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외전4. 문제가 많은 신대륙?
카리엘이 신대륙에 가기로 결정한 이후, 가장 바쁜 건 외무대신이었다.
본래라면 벌써 끝났어야 했을 일들이 몇몇 문제들 때문에 아직까지도 지지부진했기 때문이다.
“아니 이 새끼들은 왜 연락을 안 받아? 나랑 장난하는 거야?”
“그게…… 폐하께서 가실 왕국이 전반적으로 쉬엄쉬엄 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뭐?”
외무대신이 분노한 표정으로 신대륙 담당 외무관을 바라보았다.
“그게…… 그쪽은 모든 게 신의 뜻대로 이뤄진다는 관습이 있어서…….”
“그래서?”
“최소한의 일을 한 이후 나머지는 운명에 맡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급 외무관의 말에 외무대신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물었다.
“……설마 그런 경향 때문에 이 새끼들이 일을 안 하고 탱자탱자 쳐 논다?”
“그것도 있지만 그들 대부분이 귀족들이란 점도…….”
외무관의 말에 외무대신이 헛웃음을 짓다가 과거가 생각났는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현재의 이그니트 입장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는 했다.
일을 대충 한다?
바로 다음 날,
“너 이 새끼 뒈지고 싶어? 오늘 이거 다 끝날 때까지 퇴근하지 마!”
온갖 쌍욕을 먹으면서 존경하는 황제 폐하께 직접 붙잡혀서 밤새 일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전을 생각해 보라.
카리엘이 본격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기 전을 생각해 보자.
당장에 황태자 시절만 하더라도 대신들이 지금처럼 일했을까?
아니었다.
그럼 그 전에는?
이그니트는 다른 나라의 조롱에도 침묵해야 했던 치욕스러운 나라였다.
“과거의 이그니트와 동급인가?”
“그보다 심할 겁니다.”
외무관의 말에 외무대신이 한숨을 쉬었다.
오늘도 황제의 궁에 불려 가서 까일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찔했다.
길게 한숨을 쉬는 외무대신을 보면서 외무관들이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멍청한 신대륙의 국가들이 문제였지만, 까이는 건 외무대신의 담당이다.
“대신님.”
“……폐하께서 부르시는가?”
“예.”
황제의 궁에서 찾아온 시종의 부름에 외무대신이 올 게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형장에 끌려가는 죄수처럼 황제의 궁으로 찾아간 외무대신.
“후…… 오늘로 며칠째지?”
“6일이옵니다.”
“이 정도면 둘 중 하나겠지. 자네가 무능하다든가 아니면…… 그동안 내가 괴롭혔다고 시위를 하는 것이든가.”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분노한 표정으로 외무대신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내가 아는 외무대신은 일을 참 잘하거든. 그럼 남은 결론은 외무대신이 나를 엿 멋이려고 이러는 거라는 건데…….”
“폐하! 절대 아니옵니다!”
“그럼 대체 왜 이러는 건데!”
카리엘의 고성에 자라목이 된 외무대신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신대륙 담당 외무관한테 들었던 것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동시에 현재 신대륙의 상황까지 간략하게 전해 주었다.
“개판이네?”
“……예.”
현재 신대륙의 상황은 과거의 서대륙보다 더 나빴다.
서대륙은 그래도 강력한 이그니트를 갉아먹기 위해 다른 나라들끼리의 분쟁은 덜했다.
큼지막한 먹잇감이 있으니 일단 이 먹잇감부터 다 먹고 나서 서로 싸우든 말든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신대륙은 달랐다.
현재 지지부진한 나라인 카바를 중심으로 여러 나라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최근 급격한 성장을 이루면서 카바의 국력을 빠르게 따라잡아 버린 것이다.
그런데 더 문제인 건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면 정신 차리고 나라를 발전시킬 생각을 해야 하는데, 오랫동안 다른 나라들로부터 뇌물을 처먹던 관습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선물로 주는 게 독인지도 모르고 처먹다 보니 한없이 나태해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방법은?”
