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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13화 (13/188)

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13화

300명의 학생을 태운 마차가 정문에 모여 있었다.

장식 따윈 하나도 없는 투박한 마차뿐이었으나 수십의 마차가 늘어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장관이었다.

다만 이 마차가 모두 한곳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300명이 한 번에 실전을 경험할 만한 장소는 없었으니.

마차는 총 5군데로 나뉘어 각자 다른 토벌 현장으로 향한다.

“실전이라고 하니까 조금 떨리는데…….”

“걱정 마라. 들어보니까 별 것 아닌 몬스터 토벌이더만. 난 아버지랑 같이 매년 한 번은 토벌에 다녔었는데 아무 문제 없었어.”

“영지에서 하는 거랑 이렇게 우리끼리 하는 거랑 같냐?”

“교수님도 따라온다는데 다를 게 뭐냐.”

긴장하는 학생들, 피크닉이라도 가는 것마냥 실실거리는 학생들, 조용히 앉아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 학생들.

그 다양한 면면들을, 건물 벽에 가려진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가 관찰하고 있었다.

‘알렌 크루거.’

융 교관이었다.

그녀가 행정부에서 받아온 알렌의 신상 서류를 손에 든 채로 차분히 신입생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알렌을 찾고 있는 것이었지만.

‘소메르 제국 크루거 백작가의 아들.’

이 서류에 나와 있지는 않았지만, 듣기로 크루거 백작에게는 수양아들이 있다고 들었다.

아마 알렌이 그것이 아닐까.

푸른 청색빛의 머리와 서글서글한 미소를 짓고 있는 초상화를 보며 그녀가 눈을 빛냈다.

신입생들 중 단 둘뿐인 인간족의 정령사.

같은 정령사로서는 시안 아그리드 쪽이 훨씬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나 측정 때 교실 전부를 뒤덮는 어둠에는 그녀조차도 경악했을 정도였으니.

그러나 그녀가 시안보다 알렌을 더 주목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청염의 수호자 알티마의 계약자.’

그가 계약한 정령. 아마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청염의 수호자였다.

지금은 거의 잊혀 이름조차 남아 있지 않은 고대 정령 중 하나.

아마 알티마의 이름을 알고 있는 이는 대륙을 통틀어 손에 꼽을 터였다. 요정궁 빙하백령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녀 역시 들어만 봤을 뿐이지 직접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정령과 대체 어떻게 계약을 맺은 것인지…….

‘힘은 많이 약해진 것 같긴 하던데.’

힘은 약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결국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아마 무슨 짓을 해서든지 과거의 위광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겠지.

그리고 그것이 그녀가 바라는 바였다.

고대 정령의 부활. 어쩌면 그 길의 끝에.

‘찾을 수 있을지도.’

그녀의 목적. 자신의 고향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눈에 한 줄기 희망이 스쳐 지나갔다.

지난 수십 년간 고향에 대해 단서 하나 찾지 못했다. 그런 마당에 동아줄이 하나 내려온 것이다.

그 동아줄의 끝에 정말로 고향의 소재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아직은 도박 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걸어볼 가치는 충분했다.

‘어디…….’

그녀가 잠시 둘러보며 마차를 찾았다.

다섯 개의 토벌 임무를 위해 다섯 방향으로 흩어지는 마차.

그중 남쪽 ‘그레이트 힐’로 향하는 마차에 알렌이 타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시안 학생도 남쪽 방향이었던가?’

문득 아까 보았던 그 아이가 떠올랐다.

특징적인 검은 머리. 차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

정령의 계약자라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소문과 전혀 다른 인상에 놀랐었다.

교관으로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녀 역시 시안의 소문을 들어본 이였다.

입학이 결정되었을 때 교수진들 사이에서도 한차례 화제였으니까.

그 소문에 따르면 천박한 망나니라고 하던데.

‘그 외모랑 분위기로 여자애들을 꼬시고 다녔던 걸까?’

뭐 생각해 보면 차분한 분위기라고 해서 망나니가 아니라는 법도 없다.

그 정도로 시안에 대한 생각은 접어둔 채, 그녀가 다시 알렌을 떠올렸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쪽이었으니.

‘저거다.’

이윽고 마차를 찾은 그녀가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는 알렌에게 접촉하진 않았다. 아직은 너무 이르다.

그녀가 다가간 것은 이 마차를 인솔하기 위해 준비 중인 한 명의 교수였다.

“데릭 교수님.”

“……! 유, 융 교관님! 여긴 어쩐 일로!”

그녀가 다가가자 데릭 교수라 불린 이가 바짝 긴장하며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얼굴도 조금 붉어지고 손가락을 더듬더듬 부딪쳤다.

그런 데릭 교수를 향해 융 교관이 생긋 웃으며 얘기했다.

“신입생들이 처음으로 외부 임무에 나가는 날이잖아요. 잘 출발하나 지켜보러 왔어요.”

