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외전 6. 작전명 : 괴물 꼬시기
신이 사라진 세상.
그렇기에 많은 차원에서 빈집털이를 위해 넘어오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게 녹록치는 않은 법.
오히려 그러한 시도를 이용해서 힘을 키우는 자들도 있었다.
바로 과거의 잔재들이었다.
오랜 시간 깎여 나가 버린 격과 힘을 타 차원에서 넘어오는 힘을 통해 회복하고 있는 이들.
이대로 가만히 놔둔다면 과거의 힘을 전부 회복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바람일 뿐이다.
“폐하를 뵙습니다!”
“지금 당장 대신들을 소집해.”
신대륙에서 돌아오자마자 소집 명령을 내린 카리엘.
이미 카리엘과 케찰코아틀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들은 대신들은 다급하게 황제의 궁에 모여들었다.
그렇게 대신을 비롯한 군부의 최고 지휘관들이 전부 모이자 카리엘이 곧바로 말했다.
“모두 사전에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갈 것 같다.”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돌아오는 동안 자신이 생각했던 것들을 적은 종이를 세리엘에게 건넸다.
“이번에 신대륙을 다녀오면서 많은 걸 느꼈다.”
카리엘의 말에 다들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잔재들과 몬스터들을 적대하기만 했던 이그니트와는 달리 신대륙은 그들과의 공생을 택했다.
그로인해 본래라면 비교도 안 될 전력이 이그니트의 주력군 중 하나와 비벼 볼 만큼 강해졌다.
“신대륙도 했는데 우리라고 못할 것 없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세리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세웠던 모든 전략을 변경한다. 지금부터 우린 최대한 많은 아군을 만들어 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신대륙처럼 하실 생각입니까?”
카리엘의 말에 루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하오나 폐하, 그렇게 되면 자칫 폐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신권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신대륙이 국가마다 다른 신들을 만들어 낸 것과 달리 이그니트는 통일국가였다.
그렇기에 서대륙 곳곳에 존재하는 신대륙만큼 강한 괴물들을 신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로 추앙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간신히 통일한 국가가 분열될 위기가 초래될 수 있었다.
“맞습니다.”
“꼭 신대륙과 같은 방향으로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합니다.”
대신들도 루터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저마다 말을 내뱉으면서 위험성을 강조했다.
그러자 카리엘은 두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의 생각은?”
“저 역시 마찬가집니다.”
세리엘도 대신들과 같은 생각이라고 답하자 잠시 고민하던 카리엘은 루피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넌?”
“흠……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루피엘의 말에 대신들과 세리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의외의 대답에 카리엘이 미소를 지었다.
“예, 뭐 민속신앙처럼 각 지역마다 신들이 자리 잡는다고 하더라도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폐하께서 그들보다 위에 있으면 되는 것을요.”
루피엘의 말에 다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신화시대에서처럼 폐하께서 그들을 이끄는 역할을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좋은 방법입니다.”
“현시대의 주신이 되시는 겁니까?”
다들 웃으면서 말할 때였다.
카리엘의 표정이 조금씩 썩어들었다.
‘이러면 은퇴 각을 잡아도 나가린데.’
루피엘이 저 말을 내뱉는 순간 갑자기 예지몽이라도 꾼 것처럼 미래가 그려졌다.
세리엘과 대신들을 꼬여 내 겨우겨우 은퇴 각을 잡았으나, 여러 가지 이유를 들먹이면서 일 더미에 앉은 자신의 모습을…….
그것을 거절하지도 못하는 것이, 매번 대신들이 자신을 찾아와서 ‘이러다가 제국이 분열되옵니다!’, ‘신수들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하옵니다!’와 같은 헛소리를 내뱉을 가능성이 높았다.
통일 제국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적어도 몇 세기는 지나야 완전한 서대륙 통일국가로 자리 잡을 터.
그럼 자신은 죽기 직전까지 굴러야 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지금보다 높은 경지를 개척할 경우 남들은 안식에 들어갈 때, 그것을 부러워하면서 구를 수도 있을 것이다.
“…….”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침묵하는 카리엘을 본 대신들이 웃다 말고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폐하?”
세리엘이 의아한 듯 바라보자 카리엘은 생각을 멈추고 한숨을 쉬었다.
“일단 이건 보류하도록. 먼저 영성이 있는 이들부터 파악해서 접근해 봐.”
“알겠습니다.”
“좋아. 그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지.”
카리엘이 말하는 순간, 가만히 대기하고 있던 타리온이 카리엘의 집무실 한쪽에 마련된 영상구를 작동시켰다.
동시에 책장이 열리면서 서대륙의 지도가 나타났다.
“현재 서대륙에 타 차원 게이트가 열렸을 거라 추정되는 곳들입니다.”
설명이 끝난 순간, 타리온이 지도로 다가가 곳곳에 깃발을 하나씩 꽂았다.
그럴 때마다 영상구에 해당 지역의 영상 자료들이 나타났다.
“대부분 과거의 잔재들 혹은 영성이 있는 몬스터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없는 곳도 있어?”
“예, 그런 곳들은 특수부대와 연구진을 파견해 놨습니다.”
“연구 결과는?”
카리엘의 물음에 타리온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를 연구하기엔 기간이 너무 짧았다.
“현재 무언가를 알아내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뒤늦게 도착한 월크셔 공작이 그동안 조사한 자료들을 모아 보고를 올렸다.
과거의 잔재들이 어떻게 타 차원의 힘을 이용하는지, 그리고 주변을 오염시키는 힘을 어떻게 정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다만…….”
“다만?”
“과거의 사례들을 찾아보면 해답이//해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거의 사례들?”