“무시하고 가시는 게…….”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전쟁하자고?”
카리엘이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자 외무대신이 한숨을 쉬었다.
“그게 아니면 답은 하나입니다.”
“뭐지?”
“카바 근방에 있는 모든 국가에게 막대한 뇌물과 혜택을 쥐여 주면 됩니다.”
외무대신의 말에 카리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름 오랫동안 카리엘을 경험해 본 외무대신이기 때문에 완전히 폭발하기 직전임을 알기에 재빨리 입을 열었다.
“사실 이 모든 게 관료들이 일을 잘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건 또 뭔 개소리지?”
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하자 외무대신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사실 저들이 저렇게 나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1. 신대륙 국가들과 이그니트의 교역에서 항상 막대한 이득을 취한 건 이그니트다.
2. 카바 근방의 국가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이그니트와 맺은 불공정 계약을 좀 바꿔 보고자 하는 계산에 현 상황이 만들어짐.
3. 저들이 이렇게 무례하게 나온 근거는 바다와 강해진 몬스터들이 장벽을 만들어 줄 것이기에 강하게 나오는 것 같음.
사실 이건 관료들이 잘해서 그런 게 맞았다.
보통 신대륙에서 들여오는 건 대부분 원자재들이다.
거기다 신대륙으로 만들어진 항로들 역시 개선을 거듭하면서 최적의 항로가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신대륙의 다른 국가들이 직접 남쪽 섬들과 동대륙으로 향할 항로를 만들어 더 큰 이득을 취하려 해도 지금보다 낫다는 가능성이 적었다.
그렇기에 이그니트의 항구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컸다. 그걸 아는 관료들이 신대륙 국가들을 상대로 봐주는 것 없이 이득을 취하다 보니 불만이 쌓인 것이다.
그동안 이그니트가 신대륙 국가에 딱히 원하는 게 없기에 매번 불공정 무역을 진행했다.
그들이 생산하는 물자는 농림부의 노력으로 서대륙과 동대륙 일부에서도 생산이 가능했으며, 광석같은 물자들은 신대륙이 아니어도 다른 곳에서도 좋은 가격에 들어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원하는 게 생겼고, 멍청한 카바를 앞세워서 신대륙 국가들이 은근슬쩍 이그니트와 새로운 협상을 해 보려 한다?”
“그렇습니다.”
외무대신의 설명에 카리엘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일을 잘해서 이런 상황이 됐다는 게 뭐라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이 문제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 그들이 더 심할 텐데.”
“……신대륙 대부분의 국가들이 귀족들의 입김이 셉니다.”
“자신들의 이득만 된다면 국민들이 어찌 되든 알 바가 아니라는 거군.”
카리엘의 말에 외무대신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과거의 이그니트가 그렇듯 신대륙 역시 대부분의 국가들이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신대륙을 점령해 버리고 싶고, 그럴 역량이 되기도 했다.
저들은 이그니트가 바다를 넘어서 저들을 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한다. 단순히 먼 거리였다면 큰 문제가 안 되겠지만 고대의 잔재들로 인해 바다에 괴물들이 득실거리기 시작하면서 무역로를 지키기도 빠듯하게 되었다.
그러나 저들이 착각하는 게 있었다.
이그니트는 세계 최강국이라는 점.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의 국력이 있었다. 실제로 동대륙의 땅도 더 넓힐 수 있었고, 남쪽의 섬들도 더 많은 지역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다.
“귀찮은데…….”
카리엘의 귀찮음.
그리고 대신들과 관료들 역시 지금보다 일이 더 늘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솔직히 영토를 넓히는 것보다 지금처럼 누군가를 침략하지 않는다는 안정감을 심어 주고 막대한 이득을 보는 편이 훨씬 나았다.
만약 영토를 넓힌다고 설쳤다면, 지금처럼 자유로운 무역로가 만들어지지도 못했으리라.
정복욕이 없는 카리엘은 지금이 딱 좋았다.
이그니트가 발전할 토대를 쌓고, 그걸 기반으로 더 높은 수준의 기술력 그리고 압도적인 국력을 만드는 것.
