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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눈으로 아이작을 바라보던 달리아가 이내 입매를 실룩거리더니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도련님은 참 순진하시다니까.
건조한 얼굴로 뭘 그리 뜸을 들이나 했더니. 답지 않은 농담을 계속 이어가는 게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하녀에게 약혼이라니.
눈앞의 도련님은 몸만 훌쩍 컸지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지 못한 소년이었다. 사춘기 무렵 가장 갈구하는 것들이 다정한 태도와 상냥한 말이라는 것도, 그로 인해 자신과 같이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이 얼마나 쉽게 우상이 될 수 있는지도 달리아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좋아요.”
어떤 감정도 투영하지 않던 아이작의 얼굴 위로 서서히 놀라운 빛이 번져갔다. 달리아는 생글거리며 은밀한 어조로 말을 덧붙였다.
“그래요. 그럼 도련님께서 성년식을 치르는 날. 그때까지 마음이 변치 않으신다면 정식으로 청혼해 주세요.”
몸을 일으킨 달리아가 길게 손을 뻗어 아이작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아마 그때가 되면 도련님 마음도 변하시겠지만요.”
뺨을 쓸어내리는 손바닥에서부터 봄을 닮은 향기가 전해져왔다.
아이작은 허벅지를 움켜쥐고 있던 손에 힘을 빼고 흐린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장난스러운 어조로 내뱉은 그녀의 말들이 머릿속을 꽉 채워 의식마저 흐릿하게 만들었다.
“그럼 도련님, 청소 끝났으니까 이만 가 볼게요.”
달리아는 망설임 없이 손을 거두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 테이블 앞에 놓인 청소도구함을 집어 들었다. ‘그럼 쉬세요’, 인사말과 함께 문소리가 사라진 후에도 아이작은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1분이 10분이 되고, 10분이 다시 한 시간이 되고. 시간이 흘러도 한 번 흘러나간 넋은 원래 있던 자리에 제대로 안착하지를 못했다.
정식으로 청혼해 달라고.
“……정말로…”
우두커니 앉아 책상만 바라보던 아이작은 다시 펜을 들어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빈 종이 위로 나붓하게 글씨가 새겨졌다.
‘공리주의의 재해석’. 책을 빼곡히 메우고 있던 문장들이 가느다란 손가락에 의해 새로운 곳으로 거취를 옮겼다. 멋들어지게 이어지는 글씨와 달리 글줄을 따라가는 동공은 크게 확장되어 이리저리 흔들리기 바빴다.
…본인의 행복을 희생함으로써 타인의 행복을 증진한다는 건 사회의 불완전성을 입증하는 바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