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92화 (192/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외전 5  무서운 카리엘! (2)

카리엘을 태운 비공선이 비밀리에 제국의 국경선을 넘는 동안, 제국의 주력군은 여전히 친제국파에 남아 있었다.

2명의 그랜드 마스터만을 대동하고 떠났기에 마스터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비록 압도적인 그랜드 마스터들은 없지만, 신대륙 마스터에 비해 몇 수 위라고 보이는 전력들이 남아 있으니 상관없었다.

애초에 외부에 모습을 보이는 건 마스터들이었기 때문이다.

“협상은?”

“끝났습니다.”

아켈리오의 물음에 타리온이 웃으며 말했다.

카바와 근방의 국가들과 달리 마즈카국은 국력이 강하지 않았다.

친제국파와는 거리가 멀었고, 반제국파와는 거리가 멀었으니 그들 입장에선 반제국파에 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친제국파와 거리가 가까워진다면?

“이제 밀고 들어가면 되겠군.”

“예. 저 숲만 뚫고 가면 마즈카국입니다.”

마즈카국과 친제국파 사이에 있는 숲.

그리고 거기에 서식하는 수많은 몬스터들로 인해 가로막혔던 것을 뚫어 줄 생각이다.

동시에 카리엘이 모든 일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마즈카국에 군을 주둔시킨다면?

“친제국파가 된 것치고 선물이 과하긴 하군.”

데이비어 공작이 혀를 차며 말했다.

비록 사정이 있었다지만 반제국파에 있었다가 돌아선 국가에게 해 주는 선물치곤 과하긴 했다.

몬스터를 토벌해 주고 친제국파와 국경알 맞대게 해 주었으며, 숲을 중심으로 흐르는 강을 통해 막대한 무역까지 해 줄 생각이었다.

친제국파보다 더 많은 지원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게 되는 것이다.

“운이 좋은 것이죠.”

“그 운을 부여잡는 것도 실력이고.”

타리온과 아켈리오의 말에 데이비어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은 자신들의 황제가 원하는 것을 갖고 있었으며, 그것을 때에 맞게 제공하여 이런 선물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과했다.

“쯧! 운 좋은 놈들.”

데이비어 공작이 혀를 차며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카리엘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그의 휘하에 들어온 이후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부 출신, 성국 출신들도 대전쟁에 참여하는 결정을 내린 후에야 비로소 완전히 인정받았다.

그런데 마즈카국은 아무런 희생도 없이 막대한 지원을 받게 된 셈이다.

“걱정 마십쇼.”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짓는 데이비어 공작에게 타리온이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폐하께는 다 계획이 있습니다.”

타리온의 말에 그를 바라본 데이비어 공작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카리엘이 계획이 있다?

그건 곧 그 국가에 재앙이 닥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아켈리오도 타리온의 말에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저들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다 이유가 있어서 지원을 해 주는 것이다.

카리엘에게 찍힌 이상 신대륙에서 가장 먼저 혁명이 일어난 국가가 되는 건 마즈카국이 될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극진히 대접하는 마즈카국의 국경 수비대.

“여긴가?”

“그렇습니다.”

마즈카국의 국경 수비대장이 직접 거대한 뱀이 자리한 산을 안내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카리엘이 저 멀리 보이는 산의 꼭대기 부분을 바라보았다.

대부분 구름에 가려져 있었지만, 사이사이로 보이는 부분에는 거대한 뱀의 비늘이 보일 정도였다.

“확실히 거대하군.”

직접 본 카리엘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대전쟁 시절 수많은 과거의 잔재들을 보아 왔으나, 구름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뱀보다 큰 존재는 없었다.

게다가 단순히 크기만 큰 것이 아니었다.

피부는 강철보다 단단하며 마력 저항력까지 있어서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조차 흠집을 내는 게 전부일 정도.

신대륙의 마스터가 약한 편이라지만 그걸 감안해도 괴물 같은 힘이었다.

게다가 소문대로 과거의 잔재들을 먹어 대면서 얻은 빙결능력과 폭풍을 부르는 힘이 있다면 재앙이라 부를 만한 힘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확실히…… 지금 느껴지는 힘이라면 지금껏 보았던 과거의 잔재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글렌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저 멀리 보이는 존재가 발산하는 힘을 가늠했다.

숨길 생각도 없다는 듯, 강력한 힘의 파장을 보이는 거대한 뱀.

시카리오 후작도 그것을 느낀 듯, 산을 통째로 감싼 거대한 뱀을 보면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저희는 여기서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마즈카국의 국경 수비대장이 긴장한 표정으로 말하자 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저 존재가 신대륙에서 어떤 상징성을 갖고 있는지를 기억해 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안내해 줘서 고마웠네.”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기관장에게 명령을 해 비공선을 지상으로 하강시켰다.

