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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49화 (49/188)

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49화

며칠 후.

평소 이런저런 공지사항이 게시되는 게시판에 포스터 하나가 올라왔다. 아기자기한 동물 그림이 그려진 포스터로, 비스트 길드에서 내건 것이었다.

<이벤트 공지 : 케일 언덕의 보물찾기! ~환영해요 신입생들~>

“보물찾기?”

“보물이라니 무슨 보물? 그 언덕에 뭐 금화라도 묻혀 있대?”

“그게 아니라 비스트 길드에서 하는 이벤트인가 본데.”

제목은 물론이고 포스터가 게시된 곳도 1학년 게시판뿐이다. 신입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란 뜻.

이벤트라니 대체 뭔가, 의아해하며 1학년 학생들이 포스터를 보았다.

개중에는 물론 시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흠…… 그러니까 숨겨둔 물건을 찾아오면 보상을 준다는 건가.’

룰은 어렵지 않았다.

에버웨일 인근에 있는 케일 언덕에 비스트 길드의 선배들이 구슬을 숨겨두었다.

안에 쪽지가 들어 있는 구슬.

그 쪽지엔 각종 선물이 적혀 있다고 한다.

포스터에 올라있는 예시로는 은식기 세트나 모 유명 장인의 명검 시리즈 중 하나라든가, 소메르의 황제에게도 진상되는 최고급의 찻잎이라든가.

영약이나 비싼 아티팩트 수준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값나가는 물건이 수십 개나 숨겨져 있다는 듯하다.

‘돈 좀 썼겠는데.’

아무리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귀족이나 부잣집이 많다지만 1~2개도 아니고 수십 개라니.

학생 수준에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액수다.

대충 들어보니 비스트 길드의 회비로 개최한다고…….

“흐음…… 재밌어 보이는데? 사냥 대회 같은 느낌으로 참가하면 되는 건가?”

“뭐 사냥을 하는 건 아니지만 말야.”

“그래도 토끼나 노루 하나 잡는 것보단 구슬 하나 찾는 게 돈은 더 되겠다.”

반응은 무척 호의적이었다.

안 그래도 매일같이 반복되는 이론수업과 고된 훈련에 지치기 시작하던 1학년들이었다.

아카데미의 일정은 말 그대로 새벽 아침부터 시작해서 밤늦게 취침시간이 되어야 끝날 정도니까.

그런 와중에 이런 숨 돌리기 이벤트가 나온 것이다.

그것도 무려.

“월요일 오후에 한대!”

“그 시간이면 실전 훈련 과목이잖아? 그거 안 가도 되는 거야!?”

“여기 참가하면 안 와도 된대. 참가 안 할 거면 수업 나오라는데.”

“당연히 무조건 참가하지! 실전 훈련이 일주일 중에 제일 빡센 수업인데!”

“그아아아! 나 월요일 오전도 공강이지롱!”

월요일 필수 수업인 실전 훈련을 대체한다는 내용.

이미 담당 교관은 물론 총장까지 결재가 끝난 결정사항이다.

그 하나로 학생들의 텐션은 최고조로 올라왔다.

게시판 앞에서 시끌벅적한 그들을 놔두고, 시안이 포스터 내용을 꼼꼼히 확인했다.

뭐 시간 선정도 그렇고 장소도 그렇고 피크닉 같은 느낌으로 참가하면…….

“응?”

그때 시안이 포스터 맨 아래에 적혀 있는 문장을 발견했다.

마치 숨겨라도 놓듯이 작게 쓰여 있는 문장.

그걸 보곤 그가 헛웃음을 지었다.

‘왜 하필 실전 훈련 과목을 대체하나 했더니.’

다른 수업들도 있고, 뭣하면 수업이 없는 주말 시간도 있는데 하필 실전 훈련 시간에 하는 이유가 있었다.

“간식거리라도 좀 사갈까?”

“그럼 좋지. 구슬 찾는 것도 찾는 건데 좀 쉬어보자. 누가 피크닉용 담요 좀 챙겨.”

“보물이고 뭐고 난 늘어지게 낮잠이다 자야겠다.”

왁자지껄한 학생들을 두고 그가 게시판에서 멀어졌다.

아직 아래쪽 글씨를 눈치챈 아이들은 많지 않은 모양이다.

그가 작게 한숨을 쉬며 기숙사로 향했다.

‘준비나 좀 해놓을까.’

다음 주 월요일을 위한 준비.

단 그가 준비할 것은 피크닉 담요가 아니라, 잘 갈린 검이었다.

* * *

주말이 지나고 대망의 보물찾기의 날이 밝았다.

참가를 희망한 학생은 150여 명.

충분히 많은 숫자였지만 처음 공지가 나왔을 때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숫자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포스터 맨 아래 적혀 있던 문구를 많은 이들이 확인했기 때문.

<구슬은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있을 수도 있답니다. 가령 우연히 마주친 친구의 품속에 있을지도^^*>

“이게 뭐예요!”

