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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55화 (55/188)

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55화

부우우우우우―!

“크락! 크락카!”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며 하얀 늑대를 탄 하이오크 무리가 몰려온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마차를 끌던 말들이었다.

히이이이잉! 맹수와 포식자의 등장에 말들이 통제를 잃고 마구잡이로 날뛰기 시작했다.

마차가 흔들리며 학생들이 뛰쳐나왔다.

그 사이에서.

“흡!”

테일 교관이 검을 뽑아 땅에 꽂았다.

그를 중심으로 마나의 파장이 퍼져 나갔다. 그것이 닿자 말들이 점차 진정하기 시작했다.

앞에 보이는 맹수들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줄 존재를 인식한 것이다.

“자! 빨리빨리 준비해라! 그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지켜보마!”

그가 말을 마칠 때쯤엔 이미 모든 학생들이 마차에서 나와 전투 준비를 끝낸 후였다.

“싸울 일은 없다면서요!”

“그건 일정이 그렇다는 말이지. 지금은 일정 밖의 예외 상황이잖냐.”

“이럴 줄 알았어!”

“견학만 하고 끝날 리가 없지!”

일순간에 포진을 마쳤다.

검과 창을 든 학생은 전열에, 지팡이를 든 학생은 후열에.

마차와 말을 지키듯이 자리하며 그들이 돌진하는 하이오크들에 맞섰다.

“카락카!”

스물이 넘는 하이오크들. 놈들이 탄 하얀 늑대들도 놈들의 덩치만큼이나 커다랗다. 그 둘이 합쳐지니 거의 집채만 한 사이즈였다.

“일단 속도부터 줄일게!”

학생들과 하이오크들 사이에 마법이 떨어졌다. 정확히는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올라왔다.

쿠구구구궁!

땅에서 일렬로 바위송곳이 솟아올랐다.

대지의 꽃(Earth Flower).

전장에서 기병들의 차징을 막기 위해 고안된, 대중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마법이다.

그 가시꽃의 안쪽에서 학생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했다.

가시 건너로 보이는, 기세 좋게 돌격 중인 하이오크들.

시안이 지그시 눈을 뜨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넘어온다!”

시안이 크게 외쳤다.

학생들이 의아한 얼굴로 시안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직후, 그들 역시 경악하기 시작했다.

“크락!”

“커헝!”

하이오크를 태운 하얀 늑대들이 대지에 피어오른 바위송곳을 몇 차례나 밟으며 크게 도약하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난입하기 시작하는 열 마리의 하이오크.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중에서 놈들이 허리춤에 손을 가져가더니, 손도끼를 꺼내 들곤 일제히 투척하기 시작했다.

“미친!”

“막아!”

다급히 마법사 학생들이 배리어를 사용하려 하였으나, 한발 늦었다.

맹렬히 회전하며 날아오는 손도끼. 그것이 닿기 전에 마법이 완성되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때.

‘역시 투척용이었어.’

다른 이들보다 한발 먼저 하이오크를 파악했던 시안은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넓은 범위를 커버할 수 있는 창해를 꺼내, 모든 것을 지켜보며 타이밍을 잡았다.

열 자루의 손도끼들이 모두 하나의 곡선으로 이어지기를.

그리고, 한껏 당겼던 창해를 휘둘렀다.

카카카카캉!

창해의 검편이 사슬처럼 휘둘러지며 모든 손도끼들을 튕겨내었다.

한 번의 휘두름으로 열의 공격을 튕겨낸 신기(神技)에 학생들이 말을 잃었다.

그들의 정신을 깨운 건 시안의 검과 하이오크의 글레이브가 부딪치는 소리였다.

캉!

“소, 속도는 줄었어!”

“가자!”

돌격에서 가장 무서운 전차와 같은 속도는 사라졌다.

남은 것은 이 안에서의 백병전.

하얀 늑대를 탄 열 마리의 오크와 서른의 학생들이 힘 싸움을 시작했다.

“카!”

하이오크의 글레이브가 태양 빛을 반사하며 번뜩인다. 카앙! 학생들의 창이 그걸 흘려내며 놈이 타고 있는 하얀 늑대를 찔러갔다.

웬만큼 단련된 군마라도 피할 수 없을 일격.

그러나 하얀 늑대는 기가 막히게 유연한 동작으로 그걸 피해냈다.

그 위에 타고 있는 기수인 하이오크 역시 그런 하얀 늑대의 위에서 일절 균형을 잃지 않고 다시 글레이브를 내질렀다.

콰과과과광!

녀석들을 향해 끊임없이 불과 벼락이 떨어졌다.

아무리 크고 강인한 하이오크들이라도 마법을 무시할 순 없었다.

결정적인 타격은 주지 못했지만 떨어지는 마법들은 놈들의 기세를 상당히 죽여주었다.

그리고 그사이 다시 백병전이 일어나는 상황.

“늑대를 노려!”

“안 맞잖아!”

“네가 못 맞추는 거겠지!”

그러나 그조차 쉽지는 않았다.

하얀 늑대와 하이오크들의 연계가 어찌나 절묘한지 학생들의 검과 창은 그들에게 영 닿지 않았다.

