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93화 (193/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외전 5  무서운 카리엘! (3)

협상이 결렬된 이후, 곧바로 내려온 카리엘과 일행.

그런 그들을 거대한 뱀이 노려보았으나 의미는 없었다.

카리엘 혼자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을지 쉬이 가늠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마왕을 이긴 주역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게다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카리엘의 수준이 높았다.

그렇다는 건 다른 이들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

-자신감인가?

타 차원이 침공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굳이 억지로 신이 되어 세계를 지키려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힘을 개방하는 순간 날카롭게 날아드는 2명의 날카로운 기세를 보고선 자신 역시 확신할 수 있었다.

인간들 중에 신의 반열에 오를 자는 카리엘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후…… 결국 전쟁인가?

인간을 대표하는 카리엘의 결정을 들은 이상 자신 역시 선택을 해야 했다.

이대로 가만히 주저앉아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끌어 볼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서 나와 본격적으로 싸울 준비를 할 것인지를…….

-발드르…….

옛 신의 이름을 중얼거린 케찰코아틀이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근원은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거대한 뱀에서 비롯되었다.

라그나로크 때 죽은 세계를 휘감은 뱀의 근원을 일부 이어받아 지금까지 살아왔기에 언젠가는 그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도 있었다.

조금만, 이대로 천 년의 시간 정도만 더 흐르면 요르문간드라는 위대한 뱀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되도록 도와주지 않는 것 같다.

“이제는 용기를 내 보는 게 어때?”

언젠가 발드르가 했던 말.

제2의 세계를 휘감는 뱀이 되고자 한다면 안정적으로 힘만 쌓기보다는 한 번쯤은 도박해 보라는 조언.

그때는 그저 마왕을 막기 위한 수작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카리엘을 보고 나니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것 같았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 그리고 강대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 한계를 넘어서는 노력들.

그로 인해 급격히 강해지는 힘.

어쩌면 자신들의 향후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타 차원이 아닌 인간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도박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온 건가?

그렇게 중얼거린 거대한 뱀은 거대한 산을 휘감은 몸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젠가 다가올 위협에 넋 놓고 있기보다는 자신의 세력을 만들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 * *

그렇게 신대륙의 거대한 뱀이 움직일 준비를 하는 동안 카리엘은 다시금 비공선에 올랐다.

“폐하, 정보부장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장교가 카리엘이 귓속말로 보고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반제국파가 제국에게 강력히 항의했다는 점이다.

저들도 정보망이 있을 테니, 지금쯤이면 카리엘이 자신들의 신을 보러 갔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저들의 현재 반응은?”

“마즈카국의 국경선으로 집결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신’들 역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와 전쟁이라도 해 보겠다는 건가?”

작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뒤를 힐끔 봤다.

제국의 핵심인 2명의 그랜드 마스터.

그들이 있는데 이리 나온다는 건 간단했다.

‘자신들의 신을 믿는다라…….’

그들은 아직 카리엘 일행이 산에서 내려왔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는 건 카리엘과 그랜드 마스터들이 오기 전까지 최대한 압박하려는 생각.

아직까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건 거대한 뱀조차 그랜드 마스터에게 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그럼 이용해 줘야지.”

빙그레 웃으면서 중얼거린 카리엘이 곧바로 뒤에 선 장교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명령은 곧장 타리온에게 전해졌다.

“나와 그랜드 마스터들이 산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고 정보를 흘려라!”

정보 전쟁의 핵심은 기만책이다.

상대가 거짓을 말하는지 혹은 거짓을 말하더라도 얼마나 진실에 가깝게 말하는지가 핵심이다.

최대한 진실에 기반을 두고 약간의 거짓말만 섞어서 상대를 교란하는 것.

저들이 카리엘이 케찰코아틀을 만나러 간다는 정보는 알고 있지만, 산에서 내려왔다는 사실은 아직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작전.

“제국의 군대가 마즈카국의 국경선을 넘어 신이 머무는 곳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카리엘의 명령을 받고 의도적으로 움직이는 제국군.

