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41화
습하고 역한 하수도의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하수도는 그 구조상 마물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장소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오염수들이 고이고 고이는 곳.
폐수들에는 미약하게나마 마나가 깃들 수밖에 없다.
마석의 정화 작업이나 아티팩트 작성에 사용되는 용수라든가, 관도의 청소 작업에도 적당한 마법과 아티팩트가 활용되는 시대다.
그런 찌꺼기 같은 마나가 깃든 물이 모이는 곳이 지하의 하수도고, 그곳에 있는 쥐나 벌레 등에 영향을 미쳐 마물을 만들어내는 것.
아무리 마법이 발달해도 집의 벌레를 모두 퇴치하긴 어렵듯이 하수도 역시 완전히 청소하는 것은 무리다.
가능하다 하더라도 상당한 인력과 비용이 들 테지.
‘이쪽인가.’
시안이 알렌이 남긴 흔적을 추적하며 안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한동안 들어가다 보니.
“찌익.”
마물을 발견했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수십에 달하는 마물이 공처럼 뭉쳐 서로 문대고 있었다.
찍찍거리는 소리와 쩝쩝거리는 소리.
아마도 알렌이 만들어놓은 동족의 사체를 파먹고 있는 것이리라.
‘다행히 길은 맞는 모양이군.’
마물의 사체가 보이는 것을 보면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것에 안도하며 시안이 검을 빼 들었다.
손목의 각인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한 자루 흑검이 되었다.
그러자 쩝쩝거리는 소리가 멎었다.
마물들이 일제히, 동작을 맞추기라도 한 듯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어둑한 지하에서 흉흉하게 빛나는 수십 쌍의 눈동자.
일반인이었다면 그것만으로 오줌을 지릴 광경이었으나, 그에겐 아무런 감흥도 일으키지 못했다.
[ 검령 : 창해(滄海) ]
흑검에서 검은 기운이 풀려 나온다.
그 기운은 이윽고 한줄기 파도로 화하며 얇고 유려한 모양의 검으로 변해갔다.
베리엄의 힘을 빼앗아 라비가 만들어낸 한 자루의 검.
창해.
“키긱!”
“취익!”
검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반응했는지 마물들이 일거에 달려들었다.
시궁창 쥐. 쥐새끼와 닮았으나 그 덩치는 대형견에 버금가는 징그러운 마물.
그런 놈들이 수십이 달려들었다. 땅을 박차고, 점프를 해서, 어떤 녀석은 기가 막히게도 벽을 한 번 차고 도약해 오는 놈도 있었다.
쿵.
시안이 한 걸음 내디뎠다.
기둥처럼 단단히 대지를 짚은 한 걸음. 그 한 걸음을 중심으로, 그가 창해를 휘둘렀다.
촤촤촤촤촤―!
그 순간 검이 여러 개의 조각으로 분리되었다. 연결된 물줄기가 검편들을 붙잡아주며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사복검.
창해는 일반적인 방법으론 구현할 수 없는 형태의 검이었다.
물줄기와 함께 푸르고 투명한 검편들이 사방을 점하며 뻗어 나간다.
채찍처럼 뻗어 나간 그것들이 달려드는 시궁창 쥐를 도륙해 나갔다.
촤촤촤촤―!
단 두 번.
수십의 마물을 처치하는 데 그가 검을 휘두른 횟수였다.
“찌익!”
용케 창해의 물줄기를 피했는지 딱 한 마리 살아 있는 시궁창 쥐가 시안게 달려들었다.
검편들이 당겨지며 창해가 처음의 온전한 검의 형태를 이루었다.
시안이 달려드는 시궁창 쥐를 향해 평범하게 검을 휘둘렀다.
서걱!
‘……역시 이렇겐 약하군.’
쥐 한 마리 처치하는 것에 문제는 없었지만, 직접 부딪쳐 보면 역시 확 체감이 온다.
애초에 분리되는 것을 상정한 채찍과 같은 검이다.
평범한 검처럼 사용하기엔 검신의 강도가 터무니없이 물렀다.
생긴 것도 푸르고 투명한 유리 공예품같이 생긴 녀석이라 실수하면 깨져버릴 것만 같은 느낌.
‘약한 놈들 상대론 유용해 보이지만 강자들에겐 견제 정도로만 써야 하나.’
채찍처럼 늘어나는 사복검은 일반적인 검보다 범위도 사정거리도 길다.
하지만 그만큼 근거리에선 훨씬 약하다.
단적으로 말해 조악한 철검을 들어도 이것보단 낫겠다고 말할 수준이다.
‘그래도 당장은 쓸 만하겠어.’
흑마법사를 상대할 땐 어떨지 모르지만 시궁창 쥐들을 사냥하는 데에는 쓸 만할 것이다.
하급 마물들을 상대론 흑검보단 창해가 낫겠지.
그대로 푸른 검을 든 채 그가 안으로 들어갔다.
“취익!”
“찍, 찍!”
가는 도중 살아 있는 시궁창 쥐들이 상당수 보였다.
