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58화
카앙―!
하크쉬가 글레이브를 휘둘러 시안의 검을 쳐냈다.
‘…….’
손에서 느껴지는 저릿함을 느끼며 시안이 눈을 찌푸렸다.
말도 안 되는 힘이다.
지금 자신은 파워 건틀릿으로 힘을 강화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손에 전해진 충격이 상당했다.
‘근력은 최소 동급이거나 저쪽이 위군.’
시안이 흔들리는 검을 바로잡아 회색 늑대의 다리를 베었다.
휙! 늑대가 그대로 발을 들어 올려 검을 피하면서 동시에 시안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하크쉬의 글레이브가 시안의 머리를 노리고 떨어져 내렸다.
‘……!’
시안이 뒤로 뛰어 몸을 빼었다. 양쪽에서 덮쳐 오는 공격. 일전에 란과 유설의 공격을 검륜으로 막아낸 적이 있지만, 이건 불가능했다.
아래쪽 늑대는 어떻게 한 손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글레이브는 안 된다.
콰앙!
그가 피하자 글레이브가 그대로 땅을 찍었다. 충격을 받아 부서진 돌무더기의 파편이 시안의 얼굴로 치솟아 올랐다.
시안이 좀 더 뒤로 몸을 빼었다.
[이 땅은 너희들이 밟아도 좋은 곳이 아니다!]
하크쉬가 물러서는 시안을 따라잡더니 거세게 글레이브를 휘둘렀다.
죽음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글레이브.
놈의 분노가 대기를 떨리며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했다.
시안의 눈이 가라앉았다.
하크쉬가 피어 올리는 짙은 살의가 그의 몸을 덮쳐오고 있었다.
심약한 이라면 그대로 기절해 버릴지도 모를 살기 앞에서.
‘저 아기 오크를 어떻게 해야겠는데.’
그의 머리는 이보다 차가울 수가 없었다.
악마의 기운. 그건 이 커다란 오크가 아니라 놈의 손에 들려 있는 아기 오크 쪽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쿠웅!
글레이브를 살짝 몸을 틀어 피하고는 그가 아기 오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쓰레기산의 죄수가 기겁하여 소리칩니다.]
[막아!]
아기 오크가 눈을 번뜩이며 소리쳤고 하크쉬가 곧바로 반응했다.
카앙!
그의 글레이브가 아기 오크를 향하던 시안의 검을 쳐냈다.
그런데 그 직후.
“하앗!”
어느새 접근한 것인지, 하크쉬의 뒤쪽에서 켈하자드의 망토로 몸을 감싼 에르제가 나타나 단검을 찔렀다.
푹, 단검이 거의 뿌리 끝까지 늑대의 옆구리를 찔러 들어갔다.
내장을 비틀 듯이 박힌 단검을 한 바퀴 돌리며 그녀가 손을 뗐다.
“크허엉!”
[레올!]
부웅―!
하크쉬가 핏발 선 눈으로 글레이브를 휘둘러 에르제를 떼어냈다.
그러곤 늑대에게 박힌 단검을 단숨에 뽑아내고는 그대로 손으로 잡아 구겼다.
우지끈!
순식간에 고철 덩어리가 된 단검이 땅에 떨어졌다. 그 악력에 에르제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늑대의 상처에서 콸콸 쏟아지는 핏물.
녀석이 번뜩이는 눈으로 어떻게든 일어서려 하였으나 이미 다리가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에르제의 단검은 녀석의 심장을 긋고 지나갔다.
제아무리 훈련받은 맹수라 할지라도 심장이 손상되곤 살아 있을 수 없다.
[인간들, 죽인다.]
쓰러지는 늑대를 눕히곤, 하크쉬가 핏발이 서다 못해 완전히 붉어진 눈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툭. 그가 지금까지 잘 들고 있던 아기 오크를 그냥 땅에 떨어뜨렸다.
관심이 아예 사라졌다는 듯이.
아기 오크가 살짝 혀를 차는가 싶더니 그대로 뒤쪽으로 기었다.
악마가 깃들어 있던 덕분인지 아기의 몸이었음에도 상당히 빨랐다.
“…….”
시안이 순간적으로 놈을 쫓으려 한 발짝 움직였으나, 거기까지였다.
분노한 하크쉬의 기세가 온전히 그들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솜털이 돋아날 정도의 기운에 그가 눈을 찡그리며 에르제에게 얘기했다.
