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26화
정화교단.
하늘의 신이라는 천신(天神)을 믿는 종교로 소메르 제국의 교단이다.
속세의 신분과 권력과 떨어져 있으며, 그러나 일반 시민은 물론 귀족들 중에서도 꽤 많은 신도를 보유하고 있는 규모가 상당한 교단이었다.
한때 최전성기였을 때는 소메르의 국교(國敎)로 제정하자는 논의가 나왔을 정도.
지금은 그때보다는 조금 쇠락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가장 큰 위세를 가지고 있는 종교였다.
샤밀라 드레이크.
그곳의 성녀 후보라면 어지간한 귀족들보다도 더욱 대우를 받는 자리다.
다 떠나서 하이프리스트라는 것 자체로 존경받을 만했다.
신성마법의 대가라는 의미가 아닌가.
“구울을 퇴치해 마석을 가져오면 보수를 준다고 들었습니다만.”
시안의 물음에 샤밀라가 대답했다. 무척이나 커다란 목소리로.
“맞아요! 많이 가져오시면 보수도 많이 드려요! 그런데 조심하셔야 돼요. 구울은 구울인데 다른 데서 만났던 놈들보다 훨씬 세더라구요!”
훨씬 강하다?
그런 정보는 좋았으나, 사실 커다란 쓸모는 없었다.
왜냐면 시안도 구울을 상대해 보는 것은 처음이니까.
다른 구울보다 훨씬 강하다고 해도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상대법은 간단해요! 무슨 수를 써서든 가슴팍을 열고 그 안에 보이는 마석에 성수를 묻혀 주세요! 그럼 마석이 정화되면서 구울도 잿더미가 될 거예요!”
그녀가 성수를 건넸다. 검지손가락만 한 작은 병에 들어 있는 성수가 20병.
한 사람 앞에 5병씩.
“이게 그 성수야?”
“드, 들어본 적은 있는데 보는 건 처음이야…….”
“이것만 뿌리면 구울들이 다 녹아버린단 말이지?”
일행들이 신기한 눈으로 병을 들여다보았다.
그걸 보며 샤밀라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당부했다.
“구울의 가슴을 뚫고 안쪽의 마석에 성수를 적셔야 해요. 뿌리는 것만으로 다 녹이는 건 성지에서 솟아나는 성수 정도는 되어야 할 테니까.”
그녀의 말에 이안이 살짝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 뒤로 구울에 대해 간략한 설명이 이어졌다.
시안이 집중해서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마물의 정보는 아무리 많아도 모자랐으니.
“일단은 이 정돈데요! 혹시 더 질문이 있으시면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이래 봬도 12명의 사부님들한테 많이 배운 몸이거든요!”
“……사부님이 많군요.”
“첫 번째 사부가 그러셨어요! 어린 아기라 하여도 배울 점이 있다면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사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뜻깊은 말이다.
……그건 그렇고, 목소리가 왜 이렇게 큰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명랑한 인상이라 좋았으나 이 큰 목소리로 설명을 듣다 보니 귀가 아파왔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조심하세요~!”
시안과 일행들이 그녀에게 멀어져 유적 부지를 향해 걸었다.
“굉장히…… 활기가 넘치는 분이시네.”
이안이 슬쩍 뒤를 한번 돌아보고는 시안에게 작게 얘기했다.
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래 들어 이보다 공감이 가는 말이 없었다.
“바로 들어가 볼까 하는데. 혹시 휴식이 필요한 사람 있어?”
유적 부지를 감싼 결계의 앞.
그 앞에 서서 시안이 일행을 보았다.
그러나 쉬겠다고 하는 이들은 없었다.
기껏해야 반나절 마차를 탄 정도다. 그걸로 피곤해할 이는 에버웨일엔 없었다.
‘웅.’
그러던 중, 갑자기 라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의 활기차고 복실거리는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낮고 불안해하는 듯한 목소리.
시안의 몸에 깃들어 있는 탓에, 그 감정이 고스란히 시안에게도 전해져 왔다.
그가 눈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갑작스러운 태도에 일행들이 물어왔다.
잠시간, 대답 없이 뒤쪽을 응시하던 시안이 눈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뭐지? 라비의 이 이상한 반응은?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던 탓에 수상한 점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웅!’
라비의 목소리도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나?
작은 위화감을 머리 한쪽에 넣어두고는, 시안이 유적 입구로 향했다.
* * *
도시의 형태를 띤 유적이었다.
저 멀찍이 보이고 있는 높다란 탑.
무너져 내린 고대의 건축물들이 곳곳에 자리한 유적 부지.
초입은 바깥과 별다를 게 없었다.
출발하려는 용병들과 출발하는 용병들로 바글거리는 장소.
“우리는 이곳으로 가보자.”
