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46화
지하 하수도의 일은 한동안 큰 화제가 되었다.
하수도에 마수들이 있는 것도 간간이 용병 길드 등지에서 그것들의 토벌이 행해지던 것도 원래 알고 있던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마수들의 사체는 그 연장선으로 넘기기에는 지나치게 많았다.
만약 그것이 일시에 도시로 올라왔다면 정말로 큰 혼란이 일었을 정도로.
그만한 대량의 마수가 발아래서 웅크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또 소름 끼쳐 했다.
자연히 그것을 미연에 해결한 이들에게 시선이 쏠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덕분에 아카데미에서도 한참은 그 화제만 돌아다녔다.
―알렌이 표창장을? 진짜로?
―꺄아! 역시 알렌이야!
―그 녀석 언제 한 번 일낼 줄 알았다니까, 하하.
―사람이 진국이야 진국. 아니, 진짜로.
알렌이 표창장을 받았다는 사실에 남녀 가리지 않고 호의 섞인 소문이 퍼져 나갔다.
여자들 쪽에서 반응이 더 격렬하긴 했으나 남자들에게도 알렌의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서글서글하고 친해지기 쉬운, 사람 좋은 녀석이라는 인상.
반면에.
―어…… 시안 아그리드도 받았다고?
―뭐, 뭐 어쩌다 보면 그런 일도 있겠지.
―운도 좋네. 알렌한테 꼽사리 낀 거 아니냐?
―아니, 뭐…… 1위니까 꼽사리까지는 아니겠지. 그래도 알렌이 분명 더 활약했을걸?
똑같이 표창장을 받은 시안에 대해선 좋은 얘기 따윈 전혀 없었다.
그로서는, 혹시라도 이번 일을 계기로 망나니 소문을 가라앉힐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지만 그럴 일은 없던 모양이다.
다소 아쉽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진짜 소문을 없애려면 자신이 나서서 여기저기 선행도 하고 다니고 그래야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할 시간은 없으니.
“야, 신경 쓰지 마라. 다들 널 모르니까 그냥 하는 소리야.”
콰앙!
저 멀리 보이는 표적에 불덩어리를 쏴 날리며 이안 벨체스터가 그리 얘기했다.
일전에 보았던 아케인 플레어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도도 올랐다.
무엇보다 위력이 거의 1.5배는 올라간 것 같았다.
이 짧은 사이에 또 무슨 깨달음이라도 있었던 걸까?
“신경?”
슉―
그 옆에서 개인 수련을 하며 시안이 녀석의 말을 받았다.
이안이 힐긋 그를 보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네가 저런 소리에 휘둘릴 놈은 아니지.”
“정신력이 강하단 소리군.”
“무신경하단 소린데.”
“…….”
흥, 콧방귀를 끼워주며 시안이 개인 수련에 집중했다.
탁!
덧붙여 그때 정령을 붙여놓았던 융 교관과는 알렌이 담판을 지으러 갔다.
그리고 결과는 시안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알렌과 융 교관이 둘 다 에버웨일에서 사라진 것이다.
한쪽은 무단결석, 한쪽은 수업도 내팽개치고 대책 없는 장기휴가 제출.
정령술 수업은 다른 반요정 교수가 임시로 맡게 되었다.
―인간 정령사랑 교관님이랑 동시에 사라지다니.
―이거 완전 그거 아냐?
―그치? 그거 맞지?
―맞아맞아. 틀림없다니깐?
―사랑의 도피!
―꺄악!
일부 학생들 사이에선 ―주로 정령술 수업을 듣는― 벌써부터 둘 사이에 정분이 났네 뭘 했네 말이 많았다.
저런 화제에 관심이 많은 것은 인간이든 반요정이든 마찬가지인가 보다.
다만 시안만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융 교관님이랑 같이 크라하 영지에 갔다 올게.>
알렌이 사라지기 전에 남긴 짤막한 쪽지.
둘은 사랑의 도피 같은 것이 아니라 정보를 찾으러 간 것이다.
다만 그 사실을 앎에도 시안은 둘의 관계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없었다.
흑마법사에 대한 얘기를 할 수도 없거니와 애초에 그의 말을 누가 믿어주겠는가.
물증 같은 것을 댈 수도 없다. 저 쪽지를 공개하면 오히려 사랑의 도피설이 더 신빙성을 갖겠지.
탁!
“근데 넌 뭐 하냐?”
“비도 던지는 연습.”
먼 곳의 표적을 맞히기 위한 수련장.
