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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뚱한 손톱이 살을 파고드는 감각에 아이작이 쓴웃음을 머금으며 신음을 내뱉는 입술을 제 입술로 내리눌렀다.
“잔뜩 풀어서 괜찮을 줄 알았어. 아직… 다 들어가려면 멀었는데.”
아이작이 침대를 짚고 있던 손을 움직여 달리아의 배를 쓸어내렸다. 잔떨림을 이어가는 아랫배를 어루만지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러 검지로 그 부분을 꾹 눌렀다.
“예전에 했을 때… 아마도 이쯤.”
하아, 거친 숨을 내뱉고서 손가락을 조금 더 아래로 움직인다.
“지금은 아직… 이 정도밖에 못 들어갔으니까.”
낮게 끄는 듯한 속삭임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달리아가 농담이라는 생각에 힘없이 도리질 치자 귀엽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녀의 볼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파들거리는 허리를 붙잡아 다시 제 몸을 밀어 넣었다.
달리아는 드문드문 숨을 토하며 눈을 감은 채 늘어져 있다가, 완전히 그를 받아들이자 헐떡이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초조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이작의 고운 얼굴이었다.
늘 세상 달관한 듯한 표정으로 웃고 마는 평소와 달리 몸을 섞을 때 그의 얼굴은 온갖 욕망과 조급함, 갈증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는 했다. 늘 내면을 숨기기 바쁜 그가 자신을 갈구할 때에만 본성을 드러낸다는 생각에, 버거움보다는 뿌듯한 만족감이 스물스물 뇌리로 퍼져나갔다.
시선을 인식한 아이작이 멋쩍은 듯 한쪽 입매를 당겨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달리아의 등을 끌어올려 자신과 마주 앉게 만들었다.
“흑, 이거 너무… 깊어서…”
더욱 깊어진 결합에 달리아가 괴로워하며 그의 어깨를 깨물었다. 어지간하면 천천히 하겠지만 배려하기에는 너무 오래 참았다.
“잠깐만. 처음은 금방 끝낼 테니까 잠깐만… 조금만 참아.”
아이작은 그녀의 뒷머리를 붙잡아내려 더 세게 깨물도록 한 뒤 미진하게 남아 있던 마지막 죄책감을 지워냈다. 그리고는 웅웅거리며 말인지 신음인지 모를 무언가를 내뱉는 그녀를 무시한 채, 거칠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무섭게 몰아치는 행위에 달리아가 울음을 터트리며 그에게 매달렸다.
길게 늘어트린 다갈색 머리카락이 허리 짓을 할 때마다 이리저리 팔랑거렸다. 아이작은 목덜미를 간질이는 머리카락에 코를 묻은 채 무아지경으로 허리를 쳐올렸다.
그답지 않은 거친 행위에 달리아는 흐느낌을 이어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곧, 전신을 지배하는 쾌감에 떠오른 상념을 차츰 비워나갔다.
“금방, 끝낸다고… 흐윽…! 대체 언제쯤…!”
흐느낌이 교성으로 바뀌었을 때쯤에는 뇌리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달빛이 채 무르익기도 전에, 달리아는 찌르는 듯한 절정과 함께 생각의 끈을 모두 놓아버렸다.
* * *
그녀가 눈을 뜬 건 아직 어둑한 새벽녘이었다.
기진맥진해 자꾸 흐느적거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앉았다. 정신을 놓기 전에는 이불이고 뭐고 다 내팽개쳐져서 침대 위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았는데, 지금 보니 시트도 이불도 전부 깨끗했다.
드러난 가슴을 가리기 위해 이불을 끌어 올렸다. 불현듯 이불의 무게감이 묵직하다는 걸 깨닫고 슬그머니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는구나…”
비 온 뒤의 깨끗한 하늘이 달빛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희끄무레한 달빛 아래, 곤히 잠들어 있는 그의 얼굴은 감히 손대기 꺼려질 만치 순결하고 아름다웠다.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옆으로 쓸었다. 굳게 닫힌 눈꺼풀을 손끝으로 건드리자 희미하게 눈썹을 찡그린다. 손을 옮겨 귓불을 만지작거리니 한결 편안한 얼굴로 긴 숨을 내뱉었다.
