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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들고 있던 집게가 빵과 함께 떨어지더니 땅그랑, 요란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놀랄 틈이 없었다. 입술을 가르고 들어오는 뜨거운 혀가 잡아먹을 듯 그녀의 입안 구석구석을 거침없이 유린했다.

“…응, 읏…”

숨이 막힐 것 같으면 슬쩍 물러나 아랫입술을 깨물고, 들숨이 끝나는 타이밍에 재차 입술을 겹쳐 호흡을 막는다.

젖은 입술이 비벼지는 소리가 보글거리는 수프 소리와 섞여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허리를 붙잡고 있던 커다란 손이 옆구리를 어루만지다가 다시 등허리를 쓸어내렸다. 손길에 따라 입술도 떨어졌다가 다시 붙었다가 하며 박자를 맞췄다.

어느새 다리 사이를 가르고 들어온 그의 단단한 허벅지가 은밀한 곳을 슬쩍 비벼댔다.

“하지… 읍, 하, 하지 말…”

한 손은 허리를, 한 손은 목덜미를 붙잡고 거침없이 입술을 겹친 아이작이 혀를 내밀어 그녀의 아랫입술을 살며시 핥았다. 아쉽다는 듯 또다시 다가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마지막으로 코끝에 입을 맞추고서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숙였던 허리를 천천히 폈다.

달리아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숨을 참고 있다가 입술이 완전히 떨어진 걸 깨닫고 뒤늦게 숨을 터트렸다. 셔츠를 붙잡고 있던 손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왜… 갑자기…! 요리할 때 이런 짓 하면 큰일 나요…!”

“보고 싶었어.”

갑작스레 날아온 진심에 달리아가 화난 표정 그대로 굳었다.

화난 얼굴 위로 난처한 기색이 퍼져나갔다. 그리고는 입을 다물고서는 찌푸린 미간을 펴고 흘긋, 아이작을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미간을 찡그렸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좋을지 스스로도 혼란스러운 것이다. 아이작은 복숭앗빛으로 발그레해진 뺨을 내려다보며 재차 말했다.

“보고 싶었어, 달리아.”

허리를 숙여 이마를 맞대고서 조금 더 그윽한 어조로 속삭였다. 정말 보고 싶었어. 말이 거듭될수록 달리아의 얼굴이 점점 아래를 향했다.

열 오른 눈시울을 보니 듣지 않아도 그녀의 대답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아이작은 당장 스커트 자락을 들춰 올리고 싶은 욕망을 가벼운 입맞춤으로 간신히 참아냈다.

“식사… 하셔야죠.”

입술을 맞댄 채 한참을 가만히 있으니, 달리아가 머뭇거리며 속삭임을 흘려 넣었다.

입 안으로 흘러드는 숨결이 기분 좋아서 그대로 있으려니 달리아가 입술을 달싹이며 말인지 신음인지 불분명한 웅얼거림을 내뱉었다. 그래도 아이작이 물러나지 않자 망설이는 손길로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아직도 어깨가 축축해요. 빨리 드시고 옷 갈아입으세요.”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몸을 돌려 국자를 쥔다. 그러나 옆으로 보이는 눈매가 아직 불그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더 달라붙으면 진심으로 성가셔할 것 같아서, 아이작은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앗, 안 돼요!”

도와주려고 집게를 들어 올리자 달리아가 정색하며 앉아 있으라고 명령했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영역 분리가 확실한 그녀였기에, 아이작은 눈치를 살피며 순순히 식당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

“오래 기다리셨죠?”

잠시 후, 달리아가 트레이를 끌고 와 수프와 빵, 샐러드 따위를 식탁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냅킨과 커트러리까지 완벽하게 차려놓더니 뭔가 아쉬운 듯 식탁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복도에 놓여 있던 작은 화병을 갖고 와 식탁 한가운데에 내려놓았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신경 쓰는 기색이 다분히 느껴져 가슴 언저리가 간질간질해졌다.

아이작은 웃음을 참고서 묵묵히 수프를 입에 넣었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그의 반응을 살피던 달리아가 맛있다는 그의 중얼거림에 활짝 핀 얼굴로 스푼을 내려놓았다.

“있는 걸로 대충 차렸는데… 입에 좀 맞으세요?”

“응. 토마토 맛이 엄청 진해서 좋다. 빵도 샐러드도, 여태까지 먹었던 것 중에서 제일 맛있어.”

“제일 맛있기는요. 아무튼 아이작은…”

투덜거리면서도 달리아의 안색이 한결 밝아졌다. 눈을 마주치는 건 부끄러운 듯, 달리아가 스푼 끝을 만지작거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도 먹을 만하지요? 제 입으로 말하기에는 좀 부끄럽지만 여기 와서 음식 솜씨가 조금 늘었거든요. 물론 아이작이 평소에 먹는 식단보다는 훨씬 소박하지만… 먹기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입매를 어루만지며 슬그머니 눈시울을 휘는 모습이 애잔하면서도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아이작은 아니야, 하고 수프를 한가득 입에 넣었다.

“정말 맛있어. 그러고 보면 달리아는 원래도 요리를 잘했잖아. 나 어렸을 때도 종종 한가할 때마다 간식 만들어서 갖다 줬으니까.”

“…그때는 형편없었어요. 그냥 아이작이 좋게 먹어 준 것뿐이죠.”

“아니야. 나 달리아가 해 준 푸딩 진짜 좋아했어.”

“그, 설탕 대신 소금 넣어서 엄청 짰던 푸딩이요?”

아이작이 ‘그랬던가?’ 하며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달리아가 웃음을 터트리며 그게 뭐가 맛있었냐며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타박을 이어갔다.