월크셔 공작의 말에 한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사서.”
“폐하를 뵙습니다.”
시종장과 함께 은퇴했던 비밀 수호대의 일원인 늙은 사서가 고서를 꺼내 들었다.
“옛 기록에 따르면 현재 타 차원 게이트로 밝혀진 것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현재와 흡사하게 주변을 오염시키거나 변이시키는 힘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해답도 찾았나?”
“아쉽게도 없습니다. 다만…… 순수한 마나를 다루는 이들은 오염된 힘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순수한 마나?”
옛 사서의 말에 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짚이는 게 계시옵니까?"
“하나 있긴 하지.”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화기를 끌어 올렸다.
인류가 발전시킨 가공된 마나가 아닌 순수한 화기를 이용하는 카리엘.
그런 카리엘이 힘의 근원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마나 숙성법에 있었다.
“야만족들을 찾아보겠습니다.”
무슨 뜻인지 깨달은 타리온이 다급히 밖으로 나갔다.
“저도 고대 문서를 더 찾아보겠습니다.”
늙은 사서 역시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가자 남은 대신들을 향해 카리엘이 말했다.
“대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이런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라.”
카리엘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대전쟁 때는 제국의 힘이 지금과 같지 않았으며, 내전을 비롯해 연이은 전쟁까지 터진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정말 어떻게 대전쟁을 이긴 건지 모를 정도로 천운이 따랐다고 볼 수 있었다.
암흑기 시절의 제국에 카리엘이라는 영웅이 황태자 신분으로 개혁을 거듭하며 제국의 국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 흑마법사를 몰아내고, 서대륙을 통일했다.
동시에 그 힘으로 동대륙을 국가들을 모아서 적에게 대항할 세력을 만들어 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이라도 삐끗하거나 늦어졌다간 그대로 멸망했을 상황인 것이다.
“아직 적들은 오지도 않았다. 우리가 대비할 시간은 충분하다. 또한 현재의 제국의 힘은 어느 때보다 막강하지.”
카리엘은 현재의 전력만으로도 적어도 제국만큼은 안전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 자부했다.
하지만 단순히 버티는 것을 넘어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과거의 잔재 혹은 영성이 있는 몬스터들을 설득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한 생존이 아니다.”
적들을 완벽하게 집어삼키고 그들의 힘을 이용해 더 큰 발전을 이룩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카리엘은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것이다.
“내무대신은 지방 관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미리 준비하라고 해.”
“예.”
“외무대신은 각국에 우리가 쥐고 있는 정보들을 전부 공유해.”
“전부 말이옵니까?”
“그래. 그들도 대비는 해야지.”
옆 동네인 동대륙이 자칫 타 차원의 종족들에게 점령이라도 당하면 결국 피곤해지는 건 이그니트였다.
그러니 이번 일은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맞았다.
“폐하, 남쪽 섬이나 신대륙에 있는 국가들에겐 대가를 받는 것이 어떻습니까?”
“대가?”
세리엘의 제안에 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폐하. 신대륙이나 특히 남쪽 섬에는 아직 마나 숙성법을 쓰는 야만족들이 꽤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인간들을 피해 도망친 이종족들도 숨어 살고 있구요.”
세리엘의 말에 카리엘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외무대신.”
“예, 폐하.”
“세리엘의 말처럼 잘 교섭해 봐. 재무대신과 상의해서 유의미한 정보나 도움을 받을 경우 충분한 물자를 지원하는 것도 고려해 보도록.”
“그리하겠습니다.”
모든 명력을 내린 카리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쟁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대전쟁처럼 큰 전쟁으로 번지기 전에 조기에 잡아야 해. 그러니 힘들더라도 한 걸음이라도 더 움직여.”
“예! 폐하!”
카리엘의 말을 끝으로 모든 이들이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모두가 떠나자 의자에 주저앉은 카리엘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신대륙처럼 신수 혹은 과거의 잔재와 계약하기 위해선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 카리엘에겐 이들과 대화가 잘 통하는 자들이 있었다.
우웅! 우웅!
전력으로 끌어 올린 힘을 통해 아직 계약이 유지되고 있는 소환체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다.
웬만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소통이 되는데, 서대륙에 없거나 아니면 어디 오지에 처박혀 있는지 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후…….”
카리엘은 긴 숨을 내뱉으며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소매로 닦아 냈다.
단순히 자신의 의지를 전달한 것뿐인데, 케찰코아틀과 만났을 때 사용한 것보다 더 많은 힘을 소모한 기분이 들었다.
“남은 건 오기를 기다리는 것뿐인가?”
어디선가 자신들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소환체들.
그들이 다시금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카리엘 역시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그나마 수도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과거의 잔재들부터 찾아가는 것이었다.
“가기 전에 황후 좀 보고 갈까?”
황궁에 오자마자 일하느라 바빠서 찾아가는 걸 깜빡했기에 황후를 달래기 위해 카리엘이 황후궁으로 향하려 할 때였다.
“폐하, 지금 가는 것은…… 그리 좋지 않은 생각이신 것 같사옵니다.”
“……왜?”
카리엘이 의문을 담은 표정으로 묻자 시종장이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황후 마마께오서 실망이 크셨사옵니다.”
“아!”
“바로 몇 시간 전에 이게 신혼이냐고 한탄하셨다는 소문이…….”
시종장이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으나 카리엘은 그를 탓하지 못했다.
“……황후궁에는 좀 더 있다가 찾아갈까?”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은 시종장에게 황후한테 선물할 만한 리스트를 만들라는 명령을 내린 뒤, 조용히 황궁을 빠져나갔다.
돌아왔을 땐 진득하니 황후와 시간을 보내리라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