐야겠군.’
행운의 부적이라……. 딱히 그런 것을 믿는 건 아니지만 그냥 버리기도 아까웠다.
“실라페가 호들갑을 떨길래 뭔가 했는데 별건 아니었네요.”
불새의 깃털이란 것을 알고 융도 쉬이 물러났다.
상징적인 의미는 어느 정도 있다곤 해도 실용적인 의미는 전혀 없는 물건이었으니.
조금 맥이 빠진 시안이 깃털을 앞주머니에 잘 넣었다.
그나저나.
“알렌과 함께 갔던 일은 성과가 있었습니까?”
이쪽도 확실히 신경이 쓰였다.
데릭 교수가 17년 전에 혈석을 주웠던 장소, 크라하 영지.
그곳을 조사해 보러 간 두 사람이 과연 어떤 성과를 내고 왔을지.
칠흑마탑의 단서를 알아냈을까? 아니면 역시 17년이나 지난 터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까?
“하아…….”
그리 묻자 융이 짙게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주세요, 시안…….”
어째 그 얼굴만 봐도 성과가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다음 날.
캐러밴이 머무는 기간은 아직 한참 남아 있었지만 어제 대부분의 노점은 모두 살펴보았다.
얻은 소득은 예의 불새의 깃털 하나. 그것 말고는 특별한 건 없었다.
캐러밴 쪽은 신경을 끄고, 시안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미 시험 기간이다. 그리고 시험에는 실기뿐만 아니라 필기도 있었다.
이론 쪽도 조금은 공부해 놓을 필요가 있다.
“알렌.”
“어? 시안!”
도서관을 향하던 중, 시안이 알렌과 조우했다.
옆구리에 책을 끼고 있는 것을 보니 녀석도 도서관으로 가고 있는 듯했다.
“너희 어제까지 현장학습이었다며? 아깝다, 나도 좀만 더 일찍 올걸.”
“출발한 건 열흘도 더 전이야.”
“아 그래? 조금 일찍 오는 걸론 어림도 없었네.”
알렌이 하하 웃으며 시안과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목적지는 도서관이었으니.
“어제 융 교관님이랑 만났다. 아무것도 못 찾았다며?”
“으응, 벌써 들었구나?”
알렌이 머쓱하게 웃더니 크라하 영지에서의 일을 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고는 하나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닌 듯했다.
“혈석을 쓰던 사람을 한 명 더 발견했어.”
녀석이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나름은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려는 듯했지만 그 목소리에서 새어 나오는 감정을 모두 숨기지는 못하였다.
그건 분노였다.
‘역시 흑마법사 놈들과 직접적인 원한이 있는 건가.’
데릭 교수의 사건 때 은연중에 그런 분위기가 나긴 했었다.
직접 들은 것도 아니라 그때는 그냥 넘어갔으나 지금 다시 녀석을 보니 거의 확실했다.
“이번엔 데릭 교수랑 달리 젊은 사람이었는데…….”
알렌의 얘기를 들으며 시안이 생각을 정리했다.
예전에도 잠시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알렌 녀석이 흑마법사에게 원한이 있다는 말은.
‘나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 아닌가?’
라비의 존재가 들킨다면 자신도 적대시된다는 뜻 아닌가?
라비 역시 놈들과 같은 지옥의 존재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라비의 계약자.
칠흑마탑 소속이 아니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사실상 흑마법사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렇게 돼서, 혈석을 하나 더 부수긴 했는데 그 이상의 단서는 못 찾았어. 완전 막혔다 이제.”
“그랬군.”
뭐 요는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거겠지.
보아하니 알렌에겐 라비와 같이 흑마법사를 탐지하는 능력은 없었다. 아마 직접 싸워보거나 그런 게 아니라면 모르는 거겠지.
그거라면 충분히 숨길 수 있다.
어차피 가주 때문에라도 라비가 지옥의 존재라는 사실은 최대한 숨겨야 하니.
“그러고 보니 시안.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
“부탁?”
“너, 입학 때 수석이었지?”
“그런데.”
시안의 손에 끼워진 1위의 반지. 그건 입학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교체되지 않았다.
“그럼 공부도 잘하겠네?”
“나름은.”
“나 공부 좀 봐주면 안 될까. 원래 잘하는 편도 아닌데 수업도 많이 빠져버려서…….”
그러고 보니 엄청나게 빠졌지 이 녀석.
“나 할 때 잠깐씩이라면.”
딱히 거절할 일도 아니다.
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시간을 내줄 수는 없지만 하는 도중에 조금씩이라면 문제없었다.
화륵.
「깜장이한테 봐달라 하게?」
‘응. 내가 아는 동급생 중엔 제일 똑똑하거든.’
그때 알렌의 어깨 부근에서 불꽃이 화르륵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알티마와 대화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시안이 그 푸른 불꽃을 힐끔거리고는 얘기했다.
