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꿈속의 시야가 점차 탁해졌다.
더러운 방에 카를라가 찾아와 아이작을 찾았다. 구석에 웅크려 있던 아이작이 칼을 빼 들면서부터 망막에 뿌연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절망이 끝났다.
꿈의 종말은 늘 갑작스레 찾아온다. 하얀빛이 온 시야를 점령하고 잠들어있던 오감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코끝을 스치는 희미한 탄내에 안도하며 아이작이 느릿하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하…”
손을 들어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은 이마를 짚었다. 차게 식은 이마보다 더 차가운 손이 선뜩했다.
몸에 달라붙은 잠옷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잡아당기자 주머니에 담겨 있던 물건이 투둑 소리를 내며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뭔가 싶어 아래를 쳐다본 아이작은 물건의 정체를 깨닫고 다급한 손길로 바닥을 더듬거렸다.
“안 돼, 안 돼…”
철제 통에 담긴 동그란 연고가 손에 닿았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술렁거리던 마음을 순식간에 가라앉혔다.
조심해야지. 절대 잃어버리면 안 돼.
후, 짧은 한숨을 기점으로 서늘한 몸에 온기가 돌았다.
냉기가 감돌던 철제 통이 체온으로 미지근하게 달궈졌다. 혹여 놓칠까 싶어 통을 세게 움켜쥐었다. 손을 내려다보는 아이작의 얼굴 위로 서글픈 자괴감이 가득 서렸다.
죽을 때까지 소중하게 간직해야지. 그녀가 준 선물이니까.
달리아가 준…… 보물이니까.
“달리아…”
신음처럼 흘러나온 이름이 허공을 떠돌다 새벽빛 너머로 조용히 스러졌다. 일그러진 눈매에 그리움인지 안도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고였다.
끝났어.
끝난 거야. 이미 끝난 일이야.
르네의 집은 과거로 변질된 지 오래고 꿈은 진작에 끝났다. 어미를 죽인 공백의 패륜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현실에 존재하는, 침대에 앉아 있는 자신은.
‘도련님을 좋아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