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99화 (199/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외전 7. 타 차원의 침공? (3)

측정 불가 게이트가 요동치기 시작한 여파는 굉장히 컸다.

“폐하! 게이트들이 연쇄적으로 이상 반응을 보이고 있사옵니다!”

“크…… 큰일 났사옵니다! 보랏빛 게이트들이 힘을 내뿜고 있사옵니다. 이대로 놔뒀다간 주변 지역을 죄다 오염시켜 버릴 것 같습니다!”

타리온과 월크셔 공작의 회색빛 게이트의 움직임이 시작된 순간 보랏빛 게이트 역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게 시작이라는 것이다.

게이트 예상 지점으로 보이는 곳에 한꺼번에 게이트가 생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봉쇄되어 가던 게이트 역시 다시금 타 차원의 존재들이 넘어오기 시작했다.

“전쟁은 지금부터라는 건가?”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대로 안정적으로 타 차원의 자원들만 빼먹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신들이 그걸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신이 없는 세계」

카리엘이 개인적으로 구상하고 있는 목표를 담은 책.

신에 의해 운명이 종속되는 세계가 아닌, 오직 자신들의 의지만으로 모든 것을 개척할 수 있는 세계.

그것이 카리엘이 꿈꾸는 세계였다.

케찰코아틀의 제안을 거절할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인류는 이겨 낼 수 있다.’

버텨 내는 것이 아닌 이겨 내는 것.

생존을 넘어서 타 차원마저 압도하는 힘을 구축하는 것.

어쩌면 발드르는 이런 카리엘의 마음을 읽었기에 안심하고 소멸을 택한 것일 수도 있었다.

“지금부터 비상 체제로 전환한다. 제국민들에게 지금 즉시 모든 사실을 알리도록.”

“예! 폐하.”

카리엘의 명령에 모든 이들이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어차피 내정은 루피엘, 군권은 세리엘에게 맡겨 두었으니 동생 놈들이 알아서 할 터.

자신은 원탁의 구성원답게 측정 불가의 게이트만 신경 쓰면 되었다.

“회색빛이라…….”

-떨리냐?

수르트의 물음에 카리엘이 쓴웃음을 지었다.

떨리냐고 묻는다면 당연하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진짜로 신급 존재가 나타날 수도 있고, 그게 누구든 홀로 상대해야 하는 상황.

본래의 계획대로라면 글렌과 시카리오 후작이 같이 상대했겠지만, 보랏빛 게이트들까지 폭주할 위험이 있는 관계로 그 둘에게는 보랏빛 게이트들을 맡겨야 했다.

“글렌 공과 시카리오 공은 보랏빛 게이트들을 맡아 주시오.”

“폐하.”

“아니 되옵니다.”

카리엘의 명령에 글렌과 시카리오 후작이 곧바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그리고 그건 세리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됩니다! 형님 홀로 게이트를 막겠다니요! 절대 안 됩니다!”

세리엘의 강력한 반대에 시카리오 후작도 말을 얹었다.

“홀로 회색빛 게이트를 막는 건 너무 위험하옵니다. 보랏빛 게이트들은 이그니트 군대가 막아 보겠사오니 회색빛 게이트에 힘을 모으시는 것이…….”

“신대륙의 거대한 뱀처럼 강대한 존재가 나타난다면…… 이그니트의 군대로 막을 수 있다 보시오?”

카리엘의 물음에 시카리오 후작이 다물렸다.

그건 글렌 역시 마찬가지였다.

셋이 힘을 합친다면 모를까, 단독으로는 장담은커녕 버티기도 어려운 괴물.

보랏빛 게이트에서 그러한 괴물이 나타난다면 이그니트의 군대로는 절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보랏빛 게이트에서 그런 존재 딱 하나만 나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다수의 존재들과 함께 나타난다면 그랜드 마스터과 군대가 힘을 합쳐 막아야만 했다.

“하오나 폐하.”

“안전한 전장만 돌아다니기 위해 원탁의 구성원이 된 것이 아니오.”

걱정 어린 글렌의 말을 자르면서 대답한 카리엘.

어느새 그의 곁에는 네 명의 소환체들이 작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묘한 힘을 발산하는 작은 소환체들.

분명 힘의 파장은 미약했으나, 글렌과 시카리오 후작의 표정은 단번에 굳어졌다.

