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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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주인님께.

안녕, 주인님.

오늘은 첫눈이 오네요. 주인님께서 좋아하시는 눈이에요.

같이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오늘은 많이 바쁘신지 별채에 오지 않으시네요. 겸사겸사 빈 시간에 용기를 내어 편지를 씁니다.

주인님. 혹시 밤하늘의 별을 본 적 있으세요?

제 고향은 하늘이 무척 깨끗해서 밤이 되면 은하수가 끝도 없이 펼쳐졌어요. 시간에 따라 위치도 바뀌고 반짝임도 변해서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싫증 나질 않았답니다.

하지만 헬만에서는 별이 잘 보이지가 않아요. 가끔가다 유성이 떨어지는 걸 볼 수 있지만 그마저도 운이 좋아야 해요. 늘 자리를 지키는 건 저 북극성 하나뿐이지요.

그러고 보면 처음 여기 왔을 때.

텅 빈 밤하늘에 그 별 하나뿐인 게 꼭 제 처지와 비슷한 것 같아서 무척 외롭고 쓸쓸했어요. 그래도 그 별은 매일 같은 자리에 똑같이 떠올라 있었어요. 그게 꼭, 세상에 외톨이는 저 혼자뿐이 아니라고 저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아서 무척 힘이 되었어요.

그렇게 열심히 저택에서 일했지요. 그러다가 그 별보다 더 밝고 환하게 저를 위로하는 사람을 발견했답니다.

돌이켜보면, 주인님께서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반짝이는 사람이었어요.

어여쁘고 사려 깊고 현명하시고 배울 점도 많고… 무척 멋진 분이셨어요.

저 같이 무지몽매한 사람에게 주인님 같은 분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비춰졌는지 도무지 글로 써 내릴 수가 없네요.

그렇게 멋진 분이셨으니 사랑할 수밖에 없었지요.

대체 언제부터 이런 마음이 들었을까, 아무리 되짚어봐도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어쩌면… 처음부터.

주인님께 유난히 애틋한 마음이 들었을 때부터 내내 주인님을 좋아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주인님께서 저를 좋아하신다니 얼마나 당황스러우면서도 기쁘던지요. 저도 주인님을 좋아한다고 소리높여 외치고 싶었답니다.

하지만, 주인님.

당신 곁에 서기에는 제가 너무 초라했어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주인님을 마음에 담았을 때에는 서로 가까웠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주인님은 점점 더 높은 곳으로 날아가시고, 이제는 그 간극을 메우는 게 벅찰 지경이 되었어요.

당신의 격에 걸맞지 않은 스스로가 너무 싫어졌어요. 자꾸 제가 미워요.

난 왜 부모 없는 고아가 되어 버렸을까. 왜 이렇게 궁핍한 마음을 버리지 못할까. 교양도 없고 집도 없고, 말재간도 없고.

주인님의 결혼 상대처럼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어여쁘고 우아했다면. 좀 더 제대로 된 인간으로 태어났더라면.

…이럴 거면 나는 왜 태어났을까.

미워하고, 미워하고, 또 미워해도. 그래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만 길어질 뿐이지요.

왜 이렇게 됐을까요.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나를 유일하게 사랑해 주는 사람은 나뿐이었는데. 제게 맞지 않은 이를 사랑하려 드니 이제는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당신에 대한 마음을 접기로 마음먹었어요.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느라 내가 딛고 있는 지반을 엉망으로 짓밟는 일은 옳지 않아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은 되지 않기 위해서, 나의 땅, 나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저는 주인님을 떠나요.

떠나는 저를 용서해 주세요.

용서하지 못하더라도 부디 슬퍼하지는 마세요. 곁에 있으면 늙고 변화하겠지만 추억 속의 저는 결코 바래지 않을 테니까요.

주인님과 함께한 추억들은 제 속에서 영원히 무지개처럼 반짝일 거예요. 어쩌면, 우브랑의 은하수보다 더 빛날 수도 있겠지요.

소중한 추억을 남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감사했어요. 늘 건강하세요.


추신.

선물로 주신 금화 말인데요. 그대로 돌려드리고 싶었는데, 조금 욕심을 부리려고 해요.

2골드만 빌려주세요. 언젠가 연이 닿으면 꼭 갚을게요.

이걸로 드디어 5골드가 됐네요. 제 꿈에 가장 큰 기여자는 예나 지금이나 주인님이세요.

꽃가게에 주인님도 함께 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대신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늘 당신을 그릴게요. 겹쳐진 꽃잎 사이에도, 푸른 잎사귀의 가장 연약한 잎맥에도, 잎새에 맺힌 이슬에도 항상 당신의 자취를 그릴 거예요.

주인님은 제게 그만한 가치가 있었으니까.

아이작은 늘 가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사랑했어요. 아이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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