“일단 도서관부터 가지. 알려주는 거라면 개인실로 가야겠군.”
“그래.”
이윽고 두 사람이 도서관 앞에 도착했다.
아카데미의 다른 건물들에 비해 작은 건물이긴 했지만, 이 건물 하나가 통째로 도서관으로 쓰인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결코 작은 시설은 아니다.
시안과 알렌이 1층 로비로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서적이 모여 있는 열람실이나 지금부터 가려는 개인실은 이 위층에 있다.
그런데, 승강기 앞에 아는 얼굴이 보였다.
“아…… 시안.”
그녀, 유설이 하얀 머리를 찰랑이며 시안에게 다가왔다.
현장학습에 가기 전에 본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오랜만이네.”
“……응.”
그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살짝 눈을 찌푸리며 할 말이라도 있는 듯 입을 우물거렸다.
시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그게, 혹시 괜찮으면…….”
“괜찮으면?”
“공부…… 좀 가르쳐 주면 안 될까?”
공부? 너도?
시안이 유설의 반지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저 2위의 반지는 원래 란이 끼고 있던 거였던가.
2위를 얻기 전에는 몇 위였던 거지?
“입학했을 땐 121위였어.”
“121?”
유설의 말을 듣고 시안이 눈을 깜빡였다.
121위라니.
이 녀석이라면 체력 검정은 무조건 고득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입학 순위가 121위란 것은 즉, 그만큼 필기시험이 처참했다는 뜻이다.
“실은 담임 교관이 이대로면 유급할지도 모른다고…….”
시안이 미간을 짚었다.
일전에 만났던 유진도 그렇지만, 유설도 빙하백령의 명문인 유가(家)의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가정교사도 붙고 그랬을 텐데 성적이 그렇게 나쁠 수가 있나?
“……유급하지 않을 정도로는 도와주지.”
“고마워……!”
어차피 하나 봐주나 둘 봐주나 마찬가지다.
시안이 알렌과 유설을 데리고 승강기에 올랐다.
부유마법이 장착된 승강기가 천천히 층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시안의 머릿속에 문득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알렌. 저 하양이는 누구야? 깜장이 애인이야?」
‘유설이라고 우리 학년 2위인 애야. 애인인지는 글쎄…… 그냥 친구 아닐까? 사귄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는데.’
[겨울의 뱀이 칭얼댑니다.]
[배우는 건 좋은데 왜 하필 시안이냐며 그냥 가자고 보챕니다.]
‘프시케…… 자업자득.’
그러고 보니 이 두 사람, 만나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시안을 사이에 두고 알렌과 유설이 서로 다른 곳을 보며 각자의 파트너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 *
“이 마법진은 대체 뭐야!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잖아!”
“모, 모르겠습니다!”
“모르면 분석을 해!”
“해석해 보려 시도하고 있습니다만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에버웨일의 성문에서 얼마간 떨어져 있는 평야. 그곳에서 아카데미의 마법 교수들과 도시의 수비대장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허둥대고 있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낌새도 없던 평야에서, 갑자기 거대한 마나 반응이 감지된 것이다.
그것도 도시를 빼곡히 둘러싸는 모양새로.
“교수님, 어떻게 된 겁니까? 누가 이 도시를 공격하고 있는 건가요?”
수비대장이 마법진 앞에서 끙끙대고 있는 마법 교수에게 다가가 물었다.
교수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그것조차도 모르겠소. 목적이 공격인지 결계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종래의 마법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방식이외다.”
“그럼 어떻게…….”
“아카데미엔 나보다 뛰어난 교수님도 계시다만, 아마 그분도 마찬가지일 게요. 나나 그분이나 지식 양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니…….”
이 자리에서 가장 명망이 높은 교수의 말에 좌중의 긴장감이 순식간에 올라갔다.
수비대장이 꽈악 주먹을 쥐었다.
‘비상사태다.’
에버웨일이 정체 모를 마법에 휩싸였다.
이 도시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중에는 자칫했다간 각국이 들고 일어날 수도 있는 고위 귀족의 자제들도 있었다.
소메르의 5대 마탑이나 요정궁 쪽에 연락을 한다고 해도 지원이 오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일.
수비대장이 당장 근처에 있던 말을 잡아 올라탔다.
“켈른 대장! 어딜 가려는 겐가!”
이 일을 어떻게든 해결해 줄 수 있는 이는, 그가 알기로 단 한 사람밖에 없다.
아카데미의 총장. 이 도시에서 가장 강한, 대륙을 통틀어서도 열 손가락에 드는 남자.
“총장님께 다녀오겠습니다! 교수님들은 여기서 계속 마법진을 봐주십시오!”
검노(劍老) 제레흐 폰 베르그하이젤.
그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수비대장이 아카데미를 향해 빠르게 말을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