달리아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 지그시 아이작을 내려다보았다.
섬세한 이목구비와 달리 선이 강하게 도드라지는 목선. 그 아래 유난히 넓은 어깨와 근육으로 다부진 팔뚝은 승마로 인한 것일 터였다.
손끝으로 어깨를 꾹 눌렀다. 그렇게 깨물었는데 상처 하나 없는 걸 보면 어지간히 단련된 모양이다.
그나마 어깨는 부드러운 편이었다. 안장 없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타고 다니는 아이작의 허벅지는 과장 안 보태고 돌보다 더 단단했다. 섬약해 보이는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탄탄한 몸은 마주할 때마다 의외로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두꺼운 팔뚝을 쳐다보다가 이불 바깥으로 슬쩍 드러난 손에 시선이 닿았다.
그의 약지 위, 하얗게 빛을 반사하는 반지를 보고서 달리아는 무릎을 지분거리던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달리아의 반지는 그의 것보다 조금 더 가느다랗고 메인 스톤은 조금 더 컸다. 가만히 반지를 쳐다보던 달리아가 손을 들어 반지를 달빛에 이리저리 비춰보았다.
다각도로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손등의 흉터와 대비되어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았다.
아니. 어울리지 않는 게 이 반지뿐일까.
옆에 잠들어 있는 남자도 자신과 어울리지 않았다. 볼품없는 자신과 달리 그는 고결하고 선량하며 우아했다.
자신이 개미라면 그는 먼 창공을 활강하는 학 같았다. 달라도 너무 달라서 범접할 엄두조차 못 내는, 그런 남자였다.
…그래도.
“괜찮아.”
어울리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함께하기로 약속한 이상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가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자신이 그를 필요로 한다면.
둘이 함께 있어서 살아가는 게 더 이상 괴롭고 힘들지 않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상념이란 깊이 빠져들수록 나쁜 생각만 떠오르기 마련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먼저 떠올리는 본능에 따라 생각을 이어갈수록 긍정은 고갈되고 구석에 밀쳐뒀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부상하는 것이다.
이를 알기에, 달리아는 더 이상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아주 먼 곳에서 비쳐드는 빛이 새벽의 종말을 예견하고 있었다.
달리아는 슬립 위에 가벼운 숄을 걸치고서 맨발로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왔다.
발길이 향한 곳은 로렐의 방이었다. 아이작이 도착한 이후로 내내 그에게 붙들려 있었기에 로렐의 상태를 확인하지 못한 게 불안해서였다.
“로렐. 자니?”
습관처럼 굳은 인사와 함께 조용히 문을 밀고 방에 들어섰다.
아이작과 함께 있던 방과 달리 로렐의 방은 한 점의 빛도 없이 푸른 어둠으로만 뒤덮여 있었다. 정물처럼 고정된 풍경이 꼭 유리로 만든 테라리움을 연상케 했다.
침대로 다가가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일정한 간격으로 드나드는 숨소리가 평화로이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로렐은 늘 그렇듯 평화로운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환한 낮이 아닌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간에 이런 모습을 마주하니 정말 잠깐 잠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주변의 공기가 이상하리만치 부드럽게 느껴지는 건 그 아이의 시간이 정지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의 심리가 안정되었기 때문일까.
복잡한 심상을 속으로 삼키며 달리아는 어디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 꼼꼼히 확인한 뒤, 단단히 이불을 덮어 주고서 다시 방을 빠져나왔다.
조금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혹시 모르니 서둘러야 했다. 그의 목소리가 계속 발목을 붙들고 있던 까닭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달리아의 얼굴이 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