이것만이었다면 반제국파도 움직일 생각은 없었을 거다.

하지만 은근슬쩍 흘린 타리온의 정보가 반제국군으로 하여금 고민하게끔 만들었다.

“이거 확실한 정보요?”

“내 윗선에서 바로 나온 따끈따끈한 정보야.”

“허…….”

반제국파의 첩자가 접선한 고위 관료를 바라보았다.

“바로 대금을 지급하기는 어렵소. 확인 절차를 거쳐서 만약 사실이라면…….”

“날 못 믿는가?”

“그건 아니오. 다만 확인이 필요하오. 사실이라면 본래 주려던 금액에 2배를 주겠소.”

“쯧! 2배라면 뭐…….”

아쉽지만 2배라는 말에 흥분을 가라앉힌 관료가 순순히 물러났다.

그렇게 고위 관료가 물러나자 첩자는 곧바로 상부에 보고를 했다.

타리온을 비롯한 이그니트의 고위 장교들이 친제국파에 은근슬쩍 흘린 정보들.

그것들이 비리 관료들의 손을 거쳐서 반제국파의 손에 들어가자 그제야 그들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그니트의 황제가 아직 뱀의 산에 묶여 있다!”

“그랜드 마스터들로 묶여 있는 것으로 보임.”

여러 정보들을 취합해 봤을 때, 친제국파에 퍼져 있는 소문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제국군이 뱀의 산으로 몰려가고 있는 정황과, 친제국파에 남아 있는 병력들까지 모조리 끌어모아 움직이는 중이었다.

종합적인 정황으로 봤을 때, 황제는 자신들의 신에게 묶여 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공포감을 심어 주었던 그랜드 마스터들 역시 같이 묶여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는 건 지금이 자신들에게 기회였다.

친제국파보다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자신들이 각국의 신들을 설득해 돌진해 오자 이그니트 제국군이 전투준비를 했다.

반제국파 역시 황급히 군을 집결시켰다.

언제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속에서 하늘을 덮은 이그니트의 공군이 길을 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시야를 차단하는 결계를 풀고 등장하는 거대한 비공선.

온갖 신식 무기로 도배된 거대한 비공선이 선두에 선 순간, 반제국파의 군대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저…… 저건! 황제의 기함 아닌가?”

“저것이 왜!”

모두가 당황할 때, 몇몇 사람들은 애써 현실을 부정해 보았다.

“황제가 탄 것이 아닐 것이오!”

“맞소. 뱀의 산으로 간 것은 황제의 기함이 아니지 않았소!”

황제가 탄 것이 아닐 거라는 말에 다시금 기세를 끌어 올리는 반제국파의 사람들.

바닥까지 떨어질 뻔했던 사기가 서서히 안정되어 갈 때쯤, 거대한 기함 위로 누군가가 홀로 섰다.

“저자! 누구지?”

공중에 홀로 선 남자를 미친놈처럼 바라보는 그 순간, 주변에 거대한 화염의 구체들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화염의 파장에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동시에 남자의 이마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이쯤 되자 모를 수가 없었다.

“저…… 저건!”

“황제?”

“황제가 왜 여기에!”

반제국파의 수장들이 당황하는 바로 그 순간, 카리엘이 공중에 만들어 낸 화염의 폭풍이 갈라지면서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마치 공간을 통째로 날려 버리는 듯한 기술.

대전쟁 시절 가장 유명한 기술을 본 신대륙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랜드 마스터들도 같이 있구나!”

어느새 카리엘의 양옆에 선 그랜드 마스터들을 확인한 순간 반제국파의 사기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몇몇 이들은 무기를 버리는 자들도 존재했다.

같이 따라온 신적 존재들이 대항해 보려 했으나, 카리엘과 2명의 그랜드 마스터가 의도적으로 온 힘을 다해 기세를 내뿜자 당장이라도 돌진하려던 기세들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카단이 모시는 존재와 카단의 뒤를 바짝 쫓은 2개의 국가의 신적 존재들은 제법 강한 티를 내긴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들에 비하면 아기 수준이다.