샤밀라에게 받아온 지도를 펼치곤 시안이 1차 목적지를 짚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딱 적당한 곳에 있는 유적.
안전을 위해서는 가까운 곳이 좋았지만 그런 곳은 용병들로 넘쳐날 것이다.
반대로 멀면 멀수록 리스크는 급상승.
그 두 가지를 적절히 고려해 결정한 위치였다.
“가자. 긴장하고.”
“으, 응.”
이윽고 네 사람도 떠나기 시작했다.
초입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드론드는 물론 이안과 레이나마저도 딱딱하게 긴장했다.
실전 훈련 과목으로 실전에 가까운 경험을 한 번 한 그들이었지만, 진짜 실전은 달랐다.
마물의 둥지 특유의 이 묵직한 공기.
바람결에 실려 오는 피와 먼지와 시체의 냄새.
바깥보다도 훨씬 더 짙은 공기가 그들의 몸을 내리눌렀다.
심해 속에 빠진 것만 같은 기분.
바깥에선 그렇게 시끄럽던 레이나조차 입을 꾹 다물고 긴장한 눈치였다.
‘경험이 적은 것도 당연하니.’
시안이 그런 일행들을 보았다.
어릴 때 염노의 손에 이끌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마물들을 처치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그때는 주로 염노가 사냥을 하고 그는 지켜보는 입장이었지만.
그래도 그 경험 덕에 다소는 익숙해져 있었다.
이 눅눅하고 갑갑한, 짓눌리는 듯한 공기에.
“구울이 나타나면 미리 얘기해 두었던 진형으로 대응하도록. 세세한 지시는 그때그때 내리지.”
시안이 목소리에 살짝 마력을 담아 얘기했다.
그 목소리가 일행들의 귀에 또렷하게 박혀 들었다.
찬물이라도 끼얹어진 것마냥 정신을 차리는 일행들. 그들이 침착하게 마력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어.”
“응.”
“아, 알았어.”
일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기를 움켜쥐었다.
짧은 지팡이를 들고 있는 이안. 마찬가지로 지팡이를 들고 있는 드론드와 활로 무장한 레이나.
“뭐야. 애새끼들이 여기 왜 있어?”
그때, 그들을 향해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근에 있던 용병 일행이었다.
“어이! 꼬맹이들! 여긴 노는 곳이 아니라고!”
거칠어 보이는 인상의 사내들이 시안 일행을 보며 키득거렸다.
아직 어린 학생들.
애송이처럼 보인 모양이다. 용병이란 족속들은 특히 그런 것에 민감하니까.
“저 자식들이……!”
“무시해.”
발끈하는 이안을 향해 시안이 얘기했다.
이런 사소한 시비에 일일이 반응했다간 공략은 물 건너가는 일이다.
“저런 거에 신경 쓰지 마.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건 이 마굴이야.”
얕보이면 안 된다는 마음도 이해는 가지만 자신들은 용병이 아니라 학생이다.
겉치레보단 성장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입장.
애초에 몬스터가 나오는 장소에서 쓸데없는 것에 집중력을 흩뜨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염노에게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
“야, 쟤들 눈 돌리는 거 봐라.”
“크크, 귀여운 녀석들.”
“가서 엄마 심부름이나 하지 이런 곳까진 무슨 일이라냐.”
용병들은 여전히 키득거렸다.
이안이 한 번 더 발끈할 뻔하긴 했지만 애써 참은 모양이었다.
그때.
―퍼석!
―푸숙!
아무것도 없던 땅이 불쑥 솟아오르더니 구울이 나타났다.
뒤틀린 이목구비와 썩어들어 가는 피부.
피가 말라붙은 것만 같은 검붉은 몸체에 코가 없이 콧구멍만 덩그러니 있는 흉측한 생김새였다.
“구, 구울이다!”
“대응해!”
용병들 쪽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구울 중 일부는 덩치도 크고 머릿수도 더 많은 용병들을 향했다.
“으악! 얌마, 그쪽 막아!”
“이 새끼들 왜 이렇게 단단해! 좀비는 물렁살 아니었어!?”
“그건 좀비고 이건 구울이야 이 새끼야! 어제 얘기할 때 뭐 들었어!”
“뭐가 다른데!”
캉캉거리는 소리와 함께 용병들이 시끄러워졌다.
한편 그사이 나머지 구울은 일행 쪽으로 다가왔다.
시안이 미리 손에서 뽑아두고 있던 흑검을 들었다.
던전에 들어오기에 앞서 미리 성수를 묻혀둔 검.
‘어디.’
구울의 움직임은 결코 빠르진 않았다.
거북이마냥 느린 건 아니었으나 잘 쳐봐야 일반인 수준.
놈들이 터벅터벅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구울의 특징은 부드러운 움직임과 단단한 피부.’