“그, 그러시군요. 거, 걱정 마십시오. 적어도 제가 인솔하는 곳에서만큼은 아무런 사고도 없을 겁니다.”

데릭 교수가 자꾸 콧잔등으로 흘러내리는 안경을 밀어 올리며 가슴을 콩콩 쳤다.

딴에는 자신 있어 보이려고 친 것이겠지만 워낙 사람 자체가 움츠리고 있었기에 자신감은 별로 비치지 않았다.

그런 그를 향해 융 교관이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실은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뭐, 뭡니까? 융 교관님의 부탁이라면 뭐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교수님이 인솔하시는 학생 중에 알렌이라는 학생이 있을 텐데.”

“예, 예에……. 아까 한 번 봤습니다. 여학생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더군요.”

“그 아이를 조금 지켜봐 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 학생을요? 왜, 왜죠?”

“그건 개인적인 이유라 말씀드리기가 좀 그런데…… 어떻게 안 될까요? 사례는 섭섭지 않게 드릴게요.”

고향을 찾을 단서라고 얘기할 수는 없으니.

“아, 알겠습니다. 한번 보도록 하죠.”

“정말요? 감사해요!”

“사, 사례 말입니다만.”

데릭이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가, 이내 더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저…… 혹시 괜찮으시면 저녁 식사를 하, 한 번…… 어떠십니까?”

“저녁이요? 으음- 제가 일이 정말 바빠서 그런데 금전이나 그런 쪽의 사례는 안 될까요?”

그녀가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데릭 교수의 제안을 거절했다.

딱히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정말로 바빴다. 거의 모든 식사를 간단한 샐러드나 샌드위치로 하면서 업무를 볼 정도로.

담당하는 과목은 정령술 하나뿐이었지만 그녀에겐 정식 업무가 아닌 다른 일이 있었다.

에버웨일로 유학을 온 모든 반요정 학생들을 케어하는 것.

타지에서 배우고 단련하느라 지칠 수 있을 그들을 돌봐주는 일이었다.

그 외에 본인의 공부와 단련도 소홀히 할 수 없었기에 그녀에게 자유 시간은 매우 적었다.

“그, 그렇군요. 괜찮습니다. 바쁘시다면 어쩔 수 없죠, 하하…….”

“정말 죄송해요.”

고개 숙여 사과하는 그녀를 보며 데릭 교수가 괜찮다는 듯 웃었다. 비록, 입꼬리가 떨리고 있었지만.

“저…… 슬슬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탁하실 건 그게 단가요?”

“예. 조금 특이한 사항이나 눈여겨볼 만한 일이 있으면 알려주시면 돼요.”

“아, 알겠습니다. 잘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례는 꼭 할게요.”

그 인사를 마지막으로, 융 교관이 개인연구실로 돌아갔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데릭 교수가 지켜보고 있었다.

“……맡은 수업도 얼마 없으면서.”

그가, 구깃구깃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는 융이 반요정 학생들의 상담과 지원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에버웨일의 업무가 아닌 전(前) 수호성 출신으로서의 업무였기에.

때문에 그로서는 바쁘다는 융 교관의 말은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이었다.

그저 거절을 위한 핑계로만 들렸을 뿐.

“알렌 크루거.”

왜 그녀가 알렌에 대해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을까.

개인적인 이유라는 게 대체 뭐지?

그의 머릿속에 아까 보았던 알렌 크루거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큰 키에 시원스러운 푸른 머리칼. 훈훈한 외모로 많은 여학생이 주위에 꼬이던 아이.

정작 본인은 그것에 무척 곤란해하는 모습이었지만 데릭 교수의 기억에 그것까지 남아 있지는 않았다.

그를 떠올리고,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떠올렸다.

신분도 외모도 성격도 그 무엇도 정반대.

“알렌 크루거…….”

그가 다시 한번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가 음산하게 주위를 울리다 가라앉았다.

* * *

마차 행렬이 도시의 성문을 빠져나갔다.

동서남북, 각각의 방향으로 마차의 행렬이 지나간다. 그중 시안이 자리한 곳은 남쪽의 그레이트 힐로 가는 행렬이었다.

‘그레이트 힐.’

대륙의 중심부에 위치한 거대한 산맥. 너무나 크고 깊기에 아직 그 탐사가 완벽히 완료되지 않은.

에버웨일을 기준으론 남쪽에 위치한 그 산맥이 마차의 목적지였다.

‘초입 부근은 고블린 정도나 나오니까.’

그레이트 힐이 무슨 거창한 장소인 마냥 얘기를 하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깊숙한 곳일 때의 얘기다.

초입 부근은 이미 수도 없이 탐사되어 완벽히 파악이 끝난 곳이었다.

그렇기에 신입생의 수업용 임무로 쓰는 것이기도 했고.

―도착했다!