이안의 옆에서 그는 손바닥만 한 작은 비도를 날리며 감각을 단련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서 튕기듯 날아간 비도가 저 앞에 있는 표적에 정확히 꽂힌다.
“……꽤 하네.”
“어느 정도는.”
검술 외에도 그는 수많은 무술 역시 염노에게 훈련받았다.
비도술 역시 마찬가지.
어느 정도 구색만 갖춘 후 나머지는 검 수련에 올인했기에 달인급으로 던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중거리 정도라면 거의 명중시킬 자신은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보조의 의미다.
그냥 실력이 녹슬지 않게 감각을 갈아놓는 간단한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야, 시안.”
“왜.”
“이번 토요일에 시간 있냐. 한 번 더 뜨자.”
그날 이후로 한 번도 도전하지 않았던 이안이 그리 얘기했다.
안 그래도 뭔가 성과가 있던 것처럼 보였는데, 그 덕에 자신감이 다시 차오른 모양이다.
다만 그때는 안 된다.
시안이 손안에서 비도를 한 번 휙 돌리곤 표적을 향해 던졌다.
“그날은 안 돼. 약속이 있어서.”
탁!
날아간 비도가 표적의 정중앙에 정확히 내리꽂혔다.
* * *
“으음…….”
에르제가 방 안에서 거울을 보며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짙은 흑발과 대비되는 새하얀 원피스. 허리에는 허리끈을 매어 길게 늘어뜨렸고 살짝 굽이 들어 있는 구두를 신었다.
어차피 긴 치마에 가려져 신발 같은 것은 보이지 않겠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결코 신경을 덜 쓰거나 하진 않았다.
“이 정도면 되겠지.”
잔뜩 긴장한 표정.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일전에 했던 시안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가는 날.
친구와 외출조차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그녀다. 그런데 그냥 친구도 아니고 남자 사람 친구라니!
“왔군.”
“으, 으응. 기다렸어?”
아카데미 정문에서 시안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르제가 살짝 시안을 올려다보았다.
잔뜩 긴장한 자신과 달리 그는 평상시 그대로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하나도 다른 점이 없었다.
잔뜩 긴장하여 굳어 있는 에르제.
그런 그녀와 함께 시안이 적당히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몸은 괜찮아?”
“멀쩡해.”
식당에 도착해 주문까지 마친 두 사람.
주로 화제로 나온 것은 지하 하수도의 일과 표창장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게 소란 피울 만한 일은 아니야.”
“그래?”
시안은 그 일에 대해 자세한 얘기까지는 해주지 않았다.
그냥 데릭 교수의 탓에 마물들이 폭주했고 그걸 막았다는 정도밖에는.
흑마법사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굳이 그녀에게 해줄 이야기도 아니었으니.
그렇게 잡담을 나누며 간단히 식사를 마치자.
“돌아가자.”
“어? 벌써?”
레스토랑을 나오며 시안이 얘기했다.
그의 말에 에르제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나와서 한 일이라곤 정말 점심을 먹은 게 전부다. 이 귀중한 기회를 밥만 먹고 들어가자니 아쉽지 않은가.
“수련할 시간이야.”
“그, 그래?”
철벽같은 시안의 태도에 에르제의 어깨가 축 처졌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 앞에서 더 놀다 가자는 얘기를 꺼낼 만한 용기가 있는 그녀가 아니었다.
그래도.
“저,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차라도 한잔 어때? 맛있게 잘 타는 데 알고 있는데!”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리 얘기했다.
시안이 잠깐 고개를 갸웃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지.”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 근처 지리는 잘 알고 있다. 평소 가보고 싶었던 분위기 좋아 보이는 찻집이 마침 근처에 있었다.
“가자!”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시안을 이끌고 그녀가 길을 안내했다.
북적이는 인파 속을 누군가와 함께 걸어가자니 신기한 기분이었다.
평소엔 밖에 나와도 항상 혼자였는데.
혼자.
그렇게 생각한 직후.
‘……어?’
투명한 그릇 너머로 세상을 보는 것처럼 풍경이 멀어졌고, 발밑에선 스멀스멀한 한기가 올라왔다.
태양이 바로 머리 위에 쨍쨍히 비치고 있는데도 몸이 서서히 얼어붙었다.
‘이건…….’
세상이 멀어지는 듯한 느낌.
잘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 자신이 자연 각성한 마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지 얼마 안 됐던 시기.
그때도 이런 적이 있었다.
함께 축제에 갔던 고아원의 모두들. 시스터도 언니 오빠들도, 동생들도 모두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렸던 그 날.