샤밀라의 말에 따르면 구울은 사람과 별다를 바 없는 움직임을 보인다.
느린 것에 더해 관절이 거의 굳어 있는 좀비 같은 놈들과는 전혀 다른 몬스터.
더해서 그 부드러운 움직임과 정반대의 단단하고 경질화된 피부를 가지고 있다고.
과연 실제론 얼마나 단단할지, 시안이 탐색의 의미로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깡!
‘흠?’
놈의 목을 파고들지 못한 검을 보며 시안이 눈을 크게 떴다.
생각보다도 더 단단했다.
가볍게 한 번 내지른 일격이라곤 하나 일부러 손속을 두거나 하진 않았는데, 생채기 하나 없다니 의외였다.
‘그냥으론 힘들겠는데.’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이 단단한 몸을 뚫고 처치하기 위해선 어지간히 마나를 들이부어야 하리라.
그 방법도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단.
팟!
시안이 파워 건틀릿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손등 위에 흐릿하게 떠 오르는 주술 타투.
전신에 꽉 차다 못해 흘러넘치는 ‘힘’을 느끼며 그가 힘껏 칼을 내리쳤다.
콰득! 콰드드득!
구울의 몸이 말 그대로 찢겨 내려갔다.
어깻죽지부터 가슴을 그대로 그어버린 상처.
부서진 구울의 단면은, 살점과 근육이 아닌 갈라진 나무토막과 같은 것이 얼기설기 엮여 있었다.
그리고 가슴 한가운데에 위치한 아이의 주먹만 한 마석.
그 마석에 성수를 바른 검이 스치니, 수증기 비슷한 것을 일으키며 타들어 갔다.
“꾸오오오오―”
음습한 기운을 풍기던 마석이 성수의 힘으로 정화된다.
동시에 구울의 사체가 재로 변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녀석을 처치한 사이, 다른 한 마리가 시안의 뒤를 덮쳐들었으나.
콰콰콰콰쾅!
푹!
몇 차례나 연달아 쏘아진 파이어볼이 구울의 가슴을 연타했고, 그렇게 부서진 놈의 가슴 속에 레이나의 화살이 박혀 들었다.
부서져 내리는 파편 속을 정확히 뚫고 성수를 묻힌 화살이 마석에 스쳤다.
“됐다!”
레이나가 환호를 질렀다.
이곳에 오기 전에 미리 세워두었던 구울의 상대법.
단번에 실전에서 성공하는 것을 보니 역시 에버웨일의 학생들이다.
재능 하나는 충만했다.
“이 정도면 할 만하군. 어때?”
“쉽네.”
“문제없어!”
경쟁적으로 대답하는 이안과 레이나의 당찬 목소리를 들으며 시안이 손목을 풀었다.
본래라면 구울을 상대할 땐 몸을 아예 박살 내거나 마석을 억지로 잡아 뜯거나 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성수 덕에 가슴을 관통하는 것만으로 처치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나름 수월한 상황.
같은 방법으로 나머지 구울들도 모두 처치하고, 시안이 마석을 주워 드론드에게 던졌다.
그는 뒤에서 일행들에게 지원 마법을 주는 담당이었다.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끝난 상황에 어버버하던 드론드가 날아오는 마석을 받았다.
안도의 표정을 짓는 그를 향해 레이나가 씨익 웃으며 브이를 날렸다.
“들어가지.”
간단히 자리를 정리한 후 시안이 다시 앞장섰다. 아까 확인한 지도 덕에 유적의 지리가 머릿속에 빠삭하게 들어와 있었다.
그런 도중, 아까의 용병들과 스쳤다.
그들은 아직 하나의 구울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상태였다.
“너네……!”
유유히 지나가는 시안 일행을 보며 용병이 입을 벌렸다.
꼬맹이들로밖에 안 보이는 녀석들이 이 단단한 구울을 순식간에 처리하고 지나간다고?
그러나 당연한 일이다.
에버웨일의 학생은, 순위가 낮은 아이라고 해도 일반 기사나 메이지 수준의 실력은 가지고 있다.
하물며 이곳의 4명은 모두 상위권의 학생들.
어설픈 용병들이 비빌 만한 이들이 아니었다.
“뒤! 얌마 뒤!”
그렇게 경악하던 그들이었으나, 칼도 안 박히는 놈들을 상대로 넋 놓을 틈이 있을 리 없었다.
“으악!”
틈을 노려 덮치는 구울을 애써 막아내며 용병이 땅바닥을 굴렀다.
“…….”
이안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그들에게 짜증을 내지도 비웃음을 보내지도 않았다.
실력 차를 자각하고 나니 굳이 상대해줄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에.
용병들이 일어났을 땐, 시안과 일행들은 이미 유적 안쪽으로 들어간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