아마 알렌이 미처 다 틀어막지 못한 마물들이 새어 나온 것일 터다.
지하 하수도는 도시와 비슷한 만큼이나 크고 넓으며 그 내부는 미로와도 같으니.
알렌 혼자서 모두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창해를 휘둘러 녀석들을 순식간에 정리해 가며 시안이 안쪽으로 뛰었다.
이미 백 이상의 마물을 처치했음에도 그의 검에서 떨어지는 건 피가 아닌 물방울뿐.
서걱!
그렇게 녀석들을 처치하며 들어가다 보니 풍경이 점차 변해갔다.
기이한 무늬와 낡은 벽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것은 더욱더 많아졌다.
‘에버웨일은 유적 위에 세워진 도시라더니.’
정비해놓은 하수도에서 멀어져 고대 유적지대로 들어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다만 감상할 틈은 없다. 유적의 모습은 무시하고 시안이 계속해서 알렌을 쫓았다.
그리고 마침내.
―허억…… 허억…….
저 아래쪽에, 알렌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물에게 둘러싸여 마구 검을 내지르고 있는 모습.
놈을 습격하고 있는 마물은 시안이 지금껏 처치했던 시궁창 쥐뿐만이 아니었다.
고릴라와 비슷한 마수도 있었고 늑대를 닮은 놈도 있었다. 어느 것도 쥐새끼들보다는 훨씬 강해 보인다.
그런 녀석들에게 빽빽이 둘러싸여 알렌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뭐지?’
의아했다. 저 마물들은 명백히 하수도에 있을 만한 것들이 아니다.
보통 하수도에서 나타나는 마물은 쥐나 벌레, 혹은 슬라임 따위였으니까.
‘흑마법사의 짓인가.’
자연적인 사태가 아니라면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단 뜻이겠지.
시궁창 쥐나 슬라임 따위보다 훨씬 더 강한 마물들을 상대하면서도 알렌은 분전하고 있었다.
녀석의 앞에 서 있는 마물들은 모두 그의 검에 썰려 나갔고, 그의 뒤를 덮치는 마물들은 알티마의 청염에 불타올랐다.
공방의 배분이 잘 짜여 있는 밸런스 있는 모습.
그러나 마물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후우.”
녀석의 위치와 마물이 무리 지어 있는 모양새. 그리고 인근의 지형을 한번 훑은 후 시안이 검을 들었다.
[ 상천검(霜天劍) - 섬(閃) ]
사용할 검은.
[ 창해(蒼海) ]
검이 분리되며 물줄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그것은 곧 시안의 주위를 회전하기 시작한다.
오러가 일으키는 돌풍과 물줄기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어우러졌다. 처음부터 하나의 초식이었던 것처럼.
이윽고 그것이 나선을 그리며 치솟아 오르며.
콰앙!
시안의 몸이 저 아래로 쏘아졌다.
* * *
“캬아아악―!”
“크허엉!!”
흉측한 마수들이 쉴 틈도 없이 달려들었다. 그 한가운데서 알렌이 푸른 불꽃에 휩싸인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서걱!
“캬아악!”
“큭!”
아무리 처치해도 끝이 없다.
이럴 시간이 없는데. 당장 그 남자를 쫓아야 하는데.
‘데릭 교수!’
붉은 눈의 마물을 쫓던 알렌이 이 하수도 아래에서 발견했던 건, 데릭 교수의 비밀 연구실이었다.
남몰래 ‘혈석’의 힘을 연구하기 위해 도시의 지하에 만들어 놓은 장소.
알렌의 눈이 충혈되기 시작했다.
검에 둘린 불길이 한층 더 거세게 타오르고.
[ 정화구역, 파(波) ]
쿠웅―!
휘둘러진 검에서 푸른 불꽃이 쏘아졌다. 부채꼴의 영역을 그리며 쏟아진 불꽃이 발을 딛는 마수를 자비 없이 태워갔다.
그 일순간, 아주 잠시 동안 마수들 사이에 틈이 생겼다.
그러나.
‘큭.’
무심코 내디딘 한 발자국에서 알렌은 더 나아가지 못했다.
‘내가 돌파에 성공한다면.’
데릭 교수를 쫓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이곳은 어떻게 되지?
마수를 막는 이가 아무도 없다. 자유로이 풀려난 놈들이 어디로 향할지는 뻔한 일이다.
도시로 튀어 나가겠지.
꽈악.
잠식되는 분노 속에서도 아직 불을 꺼뜨리지 않은 그의 이성.
그게 그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 한순간의 망설임은 애써 만든 마물들의 틈새를 눈 깜짝할 사이에 메워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꾸득꾸득 밀려드는 마물들이 그 자리를 메우기까지 조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결국 전투 양상은 제자리로.
캉!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전투가 이어졌다.
단 한 순간도 실수할 수 없는 물량전.
알렌이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막고 막아도 놈들은 끝이 없어 보였고 자신은 조금씩 밀리고 있었으니.
―화륵!
‘안 돼.’
