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90화 (190/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외전4. 문제가 많은 신대륙? (3)

카리엘의 바람처럼 대부분의 신대륙 국가들은 이그니트의 정예군이 온다는 소식에 화들짝 놀라며 대부분 이그니트의 제안을 수용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도 존재하는 법.

“꼭 혼내야 정신 차리는 놈들도 있지.”

매를 버는 아이들이 있는 것처럼 카바를 중심으로 한 몇몇 국가들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아무래도 이상한데?”

카리엘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그니트가 안 움직일 거라는 가정이었으면 이해라도 한다.

그런데 카리엘은 그랜드 마스터 2명과 이그니트 최상위 전력을 대동한 채로 움직이고 있었다.

장기전으로 갈 것도 없이 단기전에서 끝낼 수 있는 전력.

그런 상황에서도 저들이 너무 여유로운 것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신대륙 항로의 중각 기착지에서 쉬는 와중에 알 수 있었다.

“이유를 알았습니다.”

타리온이 다급하게 들어와 카리엘에게 보고를 올렸다.

“그러니까 신대륙으로 넘어간 과거의 잔재들을 믿고 있다 이거지?”

“예.”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현재 신대륙에서 신으로 추앙받는 존재들.

그들의 힘은 마스터급 이상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신대륙의 국가들은 바로 이들을 믿는 것이다.

신대륙에도 마스터급 강자는 존재했다. 그런데 그 마스터가 과거의 잔재 중 하나에게 철저하게 발린 것이다.

“현재 신대륙 국가들 중에 강력해 보이는 존재들을 신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해당 국가가 하나씩 과거의 잔재를 모신다고 치면 몇 개 국가만 모여도 우리의 전력을 상회할 수 있겠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타리온의 대답에 카리엘이 피식 웃었다.

“네 생각은 어때? 저들이 신들을 모아 대항하면 우리가 질 거 같아?”

카리엘의 물음에 타리온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럴 리가요.”

“네가 보기에 신대륙 쪽 과거의 잔재들의 수준은 어때? 그랜드 마스터급으로 보여?”

카리엘의 물음에 타리온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일단 신대륙 쪽 마스터가 발렸다고 해서 과거의 잔재를 무조건 그랜드 마스터로 보기엔 어려웠다.

마스터들 사이에서도 수준차이는 있었다.

대전쟁 이전 서대륙 최강이라 불리던 시카리오 후작만 하더라도 일대일 대결에선 압도적인 우위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준이 낮은 건 아닐 것이다.

아무리 신대륙 쪽 마스터들의 수준이 낮다고 한들 마스터를 상대로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면 충분히 경계할 만힌 실력이기 때문이다.

“그랜드 마스터급은 절대 아닙니다. 잘 쳐줘야 아스가르드에 머물던 과거의 잔재급 정도로 되어 보입니다.”

“오딘?”

이번에도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타리온.

“동부에서 사냥했던 천둥새 정도일 겁니다.”

“확실해?”

“예. 이미 다수의 상인들과 저희 요원들을 통해 얼추 확인이 끝났습니다.”

타리온이 대답과 동시에 카리엘이 든 보고서의 뒷장을 넘겨서 확인시켜 주었다.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요원들을 용병으로 위장시켜 대략적으로나마 확인시키는 것이다. 신으로 추앙받는 이들 중 다수는 영성이 확립되지 않은 몬스터들.

그들이 내보이는 힘들을 보고 과거 대전쟁 시절 전쟁 영상들을 비교 분석했다.

그리고 현재 서대륙에 있는 몬스터들과도 대조해 보면서 힘의 크기를 추적했다. 동시에 ‘신’을 목격한 상인들로부터의 조언도 들었다.

“잘해야 천둥새 수준이라……. 그 정도면 이그니트의 마스터들도 상대 가능한 수준인가?”

“그럴 겁니다.”

자신감을 보이는 타리온.

“케찰코아틀이란 녀석도 이 정도 수준인가?”

“……그 뱀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확실한 건 적어도 신대륙의 다른 ‘신’들보다는 확실한 우위에 있습니다.”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한숨을 쉬었다.

그럴 것이라 예상은 했다.