솔직히 다른 신적 존재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신대륙의 가장 높은 산을 휘감고 있는 뱀만큼은 신으로 불려도 될 만큼 강했다.

비공선을 타고 케찰코아틀이 있는 곳으로 다가갈수록 그 생각은 점점 더 확고해졌다.

“강하군. 아스가르드에서 만났던 잔재들보다 더.”

“……예.”

카리엘의 말에 글렌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아스가르드에서 만났던 최상위 신들의 잔재들.

분명 최상위 신들이 부활한 것이지만, 완벽한 신은 아니었기에 그 힘의 한계는 명확했다.

하지만 케찰코아틀은 다르다.

그는 본래부터 강대했고, 최근엔 과거의 잔재들을 먹어 치우면서 더 강력해졌다.

쿠구궁!

“여기서부터는 내려서 올라오라는 뜻인가?”

회오리가 앞쪽에 생성되는 것을 본 카리엘은 한숨을 쉬면서 비공선의 문을 열었다.

“폐하!”

“이곳에서 기다리도록.”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먼저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 뒤를 글렌과 시카리오 후작이 따랐다.

그 순간, 카리엘의 몸을 감싸는 미지의 기운.

동시에 카리엘의 발밑으로 초록빛 기운이 퍼져 나가면서 산꼭대기까지 길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건 카리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폐하!”

“폐하!”

아래로 떨어지는 글렌과 시카리오의 부름에 카리엘이 괜찮다는 손짓을 하며, 외쳤다.

“괜찮으니 천천히 올라오게.”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케찰코아틀이 만들어 준 길을 천천히 걸어 나갔다.

자신의 호의를 믿어 준 것 때문일까?

카리엘은 마치 지구의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것처럼 힘들이지 않고 빠르게 올라가 순식간에 산의 정상에 도착했다.

“덕분에 편하게 왔군.”

산의 정상을 밟은 카리엘이 기운을 끌어 올리자 이마의 문양이 만들어지면서 주변의 눈을 녹이기 시작했다.

일반 사람이라면 잠시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맞이할 만큼 혹한의 환경 속에서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올리자 거대한 뱀의 머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왔군.

“그래.”

거대한 뱀과 마주한 카리엘은 한동안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존재인 것을 증명하듯, 단순히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 생각을 모조리 읽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백색의 공간에서 발드르를 보았을 때와 같은 느낌.

하지만 묘하게 다른 것이, 케찰코아틀의 힘 자체에 마왕만큼의 압도적인 느낌은 없었다.

“신은 아니군.”

-그래. 난 신의 반열에 들지 못했지.

자신의 말에 인정하는 케찰코아틀.

하지만 위협적인 존재인 것만은 분명했다.

힘의 크기는 신이 되기 직전의 마왕보다 약할지언정, 그가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 등은 신에 필적할 만하니까.

“너 같은 존재가 또 있나?”

-남쪽 끝에 하나? 바다에도 둘쯤 있었던 것 같군. 좀 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더는 모르겠군.

그렇게 말한 케찰코아틀은 바람을 만들어 마력을 통해 자신이 본 존재들을 보여 주었다.

남쪽 섬에서 강대한 무력을 자랑했던 존재이자 태양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벌새의 신부터 거대한 문어의 모습을 한 바다의 폭군 그리고 백색의 거대한 몸을 자랑하는 바다의 지배자까지 모두 보여 주었다.

“남쪽은 알겠군. 위칠로포치틀리라 했던가?”

뜬소문으로 생각했던 존재.

하지만 케찰코아틀이 인정할 만하다면 무시 못 할 존재일 것이 분명했다.

심지어 하나가 아니고 바다까지 합하면 셋이나 더 존재했다.

이것을 본 순간 카리엘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너만한 존재가 어째서 산봉우리에서 가만히 있었던 거지?”

마왕 그리고 저승의 존재가 대륙을 탐하고 있던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둔 이유가 궁금했다.

분노가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는 카리엘을 무심히 마주 보는 거대한 뱀.

-그건 너희들의 일이니까.

“……지옥이 대륙을 점령한다면 우리들의 일만은 아닐 터.”

-글쎄…… 과연 그럴까? 마왕이 대륙을 집어삼켰으면 그는 ‘신’이 됐을 터. 오히려 지금보다 나았을지도 모르지.

케찰코아틀의 말에 카리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신이라…….”

표정을 찡그리는 카리엘을 보던 케찰코아틀은 거대한 머리를 카리엘의 앞으로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의 긴 혓바닥이 카리엘의 이마에 닿는 순간, 그가 갖고 있던 정보들이 카리엘의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건…….”