알티마가 그에게 도망치라 종용해 왔다. 그러나 알렌은 그것을 단칼에 거절했다.
여기서 뺄 수는 없다. 모처럼 얻은 단서를, 흑마법사에 대한 단서를 이대로 포기하란 말인가?
만약 여기서 자신이 도망친다면 그사이 데릭 교수는 도시를 뜨고도 남을 것이다.
‘지금 잡아야 해!’
지금 말고는 기회가 없다.
그런 일념으로 그가 계속 검을 휘두르고 불을 질렀다.
그러나 마물들은 꾸역꾸역 늘어나고 있었다.
분명 계속해서 숫자를 줄이고 있음에도 오히려 처음보다도 더 많아졌다.
손발이 어지러워진다.
냉철했던 머리도 점점 헝클어져 왔다.
도시의 안전이고 뭐고 무시하고 돌파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후일을 기약하며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런 어중간한 상태에서 위기만이 찾아오고 있는 것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내가 검을 휘두르는 건지 검이 나를 휘두르는 건지 구분도 되지 않기 시작할 무렵.
그가 나타났다.
―콰아아아앙!
떨어지는 무언가에 알렌의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검은 인영이 떨어지며 그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물보라가 퍼져 나간다.
반구형으로 퍼져나간 물줄기가 닿는 마수들의 팔을, 다리를, 그리고 목을 잘라내며 순식간에 붉은 파도로 물들어갔다.
그 선혈의 중심에서 검을 쓸어내는 사내.
“……시안?”
시안 아그리드.
네가 왜 여기 있어?
* * *
“너 대체 왜…….”
알렌이 시안을 보며 놀라고 있었다. 왜 여기에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고 있겠지.
그가 알렌을 향해 얘기했다.
“뒤.”
“뭐?”
창해를 휘두른다. 뻗어 나간 물줄기가 막 알렌을 덮치려던 마수의 목을 갈랐다.
쿵!
바닥에 떨어지는 마수의 몸을 보곤 그제야 알렌이 제정신을 차렸다.
“너 대체 왜 여기에……!”
“하수구에서 쥐 한 마리가 새어 나오더군. 잡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어.”
“이 밤에 안 자고 뭐 하고 있었는데?”
“내가 밤에 연공을 하는 건 알고 있을 텐데.”
“아…….”
알렌이 납득한 표정을 지어간다.
그러나 시안은 아직 납득하지 못한 채였다.
“그래서, 이건 무슨 소란이지?”
“이, 이건…….”
망설이는 녀석의 모습.
그 모습에 시안이 빠르게 얘기했다.
“이 상황에 설명을 모두 끝낼 만한 사정인가?”
“어? 으, 으응. 짧진 않은데.”
“그럼 설명은 나중에 하는 걸로 하고, 해야 할 일이나 말해봐.”
녀석이 어떻게 흑마법사를 알고 있는가, 왜 여기서 놈을 쫓고 있는 것인가. 궁금하긴 했지만 이 자리에서 할 얘기는 아니다.
그리 얘기하자 알렌이 빠르게 머리를 굴리곤 얘기했다.
“안쪽에 이 사달을 일으킨 범인이 있어. 근데 이곳의 마물들도 좌시할 수가 없다. 놔뒀다간 도시에 큰 소동이 벌어질 테니까.”
“둘로 나누자 이거군.”
“응.”
“범인을 홀로 상대할 자신은 있어?”
“자신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렌이 고개를 들어 시안을 보았다.
그 눈빛이, 심해와 같이 가라앉아 있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야.”
“…….”
평소 알렌의 표정과 성향에선 상상할 수 없을 어두운 감정.
부(不)의 격정이 그곳에 가득 담겨 있었다.
녀석 자신은 그것에 아무런 이상함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맡기지.”
“고마워.”
알렌이 마수를 쳐내며 쏜살같이 지하로 내려갔다.
중간에 부딪히는 마수들이 모두 녀석을 노렸으나 모두 시체로 변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남은 것은 시안 혼자.
‘흑마법사.’
자신 역시 흑마법사를 쫓고 싶다. 애초에 그 기운을 감지하고 이곳까지 도착한 것이니까.
하지만 여기선 이게 맞겠지.
괜찮다. 가능한 한 빠르게 이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뒤쫓으면 된다.
‘……빨리 정리하고 가볼까.’
시안이 우글거리는 마수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와중 덩치가 작은 ―다른 마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궁창 쥐가 구석의 구멍을 통해 그를 무시하고 지나치려 하고 있었다.
그걸.
촤악!
창해를 휘둘러 끊어냈다.
“……이 뒤론 못 지나간다.”
시안이 검을 뒤로 당겼다.
눈앞에 우글거리는 수많은 마물들.
검을 든 그의 손이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검을 가로 그었다.
[ 창해(蒼海) ]
[ 상천검(霜天劍) - 참(斬) ]
그 궤적을 따라 창해의 물줄기가 하나의 선을 그리며.
촤촤촤촤촤―!
마물들의 몸통이 분리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