어쩌면 아스가르다에 오르기 전 마왕에 근접한 힘을 갖고 있을 것이라 추정해야 될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엔 신이 되기 직전의 마왕의 힘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두렵진 않았다.

‘그때 이후로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한 카리엘이 눈을 빛내며 혹시라도 있을 상황을 대비했다.

수르트를 비롯한 소환체가 없지만, 그 시절에 비슷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자부했다.

무엇보다 만약의 상황이 오면 소환체들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힘이 소모되겠지만, 소환체들이 복귀한다면 아무리 거대한 뱀이라도 통구이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카리엘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전생의 전성기 이상의 기량을 보이는 글렌과 가파르게 성장 중인 시카리오 후작까지 있었다.

이들이 있기에 자심을 갖고 신대륙으로 향한 카리엘.

그동안 항로에 있는 중간 기착지를 모조리 들른 카리엘이었으나, 이그니트와 대립하기로 마음먹은 국가들은 여전했다.

“결국 힘을 보여 줄 수밖에 없겠네.”

결국 신대륙까지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고쳐먹지 않은 국가들.

신대륙의 핵심국가 다수가 카바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카리엘은 더 이상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이그니트의 위대한 폐하를 뵈옵니다.”

반제국파가 있다면 친제국파도 있는 법.

이그니트와 함께하고자 하는 신대륙 국가들의 정상들이 카리엘이 도착할 지점에 모여서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모두 반갑소.”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 주는 왕들을 보면서 카리엘이 반존대를 해 주면서 그들이 마련한 연회장으로 향했다.

왕궁으로 가는 길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려도 가난한 이들이 보일 정도였다.

한 나라의 수도의 대로가 이러하다면, 지방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심각하군요.”

보고로 듣던 것보다 심한 횡포를 부리는 신대륙의 귀족들.

카리엘이 탄 마차가 지나감에도 구석에서 평민을 발로 밟고 웃고 있는 귀족들은 과거 암흑기 시절의 이그니트가 생각나게 했다.

“확실히 보기 좋진 않네.”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도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정복 전쟁을 일으킬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안타깝다는 마음만 품으며 애써 시선을 돌리려 할 때였다.

도시의 한구석에서 귀족들의 횡포에 저항하는 평민 집단들이 보였다. 이그니트의 황제가 온 것을 기회 삼아 모인 것이다.

금방 치안 병력들에 붙잡혔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이런 일을 벌인 이유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카리엘이 방문하면서 모여든 기자들에게 보이고자 한 것이다.

“……방법이 없을 것 같지는 않은데?”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우리가 서대륙에서 써먹던 방법을 여기에 쓰면 되지 않을까?”

카리엘의 물음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타리온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설마…….”

“혁명 세력. 여기에 침투시킬 방법 좀 찾아봐.”

카리엘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타리온이 미소를 짓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오나 폐하, 서대륙과 신대륙은 상황이 좀 다르지 않습니까?”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혁명이란 것도 어느 정도 기반이 갖춰져야 가능한 법이다.

내전을 일으키고 싶어도 귀족들이 데리고 있는 강력한 전력을 뚫을 방법이 없는 한 정권을 뒤집을 수도 없다.

무엇보다 당장에 먹고살기도 바쁜 이들이 혁명 세력에 합류할 리 없었다.

“그니까 도와줘야지.”

귀족들의 횡포에 저항하는 청년들을 본 순간 카리엘은 이미 계산이 전부 끝났다.

“그래도 친제국파인데 반제국파와 똑같을 순 없지?”

“……폐하?”

“친제국파에 지원을 좀 해 줄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카리엘의 물음에 타리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 보니까 다른 국가들이 반제국파가 될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더라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야. 신대륙, 동대륙, 남부의 섬들에 친제국파를 만들면 되잖아.”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폐하, 그들 모두에 혁명 세력을 침투시키는 건 불가능합니다.”

“알지. 근데 꼭 모든 국가가 이그니트와 친할 필요가 있나?”

“아!”

“각 대륙에 친제국파만 만들어 두면 되는 거 아니야?”

친제국파와 반제국파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게끔만 해도 이그니트엔 이득이었다.

