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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려는 혀를 붙잡아 급히 엉켜 들었다. 바둥거리는 여체를 간단히 제압한 뒤 숨이 막힐 때까지 입술을 마주 부딪쳤다.
이내 힘을 풀고 마지못해 그를 받아들이던 달리아는 얼마 되지 않아 숨을 참을 수가 없어 도리질 치며 벗어나려고 용을 썼다.
입술을 떼어내자 달리아가 갈급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호흡이 채 안정되기 전에 아이작이 혀로 틈새를 가르며 재차 입 안을 침범해왔다.
“…흐… 읏…”
젖은 신음이 그의 입속으로 허망하게 빨려들어 갔다.
아이작은 아랫입술을 깨문 채 손목을 붙들고 있던 손을 풀어 달리아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그리고, 색욕에 젖어 깊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흘려 넣었다.
“곁에 있기만 해도… 목소리만 들어도 이렇게 미칠 것 같은데. 너를, 대체 어쩌면…”
“으, 주인… 주인님…”
“정말로 금방… 흣, 끝낼 테니까. 입 벌려.”
“제발 그만, 읍…!”
반박하려는 입술을 다시 빨고 깨물어 입을 막았다. 버둥대는 다리를 옭아매고 있던 그의 허벅지가 달리아의 다리를 벌리고 들어와 젖은 틈새를 스치듯 문질렀다.
쾌감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감정에 허우적거리는 달리아를 정염 어린 눈으로 관조하던 아이작이 이내 미간을 찡그리며 탄식을 흘렸다. 물어뜯을 것처럼 입술을 삼키고 입술과 턱, 목선에 점점이 입을 맞추며 내려오더니 가슴 위쪽에 입술을 묻은 채 단단히 몸을 굳혔다.
“하… 윽…!”
일그러진 얼굴 위로 땀방울이 작게 맺히고, 목덜미를 붙잡고 있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반쯤 내리뜬 눈으로 가슴 언저리를 쏘아보던 아이작이 천천히 눈을 감으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달리아는 맞닿은 다리 사이가 축축이 젖어가는 걸 느끼고 입안을 씹으며 눈을 감았다. 지금 일어난 일이 뭔지 모를 만큼 달리아는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그러나 그 어떤 일련의 과정조차 없이 입맞춤만으로 절정에 이르게 된 이 상황에서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닌 것 같았다. 달리아는 머뭇거리다가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가만가만 쓸었다.
들썩이던 어깨가 천천히 잦아들고 호흡도 고르게 안정되었다. 아이작은 불편하지도 않은 건지 일어날 생각 없이 그대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 배려할 필요 없어.”
새하얀 가슴 위에 입술을 갖다 댄 채로 아이작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꼴사납지?”
“…….”
“제멋대로 입 맞추고 혼자 이러고 앉아 있고… 그런데 더 역겨운 게 뭔지 알아?”
아이작은 어깨를 토닥이던 달리아의 손을 끌어당겨 손가락 사이로 자신의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그대로 주먹을 쥐어 단단히 옭아맨 채 달리아의 손등을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이런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거야. 자기 전에 항상 너를 떠올리면서… 매일, 매일… 널 괴롭히는 상상을 해.”
감긴 눈꺼풀이 천천히 들리더니 형형한 안광이 달리아를 마주했다. 번뜩이는 눈동자와 달리 표정은 어둡게 흐려져 있었다.
“떠올리기만 해도, 향기만 맡아도 이 지경이 돼서. 정상이 아닌 것 같아서… 나도 내가 이상한데 너는 더하겠지.”
“…….”
“이럴 땐 어떻게 해? 난 너 아니면 안 되는데. 너 아니면… 흥분할 수가 없는데. 달리아, 너는 나를 싫어하잖아.”
“싫어…하지 않아요.”
말을 부정하자 아이작이 날카롭게 치뜬 눈으로 달리아를 쳐다보더니 미간을 구기며 아랫입술을 감쳐물었다. 굳은 턱 아래로 목울대가 일렁이며 감정을 삭이는 듯 보였다.
“그럼 좋아한다고 해.”
“…주인님.”
“말해 봐. 좋아한다고 말해.”
“그런 말 하지 않으셔도, 저는 늘 주인님을 좋아했어요.”
“그럼 사랑한다고 해 봐.”
정도를 벗어난 물음에 달리아가 말을 잃고 슬픈 눈으로 시선을 외면했다.
이윽고 젖은 목소리가 성토하듯 귓가를 스쳤다.
“…사랑한다고 해. 달리아가 지켜준다고 했던 착한 아이가 나잖아. 나야… 아이작이야. 네 도련님이잖아.”
“…….”
“뭐든지 해 줄게. 너를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신부로 만들어줄게. 예쁜 것만 보고 만질 수 있게 해 줄게. 뭐든… 네가 원하는 건 뭐든. 그러니까.”
사랑한다고, 그 말 한마디만 해 줘.
차마 이어지지 못한 말미를 눈빛으로 대신하며 아이작이 초조한 듯 달리아의 손등을 연신 깨물었다. 아마도 무의식중에 나왔을 눈빛과 몸짓이 숨이 막힐 정도로 애처로워, 달리아는 고개를 숙인 채 입에 고인 침만 연신 삼켰다.
사실 말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성으로 그를 원하는 건 달리아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갈구하는 마음은 그에 못지않았다.
하지만 도무지 입 밖으로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가 결혼할 여자를 죽인다느니 자신을 공작 부인으로 만든다느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를 부정하는 의식의 기저에 깔린 건, 그런 것보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였다.
‘고생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너는 나보다 더하잖아. 너, 그 내전에서 살아남은 고아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