쏟아지는 빗소리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적적한 침묵 위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수프에는 손도 대지 않고서 가만히 아이작을 바라보던 달리아가 문득 창가로 시선을 던졌다.

“어머. 잠깐 사이에 비가 그쳤네요.”

방금 전까지 기세 좋게 쏟아지던 게 무색하리만치 하늘이 맑게 개어 있었다. 수평선 근처, 몽글몽글 피어오른 구름 사이로 피어오른 주홍빛 빛무리가 다가올 해질녘을 은연히 알리고 있었다.

“여기서 보는 노을은 참 예뻐요.”

창가에 시선을 둔 채 달리아가 흘리듯 말을 이었다.

“왜 그럴까. 원래 바닷가 근처에서 보는 일몰과 일출이 유난히 예쁘긴 한데 여기서 보는 건 더 예쁜 것 같아요. 아이작도 그래요?”

“…음. 난 여기서 노을 본 적이 처음이라 잘 모르겠는데.”

“처음이요? 여기서 지낸 적 한 번도 없어요?”

아이작은 솔직히 말하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짧은 고민 끝에 고개를 저었다.

“여긴 달리아를 위해 지은 집이라서… 매입 허가랑 건축 설계서만 확인하고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우브랑에 온 건 달리아 부모님 유해 수습할 때 잠깐 와 본 게 전부고.”

“…….”

“아니, 부담 갖지는 마. 그냥… 어쩌다 보니. 그냥 내 멋대로 한 거니까. 남부에 별장 하나쯤 있어도 좋을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그런 거였어.

놀란 얼굴을 부담스러워하는 걸로 받아들였는지, 아이작이 횡설수설하며 핑계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달리아는 슬쩍 눈을 내려 그릇이 빈 걸 확인하고서 아이작의 손목을 덥썩 붙들었다.

“이리 와 보세요.”

늘 힐긋힐긋 눈치를 살피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달리아는 비장한 얼굴로 그를 일으키더니 성큼 앞장서서 저택을 빠져나왔다.

문을 열자마자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훅, 두 사람을 감쌌다. 비는 그쳤지만 정원을 메우고 있는 나뭇잎들이 머금고 있던 빗방울들을 한 방울, 한 방울씩 아래로 쏟아내고 있었다.

팔을 뻗어 비가 오는 걸 가늠하던 달리아는 완전히 비가 그친 걸 확인하고서 저택 끝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잠자코 끌려가던 아이작은 그녀가 향하는 종착지가 어디인지 깨닫고서 슬쩍 눈을 키웠다. 괜찮을까. 그러나 앞서가는 달리아의 표정은 덤덤하기만 했다.

“여기요. 여기가 제일 잘 보여요.”

부모님의 묘 앞에 다다른 달리아가 바닷가를 마주 보고 있는 하얀 가제보를 가리켰다. 당연히 묘소로 향할 줄 알았던 아이작은 한 박자 늦게 몸을 틀어 가제보에 들어섰다.

바람 사이로 비릿한 바다 내음이 물씬 풍겼다.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달리아가 옷자락을 붙잡고서 수평선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여기 풍경이 엄청 좋아요. 바람도 많이 불고.”

“…그러네.”

“그거 아세요? 해가 다 지기 전에, 수평선 뒤로 완전히 넘어가기 전에 바다가 엄청 붉어지는 거. 그 때가 가장 예뻐요. 조금 있으면 보일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잠자코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눈이 닿는 곳마다 노란 석양빛이 머물러 있었다. 수평선을 보는 척하다가 눈동자를 움직여 달리아를 훔쳐보았다. 하얀 얼굴을 물들이고 있는 노란 빛이 무척 따뜻해 보였다.

가슴을 간질이던 파랑이 그 따스함에 물들어 아늑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홀린 듯 그녀를 바라보던 아이작이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달리아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손등에 나 있는 생채기를 손가락으로 쓸다가 느릿하게 검지를 움직여 웅크려 있던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폈다.

그다음 활짝 편 손 틈새로 손가락을 밀어 넣어 조심스레 깍지를 꼈다.

손바닥에 다 담기는 작은 손, 투박하고 거칠지만 그 누구보다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손이 자신의 손 아래에 있었다.

“노을…”

아이작이 포갠 손을 응시한 채로 흘리듯 말문을 뗐다.

“내가 기억하는 노을은 하나뿐이야.”

“뭔데요?”

“르네의 집에서 보던 노을.”

“르네…?”

이름을 되새기던 달리아가 그의 어머니의 이름이라는 걸 깨닫고 아, 탄성을 흘렸다. 아이작은 웃는지 우는지 모호한 얼굴로 미간을 구긴 채 바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벽난로 위쪽 작은 창문에서 조그맣게 내리쬐던 붉은 노을. 얻어맞고 나서 벽난로 앞에 쭈그려 앉아 있으면 늘, 항상… 노을 질 때였어.”

여간해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법이 없는 아이작이었기에 달리아는 저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밤에 일하고 와서 아침이나 정오쯤… 그때 집에 와서. 형이랑 나를 때렸어. 기분 좋을 때는 그냥 넘어갔지만 대부분 화가 나 있는 사람이라서, 작은 일에도 항상 얻어맞았어.”

아이작은 겹친 손등을 손바닥으로 살살 누르며 자조 섞인 미소를 떠올렸다.

“해가 지고 나면 일하러 밖으로 나가니까, 밤에는 그래도 평화로웠지. 그래도 너무 많이 맞은 날은 밤인지 낮인지도 구분하기 힘들었지만.”

달리아는 할 말을 잃은 채 허공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의 과거가 심상치 않다는 건 저택에서 일할 때부터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저택에서 당하는 수모가 워낙 커서 그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한 과거가 있었을 줄은 전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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