갑자기 굳어진 그들의 표정에 세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기 마스터 후보이자 마스터의 경지를 코앞에 두고 있는 세리엘조차 느끼지 못한 힘.

“……폐하.”

“…….”

두 그랜드 마스터가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자 그런 그들을 보며 카리엘이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동안 놀고만 있던 건 아니오.”

“이건…….”

“짐이 찾은 다음 단계의 해답이오.”

카리엘의 말에 글렌과 시카리오 후작이 침을 꿀꺽 삼키면서 멍하니 자신들의 황제를 바라보았다.

“아직 이 길이 완벽하진 않다고 보오. 어쩌면 틀린 길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지부진하던 카리엘의 성장이 다시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중요했다.

이것이 틀린 길이라 하더라도 지금 당장에는 성장이 필요한 법.

서대륙에 있는 주요 잔재들과 변이 몬스터들과 계약하면서 카리엘은 막혀 있던 길을 뚫어 냈다.

카리엘은 애초에 마왕처럼 스스로의 강함으로 성장을 이룬 것이 아니다.

발드르가 부여한 힘과 그것을 바탕으로 소환체들과 계약하면서 점점 성장해 왔다.

그리고 최근 다양한 존재들과 계약하면서 카리엘은 보다 다양한 힘을 중심이 되는 불안에 녹여낼 수 있었다.

강력하고 다양한 힘을 불에 녹여 내며 멈춰 있던 성장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볼 수 있었다.

‘이런 걸 신앙이라 부르는 건가?’

계약을 통해 다양한 존재들의 힘이 그들의 염원과 함께 흘러들어 왔다.

그렇게 한번 염원을 받아들이자, 이제는 아주 미약한 염원마저도 흘러들어 올 수 있었다.

카리엘을 믿고 그를 추종하는 인간들의 염원.

정식 계약이 아닌 상대방의 일방적인 염원과 미약한 힘에 불과했지만 그마저도 쌓이기 시작하니 무시 못 할 만큼 강대한 힘이 되었다.

그로 인해 더 정순하고 강력한 힘을 갖게 된 카리엘의 힘은 당연히 계약자들과 공유되면서 선순환이 되기 시작했다.

한번 돌아가기 시작한 엔진은 연료가 소모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 법.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좋겠지만…….’

그걸 기다려 줄 신들이 아니었다.

“정 걱정되면 빠르게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도우러 오시오.”

카리엘의 말에 글렌과 시카리오 후작이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들의 황제가 가장 위험한 전장으로 떠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무력감.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을 알기에 말없이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렇게 원탁의 회의가 끝나고 세리엘을 중심으로 측정 불가급 게이트들을 막기 위한 군대가 편성되었다.

“다녀올게.”

자신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동생들과 황후.

모든 사실을 들었는지 황제의 궁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보면서 쓴웃음을 짓는 카리엘.

이번만큼은 정말로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모두들 하던 일마저 멈추고 카리엘을 따라왔다.

황궁을 벗어나 수도의 공군기지가 있는 곳으로 향하자 대신들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뒤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본 제국민들 역시도…….

「측정 불가급 게이트 움직임 발생!」

이미 공영 신문을 통해 지금 일어난 일을 전부 알렸기 때문에, 제국민들도 카리엘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고 있는 상태였다.

모두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마동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는 카리엘을 지켜보았다.

황궁부터 공군까지 길게 늘어선 제국민들이 꼭 막아 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카리엘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그건 뒤이어 오는 글렌과 시카리오 후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폐하, 아무래도 제가 회색 게이트를 가는 것이…….”

글렌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가장 어려운 게이트가 될 것이라고 예상되는 회색 게이트.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인류 최강이라 불리는 글렌이 가는 것이 맞았다.

모두들 그러길 바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카리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부디…… 무사히 돌아오시기를…….”

아일라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황제 전용 비공선에 탑승하는 카리엘에게 고개를 숙였다.

제국을 위해 가장 위험한 전장으로 떠나는 지존을 바라보는 제국민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세리엘과 군부대신을 주축으로 편성된 특수전단 제1군.

회색 게이트를 막기 위한 특수군인 그레이 실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글렌과 시카리오 후작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2개의 특수군 역시 각자의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자! 움직입시다.”

카리엘이 떠나자마자 지체할 수 없다는 듯 대신들을 데리고 떠나는 루피엘.

