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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66화 (66/188)

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66화

시안과 란, 샨은 우선 식사부터 하기 위해 이동했다.

캐러밴이 펼친 노점 중에서 간단한 식사를 파는 곳이 있어 들어갔다.

메뉴는 못 보던 채소에 베이컨이 듬뿍 들어간 오일 파스타.

“맛있다, 누나!”

“그러게. 먹을 만하네.”

“괜찮군.”

처음 보는 채소를 쓴 요리였으나 셋 모두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채소의 향이 조금 강하긴 했지만 꽤 맛이 좋았다.

“제자가 되고 싶다고?”

파스타 면을 포크로 돌리며 시안이 물었다.

“네! 사부한테 배워서 사부한테 이기고 싶어요!”

“…….”

“이겨서 사부 앞에서 그 편지를 낭독하는 게 지금 제 목표입니다!”

“허.”

시안이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한테 배워서 자신을 이기고, 그 앞에서 자신의 편지를 낭독하겠다니.

제자로 들어오겠다는 놈치고는 꽤나 맹랑한 녀석이 아닌가.

그래도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향상심이 뛰어난 아이일 뿐이니.

다만 그것과 제자로 받아들일까 말까는 별개였다.

“미안하지만 제자 같은 걸 받을 생각은 없다.”

“왜요?”

“너랑 나는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 거기에 난 검을 쓰고 너는 주먹을 쓰지. 이것만으로도 거절할 이유는 충분한 거 같은데.”

애초에 시안은 본인의 일만으로도 벅찼다.

제자를 받아 가르칠 시간이 있다면 개인 수련에 매진하는 것이 옳았다.

그리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는 후작가의 진짜 아들도 아니었고 흑마법사 녀석들과도 안 좋은 연이 얽혀 있다.

도저히 제자 같은 걸 받을 처지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받아주실 건가요? 청소든 빨래든 시키면 다 할게요!”

“뭘 해도 안 돼.”

“킁…….”

샨이 찡그리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 옆에서 묵묵히 파스타를 먹고 있던 란이 툭 얘기했다.

“내가 가르쳐 줄게. 그러니까 얘한테 애원할 필요 없어.”

“누나가?”

“애초에 왜 내가 아니라 이 녀석한테 가르쳐 달라고 하는 거야? 주먹 쓰는 법이라면 당연히 나한테 먼저 와야지.”

“그게, 아버님이…….”

“아빠가?”

“기왕 에버웨일에서 살 거라면 시안 아그리드에게 가르침을 청해 보라고.”

“아빠가 이 녀석한테? 왜?”

“나도 몰라.”

란의 미간에 한층 주름이 졌다.

대체 왜 아빠가 샨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그러고 보면 자신의 귀성 목적이었던 시안과의 대련 후 마나가 안정되는 현상. 그것에 대한 대답도 듣지 못했었지.

혹시 그게 연관되어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잠깐.”

그때, 생각에 잠겨 있던 란의 귀가 쫑긋거렸다.

그녀가 샨을 쳐다보며 물었다.

“에버웨일에서 산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이 도시에 살기로 했어. 아버님한테 못 들었어?”

“못 들었어!”

이 아저씨가 진짜!

하여간 옛날부터 중요한 얘기는 하나도 해주질 않는다.

란이 이마를 짚으며 저 멀리 있을 아빠를 향해 원망을 토로했다.

다음에 만나면 불평을 한가득 늘어놔 줘야지.

물론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한 귀로 듣고 흘리겠지만…….

“이사를 오나 보군.”

“예! 이 도시는 치안도 좋고 살기도 좋은 곳이니까요.”

“살 집은 구했어?”

“따라와 준 메이드가 지금 찾아보고 있어요. 적당한 집이 구해질 때까지는 일단 여관에서 묵을 예정이구요.”

기왕이면 아카데미랑 가까운 곳으로 구할 생각이라는 말에 시안이 의아해했다.

굳이 왜?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사부와 가까운 곳에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제자는 안 받는다고 말하고 있건만…….

“감사합니다~ 또 와주세요~”

이내 세 사람이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그리고 산책 겸 잠시 돌아다니던 중, 샨이 말한 메이드와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샨이나 란과 같은 호월족 사람으로, 펑퍼짐한 차림새를 하고 있는 중년의 부인. 이름은 엠마라고 한다.

듣기로 정원사인 그녀의 남편과 함께 샨을 돌봐주러 왔다고.

“저는 엠마랑 같이 집을 찾아보러 갈게요.”

“그래.”

“샨, 나중에 저녁때 찾아갈게.”

