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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 달라니.
듣고도 믿기지가 않아 우두커니 그녀를 응시하고만 있었다. 달리아는 시선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모로 세워 먼 곳을 응시했다.
“이제 와서 고백하기는 부끄럽지만… 사실은. 저도 아주 오랫동안 주인님을 좋아했어요.”
타액으로 촉촉이 젖은 입술이 꿈 같은 고백을 토해낸다.
“좋아하면 안 되는데 그래도 좋아서. 계속, 계속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러기 싫어요. 그래서 조금 용기를 냈어요. 왜냐면, 내일이면.”
짧은 침묵 후에, 달리아가 한결 작아 든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주인님, 이제 내일이면 다른 분의 남편이 되시잖아요. 그럼 적어도 오늘 하루는… 오늘은 제게 주인님을 주세요.”
성토하듯 말하는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진 뺨보다 더욱 발갛게 익어 있었다.
아마 색으로 나타낼 수 있다면 분홍빛이었을 듯한 그녀의 숨결, 물기가 서린 눈시울에 은은히 드리운 노란 음영. 보드랍게 다가와 숨을 압박하는 특유의 체취까지…
아이작은 눈도 깜빡이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이윽고, 제 것 같지 않은 쉰 목소리로 흘리듯 말을 던졌다.
“사랑한다고…하면.”
갈라진 목소리를 가다듬고 힘겹게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사랑한다고 해 봐.”
“…사랑해요.”
“한 번, 더.”
“사랑해요, 주인님.”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튀어나온 고백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이성이 한계를 잃고 뚝 끊어져 버렸다.
바쁘게 쥐었다 폈다 하던 주먹을 펴 달리아의 뒷머리를 붙잡았다. 그대로, 입술을 겹쳤다.
빨아들일 것처럼 거센 입맞춤으로 그녀를 몰아붙이며 다른 손으로 달리아의 허리를 붙잡았다.
한 손으로 가볍게 몸을 들어 올리자 달리아가 목덜미를 와락 끌어안고서 더욱 깊이 입술을 맞대왔다. 후들거리는 하얀 다리가 자연스레 그의 허리를 감싸고, 아이작은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하체를 받아든 채 침대로 걸음을 옮겼다.
“…응, 흣…”
입술의 틈이 벌어질 때마다 비음이 섞인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가 새어나가는 것마저 아쉬워 연신 각도를 바꿔 쉴 새 없이 입술을 밀착했다.
물어뜯을 것처럼 아랫입술을 깨문 채 그녀를 눕히자 달리아가 통증이 이는지 눈살을 찡그렸다.
다급히 옷을 벗어 재끼며 고개를 숙여 입술과 뺨, 눈꺼풀에 끊임없이 입을 맞췄다. 보이는 모든 곳에 입술을 뭉개며 떨리는 손으로 타이를 끌어내렸다.
잘 풀어지지 않는 단추가 짜증스러워 셔츠 자락을 움켜쥔 채 뜯어버리려던 찰나,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린 달리아가 그보다 더 달달 떨리는 손길로 아이작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움직이는 손가락이 자꾸 미끄러졌다. 늘 빠르게 옷 시중을 들던 그녀답지 않게 몹시 서툰 손길이었다. 그 서툰 손길이 지나치게 애틋하고 기꺼워서, 인내하며 손길을 참아내던 아이작은 세 번째 단추를 풀어 내리려던 순간 참지 못하고 뚜둑, 셔츠를 뜯어냈다.
“내가… 벗을 테니까. 가만히…”
띄엄띄엄 말을 읊은 뒤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혈홍 자국이 늘어날수록 달리아의 숨결도 거칠어졌다. 눈을 감은 채 그의 입술을 느끼던 달리아는 목덜미를 배회하던 입술이 아래로 향하자 흠칫하며 몸을 웅크렸다.
아이작은 개의치 않고 쇄골과 윗가슴을 더듬으며 내려가다가 부풀어 오른 가슴을 거침없이 집어삼켰다.