다른 나라들도 평화를 반기는 분위기니 모든 게 잘될 줄 알았건만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저들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하면 손해는 어느 정도지?”
“제국 입장에선 손해가 크지는 않을 겁니다.”
“감당은 가능하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이그니트가 무역으로 이득을 취하는 국가는 저들만이 아닙니다.”
이그니트가 한발 물러서면서 치러야할 손해가 너무 컸다.
게다가 나라가 부패의 온상이라면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지도자도 있을 터.
이그니트가 양보한 게 아니라 지들이 잘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 순간 선을 넘는 일도 발생할 것이다.
“여기…… 재무부의 의견으로는 저들의 요구를 들어줄 시 현재 아이론 지역에서 육성 중인 중소 상단 태반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
오랫동안 카리엘을 보좌한 결과, 해결책을 만들기 위해 회의할 것이고, 그러면 일감이 더욱 늘어날 것임을 알기에 카리엘이 물을 만한 보고서들을 미리미리 대신들과 상의해서 만들어 왔다.
외무대신인데 군부, 재무부와 상의해서 나온 결과물부터 상인연합 그리고 공학부의 자재 수급에 대한 문제들의 예측치 그리고 이걸 해결하기 위해 어떤 외교적인 협상이 필요할지까지 싹 다 정리해 온 것이다.
“제법이군.”
카리엘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외무대신을 바라보았다.
분명 카리엘이 황태자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그럭저럭 써먹을 만한 수준에 불과했다.
하나 사람이란 발전을 하는 동물.
한계 이상으로 쥐어짜이는 나날을 보내다 보니 이렇게 능력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물론 능력 자체는 젊은 관료들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륜과 정보를 체계적으로 종합하는 이런 모습은 현재의 외무대신을 따라갈 자가 없으리라.
‘앞으로 더 열심히 굴리라고 말해 줘야겠어.’
루피엘의 노예 1호를 만들어 줄 심산으로 입가에 미소를 그린 카리엘이 고민하다가 결국 결론을 내렸다.
“건방진 놈들에겐 본때를 보여 줘야겠지.”
“……전쟁입니까?”
“아니?”
“그럼…….”
외무대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그니트의 최정예들만 모아서 갈 생각이다.”
“아…….”
“시카리오 후작, 글렌 경 그리고 마스터 넷 정도만 대동할 생각이야. 아! 물론 제국의 최신예 무기들로 무장한 2개 군단도 함께 움직이겠지?”
카리엘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얘기한 이유를 단박에 알아들은 외무대신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저들을 협박할 방안을 만들어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타리온과 내무대신 들어오라고 해.”
“예, 폐하.”
적들을 치기 전에 일단 여론부터 만들 필요가 있었다.
‘우리 나쁜 국가 아니에요!’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밑작업.
“작전명은 ‘세계 평화를 방해하는 놈들을 징치하다!’ 정도면 되려나?”
그렇게 말하면서 빙그레 웃은 카리엘.
대륙에 평화가 찾아오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감각이 다시 부활하는 느낌이 들었다.
계획에 걸림돌이 되는 놈들을 하나하나 박살 내는 데서 오는 쾌감.
그 감각이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하자 카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건방진 신대륙 놈들을 어떻게 박살 내 줄지 고민하던 카리엘이 시계를 보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늦었다!”
아내와의 저녁 약속.
가뜩이나 토라져 있는 아일라인데 약속 시간마저 늦는다?
“마…… 마차! 아니, 되었다!”
문을 열자마자 마차를 대령하라 했던 카리엘이 고개를 저으며 직접 발로 뛰었다.
마차를 준비하고 그것을 타고 천천히 이동하는 것보다 자신이 뛰어가는 게 더 빨랐기 때문이다.
늦으면 상상할 수 없는 지옥 같은 시간이 펼쳐질 것이기에 발바닥에 땀나도록 황후궁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하는 아일라의 얼굴이 보였다.
다행히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휴…… 살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