“응, 누나. 이따 봐~”

샨이 손을 흔들고 그 옆에서 메이드가 꾸벅 고개를 숙인다.

시안과 란이 두 사람과 떨어져 노점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

“…….”

두 사람 사이엔 잠시 말이 없었다.

시안은 노점을 둘러보며 뭔가 쓸 만한 물건이 없나 찾아보는 중이었고, 란은 복잡한 심경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동생이 같은 도시에 살게 됐다는 사실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그 동생이 생각보다 시안을 잘 따른다는 사실이 복잡했다.

자신이 시안에게 까칠하게 대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그 샨 때문 아니었던가.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그늘진 모습 하나 없이 시안을 따르는 것을 보니 복잡할 수밖에.

“시안.”

“왜.”

뭔가 미안…… 이라는 말이 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에 막혀 나오지 않았다.

몇 번 우물거려 보았으나 모두 실패했다.

이내 그녀가 조금 더 말하기 쉬운 쪽으로 도망쳤다.

“고맙다. 샨을 잘 봐줘서.”

본인의 일로 미안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샨의 일로 감사 인사는 막힘없이 나오는 그녀였다.

“녀석이 맘대로 엉겼을 뿐이야.”

“귀찮으면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잖아.”

“그 폭호인지 뭔지가 꽤 흥미로워서. 수왕기라고 했었나?”

“어. 수왕기 자체는 많은 수인들이 익히고 있는 녀석인데, 그래서 그런지 그 갈래도 다양하거든. 폭호도 그중 하나인 모양이야.”

수인의 마나는 인간이나 반요정에 비해서 훨씬 까다로운 녀석이다.

그들이 타고난 불과 같은 마나는 변덕스럽고 다루기 힘들며 때로는 말을 듣지 않기도, 혹은 말을 지나치게 잘 듣기도 한다.

고분고분한 인간이나 반요정의 마나와는 그 근본부터 달랐다.

그러나, 그렇기에 다채롭다.

‘여러 운용법을 사용하며 변화무쌍한 공격을 가해오는 이들이라 했던가.’

같은 권술을 쓰더라도 어떤 운용법을 사용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공격은 천차만별인 법.

그게 수인의 강력함 중 하나라고 하였다.

물론 변화하는 기운을 잘 다루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다.

수인들 사이에선 몇 개의 기운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냐가 강함의 징표라고.

“…….”

시안이 란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야?”

“아니. 너랑 싸우면서 수왕기 같은 건 못 봤어서.”

“설마 못 쓴다고 생각하는 거야?”

“쓸 수 있나?”

“나도 당연히 쓸 수 있어. 하나는 완벽히 숙달됐고 이번에 아빠한테 새로운 걸 하나 더 배웠거든.”

완숙된 하나의 기운, 그리고 습득은 했지만 아직은 미숙한 하나의 기운.

두 번째가 미숙하다는 말에 별것 아닌 거 같아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의 기운을 더 쓸 수 있게 된다면 전투 상황에서의 변수가 두 배 이상 늘어나는 법.

설령 두 번째가 아직 미숙하다 할지라도 그건 다르지 않다.

“하나는 이미 익히고 있었다는 건데. 그럼 예전엔 왜 안 쓴 건데?”

“……잖아.”

“응? 뭐?”

순간 목소리가 작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자 그녀가 버럭 소리쳤다.

“쪽팔리잖아! 너는 검기나 특별한 마나도 없이 순수한 마나랑 검술로 승부하는데 나만 수왕기를 써서 이겨서 뭐해!”

“…….”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해서 결국 지게 되면 그게 더 쪽팔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말로 하진 않았다.

‘뭐 생각해 보면 딱히 쓸 기회가 없던 것 같기도.’

생각해 보면 란과의 대련은 모두 약간씩은 독특했었다.

첫 번째 대련은 그녀가 자신을 과거의 시안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완전히 방심을 하였었지.

두 번째 대련은 유설까지 3파전을 벌이다 구경꾼이 몰려와 그만두었고, 세 번째는 보물찾기 때의 대련.

그때는 그녀는 물론이고 자신 역시 딱히 마나를 크게 끌어 올리거나 하지 않았다.

뭔가 암묵적인 합의 같은 것으로 서로의 기교만으로 겨뤘던 한 판이었지.

“후…… 아무튼 오늘은 샨이랑 만나줘서 고마웠고. 나 먼저 기숙사로 돌아간다.”

“캐러밴 구경은 안 할 건가?”

“나중에. 짐부터 싸놓을까 해서.”

“짐?”