“아…!”
열기 오른 달리아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지더니 파들파들 떨리는 입술 사이로 새된 신음이 새어나왔다.
꺼질 듯 길게 이어진 신음이 흥분에 불을 지폈다. 아이작은 경련이 이는 손을 두어 번 다잡아 필사적으로 충동을 억제했다. 가슴을 배회하는 입술이 연신 잔떨림을 반복했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헤집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도달할 수 없는 한계까지 본능이 치달으면 꼭 피를 보고야 말았다. 그런 파괴적인 충동에 홀려 그녀를 해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다정하게, 관능적으로 탐하고 싶을 뿐.
아이작은 깊이 숨을 내쉰 뒤 한결 부드러운 몸짓으로 그녀를 안았다.
갈빗대가 도드라진 하얀 살결은 늘 꿈속에서 그려왔던 감촉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말랑했다. 혀를 굴리자 그녀의 체취와 온기가 섞여 넋이 나갈 듯한 향미를 느끼게 했다. 도취되어 자꾸 흐릿해지는 시야를 애써 여러 번 환기시키며 아이작은 하염없이 입술과 손을 움직였다.
농염한 애무가 거듭될수록 달리아의 상체가 곡선을 그리며 어여쁘게 휘었다. 하얀 시트 위에 펼쳐진 갈색 머리카락이 삭풍에 팔랑이는 낙엽처럼 이리저리 출렁거렸다.
조금 더 숨이 가빠지고, 조금 더 신음이 거칠어졌다.
“주인, 주인님…!”
탄탄한 상체가 그녀를 짓누르려던 순간,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이리저리 몸을 비틀던 달리아가 울먹이는 외침과 함께 아이작의 가슴에 손을 짚었다.
근육으로 잘 짜인 가슴은 당연한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거절의 제스처를 알아챈 아이작이 우두커니 멈춰 지그시 시선을 쏘아 보냈다.
쾌감에 잠겨 촉촉이 젖은 눈시울로 시선을 받아치던 달리아가 이내 손을 위로 향해 그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희미한 흐느낌 사이로 애원의 말이 흘러나왔다.
“우리, 같이 처음이니까. 다정하게… 상냥하게 하기로 해요.”
서늘하게 굳어 있던 아이작의 표정이 이내 부드럽게 풀렸다.
달리아의 체액으로 흠씬 젖은 손이 노을빛에 물든 가슴을 아프게 움켜쥐었다. 후들거리는 하체를 살짝 들어 올린 후, 아이작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묻었다.
“흑……!”
달리아가 눈을 질끈 감고서 고개를 한껏 위로 쳐들었다.
악다문 턱 아래, 가느다란 목덜미에 핏줄이 곤두서고 부어오른 눈가에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아이작은 미칠 것 같은 기분을 억누르며 지독하게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괜찮을 거야, 부드럽게 할 테니까, 조금만, 조금만…
철부지 아가씨를 꼬여내듯 야릇한 속삭임을 이어가며 부드럽게 몸을 치댔다. 그의 말처럼, 움직임이 이어질수록 초록 눈동자 속에 담긴 이지가 바스라지고 흐릿한 쾌감이 그녀의 망막을 잠식해갔다.
“주인… 흑…!”
허리가 허공으로 붕 떠오르더니 이내 가녀린 상체가 파들파들 떨렸다. 아이작은 거세게 그녀를 몰아세우며 쉰 목소리로 속삭임을 내뱉었다.
“주인님 말고… 아이작이라고 해야지.”
“주, 읏, 아이, 아이작…!”
…아. 드디어.
물기와 야릇한 비음이 섞인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모습에 욕정이 극한에 다다랐다. 열기 오른 숨을 내뱉는 입술을 제 입술로 삼켜버릴 것처럼 강하게 내리눌렀다.
뒷목까지 홧홧하게 달아오르게 한 열기가 그녀의 안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퍼져나갔다.
