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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달리아의 목에 푸르게 핏줄이 섰다. 있는 힘을 다해 저항했지만 가녀린 몸이 그를 이기는 건 무리였다. 

손쉽게 달리아를 제압한 아이작이 철벅거리며 호수 바깥으로 향했다. 온 힘을 다해 버둥대던 달리아가 호숫가 언저리까지 밀리자 파들거리며 악을 썼다.

“놔! 놔 달라고 했잖아! 제발, 나 좀 놔!”

“…놔 달라고?”

얕은 곳까지 다다른 아이작이 그녀를 안은 팔에 더 세게 힘을 주었다. 상냥하게 대하고 싶었으나 놓아주면 당장에라도 호수에 뛰어들 듯 거세게 반항하는 탓에 억센 힘으로 그녀를 제압할 수밖에 없었다.

“놔요! 제발… 제발! 나 좀 놔 줘…!”

“그렇게 사람 우습게 만들고 한다는 짓이 고작 이거야? 달리아 벨로흐!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유가 있으면 똑바로 말을 하던지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짓만 하냐고!”

악을 쓰자 달리아가 멈칫하며 숨을 삼켰다. 뿌옇게 밝아오는 새벽 어스름 속에서 창백하게 질린 그녀의 얼굴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파들파들 떨리는 입술이 말이 되지 못한 신음을 연신 흘렸다. 입술을 깨문 채 가슴을 들썩이더니, 결국 눈물을 터트리며 감정을 토로했다.

“이제 살기 싫어. 나… 이제 그만하고 싶어…!”

“……왜 살기 싫은데.”

“로렐까지 그 지경이 됐는데…! 내가… 내가 그렇게 만들어서…!”

정사로 퉁퉁 부은 눈매에 후회로 인한 눈물이 또다시 뚝뚝 떨어졌다. 달리아는 흐윽, 울음을 참다가 성토하듯 외침을 이어갔다.

“내가 의지할 건 그 애밖에 없는데…! 내가 그렇게 만들었잖아. 내가 다 망가트렸잖아. 그런데 왜 살아야 돼?”

“…달리아.”

“아무 가치도 없었어! 나 같은 거… 하찮고 더럽고 천하고! 그래도 그 애 하나 키우겠다고 여태 버텼어. 당신도 놓아주겠다고 그렇게 잘난 척했는데, 결국 손을 뻗었어. 이제 자존심도 뭐도 없는데.”

꽉 쥔 주먹이 바들바들 떨렸다. 떨림이 전신으로 번져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일그러진 그녀의 시야 속에 늘 그리워하고 사랑해 온 남자의 모습이 담겼다.

“다 사라졌어.”

사랑 따위, 형체도 뭣도 없는 걸 어떻게 믿을까.

언제고 무너질 게 뻔한걸.

그동안 제가 가졌다 믿은 것들은 모두 실체 없는 허상들이었다. 유일하게 가진 건 로렐뿐이었는데, 이제 그 아이는 눈을 뜨지 않는다. 웃음도 울음도 없이 그저 자리에 누워 살아있다고 할 수 없는 생을 이어가고만 있다.

나 때문에. 다 나 때문에.

“내가 너무 싫어. 나 같은 거 죽었으면 좋겠어. 이대로 녹아서… 사라져버리고 싶어.”

꺼질 듯 속삭임을 흘리며 눈을 깜박였다.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 위로 또다시 무거운 눈물방울이 쌓여 턱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너는 네가 그렇게 하찮아?”

나직하게 이어진 물음은 답을 원하지 않았다. 아이작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숨을 삼켰다. 검은 눈동자 속에는 증오를 비롯한 온갖 애절한 감정이 더럽게 뒤엉켜 질척이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너 같은 사람한테 매달려서 사는 나는 더 하찮은 인간인가?”

“…….”

“네가 밑바닥 인생이면 나는 그보다 더하겠지. 원래도 시궁창에서 살던 놈이었거든. 그럼, 나도 같이 죽을까?”

