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외전 5 무서운 카리엘!
카리엘이 신대륙에 도착하고 며칠이 지날 때였다.
친제국파 노선을 탄 국가들을 반제국파 국가들이 맹렬히 비난했다.
제국을 사대하며 신대륙의 자존심을 짓밟은 국가라녀 손가락질하는 이들.
그러면서 자신들의 신이 제국의 신을 이겨 줄 거라고 말하는 이들까지.
이들의 이러한 자존심이 짓밟히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쿠웅!
“재미없군.”
시카리오 후작이 손을 탁탁 털면서 쓰러진 신적 존재를 바라보았다.
신은커녕 아스가르드에 올라가면서 만났던 과거의 잔재들보다 못한 존재였다.
“확실히 이 국가는 마스터가 없기 때문이군.”
마스터를 보유하지 못한 국가가 타 국가에 밀리지 않기 위해 크기만 더럽게 큰 영물 중 하나를 신으로 추앙할 뿐이었다.
“진짜는 글렌 쪽인가?”
부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시카리오 후작.
오랜만에 보는 강렬한 손맛에 좀 더 싸우고 싶어진 후작.
“다음 목적지는 어디지?”
“여기서 이틀 거리입니다.”
“좋군. 바로 가지.”
정보부 요원의 말에 빙그레 미소를 지은 시카리오 후작.
처음엔 신적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것에 긴장했던 후작이지만, 이젠 확실히 알았다.
신대륙의 신적 존재는 과장되었다는 것을.
신대륙 최강의 생물이라는 케찰코아틀은 다를지 모르지만 그 밑에 있는 신적 존재들은 대부분 허상일 것이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글렌 역시 압도적으로 신적 존재를 상처 입혔다.
“죽이진 않겠습니다.”
신대륙의 사람들이 신으로 모시는 이들을 함부로 죽였다간 반발을 살 수 있기에 카리엘은 두 사람에게 웬만한 죽이지는 말라고 명을 내렸다.
그리고 글렌은 그 명령을 철저히 지켰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가지고 놀다시피 한 거대한 표범을 기절시킨 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떠나 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근방에서 본 사람들은 주저앉아 자신들의 신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글렌이 갖고 놀다시피 한 존재는 신대륙의 마스터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던 존재였다.
그런 존재를 장난감 다루듯이 갖고 놀다 기절시키는 퍼포먼스를 보인 글렌은 괴물 그 자체였다.
“바보는 아니군.”
신대륙의 신으로 추앙받는 생물들이 몇이나 당하자 국경을 통제하기 시작한 반제국파 국가들.
그리고 신 주위로 다수의 병력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카리엘이 목표로 했던 존재들은 전부 영성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한 존재들.
힘은 강대할지언정 영성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 결국 한계가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에 반해 글렌과 시카리오 후작에게 당하지 않은 존재들은 전부 영성이 있는 존재들이었다.
“이쯤이면 됐어. 불러들여.”
“예.”
카바를 비롯한 신대륙의 강국이라 불리는 이들만 건들지 않는 선에서 끝낸 카리엘인 빙그레 웃었다.
“이젠 마스터들이 놀아 줄 때가 된 듯싶은데……. 어때?”
“준비하겠습니다.”
카리엘의 명령에 타리온이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같이 온 데이비어 공작과 아켈리오 공작 역시 준비를 마쳤다.
* * *
그렇게 마스터들이 친제국파를 위한 이벤트를 준비할 무렵, 신대륙은 난리가 났다.
소문만 무성했던 그랜드 마스터의 힘.
그것을 직접적으로 겪어 보니 알 수 있었다.
“동대륙이 빌빌거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아.”
“정말 괴물 같은 자들이군.”
“저런 이들이 셋이나 달라붙어 겨우 이겼다는 마왕은 얼마나 강한 거야?”
신대륙 사람들은 괴물같은 그랜드 마스터들의 신위를 보면서 자신이 모였던 신이란 존재가 얼마나 하잘 것 없는 존재인지를 알 수 있었다.