“환영회라더니 박 터지게 싸우라는 겁니까!”

“그래도 수업 가는 것보단 재밌어 보이니 왔지만…….”

그걸 보고도 참가한 학생들 150명. 그들이 모인 앞에서 주최자인 쿠르간 델피아가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그냥 찾아도 재미가 없지 않겠냐. 원래 이런 행사엔 가벼운 여흥이 있어야지.”

“가볍다 못해 다 실려 가겠어요!”

“총장님한테 허락받고 대규모 전투용 콜로세움 마법을 받아왔으니 걱정 마라.”

케일 언덕의 앞에서 쿠르간이 무슨 기판 같은 것을 조작했다.

그러자 언덕을 감싼 형태로 원기둥의 장벽이 생겨났다.

거의 성벽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커다란 벽이었다.

“이 안에선 기존의 콜로세움 마법처럼 너희들에게 보호막이 생긴다. 보호막이 파괴되면 탈락이니 주의하고. 참고로 장벽 바깥으로 나와도 탈락이야.”

“탈락도 있다구요?”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항의하는 1학년들을 보며 쿠르간이 고개를 저었다.

“탈락이 없으면 너희들만 더 힘들어져. 이 장벽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줄어들거든.”

“예?”

“줄어들어……?”

“저 언덕 위에 나무 보이나? 마지막엔 저 나무 한 그루만 간신히 감쌀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든다. 이런 마당에 탈락도 없으면 어땠겠냐.”

1학년들이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장벽이 그런 사양이라면 탈락은 무조건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후반부에는 진짜 지옥 같은 광경이 펼쳐질 테니까.

“대충 납득한 것 같군. 하긴 단순한 피크닉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참가한 너희들이니.”

얼추 자리가 정리되어 갔다.

“참고로 이 대규모 콜로세움 마법엔 원시(遠視) 기능도 있어서, 탈락자는 우리랑 같이 구경이나 하면 된다. 간식 가져온 놈들은 그때 먹어.”

확실히 들어보면 생각보다 힘든 이벤트는 아닌 듯싶었다.

정 피곤하면 보물이고 뭐고 포기하고 그냥 리타이어하면 되니까.

그렇게 모두가 납득해 가는 분위기가 퍼져 나갈 때.

학생 하나가 손을 들었다.

“질문이 있는데요.”

“뭐지?”

“상대를 탈락시키고 구슬을 뺏으라는 말은, 그럼 마지막에 남는 한 사람이 혼자 몇 개나 되는 구슬을 가져가게 되지 않나요?”

“그야 당연하지. 애초에 그럴 의도로 짠 판이니까.”

“네에!?”

“뭐에요 그럼! 힘내서 2등 3등 안에 들어도 1등을 못 하면 아무것도 없네요!?”

“그런 게 어딨어!”

그 질문 하나에, 모처럼 잦아들었던 1학년들의 웅성거림이 더 커져 나갔다.

그들을 보던 쿠르간이, 가만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원래 이 세계는 승자가 모든 것을 먹는 거다.”

평소처럼 호기가 넘치는 목소리였으나, 이 말만은 묘한 울림이 되어 모두의 가슴 속에 틀어박혔다.

일순간에 조용해진 1학년들을 보며 쿠르간이 크게 웃었다.

“꼬우면 이기면 되지! 으하하하!”

그 말을 시작으로, 비스트 길드 주최의 보물찾기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 * *

학생들은 제각기 다른 입구를 통해 케일 언덕에 들어왔다. 참고로 룰에 의해 1시간가량은 타인에 대한 공격이 금지되었다.

들어오자마자 당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함이겠지.

그동안 시안은 낙엽 아래에서 구슬 하나를 발견했다.

‘기란 상회의 브랜드 손수건인가.’

안에 적힌 쪽지에는 손수건이라고 적혀 있었다.

평범한 것은 아니고 명품인 물건이긴 했지만, 사실 별로 필요는 없다.

어차피 옷가지나 그런 물건들은 가문에서 지원이 들어온다. 품위 유지비란 명목으로.

‘팔아서 비상금으로나 써야겠군.’

다만 시안은 가문 몰래 따로 차고 있는 주머니가 있었다.

후작에게서 독립하고자 하는 그였으니 따로 돈을 모아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 얻는 것들은 그 주머니에 저금해놓는 것으로 하자.

물론 그걸 위해서는 1위를 차지해야 했지만.

‘흠.’

1시간이 지나자 반응이 왔다. 벽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벽을 따라 이동하고 있던 시안이었기에 움직이는 벽이 바로 보였다.

‘이렇게 저 언덕 위까지 줄어들 때까지가 제한 시간이로군.’

그때까지 구슬을 몇 개나 찾을 수 있을까. 다른 학생들과는 몇 번이나 싸울 수 있을까도 나름 기대되는 포인트였다.

