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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73화 (173/201)

173-64.최후의 전쟁!

인류의 존망을 건 대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지축이 흔들리며 높게 솟은 거인의 산맥에도 여파가 일어났다.

흔들리며 나무와 돌들이 떨어져 내리며 산 일부가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가장 높이 솟아오른 산위에 만들어진 아스가르드는 조금도 영향이 가지 않았다.

쿠우웅!

“괴물인가?”

폭음과 함께 살점이 터져 나가면서 거대한 산이 흔들렸다.

신형 마도포와 마족들의 강력한 힘에도 조금도 영향이 없던 거대한 산이 마왕의 주먹질 한 방에 요동을 치는 것이다.

“저런 자가 아직 신의 반열에 이르지 못했다라······.”

카리엘의 말에 소형기 안에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신의 반열에 이르지 못했지만 역사에 이름을 날렸던 과거의 잔재들이 폭죽처럼 터져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시카리오 후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산의 길목을 지키는 거인들을 박살 내면서 빠르게 등반하는 마왕.

산 곳곳에 만들어진 독무부터 칼날 같은 바람, 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용암들도 마왕의 걸음을 막지 못했다.

마치 이 모든 게 유희인 듯, 오히려 웃으면서 과거의 잔재들을 박살 냈다.

“······.”

부담감에 식은땀마저 흘리는 시카리오 후작.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글렌이나 그와 비슷한 경지로 추정되는 힘을 가진 카리엘.

반면에 그는 아직 벽을 뚫지 못했다.

분명 뭔가 잡히는 것이 있는데 막상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상황.

육체의 감각은 ‘넌 벽을 넘었다!'라고 알려주고 있으나 머리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반쪽짜리가 현재 시카리오 후작의 경지였다.

그렇기에 더욱 조급해졌다.

그런 후작의 상태를 알아차린 카리엘이 그를 나직이 불렀다.

“후작.”

“······예, 폐하.”

“조급해하지 말게.”

카리엘은 후작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대의 장점은 어느 때라도 냉철함을 유지하는 것 아니었나?”

위로의 말에 시카리오 후작이 떨린 눈동자로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카리엘이 다 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젊은 황제가 무엇을 안다는 것일까?

이런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카리엘은 정말로 자신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는 듯 말없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의 눈동자는 정말 시카리오 후작의 상황을 다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전생에 무능력했던 자신.

동생들에 비해 어떤 힘도 없이 최악의 상황에서 제국을 이어받을 때, 황궁이 무너지고 도망치는 와중에 느꼈던 감정들.

그것과 비슷한 감정을 지금 시카리오 후작이 느끼고 있었다.

“그대는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어. 그러니 내가 콕 집어서 그대를 이곳에 데려왔지.”

그렇게 말하며 카리엘이 시카리오 후작을 위로할 때였다.

쿵!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소형기 일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결계인 것 같습니다.”

글렌의 말에 카리엘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나뿐이라면 깨뜨리고 공중으로 날아오를 법하지만, 수십 겹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그러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아직 기술 부족으로 높이 날아오를수록 기체가 버틸 수가 없었다.

“여기서부턴 걸어가야겠네.”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산의 중턱으로 소형기를 몰았다.

기술 부족으로 착륙 기술을 제대로 적용시키지 못한 소형기는 그대로 산에 돌진에 처박혔다.

작은 폭발과 함께 산산조각 난 소형기.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시신의 형체조차 제대로 찾지 못할 폭발 속에서 온전히 걸어 나온 카리엘과 두 검사들.

“괴물은 괴물이네.”

아스가르드로 가는 길을 막기 위해 달려든 수많은 과거의 잔재들을 박살 내면서 올라가는 마왕.

그로 인해 마왕이 뚫은 길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살점들로 가득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마왕이 너무 빨리 올라가는 바람에 산 주위에는 아직도 과거의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저들을 뚫고 가야 하네. 할 수 있겠나?”

카리엘의 물음에 두 검사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믿겠다.”

그렇게 말한 순간 가장 먼저 글렌이 움직였다.

검이 뽑히는 순간, 공간이 일렁이면서 일직선상에 있는 거인들이 무너졌다.

하지만 그들 역시 신화시대에 이름을 날렸던 자들인 만큼 단번에 죽지 않았다.

다리가 베여도 믿을 수 없는 재생력으로 다시 붙이려 했으나, 공간마저 가르는 참격에 결국 하나둘 무너져 내렸다.

“역시 차이가 있나?”

뒤에서 글렌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카리엘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빠르게 전생의 경지에 가까워지는 글렌이었으나 마왕이 보인 압도적인 힘에 비하면 부족한 게 많았다.

하지만 그나마 글렌이 있기에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것이다.

“······후작.”