얼마간 지난 후, 크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산맥의 입구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자, 자! 모두 내려주세요!”

데릭 교수가 크게 외치며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대여섯 대의 마차에서 우르르 학생들이 내려 교수의 앞에 집합했다.

학생들이 대략 60명가량. 그리고 인솔을 위해 온 데릭 교수와 6명의 조교들.

일행의 구성은 이랬다.

“이, 이번 임무는 산맥 초입의 고, 고블린을 처치하는 일입니다. 주기적으로 토벌하지 않으면 개체 수가 지나치게 많아지거든요.”

데릭 교수가 학생들에게 더듬거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흔한 토벌 임무의 유형.

신청할 때도 미리 전해 들었던 것이기에 학생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초입이 끄, 끝나는 지점에 제가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은 2인 1조로 조를 짜서 고블린을 토벌하며 그곳까지 와주십시오. 어, 어디 있는지는 나눠드릴 지도에 표시해 놓았습니다.”

데릭 교수가 손짓하자 그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6명의 조교들이 학생들에게 지도를 나눠주었다.

받아서 펼쳐보니 그레이트 힐 초입의 지형이 상세히 그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한 곳에 빨갛게 표시된 곳도.

“고블린이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난 몇 번 본 적 있어. 다 가문의 기사들이 처리해 줬지만.”

학생들이 긴장 반 흥분 반으로 대화를 나눴다.

일부는 첫 실전이라는 생각에 긴장하고 있었고 일부는 자신의 실력을 과시할 생각에 흥분 중이었다.

“그래도 고블린쯤이야 뭐.”

“별거 없겠지.”

떠들썩한 학생들을 조교들이 살짝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비웃음이 아니라 즐거운 장면을 기대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시, 시간은 해가 지기 전까지만 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고블린을 잡고 마, 마석을 가져오면 개수에 따라 선물을 드릴 예정이니 열심히 해주십시오.”

“선물?”

“좋아. 무조건 내가 1등한다!”

“누가 시켜준대?”

즐거워하는 학생들을 보며 조교들이 흐뭇하게 웃었다.

과연 1시간 뒤 학생들이 어떻게 될지 학수고대하는 웃음이었다.

그런 조교들을 향해 데릭 교수가 얘기했다.

“그, 그럼 우리는 먼저 사역마를 풀어놓읍시다.”

“예, 교수님.”

“알겠습니다.”

데릭 교수의 뒤를 따라 조교들이 사역마를 소환해 숲에 풀어놓았다.

만에 하나를 위해 숲 내부를 감시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이걸로 끝이 아니라 조교들은 직접 숲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들이 그렇게 사전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학생들은 조를 짜기 시작했다.

2명이서 한 조라고 그랬으니까.

“알렌~ 우리 같은 조 할래?”

“야, 알렌은 나랑 같이 가기로 했으니까 니들은 가라.”

“하하하…….”

시안이 살짝 시선을 돌려 녀석을 바라보았다.

푸르게 빛나는 머리칼이 확연히 눈에 띄는 그 녀석.

알렌 크루거.

녀석의 주위에는 학생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큰 키와 잘생긴 외모 등에 끌려 접근하는 여학생들도 많았고, 친한 남학생들도 많았다.

망나니라 소문난 시안 아그리드에게도 허물없이 다가오는 녀석이다.

인기가 많을 법하지.

“미안, 미안. 사실 룸메랑 같이 가기로 약속했었거든.”

알렌이 곤란한 얼굴로 대여섯 명의 학생들에게 거절의 멘트를 날리고 있었다.

그쪽은 그렇게 북적거리고 있었고, 나머지 학생들도 한동안 분주히 돌아다녔다.

원래부터 잘 알던 이와 조를 짜는 이도 있었고, 실력자를 물색하고 다니는 이도 있었고.

어떤 이들은 아예 2명을 넘어 대여섯 명씩 모여 머리를 맞대는 이들도 있었다.

교수가 얘기한 것은 2명씩이지만 그 이상으로 모여서 팀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1등을 해서 선물을 받으면 나누자고 하고 있으려나.’

이제 갓 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치고는 영악한 면모.

하지만 그들의 배경을 생각하면 납득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들 대부분이 정치와 사교계에 잔뼈가 굵은 귀족가 자제였으니까.

뭐 자신은 저런 방법을 쓸 생각은 없다.

그들은 무시한 채 그는 적당한 짝을 찾아 나섰다.

솔직히 실력이야 크게 상관없었기에 아무나 괜찮았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어느새 모든 짝이 지어지고 단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음.”

하나는 모든 신청을 꺼림칙한 얼굴로 거절당한 시안과.

“아…….”

하나는 300위의 반지를 끼고 있던 탓에 짝을 구하지 못한 학생이었다.

우리 반의 분명…… 이름이 에르제라고 했던 검은 머리의 여학생.

전혀 다른 이유로 왕따를 당한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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