잘해야 마스터 3인방에 비벼 볼 수준.

카단이 모시는 신은 데이비어 공작과 자웅을 겨룰 수 있어 보이나 그랜드 마스터의 기세를 감당하긴 어려웠다.

“저것이 전장의 신이라 불리는 존재들인가?”

예로부터 전장의 신이라 불리는 이들이 바로 그랜드 마스터들이었다.

대륙을 구원한 영웅.

전신.

홀로 국가를 멸할 악마.

여러 별명이 붙은 존재들은 일인 군단을 넘어 승리의 상징이 되는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신대륙은 비로소 서대륙과 동대륙에서 어째서 그랜드 마스터들을 그토록 존경하고 두려워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감히 마스터를 비롯한 기사단이 대항해 보았지만 글렌 혼자 그들을 압도적으로 ‘제압’했다.

죽이는 게 아닌 모두를 제압했다는 것에서 병사들은 아예 싸울 의지를 잃어버렸다.

이대로 반제국파가 강제로 이그니트에 굴복할 거라고 생각할 바로 그 시점에, 거대한 산이 움직였다.

-이 대륙에서 태어난 존재들이 아닌 자들이여. 나와 싸우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그만두거라.

하늘을 울리는 음성과 함께 산을 휘감고 있던 뱀이 산 일부를 무너뜨리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 속에 가려져 있던 거대한 뱀이 마침내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카리엘을 비롯한 이그니트군에게 강렬한 살기를 뿌려 댔다.

“……저 녀석도 선택을 했군.”

카리엘이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자신이 신이 되기를 포기했으니, 케찰코아틀 역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닌 움직이는 것으로 앞으로의 싸움에 대비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아쉽게 되었어.”

“……싸워 볼 만하지 않습니까?”

글렌이 자신감을 내보이면서 말하자 시카리오 후작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대전쟁 때야 미숙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글렌은 신회시대의 영웅 이상으로 발전하고 있었고, 시카리오 후작 역시 마왕과 싸울 때의 미숙함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카리엘이 합류하지 않고 둘만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카리엘은 고개를 저었다.

“됐어.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하오나…….”

“전쟁이 가장 깔끔하긴 한데 그게 아니어도 저들을 괴롭힐 방법은 많아.”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케찰코아틀을 향해 더는 싸울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불덩이를 치우고 기세를 거둬들였다.

그러자 글렌과 시카리오 후작 역시 아쉽다는 표정으로 기세를 거두었다.

이그니트가 신대륙까지 집어삼킬 게 아닌 이상 이들 역시 타 차원의 침공으로부터 스스로 방어해야 할 힘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주축은 누가 뭐래도 케찰코아틀이 될 것이다.

제국을 위해선 이대로 싸우는 게 더 현명할지 모르나, 세계를 위해선 멈춰야 했다.

“이쯤에서 멈추도록 하지.”

마나를 실어 친제국파에게 말한 카리엘이 케찰코아틀을 보며 말했다.

“마즈카국을 중립지대로 삼으면 되겠군. 싸움나지 않게 그대가 잘 관리해 줘.”

거기까지 말한 카리엘이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것으로 전쟁은 끝이었다.

신대륙 역사에 길이 남을 전쟁이 이렇게 싱겁게 끝나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몰랐다.

그들의 고난은 이것이 시작이라는 것을…….

카리엘이 왜 대신들에게 쪼잔함의 대명사로 불리는지를…….

자신을 힘들게 한 존재들은 잊지 않고 끝까지 복수하는 카리엘의 성정상 앞으로 반제국파는 친제국파가 당하는 것의 곱절은 더 힘들게 당할 것이다.

그리고 친제국파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혁명의 불길 속에서 전쟁을 일으킨 각국의 지도자들은 살아남지 못하리라. 카리엘을 힘들게 한 자들에 대한 복수는 이것으로 충분했다.

“볼일 다 봤으니 복귀하지.”

“예, 폐하.”

카리엘의 명령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타리온은 곧장 명령을 내렸다.

신대륙에서의 일이 끝났으니 이젠 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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