“에르제.”
“으, 응?”
“저 아기 오크를 쫓아가. 단 싸우지는 말고 감시만.”
놈이 어떤 능력을 가졌을지 모른다. 에르제를 싸우게 할 순 없었다.
동시에 녀석을 여기서 놓아줄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나온 타협안이었다.
“하, 하지만…….”
“너밖에 없어.”
에르제의 은신 능력이 반에서, 아니 1학년 중에 가장 뛰어나다.
몰래 뒤를 밟아 감시하기엔 그녀보다 뛰어난 인재는 없을 테지.
그렇게 얘기하자 에르제의 몸에 떨림이 일순간에 멎었다.
“……응, 알았어.”
그녀가 조용히 대답하며 전의를 다졌다.
한편으론 하크쉬가 반대쪽 손으로 도끼를 꺼내 들더니 캉캉캉! 마구 부딪히기 시작했다.
[크허어어엉!]
녀석의 함성이 유형의 기운이 되어 주변에 퍼져 나갔다.
한 번 소리가 울릴 때마다 피가 울컥 역류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시안이 잠시 심호흡을 하고는, 라비를 검에서 불렀다.
라비의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던 흑검은 사라지고, 어느새 그의 손에는 본 상태의 빈 정령의 검만 들려 있었다.
“내 정령이야. 같이 데려가.”
에르제가 눈을 크게 떴다.
“정령까지 데려가면 너는 어떡해?”
“난 괜찮아.”
위험도로 따지면 솔직히 아기 오크 쪽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녀석의 능력은 아직 불명.
그러나 악마의 힘을 가지고 있는 만큼 범상치 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 때문에 라비를 그녀에게 건네는 것이었다.
라비라면 여차할 때 녀석에게 ‘목줄’을 채울 수 있으니까.
“우웅!”
시안의 의념이 전해졌는지 라비가 결의가 깃든 눈으로 에르제를 재촉했다.
그 작은 정령을 보며 잠시 눈동자가 떨리던 그녀가, 이윽고 라비를 건네받아 소중히 품에 안았다.
“……조심해, 시안.”
“너도.”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검은 선 속에 숨은 것이다.
시안이 빈 정령의 검을 들었다.
라비가 사라진 그 검은 이제 와선 그냥 조금 단단할 뿐인 평범한 검에 불과했다.
평소에도 잘 손질을 해오던 덕에 날은 잘 세워져 있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크워어어어어!]
하크쉬가 달려들었다. 녀석의 글레이브와 도끼에는 하얀색의 오러가 선명히 빛나고 있었다.
하이오크들은 그것을 투기(鬪氣)라 불렀다.
전쟁의 신에게 인정받은 자만이 다룰 수 있는 대전사의 증표.
맹렬한 투기가 그의 전신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죽어라 인간―!]
양손을 들어 크게 점프한 녀석이 시안에게 떨어져 내렸다.
쿠웅―!
땅이 크게 울리더니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크르르…… 하크쉬가 짐승과도 같은 숨소리를 내쉬었다.
그러던 놈이, 이내 콧잔등을 씰룩이더니 머리 위쪽으로 도끼를 쳐올렸다.
그곳에선.
“…….”
검은 오러를 두른 시안의 검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 * *
콰아아앙!
성채의 문을 그대로 부숴버리며 용병들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 선두에 서 있는 것은, 붉은 오러를 두른 이자크.
“전부 죽여라!”
“와아아아아아!”
그의 지시에 용병들이 성채 내부에 포진해 있던 하이오크들에게 달려들었다.
이자크의 눈이 일순간에 전장을 살폈다.
‘이게 다인가?’
그들을 맞이한 하이오크의 숫자는 보이는 것만으로 대략 200 이상.
놈들 하나하나가 최소 하급 기사 수준의 괴력을 가졌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결코 적은 전력이 아니다.
작은 영지 하나 정도는 밀어버릴 수 있을 만한 전력.
그럼에도 이자크는 생각했다.
예상보다 숫자가 적다고.
‘듀나스가 추측한 바로는 300까지도 있을 수 있다고 그랬는데.’
그동안 설산을 돌며 생각 없이 토벌만 한 것은 아니다.
산에 남겨진 흔적들. 토벌한 하이오크의 숫자. 녀석들의 식량 사정과 설산의 가혹한 환경.