“지금부터 군부대신은 나와 같이 서대륙 전역에 있는 게이트들을 컨트롤하는 데 집중합시다.”

“예.”

세리엘 역시 군부 인사들을 전부 데리고 서대륙의 게이트들을 컨트롤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각 지역에서 들어온 정보들을 취합할 때였다.

정보부를 통솔해 제국의 모든 정보를 긁어모아 온 타리온이 굳은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정보부장?”

“……이걸 보십시오.”

세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타리온이 건넨 보고서를 읽어 보았다.

지도가 표시된 보고서.

그곳에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게이트들이 표시된 게 보였다.

신기한 건 거인의 산맥을 중심으로 오직 ‘서대륙’만이 이상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잘못된 거 아니오?”

“그럴 줄 알고 거인의 요새에도 확인해 보았습니다.”

타리온의 대답에 세리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치 이그니트만을 노리는 것처럼 서대륙에만 요동을 치는 게이트들.

이그니트의 전력이 회색빛 게이트에만 집중할 수 없게끔 하려는 것처럼 서대륙을 중심으로 열리는 게이트들.

이런 의심은 타국의 정보들을 취합하면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마치 모든 게이트들이 서대륙에 집중되는 것 같은 느낌이군.”

세리엘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케찰코아틀을 비롯한 최상위 개체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게이트들마저 잠들어 버리면서 오직 서대륙에만 모든 게이트들이 집중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군을 움직여 폐하를 도와야 합니다!”

군부대신의 말에 다른 이들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제창했다.

“이미…… 늦었소.”

세리엘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 역시 지금 당장이라도 형님을 도우러 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이미 늦었다.

회색빛 게이트를 막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이동한 탓에 그레이 실드가 벌써 목적지에 도착해 버린 것이다.

* * *

-널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회색빛 게이트에서 나오는 묘한 파장들.

비공선에서 내려 회색빛 게이트의 영역 앞에 선 카리엘이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자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거센  파장을 내뿜는 게이트를 보면서 조용히 힘을 끌어 올렸다.

“폐하!”

카리엘이 힘에 저항하는 바로 그 순간, 회색빛 힘이 뒤따라오던 다른 이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자격이 되는 건 카리엘 혼자뿐이라는 듯, 다른 이들을 밀어내 버리는 것이다.

그러자 뒤에서 데이비어 공작이 힘을 끌어 올리며 어떻게든 들어오려 했다.

카리엘을 걱정한 세리엘이 그랜드 마스터를 제외하고 가장 강하다 평가받는 데이비어 공작을 동행시킨 것이다.

하지만 벽을 넘지 못한 데이비어 공작은 회색빛 힘을 뚫어 내지 못했다.

“아무래도 나 혼자만 오라는 것 같네.”

어느새 소환체들마저 역소환되는 것을 본 카리엘은 인상을 찌푸렸다.

“다른 곳을 도와라, 이곳은 짐 혼자 해결해야 할 것 같으니.”

멀리까지 선명하게 들리는 카리엘의 목소리.

그러자 그레이 실드의 모든 병력이 안 된다고 고개를 저으려 했다.

“짐의 명이니라. 짐이 이곳을 막는 동안 서대륙의 모든 게이트를 처리하라.”

거부할 수 없는 황제의 명령이 떨어졌지만 마지막까지 망설이는 이들.

하지만 그들 역시 알고 있었다.

회색빛 힘에 가로막힌 이상 이곳에서 카리엘을 도울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음을.

그렇기에 결국 그들은 어쩌면 마지막 명령이 될 수 있는 황제의 명을 받들며 고개를 숙였다.

데이비어 공작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명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은 카리엘은 거대한 회색빛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어떤 존재이길래 이렇게 과격하게 나를 부르는 건지 궁금하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게이트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디는 순간, 카리엘의 의식은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다.

“이곳은…….”

겨우 정신을 차린 카리엘이 주변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공간.

새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도착한 카리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발드르?”

-그럴 리가.

발드르처럼 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난 ‘신’을 본 카리엘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당신은 누구지?”

-지구의 신.

아이의 대답을 듣는 순간 카리엘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떠졌다.

-그대의 ‘옛 신’과 맺었던 맹약을 지키러 왔다. 정확히는…… 너로 인해 진 내기의 보상을 주기 위함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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