한때 이그니트 최강의 검으로 군림하던 그였으나 과거의 잔재 하나를 두고도 어려움을 겪는 그와 앞서 나가는 글렌의 차이는 명확했다.

무언가 감을 잡았다고는 하지만 결국 벽을 뚫지 못한다면 과거의 잔재 하나를 두고도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영웅 후보들이 있었지만 결국 전설로 기록될 영웅들은 손에 꼽을 만큼 적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 지켜만 볼 거냐?

어느새 나타난 수르트의 말에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힘은 무한이 아니었다.

한때 무한에 가깝다고 착각했던 적이 있었다.

몸이 버티질 못할 뿐, 화기는 무한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헬과 싸웠을 때, 신의 반열에 이른 자를 상대하기엔 자신의 힘이 부족함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최대한 아껴 마왕과의 결전에 모든 힘을 쏟을 생각이었다.

“헉······ 헉······.”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지쳐 가는 시카리오 후작.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때 최강의 검으로 군림했던 그의 자존심이, 성국을 상대로 홀로 제국을 지켜 내던 그의 굳건한 마음이 버티게끔 했다.

마왕과 달리 점점 지쳐 가는 글렌과 시카리오 후작이지만, 카리엘은 힘을 발현하지 않았다.

- 점점 성장하는군.

수르트의 말대로 글렌은 성장 중이었다.

여전히 마왕처럼 압도적이진 않지만, 더 깔끔한 검격, 그리고 효율적인 힘의 운용으로 처음 산에 오를 때보다 지치는 기색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건 시카리오 후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과거의 잔재 하나도 상대하기 버거워하던 그였지만 어느새 둘 이상을 몰아붙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그의 힘이 퍼지는 영역도 넓어져만 갔다.

- 슬슬 우리가 나설 타이밍인 것 같은데?

“그래.”

인간의 힘은 무한하지 않다.

그건 육체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마스터급 존재들이 인간 같지 않은 힘을 보인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한계가 존재했고, 그건 그랜드마스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이어 강자들을 상대하며 지친 이들을 대신해 카리엘이 처음으로 발휘했다.

어느새 소환된 거대한 소환체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쉬고 있게.”

글렌과 시카리오 후작을 바라보며 말한 카리엘은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멀리서 비공선들과 마족들이 계속해서 싸우고 있었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싸우는 병력들.

한쪽이 싸우다 지치면 그 빈틈을 노리고 다른 곳이 공격해 들어오고, 그로 인해 빈자리를 또 다른 부대가 공격하는 것의 반복.

그러다 보니 거대한 전선 전체가 쉬지 않고 전투를 이어 나갔다.

카리엘과 두 검사가 밤낮없이 산을 오르며 과거의 잔재들을 베어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폐하, 준비되었습니다.”

“좀 더 쉬지 않아도 되겠나?”

카리엘이 아직 지쳐 보이는 글렌을 보면서 걱정스레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건 시카리오 후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다시금 검을 손에 쥐자 빠르게 소환체를 역소환한 카리엘이 소모된 힘을 보충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지치면 카리엘이 움직이고, 힘이 회복되면 카리엘이 힘을 회복하며 뒤따르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글렌은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반면에 시카리오 후작은 무언가 막힌 듯, 어느 시점부터는 기존보다 못한 검술을 펼쳤다.

그로 인해 과거의 잔재들에게 얻어터지면서 내상까지 입는 후작.

보다 못한 카리엘이 힘을 사용하려 했지만, 수르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 놔둬.

수르트가 그렇게 말하면서 글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수르트의 말에 동의했다.

그가 기존에 고수하던 검의 길이 흔들리고, 내상까지 입었음에도 입술을 깨물며 버티는 후작.

점점 수세에 몰리면서 그가 갖고 있던 한 줄기 이성마저 날아갔을 때, 그의 몸에서 퍼져나오는 검은 그림자들.

어느새 카리엘과 글렌마저 집어 삼키려드는 오러를 보면서 글렌이 황급히 카리엘을 데리고 앞으로 치고 나갔다.

“저희는 먼저 움직이는 게 좋겠습니다.”

글렌의 말이 끝나는 순간, 저 멀리 아스가르드에서 거대한 충돌이 일어났다.

힘의 파장만으로 아래에서 일어나는 전장이 잠시 멈출 정도로 강력한 파장.

그것을 가까이서 느낀 카리엘이 심각한 표정으로 시카리오 후작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갔다.

힘은 충분히 아꼈다.

그러니 이제는 달릴 때였다.

쿠웅!

또다시 퍼져 나가는 강력한 충격파.

그것으로 마침내 마왕과 신의 반열에 든 자의 전투가 시작되었음을 느낀 카리엘과 글렌이 빠르게 올라갔다.

수르트의 위에 올라탄 카리엘과 글렌이 산을 오르면서 주변에서 덤벼드는 자들을 대충털어 내면서 올라가는 데 집중했다.

