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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타액과 체향이 뒤엉켜 어디서부터가 자신이고 상대인지 경계가 불분명해졌다. 입술을 맞댄 채 하염없이 그녀를 탐하던 아이작은, 문득 달리아가 반응이 없다는 걸 깨닫고서 거칠게 숨을 내쉬며 상체를 들어 올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만하라고 애원하던 게 무색하게도 달리아는 눈을 감은 채 기절한 것처럼 잠들어 있었다. 허리가 움직일 때마다 몸 전체가 위아래로 들썩이는데, 여간 힘들었는지 격한 흔들림에도 눈꺼풀은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아이작은 아쉬움을 삼키며 천천히 몸을 빼냈다.
잠든 그녀의 얼굴이 살풋 일그러지더니 붉게 부어오른 입술 사이로 앓는 듯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 작은 반응마저 사랑스러워, 아이작이 고개를 숙여 조심스레 입술을 머금었다.
“그래. 오늘만 있는 건 아니니까. 못다 한 나머지는 내일 또 하면 되니까.”
혼잣말이 우스워 실소를 흘렸다. 스치듯 가벼운 입맞춤을 마지막으로 그녀를 내려놓았다.
몸을 떼자마자 달리아가 몸을 부르르 떨며 이불로 손을 뻗었다. 꽤 오랜 시간 차가운 물에 들어가 있었으니 감기에 걸릴지도 몰랐다.
아이작은 서둘러 수건을 갖고 와 달리아의 몸을 닦고서 구겨진 시트를 반듯하게 폈다.
체액이 묻은 시트가 다소 찝찝했지만 시종을 부르면 그녀가 깰 것만 같아 그냥 이대로 재우는 게 나을 듯싶었다. 대신 깨끗한 수건을 몸 아래에 깔고 구석에 굴러다니던 베개를 집어 머리에 대 주었다.
꿈만 같아.
자는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자신의 얼굴 위로 묘한 위화감이 느껴져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그리고는 한껏 치켜 올라간 입꼬리를 느끼고서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모든 게 꿈만 같아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아… 어떡하지.”
자꾸만 더 좋아져서. 좋아지기만 해서.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는데 이렇게 사랑을 나누니 정말, 미친다는 게 딱 이런 거구나 싶었다.
환상통처럼 뇌리를 급습하는 과거의 트라우마는 이제 더 이상 어떤 식으로도 아이작을 괴롭힐 수 없었다. 그녀와 함께하는 열락 안에서 아이작은 무적이었다.
어떤 것도 무서울 것 없는 곳에서 그가 두려운 건 하나뿐이었다.
달리아.
지금 눈앞에 누워 있는 달리아 벨로흐.
기갈 든 마음을 해소할 수 있는 것도,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도 그녀뿐이라서. 달리아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피가 마르는 기분이 들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혹여 또다시 마음의 문을 닫는 일은 없겠지.
간밤의 일은 꿈이었다고… 그런 식으로 회피하지는 않겠지?
작은 걱정이 조금씩 덩치를 키워 머릿속을 압박했다. 아이작은 애써 부정하며 달리아의 눈꺼풀에 입맞춤을 남겼다.
상흔으로 뒤덮인 손등을 살며시 매만졌다. 볼록한 상처를 손가락으로 덧그리다가 튀어나온 관절을 스쳐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하나하나 손가락을 더듬어가던 아이작이 약지에서 멈춰서 한참 동안 손가락을 지분거렸다.
그녀로 꽉 찬 머릿속에, 어린 시절의 달리아의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집값만큼 비싼 드레스를 걸치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