말투는 평온했지만 음절마다 그의 노기가 흠씬 묻어나왔다. 단단히 굳힌 입매 아래, 핏대 선 목이 그의 격동을 고스란히 알리고 있었다.

“너한테는 가치 없더라도 나한테는 소중해. 왜 함부로 네 가치를 폄하하지? 너 죽으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나 죽으면?”

“이따위로 내버릴 거면 그 하찮다는 인생 나한테 양도하든가. 함부로 이런 더러운 호수에 처박고 죽을 생각 말고! 차라리 나한테 달란 말이야! 내가 너를 어떻게…!”

“웃기지 마!”

거칠게 손을 뿌리쳐 낸 달리아가 흐느낌을 참고서 힘겹게 말을 이었다.

“사랑한다고? 또 그런 말 하면서 붙잡을 거예요? 당신 같은 사람이 날 사랑한다고 내가 기뻐할 줄 알아요?”

“또 무슨 말을…”

“그만해! 사랑한다는 말이 날 얼마나 궁지로 몰았는지 알아요? 알면, 절대 그런 말 못 해!”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에 달리아가 말을 잇지 못하고 꺽꺽대며 울음을 삼켰다. 또다시 손을 붙들려는 그의 손을 쳐내고 욱신거리는 가슴을 감싸 안았다.

“받기만 하는 게 얼마나 비참한 줄 알아? 당신처럼 다 가진 사람은 사랑도 참 쉽지. 마음껏 선물하고 배려해 주고…!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알아?”

흐린 망막에 숨을 멈추고 자신을 바라보는 그가 비쳤다.

그에게 아무 잘못도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런 그를 붙들고 터트리는 넋두리가 얼마나 비굴하고, 비참하고, 또 스스로도 듣기에 무척 거슬리는지도.

그럼에도 제어할 수가 없었다.

“나 같이 아무것도 쥔 게 없는 사람은 사랑도 줄 수가 없다는 거야. 아무것도 없어서, 가진 건 이 몸뚱이 하나뿐인데 이거 주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

“정부라고 해. 몸 파는 여자라고 욕해. 그래서 이것도 줄 수가 없었어. 줄 게 아무것도 없어서 매일매일이 비참해. 당신이 너무 좋은데 나는 가만히 곁에 있는 것조차도 할 수가 없어서, 그런 내 처지가 너무 비참해서 매일이 괴로웠어.”

봇물처럼 터져 나온 말은 그에게 하는 게 아닌 저 자신에게 내뱉는 고해였다.

그를 사랑하면서도 기피할 수밖에 없었던, 그저 처지가 다르니까 하는 말로 포장해 왔던. 기저에 담긴 진심이었다.

“나도… 당신처럼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당신한테 걸맞은 화려한 귀부인이었으면, 나 때린 그 재수 없는 귀족 아가씨처럼 태어났더라면. 나도 결혼 같은 거 하지 말고 내 곁에서 나만 바라보라고 외치고 싶었어요.”

쏟아지는 눈물 사이로 간간이 터져 나오는 탄식이 몹시 거슬렸다. 식식거리며 숨을 이어가던 달리아가 흐느낌 섞인 신음을 내뱉었다.

“그런데 난 아무것도 아니잖아. 당신한테 그런 거 요구할 자격 없잖아. 이제 와서… 로렐도 잃어버렸는데. 지켜야 하는 것도 없어서 텅 비어 버렸어. 그런데 이제 와서. 내가 당신 옆에서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젖은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던 아이작이 부르르 떠는 그녀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았다. 비탄 섞인 한숨을 내뱉던 입술이 이윽고 달래듯 나직한 목소리를 자아냈다.

“그렇게 단언하지 마. 내가 마냥 대단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가장 잘 아는 건 너야, 달리아.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그런 건 아무 의미 없어.”

“…아니야.”

“제발, 달리아. 한쪽으로 치우쳐서 생각하지 마. 네가 정말로 나한테 준 게 없는 것 같아? 난 이미 차고 넘칠 만큼 너한테 받은 게 많은데 왜 없다고 해?”