하얀 늑대의 기동성은 하이오크를 노리기 힘들게 만들었고, 그렇다고 늑대를 먼저 잡자니 그조차 여의치 않았다.

“크륵! 크륵!”

빗나간 창을 보며 하얀 늑대가 웃는다.

그것은 비웃음이었다. 고작 이 정도 실력으로 우리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냐며.

‘늑대들.’

전장을 살핀 시안의 눈이 번뜩였다.

단번에 문제가 보였다.

늑대들의 기동력이 핵심이다. 하이오크의 매서운 공격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콰직!

그의 흑검이 번뜩이며 눈앞에 있던 늑대의 머리통을 쪼갰다.

단번에 힘을 잃고 쓰러지는 늑대.

그 위에 탄 하이오크가 쿵! 땅에 착지하더니 시안을 향해 포효를 질렀다.

“크라아아! 크라…… 카?”

그러나 하이오크가 글레이브를 치켜들었을 때 시안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옆에 보이는 늑대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서걱!

다른 학생들과 싸우고 있던 늑대의 목이 떨어져 내린다.

“뭐, 뭐야!”

“카락!?”

놀라는 학생. 그리고 타고 있는 늑대가 무너져 내려 균형을 잃는 하이오크.

거기까지만 확인하고, 다시 시안은 다음 표적을 향해 뛰었다.

늑대만 처리하고 나면 놈들의 전투력은 절반 이하로 반감된다.

그 정도는 남은 학생들이 충분히 처치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서걱!

시안이 검을 가로로 그어 막 뛰어오르려는 하얀 늑대의 다리를 베었다.

어떤 녀석은 머리통이 찍혀 나갔고, 어떤 녀석은 ‘섬’에 의해 심장이 관통됐다.

“시안!?”

“고, 고마워!”

덕분에 학생들은 하이오크 하나만 상대하면 되었다.

“좋아! 잘하고 있다! 그대로만 해라!”

테일 교관이 마차와 말을 지키며 전장을 두루 살폈다.

마차에서 나와 곧바로 적절한 진형을 짜는 대응 능력. 전열과 후열의 밸런스 있는 역할 배분.

학생들 개개인의 실력과 센스.

만족스러웠다. 학기 초보다도 훨씬 강해진 아이들의 모습이.

그리고 그 중심에 그 녀석이 있었다.

‘시안.’

테일 교관은 분명 기억하고 있다. 녀석은 입학 때부터 1위였으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1위를 내준 적이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 중에 가장 실력이 발전한 것이 바로 그였다.

“허 참.”

그가 주목한 것은 그 부분이었다.

시안이 당장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뭐하고는 별 관심사가 아니다.

교관인 그는 그가 처음에 비해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많이 성장했는지만이 중요했다.

‘재능의 차이? 아니면 아그리드 가문에서 내려오는 특수한 수련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전자라면 어쩔 수 없지만, 후자라면 꼭 알고 싶었다.

교육자인 그로서는 학생들을 성장시킬 수련법이 무엇보다도 목마르다.

물론 진짜 있는지도 모르고, 설령 있다고 해도 알려줄 리는 없겠지만.

잠시 후.

“카락! 카락!”

단 셋밖에 남지 않은 하이오크.

한 녀석의 함성을 기점으로 놈들이 도주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늑대를 잃고 제 발로 뛰어가다가 학생들의 마법에 정통으로 꿰뚫려 엎어졌다.

남은 둘은 아직 살아 있는 늑대를 타곤 순식간에 도주했다. 단 몇 번의 도약으로 이미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거리가 벌어졌다.

도중에 퇴각 신호를 보낸 하이오크가 뒤를 돌아보았다.

눈가에 X자의 상흔이 있는, 그리고 하얀 늑대가 아닌 회색 늑대를 타고 있는 하이오크.

“…….”

“…….”

그 눈이 시안의 모습을 꿰뚫었다.

시안 역시 놈과 늑대의 모습을 뇌리에 똑똑히 박아 넣었다.

특히 저 회색빛 늑대는, 그가 단칼에 베지 못한 유일한 늑대였다.

“으랴아아아아!”

“이겼다아아!”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학생들이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바닥에는 하이오크와 하얀 늑대들의 사체가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테일 교관이 짝짝 박수를 쳤다.

“잘했다! 갑자기 습격을 당했는데도 잘 대응했어!”

아직 전투의 열기를 미처 가라앉히지 못한 채 학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이파이브를 하며 자신들의 활약에 기뻐했다.

테일 교관이 그걸 흐뭇하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이자크 그 녀석들도 무시 못 하겠지.”

그 말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확실히. 네가 자랑할 만한 학생들이군.”

테일 교관이 뒤를 돌아보았다.

일순간 느껴지는 존재감에 다른 학생들도, 그리고 시안도 그를 쳐다보았다.

‘이자크 블라텐.’

시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S급 용병길드 블라텐의 길드장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마스터의 경지에 있는 검사로 유명한 그 남자.

혈검(血劍) 이자크 블라텐이.

