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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63화 (63/188)

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63화

성채의 공략까지 무사히 마무리가 되었지만 용병단은 며칠 더 주둔지에 주둔했다. 아직 몇 가지 일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에 도망친 하이오크들을 추적해 토벌하는 일. 인근 유적과 텅 빈 성채를 탐색해 쓸 만한 물건을 탐색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이건가…….”

“워프 마법이 맞군요.”

“대박입니다, 대박! 으하하!”

성채와 이어져 있었던 워프 마법이 새겨진 유물을 발굴하는 일.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물건에 용병들의 표정은 굉장히 밝았다.

워프라 함은 아직 현대 마법으로 재현되지 않은, 고대 유적에서나 간간이 발견되는 마법이다.

이런 마법을 유산마법이라 일컫는데, 워프는 대표적인 유산마법 중 하나.

당연하지만 말도 못 하게 비싼 물건이다.

“대장이 이미 빙하백령 쪽에 연락을 해놨습니다. 아마 열심히 이쪽으로 마중 오고 있을 겁니다.”

이번 의뢰 자체가 빙하백령이 내건 의뢰다. 때문에 그쪽에 연락하는 것이 수순이었다.

빙하백령에서 워프 마법이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그때 가서 새로운 판매처를 찾아야 하겠지만 아마 그럴 일은 없겠지.

워프 마법은 어디에서나 없어서 못 챙기는 물건이니까.

빙하백령엔 이걸로 새 워프 통로가 하나 더 뚫리게 될 것이다.

어디에 뚫릴지는 궁과 영주들 사이에서 정할 문제고, 용병들이 할 일은 마법을 넘기고 막대한 대금을 얻는 일뿐.

그 수혜는 생각지도 않던 학생들에게까지 돌아왔다.

짤랑.

“오오!”

“이거 다 금화야!”

“진짜 이렇게 많이 받아도 돼요?”

학생들에게 모두 한 주머니나 되는 금화가 보상으로 돌아갔다.

수십 일이나 이어졌던 블라텐 용병단의 그류페인 공략. 그 마지막 며칠만 참가한 것치고는 상당한 보상이었다.

금화 한 주머니는 대부분이 귀족가의 자제인 학생들에게도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애초에 그들도 집안에서 용돈을 타 쓰는 입장이니까.

“대장이 주라고 한 거니까 그냥 받아.”

“어차피 그 정도쯤은 전혀 상관없어. 빙하백령에서 훨씬 더 뜯어낼 거거든. 하하하!”

기분 좋게 돈을 뿌리는 용병들에게 학생 몇 명이 질문했다.

“근데 그렇게 팔기 아깝지 않아요?”

“워프면 훨씬 더 가치가 있을 거 같은데.”

용병들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너무 큰 보물이라서 그래. 이건 우리 규모론 감당이 안 되거든.”

“이런 물건은 빠르게 딴 놈한테 넘기는 게 최고야. 자칫하다간 보물이 아니라 재앙 덩어리가 될 수도 있어서.”

“이번엔 요정궁이랑 직접 연결되어 있으니 다행이었지. 중간에 영주 하나라도 끼어 있었으면 더 복잡해졌을걸.”

학생들의 말대로 워프 통로 하나가 가져다주는 가치는 금전으로 환산하기가 힘들 정도다.

물류의 이동이 풀리는 것은 물론 전시 상황을 대비해 전략적인 지형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 외에도 워프가 박힘으로써 해당 영지가 활성화가 된다든가 하는 쪽의 이득도 적지 않았고.

그렇기에 그런 물건을, 아무리 S급이라지만, 일개 용병단 하나가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우리 대장이 많이 세긴 하지만 우리가 다 센 건 아니니까. 인원이 많은 편도 아니고.”

아무리 대장인 이자크가 마스터급의 검사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마스터는 그 혼자지 용병단의 다른 모두가 마스터인 것은 아니니까.

그 말에 학생들도 모두 납득했다.

그렇게 보물을 지키며 주둔지에서 기다리기를 며칠.

“이자크 경. 큰 공훈을 세웠군.”

빙하백령의 수호기사들이 도착했다.

“경이라 부르지 말라 하지 않았소. 기사도 아닌데.”

“하하, 미안하네. 대신 궁까지 착실히 호위할 테니 기분 풀어.”

아는 사이인 듯 빙하백령에서 온 호위대장과 이자크가 자연스레 악수를 나눴다.

그들이 도착하고 일행들이 각자 마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마차들의 주위를 말을 탄 수호기사들이 호위했다.

시안이 슬쩍 창밖을 바라보았다.

요정궁 빙하백령. 그곳 수호성에서 나온 반요정들.

‘융 교관이 수호성에 있었다고 했었나.’

저들의 동료 중 하나였단 얘기다.

빙하백령의 최정예 엘리트들.

그 위명답게 말 위에 올라타 있는 수호기사들의 자세는 꼿꼿하면서도 빈틈 하나 없었다.