물론 신대륙 사람들 중에선 그랜드 마스터가 제압한 존재들은 전부 약한 존재였다고 주장했다.
영성이 있으며 인간들과 긴밀한 교류를 하는 강국의 신적 존재는 다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들 역시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다.
막상막하로 싸우다가 패한 것이 아닌 압도적인 실력차로 가지고 놀다시피 한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죽은 신적 존재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살리면서 제압하는 것이 죽이는 것보다 몇 배나 어렵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양측 주장이 대립하고는 있지만 신대륙 사람들 모두가 인정하는 건 있었다.
“이그니트는 괴물이다!”
그랜드 마스터를 황제를 포함해 셋이나 보유하고 있는 제국은 괴물이라는 것.
그렇기에 반제국파는 더더욱 결속을 다졌고, 친제국파 쪽은 더더욱 고개를 숙였다.
이미 한차례 거대한 폭풍이 신대륙을 휩쓸고 있을 때였다.
“폐…… 폐하, 저희까지 이러실 필요는…….”
“아! 걱정 마시오. 절대 죽이지는 않겠소.”
카리엘이 걱정 말라는 듯 말하면서 친제국파 쪽 신들을 만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카바의 마스터를 통해 인정받은 신적 존재들.
비록 영성은 옅지만 카바의 마스터보다 무력적으로 우위에 있는 신적 존재들.
그런 존재들을 카리엘과 함께 온 마스터 3인방이 찾아갔다.
콰아앙!
“재밌군.”
시카리오 후작처런 진한 미소를 짓는 데이비어 공작.
그 역시 대전쟁 이후 좀처럼 격렬한 전투를 겪어 보지 못해 안달이 난 상태였다.
아켈리오 후작이나 젊은 마스터들은 과거의 잔재들을 처리하면서 몸을 좀 풀었지만, 자신은 귀족파 수장이라는 역할 때문에 수도를 벗어날 일이 드물었다.
“좋군! 좋아!”
확실히 일반적인 마스터라면 위협적으로 느낄 만큼 빠르게 공격해 오는 거대한 독수리.
하지만 데이비어 공작은 여유로웠다.
이 정도는 대전쟁에 비하면 별거 아니었기 때문이다.
카리엘이 잠든 이후 난동을 부리는 과거의 잔재들을 정리하는 전장의 최전선에 섰던 것이 바로 데이비어 공작이다.
“살짝 아쉽긴 하지만 이 정도에서 멈춰야겠군.”
이미 많은 상처를 입은 독수리를 보면서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데이비어 공작.
대륙의 모든 마스터들 중 최상위 실력을 보유했다 알려진 그답게 신대륙의 마스터를 상대로 우위를 보인 거대한 독수리를 상대로 오히려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였다.
기세를 거두고 싸울 의사가 없을 보이자 흥분했던 독수리도 점차 살기를 거두었다.
그렇게 신적 존재와 이그니트 마스터 간의 전투의 첫번째 승자는 데이비어 공작이었다.
“확실히 강하군.”
“차기 그랜드 마스터 후보다워.”
“그러게.”
모두들 애써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그니트의 강함에 감탄했다.
하지만 아켈리오와 타리온마저 승리를 거두자 모두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켈리오까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마스터에 이른 지 오래되었고 대전쟁시절 엄청난 활약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리온은 아니었다.
마스터가 된 기간이 짧은 편인 그마저 승리를 거두자 모두들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신적 존재는 마스터보다는 강하다는 그들의 상식이 완전히 깨져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분명해졌군.”
일부러 모두가 들리게끔 말한 카리엘이 웃으며 전투를 마치고 오는 타리온에게 말했다.
“막상막하던데?”
“‘마스터’급임은 분명합니다.”
일부러 마스터급이라는 것을 강조한 타리온의 말에 신대륙의 귀족들이 움찔했다.
카리엘과 타리온이 말한 의도를 알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신으로 모시는 이들은 '마스터'급에 불과하다.’
심지어 이그니트의 마스터들에 비하면 한 수 아래의 존재에 불과하다.
신대륙의 마스터보다 우위에 있는 이들이 이그니트의 마스터보다 약하다면 신대륙의 마스터들은 무엇인가?