그렇게 생각한 직후.

부스럭.

한쪽 수풀이 바스락거리더니, 누군가가 대놓고 걸어 나왔다.

조우한다면 분명 숨어 있거나 기습을 노리는 애와 조우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나 상대는 숨을 생각 따윈 없다는 듯, 재킷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이제야 찾았네.”

“란.”

란이었다.

시안을 본 그녀가 눈을 찌푸리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언제나처럼 지금도 몸속에서 마나가 날뛰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실은 오늘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했는데.”

“그래? 처음 듣는 얘기로군.”

“처음 하는 얘기니까.”

아빠에게 물어볼 얘기가 있다.

다만 그전에.

“한 판 뜨고 갈까 해서.”

한 번 더 시험해 보고 싶었다.

정말로 시안과 싸우고 난 후에 마나가 날뛰는 것이 좀 가라앉는지. 혹시 단순히 우연일 뿐이 아니었는지.

물론 그 사정을 시안에게 얘기하진 않았다.

자신의 약한 점을 시안에게 얘기하는 것 따위 그녀에겐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

“벌써 리벤지라니.”

“왜, 싫어?”

“그럴 리가.”

시안이 피식 웃으며 검을 뽑았다.

란의 사정을 모르는 그였지만 딱히 그녀의 사정이 어떻든 상관없었다.

덤벼오는 상대를 거절할 그가 아니었으니.

타탁!

란이 몇 번 땅을 밟지도 않고는 순식간에 초근거리로 접근했다.

시안이 한 발자국 물러나며 검을 휘둘러 그녀를 떨쳐내려 했다.

그러나 검을 가볍게 흘리곤 그녀는 더욱 파고들어 왔다.

‘역시 접근하는 쪽에 더 뛰어난가.’

호월족 특유의 맹수와 같은 본능 때문일까. 그녀는 스스로 몸을 빼는 것보단 달아나는 상대를 쫓는 것에 매우 강했다.

휙!

캉, 캉!

고요한 공터에서 말없이 두 사람이 수많은 검격을 나누었다. 둘 다 화려한 기술은 사용하지 않았다.

딱히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분위기가 그랬다.

암묵적인 룰이 정해진 것처럼, 둘은 그저 기본기로만 합을 나눌 뿐이었다.

‘역시. 전투 중에 힘이 빠지거나 하진 않아.’

시안의 검을 흘리며 란이 생각했다.

혹시나 했던 가설 중에 그런 것이 있었다. 시안이 가진 마나가 무언가 특수한 것이라서 수인의 마나를 잠재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식의 특수한 마나를 가진 이는 흔하진 않지만 그래도 좀 있었다.

하지만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이 전투에서도 자신의 폭발력이 평소보다 줄어들어야 정상이다.

콰앙!

그러나 자신의 힘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자신의 주먹에 살짝 뒤로 날아간 시안을 란이 다시 쫓았다.

쿵!

시안의 눈이 살짝 커졌다.

란의 스피드를 상정해 그녀가 접근하는 타이밍을 재고 있었는데, 그보다 란의 도착이 반 호흡 빨랐다.

모처럼의 허를 찔러 란이 발차기를 날렸다.

검을 휘두르기엔 늦다.

시안이 몸을 틀며 발을 들어 올렸다.

쿠웅!

허공에서 둘의 다리가 부딪혔다.

란과 시안 모두 눈을 찌푸렸다.

란은, 시안이 검이 아닌 발차기로 자신의 공격을 막은 것 때문에.

시안은, 란의 공격에 손해를 봤다는 것 때문에.

“흡!”

그러나 비등했던 것은 여기까지였다.

다시 체제를 갖춘 시안의 공세는 더 매서워졌고, 란은 다신 방금같이 허를 찌를 수 없었다.

승패는 의외로 빠르게 갈렸다.

“졌다.”

배리어가 모두 깎인 란이 자세를 풀었다.

전투를 마친 그녀는 평소처럼 찡그리고 있지 않았다.

진 것 자체는 분했지만,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전투 전보다 훨씬 편했다.

날뛰는 마나가 잠잠해졌다. 몸이 살짝 삐걱거리던 것도 없어졌고, 머리를 찌르는 듯한 두통도 많이 줄었다.

“쳇.”

편안하다. 편안하긴 한데, 그게 오히려 불쾌했다.

자신을 편안하게 만든 게 시안이라는 사실 때문에.

“나 간다! 한동안 학교에 없을 거니까 그렇게 알고!”

“그래.”

그래서 괜히 더 거칠게 씩씩거리며 그녀가 장벽 밖으로 떠나갔다.

그녀의 복잡한 심경은 알지도 못한 채, 시안은 그저 좋기만 했다.

란이 이렇게 이른 단계에서 탈락된다면 변수가 많이 줄어들게 된다.

“이 정도면 1등도 할 만하군.”

오늘 일로 비상금을 얼마나 끌어모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그가 숲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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