특히 이자크와 말머리를 함께하는 호위대장의 경우는, 이자크와 비교해도 전혀 그 기세가 밀리지 않았다.

‘호위대상이 마스터인데 그보다 약한 이를 보냈을 리는 없으니.’

그 역시 최소 마스터급이란 얘기겠지.

호위대장의 오러는 어떤 것일까 멋대로 추측을 해보며 시안이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다그닥, 다그닥.

수호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마차가 출발했다.

마차 주위를 수호기사들이 탄 말이 빠짐없이 막고 있었다.

사실상 호위라기보단 감시나 다름없는 일.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애초에 저들이 온 목적 자체가 호위가 아니다.

호위는 그저 명목상으로 좋게 얘기하는 것일 뿐, 실상은 감시…… 아니, 정확히 말하면 워프 마법의 호송이겠지.

그렇다곤 하지만 용병들 입장에서도 딱히 기분 나빠할 건 아니다.

애초에 유산마법을 빙하백령에 넘길 생각이던 용병단에게 있어서는 그냥 편하게 대접받으며 궁까지 안내해 줄 안내인들에 불과하니까.

‘덩달아 우리도 같이 호위를 받게 되었으니.’

이 호위의 일부는 ―일부래 봤자 2~3명에 불과했지만― 학생들을 에버웨일까지 정중히 호위해 준다고 한다.

물론 그 속내는 궁이 워프 마법을 인도받을 때까지 정보를 흘리는 것을 감시하기 위함이겠지만.

“에버웨일까지의 일체의 경비와 마차비용, 숙식비, 워프 비용도 모두 저희 쪽에서 내드리겠습니다.”

“그거 고맙군.”

경비를 내주겠다는 말에 테일 교관이 웃었다. 그 수호기사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테일 교관이 앞장섰다.

그류페인에서 빙하백령의 국경까지의 짧은 시간. 그 시간이 지난 후 학생들은 블라텐 길드와 작별을 나눴다.

그들은 요정궁을 향해 올라가는 길, 반대로 학생들은 에버웨일을 향해 내려가는 길이었다.

용병들과 대부분의 수호기사들이 빠지니 일행의 규모가 크게 줄었다.

테일 교관과 서른 명의 학생들, 그리고 호위를 해주겠다며 남은 세 명의 수호기사.

그중 선임으로 보이는 자는 테일 교관과 나란히 말을 타고 있었고 나머지 둘은 양옆에서 마차를 호위했다.

‘이제 진짜 돌아간다는 느낌이 나네.’

뭔가 용병들이 빠지고 나니 아카데미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설산 그류페인에서의 현장체험학습.

이동하는 기간까지 합쳐서 열흘이 조금 넘는 정도의 기간이었지만, 생각보다도 농밀했다.

그냥 견학이라고 해서 그렇게까지 기대하고 있진 않았었는데.

‘남은 1학기 일정이 시험이랑 무도회. 다 끝나고 나면 방학인가.’

시안의 얼굴에 살짝 긴장이 흘렀다.

방학이 되면 자신은 ‘시안 아그리드’로서 본가로 돌아가야 한다. 별채에서 살던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생활.

이전에도 한 번 들른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주에게 보고를 하기 위함이었다.

본격적으로 가문에 머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연.’

아들의 이름을 달고 가문에 들어온 자신을, 가주가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만에 하나를 위한 각오를 다지며 시안이 눈을 감았다.

* * *

“맛있다!”

에버웨일로 돌아가는 길. 당연히 휴식 시간이 중간중간 있었고 그중 하루 세 번은 식사 시간을 겸한 시간이었다.

주둔지에 있었던 때와 같이 당번을 나눠 일을 맡았고, 오늘은 시안이 조리반에 속한 날.

에르제가 시안의 옆에서 수프를 떠먹으며 방실거렸다.

“시안은 어떻게 이렇게 요리를 잘해?”

“옛날부터 취미로 해와서.”

“특이하다. 후작님의 아들은 이런 건 절대 안 할 줄 알았는데.”

사실 딱히 취미는 아니고 그냥 염노랑 번갈아 식사 준비를 했을 뿐이다.

염노와 둘만 살던 그 저택에선 당연히 하인도 정원사도 요리사도 쓰지 못했다.

청소도 정원의 정리도 요리도 염노와 둘이서 해결해야 했다.

‘그건 그렇고.’

시안이 옆을 바라보았다.

수프를 떠먹던 에르제가 시안의 시선을 느끼고 돌아보더니, 방긋 웃었다.

뭔가 이전과 다른 느낌이었다.

보다 더 잘 웃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정말 맛있군요. 그쪽이 셰프입니까?”

그때 두 사람에게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시안이 그를 쳐다보았다.

호위 때문에 남은 세 명의 수호기사 중 가장 젊은 남자.

현역의 기사이면서 자신보다 약간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정도였다.