분명 마스터가 아닌 존재보다는 강할 것이다.
하지만 서대륙과 동대륙의 마스터들보다는 약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대전쟁을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수십차례나 겪어 오면서 강해진 마스터들과 평화에 젖어 관리조차 게을리한 마스터들이 똑같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재밌었소.”
“……재밌게 즐기셨다니 다행이옵니다.”
애써 웃으면서 말하는 신대륙의 왕을 보면서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숙소로 향했다.
그 뒤를 글렌과 시카리오 후작, 마스터 3인방이 따르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길을 터 주었다.
파도를 가르듯, 사람들이 터 준 길을 따라 여유롭게 숙소에 도착한 카리엘이 전투를 치르느라 고생한 이들을 치하해 주었다.
“덕분에 전쟁까지는 안 가도 되겠어.”
최악의 상황에는 반제국파에게 이그니트의 주력군을 통해 압도적인 힘을 선사하는 것까지 생각했던 카리엘.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오늘 친제국파가 보인 모습을 보면 반제국파 역시 충격을 먹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신’이 무너졌다!」
「그랜드 마스터도 아닌 마스터들에게 무너진 신. 과연 이들을 따를 필요가 있는가?」
마스터 3인방이 신적 존재를 박살 낸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신대륙의 신문에 실린 의문들.
분명 강력한 존재인 건 맞았다.
이그니트의 마스터들조차 인정할 정도로 강한 생물들인 건 맞으니까.
그러나 신적 존재로 추앙받을 만큼인가?
이것에 대한 의문은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사람들은 곧바로 반응했다.
콰장창!
신으로 숭배하며 만들었던 예물들을 갖다 버리는 사람들.
과거였다면 귀족들이나 치안 병력이 잡아들였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들 역시 충격을 먹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이그니트의 힘이다.
「신대륙의 마스터들은 과연 마스터에 걸맞는 힘을 갖추고 있을까?」
신으로 추앙받는 생물들과 대등 그 이상의 힘을 보여 주던 것과 달리 패배한 신대륙의 마스터들.
단 둘뿐이라 신대륙에서는 희귀한 마스터들.
그래서 그런 것인지 마치 보물단지를 숨겨 놓듯 어떠한 전장에도 보내지 않고 꽁꽁 숨겨 놓았던 마스터들이다.
그들 역시 검을 더 연마하기보다 정치 생활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다 보니 실력은 늘기는커녕 퇴화했다.
그런 마스터 둘과 카바를 비롯한 4개국의 숭배를 받은 네마리의 생물들.
과연 이들로 신대륙에 넘어온 이그니트 군대를 막을 수 있을까?
「이그니트에 대항했던 게 맞는 결정이었던 걸까?」
「대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신대륙은 결코 이그니트를 이길 수 없다!」
친제국파에서 시작된 이러한 여론은 곧이어 신대륙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견고해 보이던 반제국파 진형에서 한 나라가 떨어져 나왔다.
카리엘에게 행운이 따르는 걸까?
마침 케찰코아틀이 머무는 산맥을 영토로 감은 국가가 떨어져나와 카리엘에게 연락을 취해 왔다.
“분열이 시작되었네.”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카리엘.
저들의 분열은 이제 시작되었다.
앞으로 카리엘이 신대륙에 머무는 동안 저들의 분열을 더 가속화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이거고, 이곳에 온 본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되었다.
“사과를 받아들인다고 전해. 그리고 바로 신대륙의 거대한 뱀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도 전하고.”
“예, 폐하.”
카리엘의 명령에 고개를 숙이고 나간 타리온.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신을 본 타리온이 카리엘의 의중을 전하자 눈물까지 흘리면서 절을 하는 사신.
“폐하의 자비로움에 감읍! 또 감읍하옵니다!”
“바로 연락해 주시오.”
“예! 그리하겠습니다.”
카리엘이 없음에도 수십 차례나 절을 올린 사신이 황급히 본국에 연락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한 척의 제국 측 비공선이 비밀리에 친제국파의 국경선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