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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는 손바닥으로 입을 누른 채 동그랗게 뜬 눈으로 아이작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깨면 안 되는데.

헝클어진 머리, 땀투성이가 된 몸, 그리고 슬립 차림으로 경박하게 앉아 있는 차림새까지. 이 꼴로 그를 마주하면 어쩌나 싶어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아이작의 어깨가 잘게 들썩이는 걸 보고서 순식간에 증발했다.

“죽일… 안 돼. 안 돼……! 그만, 제발 그만해…”

신음 소리 같은 외침이 침대를 떠돌다 서러운 흐느낌으로 화해 허공 위로 떠올랐다. 보일 듯 말듯 작게 들썩이던 어깨가 이내 눈에 띄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목을 쭈욱 빼 그의 표정을 살폈다. 곱게 내려앉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창백한 뺨이 말간 눈물로 흠씬 젖어있었다.

“흑… 아아… 아니야. 난…! 아니야, 아니야…”

악몽이라도 꾸는 걸까.

그냥 잠꼬대라기에는 지나치게 과격했다. 달리아는 그의 뺨을 붙들어 억지로 자신을 보게 만들고서 아이작의 어깨를 흔들었다.

“주인님.”

“나도 싫었, 흑, 안돼… 가지 마, 안 돼, 안 돼!”

“주인님…!”

“가지…흑, 일부러 그런게… 나는…”

“일어나세요, 주인님!”

버럭 소리 지른 순간 꼭 감겨 있던 눈꺼풀이 천천히 위로 들렸다.

천장을 투영하던 흐린 동공으로 이내 또렷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젖은 속눈썹이 달빛에 반사되어 연하게 반짝였다.

“주인님…?”

“…….”

“무슨 눈물을 이렇게 흘리세요. 나쁜 꿈이라도 꾸셨나 봐요.”

젖은 뺨을 손바닥으로 닦아내자 창백하던 낯에 천천히 온기가 돌아왔다.

가슴을 들썩이며 숨을 고르던 아이작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달리아를 마주 보고서 다시 눈매를 일그러트렸다.

대체 왜 또 우는 건지, 놀랄 새도 없이 아이작이 손을 들어 달리아를 거칠게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가지 마. 가면 안 돼…!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어…!”

“주, 주인님. 진정하시고…”

“살고 싶어서 그랬어. 어쩔 수 없었어… 가지 마, 제발…”

아이작은 울음을 터트리며 달리아의 목덜미에 끊임없이 속삭임을 뱉어냈다.

밀어내려 했지만 품으로 파고드는 힘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바짝 핏줄이 선 팔뚝이 으스러트릴 것처럼 상체를 끌어당기고 뜨거운 숨이 목과 귀 언저리의 체온을 높였다.

…엄청 지독한 꿈을 꿨나 보다.

“괜찮으니까 진정하세요. 진정하세요, 주인님.”

달리아는 뿌리치려는 의지를 꺾고 가만히 그의 등을 토닥였다.

자신을 별채에 가둔 이를 다독이고 있다니. 달리아는 속으로 작게 조소했다.

늘 그에게 쌀쌀맞게 대하려 노력했는데, 이렇게 처량한 모습으로 울고 있으니 마냥 무시할 수가 없었다. 꼭 손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흐느낌이 잦아들고 가쁜 숨만 귓불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부둥켜안은 손은 여전히 꼼짝없이 달리아를 속박하고 있었다.

팔에 힘을 줘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곧 움찔하며 더욱 거세게 자신을 끌어당긴다. 벗어나려는 노력이 아무 소용없는 것 같아서 달리아는 몸의 힘을 쭈욱 빼고 그가 진정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꿈을 꿨어.”

갈라진 목소리로 아이작이 입을 열었다. 느슨해진 틈을 타 달리아가 꿈지럭거리며 고개를 들어 올리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작은 저를 조심스레 매만지던 때와 달리 성의 없는 손길로 눈가를 닦아내며 달리아에게 시선을 쏟아냈다. 젖은 눈시울이 평소보다 훨씬 더 그를 애처롭게 비쳐 보이게 했다.

“무슨 꿈을 꾸셨는데요?”

“…르네가 나오는 꿈.”

“르네요?”

“응… 나를 낳은 사람.”