아스가르드에서 일어난 충돌 때문일까?

힘이 약한 잔재들이 혼란에 빠지며 거대한 산에서 벗어나려 했다.

- 괴······ 괴물······

위에서 무엇을 본 것인지는 몰라도 날개를 가진 여인 전사가 도망쳤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인, 용, 요정까지 아스가르드에서 벗어나려 했다.

이미 신들의 대지를 감싼 결계는 박살 난 지 오래였다.

- 고작 이것이냐! 이것이 신들이란 말이냐!

산 아래까지 들려오는 마왕의 고성과 함께 또다시 강렬한 충돌이 일어났다.

아스가르드를 구성하던 대지 일부가 부서지면서 아래로 떨어지고, 부유섬들은 힘의 여파를 감당하지 못하고 추락했다.

그러는 사이 카리엘과 글렌이 마침내 신들의 대지로 들어가는 계단에 도착했다.

퍽!

아래로 떨어지는 누군가의 머리가 대지와 부딪치자 터져 나갔다.

한때 신으로 추앙받던 자의 과거의 잔재.

계단을 오를 때마다 떨어지는 시체들을 뒤로하고 마침내 정상에 도착하자 여기저기에 널린 거인들의 시체가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 신들을 홀로 상대하는 마왕이 보였다.

“이길 수 있겠어?”

“목숨을 걸고 막겠습니다.”

카리엘의 물음에 글렌이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산을 올라오는 며칠 동안 더욱 성장한 글렌이지만, 여전히 마왕의 압도적인 힘에 비하면 약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야 했다.

그때 저 멀리 신들과 싸우던 마왕이 마침내 도착한 카리엘과 글렌을 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크하하하하!

광소를 터뜨리는 마왕.

자신이 힘을 빠질 때를 노릴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유희를 위해 일부러 이 상황을 만든 마왕.

그런 그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신들을 향해 마기를 응축해 터뜨렸다.

- 이놈들이 죄다 죽기 전에 오거라.

그렇게 말한 마왕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하늘에서 떨어지는 검은 벼락.

그것을 본 카리엘과 글렌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힘의 위력은 마왕이 발현한 것치고 분명히 약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놀란 이유는 바로 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신으로 향하는 길을······.”

“아직은 아니야.”

그렇게 말한 카리엘을 글렌이 빤히 바라보더니 검을 뽑아 들었다.

아직 마왕은 신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막아야 했다, 아직 기회는 있으니······

그런 그들을 막는 존재들이 있었다.

마왕의 강력한 힘에 굴복한 과거의 잔재들.

그들을 보면서 카리엘과 글렌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왕은 지금 게임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신이 되는 게 빠를까? 너희가 여기에 도달하는 게 빠를까?'

'나를 막을 수 있을까?'

'더 성장해라. 그리하여 나를 즐겁게 하라!’

이 모든 메시지를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과거의 잔재들을 통해 읽을 수 있었다.

분명 뻔히 보이는 의도였지만 카리엘과 글렌은 마왕의 의도에 놀아날 수밖에 없었다.

마왕이 자신들의 계획을 알아도 당해 주었듯, 이번엔 자신들이 그리할 차례였기 때문이다.

“단번에 뚫고 가자.”

- 그래.

어느새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 수르트.

그를 중심으로 양옆에 스콜과 아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 가름은?

“아직.”

수르트의 물음에 카리엘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가름의 소환은 힘의 소모가 너무 컸다.

무엇보다 지옥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 아닌 이상 힘의 제약도 컸다.

거기다 현재의 가름은 지옥을 안정화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결정적인 순간에 사용해야 했다.

그렇게 비장의 무기를 아낀 채 글렌과 함께 마왕을 향해 움직이는 카리엘.

그런 둘을 보면서 재밌다는 듯 웃으면서 신이라 불리던 과거의 잔재들을 상대하는 마왕.

긴 삶을 살아온 마왕의 인생에서 지금보다 재밌는 순간 없었다.

아마 자신이 신이 된다고 해도 다시는 이런 순간을 겪지 못하리라.

그렇기에 인간들이 성장하기를 기다리고, 신들 역시 협공하도록 기다려주었다.

그런 마왕의 오만함을 노리고 거대한 빛의 창이 날아들었다.

쿠웅!

- 마신인가?

거대한 폭음과 함께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외눈의 노인.

한때 주신이라 추앙받았으며, 마족들을 탄생시킨 마신이라 불리는 존재.

오딘이 등장했다.

뒤에선 인류의 영웅들이, 앞에선 신들이 자신을 노리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왕은 웃었다.

- 크하하! 그래! 이거다! 이거야!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희열을 느낀 마왕이 최후의 전투를 위해 모든 힘을 짜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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