-신이 없는 세상은 다른 곳의 먹잇감이 되기 마련. 주신의 힘이 약했음에도 타 차원의 침공을 받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케찰코아틀의 말에 카리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진즉에 신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렇게 가만히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이들 전원이 발드르에게 패배했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이들이 신의 반열에 오르기 위한 준비 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거인 출신 그리고 신족 출신이 아닌 동물의 몸으로 신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신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걸 알기에 발드르는 거래를 했다.

“때가 올 때까지 타 차원의 존재를 막거라. 약속을 지켜 준다면 너희들에게 신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마.”

그렇게 말한 발드르는 약속을 지켰다.

힘을 모으고, 부족한 영성을 깨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었으며,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대전쟁 이후 흘러나온 과거의 잔재들을 먹어 치우면서 채워 나갔다.

그 대신 그들은 대륙 각 지역에 자리를 잡고 결계를 만들었다. 발드르는 그 힘을 이용해 세계에 얇은 막을 만든 것이었다.

문제는 발드르가 소멸된 이후로 그 막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막으려면 새로운 신이 나타나 세계에 다시금 결계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케찰코아틀은 신이 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이에게 책임을 미루고 싶다는 건가?”

-그래. 그게 안 된다면 책임을 나누고 싶다.

세계의 신이 된다면 필연적으로 겪게 될 타 차원의 견제들.

그것을 홀로 감당하기 싫어했다.

똬리를 틀고 가만히 신의 힘을 발전시키고 싶었지만, 그건 그의 바람일 뿐이었다.

이미 타 차원의 침공은 시작되었으니 수를 써야 했다.

-원한다면 나의 힘 일부를 주겠다. 신이 되라.

“내가 신이 되어 모든 책임을 떠넘기겠다? 하! 꺼져.”

단호하게 거절한 카리엘.

-이대로 세계가 타 차원에게 집어삼켜지는 걸 놔둘 것인가?

“그것도 나쁘지 않지.”

카리엘의 대답에 케찰코아틀이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미쳤나?

“아니. 미친 건 너지.”

싸늘한 표정으로 말하는 카리엘.

이미 백색의 공간에서 발드르를 만나 본 적 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신이 되는 순간, 고생길이 열린다.

강대한 힘을 갖고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케찰코아틀의 힘의 일부를 받아들여 신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만 충족한다면 그 고생길은 지옥의 길이 되리라.

그렇기에 거절한 것이다.

“그렇게 세계를 지키고 싶으면 네가 말한 존재들과 함께 신이 되서 막아.”

-……우리론 부족하다.

케찰코아틀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했다.

언젠가 신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겠지만 자신을 비롯한 기존의 신급 존재들의 발전 속도는 너무나 느렸다.

반면에 인간들은 달랐다.

어째서 발드르가 인간들에게 기대를 갖고 있었는지, 그리고 왜 그가 카리엘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왜 나지?”

-네가 발드르의 선택을 받았으니까. 그리고 너를 믿는 자들이 가장 많으니까.

살아 있는 신이라 불리는 카리엘.

그런 그를 믿는 자들은 제국민들뿐만 아니라 대륙 전역에 퍼져 있었다.

-네가 신이 된다면 세계는 안정될 것이다. 나뿐 아니라 대륙과 바다를 담당하는 존재들 역시 네가 신이 되고자 한다면 힘의 일부를 넘겨주겠다 약속했다.

“거절한다면?”

-대륙에 혼란이 찾아오겠지.

케찰코아틀의 말에 카리엘은 가만히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독박 쓰지 않더라도 세계는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거절하지.”

-정녕 혼란을…….

“혼란 속에서 세계는 더 발전할 수 있겠지.

케찰코아틀의 말을 끊은 카리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체되어 있던 수백 수천 년의 시간.

발드르는 세계를 지켰지만, 그동안 세계의 발전은 멈추는 것을 넘어 퇴화했다.

그러나 대전쟁을 겪으며 세계는 다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지금 이 선택으로 다시 한번 혼란에 휩싸인다 하더라도 세계는 발전할 것이다.

신화시대 이후 끊겼던 수많은 신들이 만들어질 것이며 강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지금도 과거의 잔재들이 타 차원의 힘을 빨아들여 강해지고 있었고, 인류 역시 발전할 수 있었다.

“정 안 되면 그때 가서 신이 되는 걸 생각해 보지.”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웃으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케찰코아틀이 혀를 날름거렸다. 뜻대로 되지 않아 아쉬워하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카리엘은 확신했다.

‘어디서 독박 씌우려고. 고통은 분담해야지.’

그렇게 생각한 카리엘은 저 멀리서 올라오는 글렌과 시카리오 후작을 향해 걸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