어머니에 대한 화제는 기피하는 아이작이 먼저 그녀를 입에 올리다니, 무슨 일인가 싶어 달리아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어머님이 어디가 잘못됐어요?”

아이작은 희미하게 고개를 저어 질문을 부정했다. 그러나 이어진 말은 부정이 아니었다.

“죽었어… 죽였어.”

달리아의 눈이 저도 모르게 훅 커졌다. 

세상에.

어머니가 누구에게 죽임당하는 꿈을 꾼 걸까.

악몽이라 표현하는 게 실례일 만치 지독한 꿈이었다. 이유를 들으니 왜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며 잠꼬대를 한 건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달리아는 여전히 젖어있는 눈시울을 손가락으로 꼼꼼히 훑으며 다정하게 그를 얼렀다.

“괜찮아요. 다 꿈이에요. 이제 그런 일 없어요.”

“나 잘못한 거 아니지? 어쩔 수 없던 거였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또다시 울먹거리는 표정을 보니 괜찮다고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달리아는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부드럽게 그의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겼다.

“네. 주인님은 잘못한 거 없어요.”

“나 싫어하지 마. 가지 마… 달리아. 나 두고 가지 마.”

“저 어디 안 가요. 그러니까 그만 우세요.”

“안 울게. 안 울 테니까 가면 안 돼.”

“저 어디 안 간다니까요…”

안 갈 거라고 연거푸 말을 거듭했지만 아이작은 그보다 더 강한 어조로 가지 말라 몇 번이고 다짐을 받아냈다.

여섯 번째로 절대 곁을 떠나지 않겠다 말하자 그제야 안심이 된 듯 표정을 풀며 웃는지 아닌지 모를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붉어진 눈시울을 보니 괜히 가슴 한쪽이 저릿해졌다. 달리아는 그의 눈가를 살며시 어루만지며 태연한 목소리를 가장했다.

“주인님. 언제 오신 거예요?”

반쯤 감고 있던 눈을 완전히 감으며 아이작이 긴 숨을 내뱉었다.

“아까… 왔는데. 달리아가 자고 있길래 그냥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소매를 붙잡고 안 놓잖아. 그래서 그냥 나도 누워버렸어.”

“제가요? 자다가 주인님을 붙잡았다고요?”

“응.”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이유에 달리아가 할 말을 잃고 머쓱한 얼굴로 마른세수를 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하나 망설이던 찰나, 그의 손이 달리아의 어깨를 스쳤다.

뭘 하나 싶었더니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슬립 끈을 끌어당겨 슬립을 정돈해 주고는 눈 둘 곳을 찾지 못한 채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치켜든다.

아무 생각 없이 아이작의 품 안에서 바르작거리던 달리아는 그제야 자신의 옷차림을 깨닫고 후다닥 이불을 끌어 올렸다.

“괜찮아. 하나도 신경 안 쓰여. 괜찮아.”

아이작이 위로랍시고 등을 토닥이며 다정하게 말했다. 그 태도가 더욱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저,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

“괜찮아. 안고 있어서 어차피 잘 보이지도 않아.”

“…놔 주세요.”

“벽난로를 안 켜 놔서 추울 거야. 이대로 있어.”

“주인님. 저택으로 안 돌아가실 거예요?”

“저택으로 돌아가면, 악몽이 계속 이어질 것 같아.”

울면서 잠꼬대를 하던 그가 꿈 얘기를 하니 달리아로서도 더 이상 가라고 내쫓을 수가 없었다. 아이작은 쐐기를 박듯 담담히 말을 읊었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그냥 여기서 잘래. 달리아도 같이 자자.”

그윽한 저음이 달래듯 귓가를 스치고 등을 붙잡고 있던 손이 더욱 강하게 그의 품으로 상체를 끌어당겼다.

흠칫하며 몸을 굳힐 때마다 손아귀의 힘이 세져서, 달리아는 딱히 어쩌지도 못한 채 그에게 안겨 가쁘게 숨만 내쉬었다.

빈틈없이 달라붙은 상체 너머로 습한 열기가 느껴졌다. 뺨에 닿은 가슴이 박동에 맞춰 미미하게 들썩였다.