축제에서 홀로 미아가 된 그녀가 헤매고 헤맨 끝에 돌아와 보니, 다른 모두는 이미 고아원에 돌아와 깔깔거리며 놀고 있던 중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잔뜩 까지고 먼지 묻은 그녀를 보더니 얘기했다.
―누구?
정말로, 처음 보는 사람을 향하는 것 같던 그 눈빛.
그녀는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어버렸다.
축제 때부터의 설움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뒤늦게 언니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이 떠올랐다는 듯 다가와 주었지만 그녀는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때의 느낌과 지금의 이 느낌이 완전히 일치했다.
‘아.’
악몽이라도 꾸는 듯 움직이지 않는 몸.
입가에 쓴맛이 올라왔다.
모처럼 처음으로 친구와 외출하는 날이었는데.
처음으로 외출복에 신경도 써보고, 조금이었지만 비싼 향유도 발라보고.
돌아가는 게 아쉬워서 어디 들렀다 가자고 얘기도 해보고.
‘벌써 노을이 지고 있네…….’
그러나 완전히 망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던 때였다. 바로 방금까지만 해도 점심이었는데.
대체 몇 시간이나 지난 것인지.
어떻게 벤치에는 앉은 모양이다만, 그곳엔 그녀 혼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서러움이 울컥 올라왔다.
“하아…….”
그러나 참았다.
자신도 이젠 어른이다. 이런 거리에서 그때처럼 목 놓아 울 수는 없지.
그녀가 애써 한숨을 토해내며 가슴 쏙에 쌓이는 응어리를 흩어내려 했다.
……잘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처음 겪는 일도 아니잖아.’
그럴 수도 있지.
가족같이 지내던 이들도 자신을 잊고 떠나갔을 정돈데 한 명한테 잊힌 정도로 우울해하지 말자.
띠링-
그때,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그녀가 몸을 움찔거렸다.
쳐다보니 옆쪽에 가게가 보였다. 시안과 함께 가려고 했던 찻집 웨일문.
그리고 그 가게에서 시안이 나왔다.
그녀의 눈이 점차 커졌다.
“시안…….”
“안 그래도 일어날 것 같더군. 여기 차를 마시고 싶다고 했었지?”
그가 작은 통 하나를 건네주었다.
찻집 웨일문에서 블렌딩한 찻잎이 들어 있는 통이었다.
통 너머로도 느껴지는 찻잎의 알싸한 향이 코끝을 찡하게 울렸다.
“안 갔었어……?”
“-? 당연하지.”
시안. 그는 잊지 않았다.
그럴뿐더러 수 시간이 넘는 이때까지 계속 옆을 지켜주었다. 수련할 시간이라고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그랬으면서도.
그녀가 고개를 팍 숙였다.
이상했다.
잊혔다고 생각했을 땐 참을 수 있던 감정이 잊히지 않은 지금은 참기가 힘들었다.
손에 든 통을 만지작거리며 그녀가 얘기했다.
“미안해. 나 때문에 시간만 버리고…….”
그런데.
“미안할 거 없다. 깨달음의 순간은 언제나 갑작스러운 법이니.”
들려오는 시안의 말에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뭐? 깨달음?
“마나가 요동치던 게 옆에서도 보이던데. 어떻게 안정된 걸 보니까 잘 습득한 모양이지.”
“그, 그런 거야?”
“그런 게 아니면 뭔데?”
네가 더 잘 알 거면서 왜 나한테 묻느냐는 듯한 표정의 시안.
그런 그를 보며 에르제의 얼굴에 당혹감이 가득 피어올랐다.
깨달음? 그런 거였어?
그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스승에게 연공법을 배우거나 그런 식으로 마나를 익힌 것이 아니다.
어느 날 자연스럽게 깨닫고 습득해 있던 자연 각성자였다.
특이하긴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드물지도 않은.
때문에 그녀는 깨달음이니 뭐니 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까.
“그랬구나…….”
시안이 그녀를 벤치에 앉히고 기다린 이유였다.
평범하게 쓰러진 것이었다면 의무실로 갔겠지 이러고 있었겠는가.
시안이 멍해 있는 에르제에게 얘기했다.
“일어났으면 돌아가지.”
“……응.”
머리가 복잡했다.
깨달음이라니. 그럼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그동안은 무작정 싫어하기만 했다. 어렸을 때의 그 경험은 트라우마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분명 그랬는데…….
“…….”
돌아가는 길,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시안의 옷자락을 잡은 채 묵묵히 따라올 뿐.
시안도 그런 그녀를 배려하는지 굳이 말을 걸 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던 일순간.
검은 그림자가 그녀의 눈동자에 일렁이다 사라진 것을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