갖가지 변수를 고려한 결과 산출된 숫자였다.
그런데 그에 비해 상당히 적은 것 같지 않은가?
[죽여! 죽여라!]
그가 한창 의아해하던 중, 다른 오크들보다도 거대한 늙은 오크가 나타나더니 함성을 질렀다.
하이오크들이 그 함성에 호응해 사기를 기른다.
이자크의 눈이 번뜩였다.
‘……일단 모두 정리한다.’
약간의 찝찝함은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뭐가 됐든 일단은 눈앞의 적을 처리하고 난 뒤의 이야기다.
그가 붉은 오러로 감싼 검을 들고 늙은 오크에게 달려들었다.
* * *
에르제가 검은 선에 숨은 채로 아기 오크를 쫓아갔다.
켈하자드의 망토로 몸 전체를 감싸고 검은 선에 숨기까지 하니 그녀의 기척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사라져 있었다.
그런 상태로 아기 오크를 쫓는 그녀였으나, 좀처럼 따라잡지를 못했다.
놈이 생각보다 빨랐던 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런 곳에 지하 유적이 있었어?’
아기 오크가 어느 동굴 속에 들어가는가 싶더니, 그 동굴 속에 유적의 잔해가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두운 통로를 녀석은 대낮처럼 막힘없이 이동한다.
반면에 에르제는 아기 오크의 흔적을 확인하랴 길을 찾으랴 이래저래 막힐 수밖에 없었다.
‘흔적을 따라가면 돼.’
그러나 이대로 놓칠 수는 없다.
에르제는 그레이트 힐에서 시안에게 배운 것을 떠올렸다.
흔적을 읽는 기술.
비록 그때 배운 건 고블린의 흔적이고 지금 쫓고 있는 건 아기 오크였지만, 기본적인 골자는 다르지 않았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가 아기 오크의 흔적을 따라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들어갔을까.
파삭.
돌과 모래로 묻힌 곳을 파내고 뛰어들자, 어떤 거대한 공동이 나타났다.
‘따라잡았다!’
그곳에 있는 아기 오크를 보며 그녀가 눈을 빛냈다.
그런데 그 직후, 그녀의 코를 찌르는 냄새가 있었다.
“욱!”
시큼한, 썩은 시궁창과 같은 냄새.
그녀가 망토로 코를 막으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곤 그 눈이 경악으로 크게 뜨였다.
‘시체?’
수없이 널브러져 있는 하이오크들의 시체들.
공동 전체가 오크의 시체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메워져 있었다.
개중에는 죽은 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듯 백골이 된 시체까지 존재했다.
에르제는 모르고 있었지만 이곳은 산 정상의 성채와 연결되어 있는 곳이다.
천금보다도 귀한 취급을 받는 워프 마법이 새겨진 유적.
그걸 하이오크들은 죽은 시체를 버리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놈들에게 있어선 쓰레기 투기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장소에서 갈색 피부의 아기 오크가.
까득, 까드드득!
시체들의 마석을 파내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쓰레기산의 죄수가 분노합니다.]
[유적의 발동에 힘을 탕진하지만 않았어도 이딴 돼지 새끼들 마석을 삼킬 일은 없었는데!]
그렇게 한창 마석을 씹어 삼키던 중.
놈의 고개가 끼이익 옆으로 돌아갔다.
붉게 떠오른 놈의 두 눈이 에르제가 숨어 있는 곳을 정확히 응시했다.
“읏…….”
싸늘한 기운, 그리고 들켰다는 생각에 에르제가 무심코 뒷걸음질을 쳤다.
[퉤.]
아기 오크가 마석에 붙어 있던 썩은 고기를 퉤 뱉어내었다.
[이 일을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 인간. 그리고 동포여.]
에르제의 어깨 위에 있는 라비가 파르르 떨며 움츠러들었다.
아기 오크의 등이 불긋 솟아났다. 그러고는.
푸직, 푸지직.
근육과 피부를 뚫고, 그 속에서 날개가 돋아나왔다.
종잇장보다도 얇고 투명한, 마치 잠자리나 파리의 그것과 닮은 두 쌍의 날개가.
놈의 몸이 천천히 공중에 떠 올랐다.
[특별히 목숨 정도로 사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마.]
부우우우우웅―
놈의 날개가 거칠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꺄아아아악!”
콰과과과과광!
공동 전체를 마력이 실린 음파가 마구잡이로 파괴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