여자도 아니면서 아이작의 가슴은 위로 올라붙은 대흉근 덕분에 중간에 작게 골이 나 있었다. 승마를 취미로 삼기 시작하면서부터 체형이 급격히 변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몸이 탄탄해졌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원래 이맘때의 남자 몸은 다 이런 걸까. 상체를 결박하고 있는 팔뚝이 바위처럼 단단했다. 군살이라고는 하나 없는 복근과 두꺼운 허벅지까지, 짙은 체취와 더불어 그를 이루는 모든 게 지나치게 생생했다.

나만 이렇게 의식하는 건가?

흘긋 눈을 들어 올리자 정작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아이작은 미동 없이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정말 자의식이 지나친 게 아닌가 싶어 민망해졌다. 뜨끈한 눈매를 연신 쓸며 호흡을 갈무리하던 참이었다.

치골 언저리에서, 살을 밀어내며 부피를 키우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움직이지 마.”

지독하게 낮은 속삭임과 함께 하아, 열기가 서린 깊은 한숨이 정수리 위로 내려앉았다.

야릇한 기색이 완연한 목소리에 달리아가 어깨를 움츠린 채 숨을 삼켰다.

“냄새가 너무 강해서.”

아이작은 등을 옥죄고 있던 팔을 슬쩍 풀고서 달리아의 날개뼈 부근을 더듬었다. 살갗을 어루만지던 손가락이 이내 등줄기를 따라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왔다.

“자려고 했는데 달리아 냄새가 너무 강해서… 들이마실 때마다 자꾸 흥분돼.”

나른한 어조에 잠기운이 가득 묻어났다. 허리 주변을 배회하는 손가락에 열감이 서려 스치는 곳마다 미지근한 체온을 남겼다.

당황한 달리아가 몸을 뒤로 물리려고 했지만 아이작이 기다렸다는 듯 다리를 얽어 하체를 바짝 밀착했다. 예민한 곳을 짓누르듯이 크기를 키우는 그의 흥분에 달리아는 초조한 얼굴로 입술을 잘근거렸다.

“주인님… 놔 주세요.”

“신경 쓰지 마. 아무것도 안 해. 가만히 있다 보면 금방 잠잠해지니까…”

신경 쓰지 말라는 말과 달리 아이작은 정수리에 입술을 묻은 채 한결 강하게 달리아의 체취를 들이마셨다. 허리께를 지분거리는 손길, 바짝 힘이 들어가 하체를 붙들고 있는 그의 허벅지가 당장이라도 부서트릴 것처럼 달리아를 세게 옥죄었다.

길고 곧은 손이 달리아의 턱을 배회하다가 슬그머니 위로 치켜세웠다. 동시에 정수리를 맴돌던 입술이 이마로 미끄러져 내려와 한참을 머물렀다.

부드러운 입맞춤과 달리 다리 사이를 짓누르는 그의 분신은 잠잠해지기는커녕 더욱 강하게 달리아를 압박했다. 대체 어쩌면 좋을지 난감하던 찰나 아이작이 눈썹에 입술을 댄 채 한숨처럼 속삭임을 내뱉었다.

“…입 맞추면 안 돼?”

낮게 끄는 듯한 목소리로 애원하며 달리아의 귓바퀴를 매만진다. 반쯤 감은 눈매 속에 미처 숨기지 못한 욕정이 넘실거리는 모습을 보니 거절하면 입맞춤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어영부영 분위기에 휩쓸리는 건 싫었다. 달리아는 입을 꾹 다문 채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아이작은 고개를 아래로 숙여 달리아와 시선을 맞춘 채 손끝으로 그녀의 뺨을 쓸어내렸다. 미간을 추어올린 채 서글픈 표정으로 눈을 내리떴다가, 다시 달리아를 보며 애절하게 말을 잇는다.

“금방 끝낼 테니까… 눈 감아.”

싫다고 거절할 틈이 없었다. 바르작대던 손목이 순식간에 휘어 잡히고, 아이작은 그대로 고개를 틀어 그녀의 입술을 머금었다.

깜짝 놀란 듯 커다란 눈망울이 바쁘게 꿈벅대다가 이내 스르르 내려온 눈꺼풀에 종적을 감췄다. 파들파들 떨리는 속눈썹을 눈에 담으며 아이작은 본격적으로 그녀의 입속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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