아이작은 한껏 찌푸린 미간을 피고서 느린 속도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격하게 오르내리는 가슴과 달리 이어지는 목소리는 고저 없이 낮게 가라앉아있었다.
“나도.”
무르익은 노을로 인해 짙은 주홍빛에 잠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여열에 잠겨 작게 경련하는 손끝을, 눈물로 흥건히 젖은 뺨을, 몽롱한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봄의 눈동자를.
황혼의 빛을 담뿍 머금은 이 아름다운, 찬란하고도 찬연한 너를.
“나도… 사랑해.”
사랑할 수밖에 없었노라 고백하며 부들부들 떠는 몸을 온 힘을 다해 끌어안았다. 지체 없이 마주 안아오는 손길이 나약하고 또 사랑스러워, 아이작은 감격에 찬 탄식을 그녀의 목덜미에 흩뿌렸다.
* * *
붉은빛이 채워진 방 안으로 푸르스름한 어둠이 밀려들었다.
램프 빛 하나만이 어룽거리는 방에는 교성과 가쁜 숨소리가 가득 차 적막이 내려앉을 틈을 내주지 않았다. 흐느적거리는 몸을 끌어당겨 더욱 거칠게 몰아붙이자, 숨 쉬는 것마저 자극이 되는지 달리아가 얕은 호흡을 거듭하며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몇 번째인지 모를 환희가 동시에 두 사람을 덮쳤다.
느릿하게 깜박거리던 그녀의 눈꺼풀이 어느 순간 완전히 감겼다. 파들거리던 몸이 천천히 이완되더니 침대 위로 풀썩 쓰러져버렸다.
“읏……”
정말로 한계인 듯, 달리아는 미동조차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몇 번째인지 모를 정사에 지쳐 잠든 달리아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아이작도 눈꺼풀을 내려 어둠 속에 잠겨 들었다.
망막에 남겨져 있던 그녀의 모습을 천천히 지운다. 품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따뜻한 체온도, 체액으로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고운 살결도, 안온한 추억을 불러오는 체향마저도.
모두 지우고 나서야 나락 같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품속의 온기가 사라진 걸 깨닫고서 천천히 눈을 떴다.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환한 아침 햇살이 동공을 환하게 밝혔다.
몸만 빠져나간 듯 이불이 접혀 있는 옆자리는 비운 지 한참 됐는지 아무런 온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이작은 부스스하게 흐트러진 머리를 위로 쓸어넘기며 갈라진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달리아?”
공허한 울림 끝에 그보다 더 처량한 정적이 이어졌다.
이상한데.
애매한 불안감과 함께 아이작이 침대에서 벗어났다. 대답하지 않더라도 인기척이라도 나야 했는데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침실을 벗어나 응접실로 뛰었다. 역시, 없다.
드레스 룸도, 서재도, 욕실에도. 방과 이어진 그 어디에도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위병이 지키고 있어서 방을 벗어날 수는 없을 텐데.
“…아.”
그러고 보니.
새벽 즈음에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 것 같아 부끄럽다는 그녀의 요청에 위병들을 밖으로 물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봤자 별채 앞을 지키고 있을 테니 어디 도망갈 수는 없겠지만…
……도망칠 수 없을 텐데.
혼곤한 정신을 애써 추스르며 다시 방을 훑었다. 그러다 문득, 침대 근처의 협탁에 하얀 레이스 리본과 작은 편지 봉투 하나가 놓여져 있는 걸 발견했다.
자신이 선물해 주었던 리본. 그리고… 편지.
남겨진 건 그것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편지가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흘긋 편지로 시선을 향하자 봉투 위에 자그마한 글씨로 ‘주인님께’라고 적혀 있는 글씨가 보였다.
“…….”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는데.
싫은 예감에 선뜻 편지로 손이 가질 않았다. 검지를 매만지며 한참을 망설이던 아이작이 미간을 좁힌 채 느릿하게 편지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역시나.
봉투 겉면에는 동글동글한 필체로 ‘주인님께 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아이작은 초조한 손길로 편지를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