하얀 백색의 제복에 한쪽 어깨를 덮는 푸른 망토.

그 망토에는 수호성의 소속임을 뜻하는 휘장이 새겨져 있었다.

“입에 맞다니 다행이군요. 더 있으니 드시죠.”

“고맙습니다.”

수호기사가 눈웃음을 지으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반요정의 입맛에도 잘 맞는 모양이군. 시안이 남몰래 홀로 뿌듯해했다.

다만, 그 수호기사의 시선은 시안이 아닌 에르제를 향해 있었다.

“영애가 데려온 요리사의 실력이 출중하군요.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요리사 아닌데요. 반 친구예요.”

에르제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 말에 수호기사가 살짝 놀란 제스처를 취하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 그런가요. 실례했습니다.”

그러고선 고개를 들면서, 시안을 향해 피식 웃어 보이는 것이 아닌가?

“?”

딱히 적의까지는 아니었지만 좋은 느낌도 아니다.

시안은 영문을 모르고 눈을 찌푸릴 뿐이었다.

그 뒤로 식사 시간은 아무 일 없이 끝이 났지만.

이와 같은 일이 휴식 시간마다 일어났다.

“평민이시란 말입니까?”

“네, 그런데요.”

“그랬었군요. 너무 아름다우셔서 어느 귀족가의 따님분인 줄 알았습니다.”

자신을 유진이라 소개한 젊은 수호기사는 휴식 시간마다 시안을 찾아왔다.

정확히는 휴식 시간마다 시안의 옆에 쪼르르 달려오는 에르제를 쫓아온 것이다.

다만 안쓰러울 정도로 호응이 없었다.

‘왜 이렇게 반응이 별로지?’

미소를 유지하고 있는 유진의 입가에 잔 경련이 일어왔다.

그녀의 미소를 보고 매력적이라 생각해 접근해 온 유진이었지만, 정작 그녀가 미소를 보이는 상대는 옆에 있는 사내뿐.

자신을 바라볼 때는 입꼬리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럴 리가 없는데.’

그가 속으로만 얼굴을 찡그렸다.

어릴 때부터 반요정의 기준으로도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난 그다.

거기에 21이라는 젊은 나이에 수호기사로 임명될 정도의 실력자.

태어나면서부터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오며 많은 여성들과 만남을 가졌지만 이렇게 자신에게 흥미를 안 보이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그냥 평민이라는 여자가!

“유진이라면 유가(家)의 사람입니까?”

오히려 옆에 있는 사내 쪽이 그에게 더 관심이 있을 정도였다.

사내놈의 관심 따위 필요 없는데.

그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만.”

“그럼 유설과는 어떤 관계시죠?”

“어 진짜요?”

처음으로 에르제가 그를 보며 눈을 깜빡인다.

유진의 눈이 번뜩였다.

이거다.

“제 배다른 동생입니다. 에르제는 그 아이와 친하신가요?”

“아뇨, 딱히…….”

먼저 말을 꺼낸 건 시안인데 에르제에게만 물어보는 유진.

그러나 에르제는 칼같이 선을 그었다.

거짓이 아니라 실제로 별로 안 친한 사이였다. 사적으로 얘기를 해본 적도 없고.

이것도 안 되나……. 유진이 속으로 혀를 찼다.

그제야 그가 시안에게 대답했다.

“후…… 그나저나 당신은 그 녀석에 대해서 왜 물어보는 겁니까. 친해요?”

“친분이 조금 있긴 합니다.”

“흐응.”

유진이 흥미 없다는 듯이 콧소리를 울리며 시안을 보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내다. 자신이 점찍은 여자의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점찍기 전부터 둘은 이미 친한 사이였다는 사실은, 그에겐 별로 고려할 사항이 아니었다.

‘유가의 형제들은 사이가 별로 좋지 못한가 보군.’

한편 시안은 전혀 다른 생각 중이었다.

이복형제라는 유진은 유설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아 보인다.

그러고 보면 일전에 보았던 언니 쪽 앞에서도 유설은 쭈뼛거리기만 했었지.

뭐 딱히 특이한 일도 아니다.

널리고 널린 게 형제 사이가 좋지 못한 가문이었으니…….

“시안, 차 한 잔 마실래? 나 시안이 타주는 거 보면서 타는 법 좀 익혔는데 한번 맛 좀 봐줘.”

그때 생각에 잠긴 시안을 빤히 바라보던 에르제가, 그를 일깨우듯 말을 걸었다.

시안이 유설과 유가에 대한 사색을 관두곤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괜찮다면 저도 한 잔 가능하겠습니까?”

“좋아요.”

에르제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불 위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가 잠시 멀어진 순간.

유진이 때는 이때라는 듯이 시안에게 얘기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어떤가요. 제가 한 수 가르쳐 드릴까요?”

꿍꿍이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미소 짓는 유진을 시안이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걸려오는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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