“샨이 집을 구하면 거기로 옮기게. 몸도 약한 그놈을 엠마네한테만 맡겨둘 수는 없지.”

“남동생을 무척 아끼는군.”

시안의 말에 란이 코를 한번 울렸다.

“당연하잖아. 가족이니까.”

가족.

5살 때 친부모를 모두 잃은 시안에게는 잘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는 염노를 가족처럼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그게 진짜 가족으로 여기는 것인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진짜 가족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간다.”

짤막한 한마디만 남기고 아카데미로 향하는 그녀를 보며 시안도 발을 돌렸다.

쓸데없는 감상은 그만두고, 예정대로 캐러밴이나 둘러보러 가도록 하자.

* * *

시안이 제법 밝은 표정으로 길을 따라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캐러밴의 규모가 상당했기에 길에 펼쳐진 노점 역시 상당히 많았다.

간단한 음식을 파는 곳도 있었고 식재료 자체를 파는 곳도 있었다.

물론 가장 많은 것은 장신구나 장식품 따위를 파는 곳이었지만.

“흐음.”

그런 가게들이 시안이 주의 깊게 살피는 곳들이었다.

솔직히 이런 곳에서 영약 같은 것을 발견할 가능성은 일절 없다. 먹을 것을 파는 가게를 신중히 살필 필요는 없겠지.

반면 장식품을 파는 곳에선 생각지도 못한 물건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쪽도 가능성은 낮긴 한데.’

그래도 한 번은 살펴볼 가치는 있다.

이국의 물건들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그러나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은 채 돌아다니던 중.

‘우웅!’

라비가 시안을 불렀다.

시안의 발걸음이 그 자리에서 딱 멎었다.

라비가 무언가를 감지했다.

‘……여기?’

‘웅!’

시안이 바로 옆에 있던 노점을 살펴보았다.

그 물건들을 둘러보며 그가 신중히 라비의 반응을 살폈다.

‘……흑마법사를 찾을 때랑은 조금 느낌이 다른데.’

묘한 반응이었다.

보통 라비가 악마의 기운을 감지했을 때는 찌르는 듯한 긴장감을 흘린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긴장감은커녕, 오히려 친근함과 비슷한 감각마저 올라오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지?

“주인장. 이거 주시죠.”

“예이~ 은화 하나입니다.”

라비가 가리킨 물건.

하얀 깃털로 장식이 된 모자. 그중 하나만이 붉은 깃털이 꽂혀 있었다.

딱히 명품도 아니고 적당히 만든 것 같은 모자 하나에 은화 하나나 하다니…….

그러나 라비가 반응한 물건을 두고 괜히 실랑이를 벌이고 싶진 않다.

이런 물건은 냉큼 내 것으로 하고 뒷일은 그 후에 생각해야 하는 법.

시안이 품에서 은화 하나를 꺼내 건넸다.

“감사합니다~”

물건을 받고선, 시안이 모자에서 붉은 깃털을 떼어냈다. 모자는 옆구리에 끼고 깃털을 살폈다.

이게 라비가 반응하는 물건이었다.

그때.

“여기라고?”

「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그녀와 그리고 그녀의 정령과 눈이 마주쳤다.

융 교관과 그녀의 정령 실라페.

시안의 눈이 살짝 커졌다.

“알렌이랑 떠났다고 들었는데, 그새 돌아오셨군요.”

“예, 예에…… 이제 슬슬 시험 기간이기도 하니까요. 아니, 근데.”

융도 시안과 마주침에 살짝 놀라는가 싶었는데, 이내 그의 손을 보고는 그 이상으로 놀랐다.

정확히는 시안이 쥐고 있는 붉은 깃털을 보고.

그녀의 눈이 잠시 허공을 방황했다.

그러고는 애써 스스로의 감정을 감추며 미소를 지었다.

그 입이 미세하게 떨려오는 것까지 감추진 못하였다마는.

“시안 학생. 그 장식품, 학생이 사신 건가요?”

“예. 방금.”

“아하, 그렇군요……. 음~ 저기 혹시 저한테 팔아주실 수 없나요?”

감추려는 듯 보이나 그녀의 감정은 적나라하기만 했다.

그런 거였군.

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잘못 알아들은 융의 얼굴이 잠시 밝아졌으나.

“싫은데요.”

이내 다시 풀이 죽어 그림자가 졌다.

시안이 제 손에 든 붉은 깃털을 바라보며 납득했다.

과연 그랬던 거군.

하긴 라비는 지옥계의 존재이지만 동시에 정령이기도 하니까.

‘정령에 관련된 물건이었네.’

정령 관련 아이템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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