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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쓸 수가 없어서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한 연고 통이었다. 단단히 봉해놓은 채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그의 보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쓰는 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아이작은 실크 꾸러미에서 연고를 꺼내 주춤거리는 발걸음으로 달리아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통을 열려던 순간. 달리아가 커다랗게 뜬 눈으로 그를 보며 어, 하고 탄성을 질렀다.
“주인님. 이 연고…”
혹시… 자기가 선물한 걸 알아보는 걸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흘깃 눈동자를 굴려 달리아를 쳐다보았다. 그의 손에서 연고를 뺏어 든 달리아가 고개를 이리저리 세워 금속 케이스를 쳐다보다가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통 옆이 전부 녹슬었어요. 엄청 오래된 건가 보다. 오래된 연고는 약이 아니라 독이라서 버려야 해요.”
달리아가 틴 케이스의 녹슨 부분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쓰레기통을 찾는 걸까. 아이작은 그대로 버리려는 게 아닐까 싶어 서둘러 그녀의 손에서 연고 통을 빼앗았다.
“내, 내가 버릴 테니까 신경 쓰지 마. 그냥… 위병한테 약 갖고 오라고 해야겠다. 잠깐만 기다려.”
“주인님. 저 정말 괜찮아요. 저 몸 튼튼한 거 하나는 알아주잖아요. 걱정 마세요.”
다정한 목소리로 달래며 달리아가 그를 소파로 이끌었다.
아이작은 마지못해 손길을 따라 달리아의 옆에 앉았다. 달리아는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앉아 있다가 힐긋 아이작을 쳐다보고서는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었다. 입꼬리 끝에 터진 상처에서 언뜻 피가 비쳐 보였지만 아프지도 않은지 계속 웃고 있었다.
……왠지 이상해.
함께 밤을 보낸 이후부터 달리아는 내내 웃기는커녕 시무룩한 얼굴로 망가진 인형처럼 가만히 앉아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요즘은 늘 자포자기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신 풍겨대며 잠옷만 입고 머리도 아무렇게나 풀어헤쳐 놓고 있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지금은 단정하게 드레스를 갖춰 입고 머리도 깔끔하게 묶어 올렸다.
낡은 드레스는 여전히 못마땅했지만 깨끗한 커프스와 카라가 여느 때의 달리아를 연상케 했다. 그렇게 천천히 위로 향하던 시선이 멈춘 곳은 달리아의 머리였다.
높이 올려묶은 포니테일 끝에 하얀 레이스 리본이 자리하고 있었다. 단출한 복장과 어울리지 않는 우아하고도 화려한 리본이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을 느끼게 했다.
기시감의 정체를 좇기 위해 천천히 의식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다 불현듯, 머릿속에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도련님, 이것 보세요. 인형은 엄청 투박한데 매달고 있는 리본은 되게 화려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