달리아는 울음을 삼키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아니야.”

그가 자신을 원하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에게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번 새겨진 평행선이 다시 얽히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와 자신은 이미 너무 다른 길로 엇갈려 버렸다.

“내가 당신한테 쓴 편지 기억해요?”

피로한 목소리로 묻자 아이작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아는 고여 있던 눈물을 떨구곤 한결 맑아진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거기에서 나, 어렸을 때부터 밤하늘을 보는 걸 좋아했다고 했잖아요. 그것도 기억해요?”

“…그래.”

“일고여덟 살 때쯤이었나. 어느 날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봤어요. 그런데 운 좋게도 아주 가까운데에 떨어져서, 다음 날 거기 가 봤어.”

무감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뺨 위에 투명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이작은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입만 움직여 되물었다.

“…그래서.”

“그냥 돌이었어.”

푸른 여명이 하얗게 뜬 얼굴 위로 내려앉았다. 그녀의 눈은 아이작을 보고 있었지만, 눈에 비치는 건 아이작이 아니었다.

“그렇게 예쁘게 하늘을 비추던 별이 울퉁불퉁하고 아주 못생긴 돌이었어. 왜 그랬을까. 하늘에서는 그렇게 예뻤는데… 땅에 떨어지니까 엄청 볼품없고 흉측하게 변해버렸어.”

회한이 서린 눈은 그날의 유성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유성에 아이작을 겹쳐 보고 있었다.

“당신도 똑같아요.”

찬기에 싸늘하게 식은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달리아는 떨리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추위에 떠는 몸과 달리 눈시울은 또다시 차오른 눈물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 당신이 나 때문에 추락하는 꼴 보기 싫어. 부인도… 정부도 되기 싫어요. 그냥 나 놔주고 별로 남아 있어 줘.”

“…닥쳐.”

“당신하고 난 너무 안 어울려. 나 그냥 죽게 내버려 둬요. 제발…”

“닥치라고 했어.”

“그냥 없는 것처럼, 만나지 않았던 것처럼…”

“닥쳐! 닥치라고! 닥쳐, 제발!”

고함을 내지르며 달달 떠는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분개에 찬 목소리와 다르게 막상 그녀를 끌어안는 자신의 몸짓 또한 절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죽는다면서, 놔 달라면서.

이렇게 별 것 아닌 추위에도 발작하듯 오들오들 떨어대는 꼴이 가엾고 슬프고 처연했다. 그녀의 의지와 달리 그녀의 몸은 살고자 부들부들 떨고 있다.

“아이작. 우린 안 돼. 그냥, 나 이대로…”

“몇 번을 말해! 너 죽는 꼴 보기 전에 나 먼저 죽어버릴 테니까 제발… 가만히 있어.”

“제발, 나 좀…”

“그만, 그만하라고 했지! 별이고 뭐고, 그냥, 그냥 같이 함께 있는 걸로 만족하면 안 되는 거야? 왜, 대체 뭐가 그렇게…!”

목에 닿는 축축한 습기가 그녀의 눈물인지 자신의 것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그저 그 뜨거움이. 어깨를 타고 흐르는 축축한 느낌만이 생생하게 감각을 일깨웠다.

소리 없이 오열하던 아이작이 이내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그에 맞춰 흐느낌을 이어가던 달리아도 상체를 들썩이며 처참한 울음을 토해냈다.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두 사람 위로 하얀 여명이 위로하듯 빛을 내리쏟았다.

* * *

거처를 옮긴 건 그로부터 삼 일 후였다.

주말이 지나면 불현듯 사라지던 아이작이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헬만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달리아의 곁을 지켰다. 그렇다 갑자기, 집을 옮기겠다는 말을 하고서 어떠한 부연 설명도 없이 달리아를 차에 태웠다.

차가 도착한 곳은 수도의 기차역이었다. 아이작과 비참한 조우를 이뤘던 바로 그 장소.

기차역에는 우브랑에서 수도에 올라올 때 타고 왔던 호화로운 2량 기차가 달리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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