동대륙이야 이미 이그니트가 기반을 만들어 두었기에 작업은 손쉬울 것이다.

남은 건 신대륙과 남부의 섬들뿐.

“일단 신대륙부터 시작해 보자고. 겸사겸사 이곳에도 ‘혁명’이란 것이 일어나게 해 주는 것도 좋겠지.”

적어도 사람이 살 만한 땅이 되게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을 위해서 카리엘은 약간의 번거로움 정도는 감수해 주기로 했다.

그에 대한 첫 번째 발걸음은 바로 친제국파 국가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것이다.

* * *

“이리 환대해 주셔서 고맙소.”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폐하.”

자존심도 없이 고개부터 숙이는 왕들을 보면서 피식 웃은 카리엘이 입을 열었다.

친제국파 라인을 탄 국가들답게 이그니트의 말을 유창하게는 하는 왕들.

그런 이들에게 카리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려운 시기에 제국과 뜻을 같이해 준 보답을 하고 싶소.”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바뀐 분위기에 당황하는 신대륙의 왕들.

“그동안 이그니트와 신대륙간의 다소 불공정한 무역이 있었다고 들었소.”

“아…… 아니옵니다.”

“그럴 리가요.”

“절대 그렇지 않사옵니다.”

카리엘이 자신들을 시험한다고 생각하는지 황급히 손을 들어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

“아니요. 핑계를 댄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그니트는 절대 신대륙 국가들을 괴롭힐 의도가 없었소. 자국 입장만 신경 쓰다 보니 관료들이 다소 무리한 조건을 만들었던 것 같소. 사과드리오.”

카리엘이 살짝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자 친제국파 출신 왕들이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기대감에 찬 눈을 하는 국왕들.

그런 그들의 기대를 충족해 주고자 카리엘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 불공정 무역에 균형을 맞추고자 하오. 제국도 입장이 있다 보니 단기간에 바꿀 수는 없소. 하지만 단계적으로 불공정 무역을 해소하겠소.”

“아!”

“폐하의 은혜에 감읍 또 감읍하옵니다.”

입이 찢어질 듯 웃으면서 카리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이들.

“이것만으로는 사죄가 될 수 없을 것이오. 그래서 생각해 본 건데, 친제국파에 한해서 이그니트가 투자를 할까 하오.”

“투자 말이옵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국왕들.

그런 그들을 보며 카리엘이 웃으며 말했다.

“제국의 상단과 공방, 그리고 마탑의 지부를 이곳에 세워 볼까 하오.”

“아!”

“그……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저희한테 먼저 기회를 주시면 최대한 혜택을…….”

“저희는 향후 5년간 세금을 면제하도록…….”

자국에 이그니트의 상단이나 마탑을 유치하길 원했던 그들은 앞다투어 카리엘에게 말했다.

그런 그들의 반응을 보면서 카리엘이 속으로 비웃었다.

지금 당장이야 좋을지도 모른다.

단순 원자재를 파는 것보다 1차가공이라도 거친 것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게 해 줄 것이고, 불공정 무역까지 균형을 맞춰 준다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이그니트에 대한 의존은 훨씬 더 심해질 것이다.

나중에는 속국처럼 변해 버릴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이곳의 국민들 역시 이그니트처럼 신분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숨어든 혁명 세력이 움직일 것이다.

서대륙의 국가들을 박살 냈던 것처럼 혁명 세력은 귀족들의 힘을 철저하게 갉아먹을 것이다.

‘씨앗은 심어 두었다. 남은 건 이곳의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겠지.’

이제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아무리 혁명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다 해도 스스로 의지가 없으면 의미가 없는 법.

남은 건 이들의 의지가 강하길 바라는 것뿐이다.

“후…….”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건 반제국파뿐인가?”

카리엘이 자신에게 다가온 타리온을 보면서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글렌 경과 시카리오 후작이 출발했습니다.”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은 피식 웃었다.

제국에 대항하기로 마음먹은 국가들이 믿고 있는 신이란 존재가 다음 날 싸늘한 주검이 되거나 치명상을 입고 빌빌 기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네, 과연 믿었던 신들이 박살 나고도 지금처럼 굴 수 있을지.”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 역시 궁금하다는듯 진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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