* * *

학생들은 이자크의 안내를 받아 무사히 주둔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설산의 초입. 아직 눈에 완전히 파묻히진 않고 살포시 내려앉아 있는 정도인 녹색의 대지.

그곳에 십수 개나 되는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천막이라곤 해도 어설프게 만든 것이 아니다.

웬만한 건축물 부럽지 않은, 어디 유목민족의 것이라 해도 믿을 만큼 제대로 된 천막이었다.

“와아…….”

“여기가 베이스캠프구나.”

상상 이상의 광경에 학생들이 감탄했다.

주둔지 곳곳에 있는 용병들이 그런 학생들을 보며 시시덕댔다.

말을 걸어오진 않았지만.

“이야~ 너 대단하더라. 이름이 뭐라고?”

“시안입니다만.”

“시안. 내 이름은 듀나스야. 반갑다.”

한 명, 이자크와 함께 안내를 해준 듀나스만 빼고.

쫑긋거리는 늑대 귀가 인상적인 그는 늑대 수인이었다.

강함을 동경하는 수인이어서 그런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시안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어때? 우리 주둔지. 괜찮지?”

“예. 잘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치? 학교 졸업하면 우리 쪽으로 와볼래?”

“사양하겠습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한번 생각해 봐.”

툭툭 건드리며 생각해 보라는 듀나스.

슬슬 귀찮음이 올라올 무렵 앞에서 걷던 이자크가 그에게 얘기했다.

“듀나스. 언제부터 너에게 인사권이 있었지?”

“아이 대장. 그야 대장이 허락해야 되긴 하지만 이 정도면 당연히 허락할 거 아닙니까? 어린 나이에 이런 실력자 흔치 않다구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들어가 있어.”

“쳇, 알겠습니다.”

그제야 듀나스가 멀어졌다.

시안이 눈짓으로 이자크에게 감사를 보냈다.

“흥.”

이자크는 퉁명스럽게 코를 울릴 뿐이었다.

‘역시 인상이 안 좋군.’

시안이 그럼 그렇지 하는 태도로 이자크의 행동을 받아들였다.

그는 잘 기억하고 있었다.

이자크가 한때 아그리드에 머물며 검을 사사했다는 사실을.

아마 그때 본래의 시안과도 면식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 두 천막에서 묵으면 된다. 하나는 남자용, 하나는 여자용. 크기가 부족하진 않을 거야.”

이자크가 안내한 천막은 상당히 커다란 축에 속했다. 거기에 학생들이 온다고 새로 세운 것이라 새것과 같이 깔끔했다.

학생들이 우르르 나뉘어 자리를 잡고 짐을 풀었다.

천막 안쪽은 간단히 요와 이불만 깔려 있는 정도였지만, 사실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테일 너도 학생들이랑 같이 자도록. 우리 쪽에 네 자리는 없어.”

“이거 섭하구만. 오랜만에 만난 옛 동료한테.”

“너 있을 때보다 인원도 많이 달라졌다. 아는 얼굴은 몇 명 없을 거야.”

“그래?”

테일 교관이 천막 입구를 젖히곤 학생들에게 얘기했다.

잠깐 여기 용병들을 만나고 올 테니 짐을 풀고 쉬고 있으라고.

“듀나스는 여전한 거 같고. 메리엄은?”

“그 녀석은 2년 전에 탈퇴했어. 발탄 영지에 정착했다.”

“오오. 그렇게 자기 가게를 갖고 싶다고 그러더니 성공했나 보군. 조셉이랑 요르한은 남아 있나?”

“그 녀석들은…….”

그러곤 이자크와 두런두런 근황 얘기를 나누며 용병단의 일원들을 보러 갔다.

한편, 시안은 천막 한쪽에 자리 잡고 흑검을 꺼내 닦기 시작했다.

열댓 명의 남학생들이 함께 있는 자리. 여기서 갑자기 연공을 할 수도 없고 쉬면서 할 일이야 이런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뭔가 눈치가 묘했다.

학생들이 힐끔거리며 자신을 곁눈질하는 것이 느껴졌다.

시선이야 언제나 받아오는 것이다만 평소의 거부감 가득한 시선과는 조금 달랐다.

“시, 시안. 아깐 고마웠어.”

“너 대단하더라. 이러니까 1위인 거구나.”

“그러게. 하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오는 그들을 보곤 시안이 잠시 눈을 깜빡거렸다.

“딱히 감사받을 일은 아니야. 그게 가장 효율적인 역할 배분이었으니까.”

“이, 이야, 멋있다 멋있어! 이게 1위의 품격이라는 건가?”

“대체 어떻게 수련하길래 그렇게 강한 거야? 남몰래 뭐라도 하는 거 아냐?”

“수업 내용을 잘 복기하고, 밤에도 안 자고 단련하면 돼.”

“으아~ 나왔다 나왔어. 공부 잘하는 놈들이 항상 하는 말!”

“하하하.”

입학한 후부터 언제나 1위였던 그였지만 그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그 소란의 중심에서 시안은, 딱히 학생들을 내쫓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평소와 똑같은 표정으로 검을 닦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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