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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71화 (171/201)

171-64.최후의 전쟁!

마침내 복귀 명령이 떨어지자 그가 탄 비공선이 전력으로 서쪽을 향해 질주했다.

당장이라도 마족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마왕은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신들의 대지가 전부 완성되고 과거의 잔재들이 모이길 기다리는지, 천천히 움직이며 마왕군을 재정비했다.

며칠에 걸쳐 마왕이 당장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확인되자 그제야 인류의 군대 역시 재정비를 결정했다.

「마침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영웅들」

수많은 희생을 치른 연합군은 동부 원정을 끝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나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어쩌면 최후의 전쟁이 될 수도 있는 큰 전투를 앞두고 가족과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그니트뿐만 아니라 대륙의 모든 병사들은 이번 전투가 최후의 전투가 될 것임을 알기에 가족들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짧은 휴식기.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달콤한 휴식 속에서 각국의 수뇌부는 더욱 바삐 움직였다.

특히 바쁜 건 이그니트였다.

“이제 만약을 대비하는 건 의미가 없어졌소.”

루피엘의 말에 대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리엘의 명령으로 만약을 대비했던 이들.

하지만 전장이 거인의 산맥으로 옮겨진 이상 거인의 산맥을 중심으로 벽을 친다는 기존 계획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계획이 의미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모든 전력이 거인의 산맥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대륙의 중심부로 보이는 거인의 산맥의 가장 높은 꼭대기.

그곳을 중심으로 거대한 부유섬들이 뭉쳐 만들어진 신들의 대지.

대체 어떤 방법으로 만들어지는지 짐작조차 못 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아스가르드는 과거의 잔재들이 정말로 신의 파편임을 증명했다.

「신화시대의 재림인가?」

한 학자의 논문.

고대 문서들을 바탕으로 현대의 마법으로는 절대 유지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은 오직 신의 반열에 오른 자만이 가능하게 한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학자들 역시 공통된 의견이었다.

인류의 모든 것을 걸고 겨우 반쪽짜리 신 하나를 이겼는데, 수많은 신들이 모이는 아스가르드가 생기자 모두가 불안에 떨었다.

하지만 이그니트의 수뇌부는 달랐다.

“비록 위험하긴 하나 위치가 거인의 산맥이어서 좋군.”

“그렇습니다.”

루피엘의 말에 재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인의 산맥은 그들이 준비한 핵심 전력과 기술들이 집약된 곳이었다.

이제 그 모든 전력을 거인의 산맥 중심부인 「아스가르드」라 불리는 공중 대지에 집중하면 되었다.

「신속한 전략물자 이송을 위한 물류망」

「거인의 산맥 근방에 만든 수많은 후방 기지」

「거인의 산맥 곳곳에 설치한 함정들」

이 모든 준비는 마왕군과 지옥의 군대를 위한 것이지만 그 대상을 과거의 잔재로 변경하면 그뿐이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이후 전략은 어떻게 짜면 되겠습니까?”

재상의 물음에 루피엘이 뭘 묻느냐는 듯 말했다.

“앞으로 모든 결정은 폐하께서 오시면 하게 될 겁니다.”

루피엘의 말에 재상도 미소를 지었으나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점도 있었다.

“폐하께서 분노하시지 않을는지······.”

“어쩌겠소. 우리도 살아야지······.”

그의 말에 재상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준비는 어떻게 되었소?”

“이미 세리에 총사령관과 로칸 총사령관과도 이야기가 다 끝났습니다.”

재상의 대답에 빙그레 미소를 짓는 루피엘.

이제 남은 건 자신들의 황제가 그곳에 도착하는 것 뿐이었다.

“타리온 공과 아켈리오 공은······?”

“입을 다물 것입니다.”

재상이 걱정 말라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그들이 입을 잘못 놀려 카리엘이 사실을 알게 되고 작전이 실패한다?

그렇게 된다면 이후에 일어날 루피엘의 분노는 그들이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

혹시라도 카리엘이 은퇴한다면 다음 대 황제는 루피엘이 될 것이고, 그들은 바깥 구경조차 못하도록 서류 지옥 속에 파묻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물론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될 카리엘의 분노가 두려울 터이나, 모두가 작당하고 한 일이니 고통은 분담될 수 있을 터.

“리스크는 나뉘어야 하는 법이라는 걸 그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재상의 말에 루피엘과 대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리엘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한통속인데 뭐 어쩔 거란 말인가?

그렇게 모두가 파 놓은 함정 속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돌아오는 카리엘.

평소라면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최후의 전쟁을 앞둔 카리엘은 온통 신경이 아스가르드와 마왕에게 쏠려 있었기에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게. 형님 혼자만 살려고 그러면 안 되지요.”

모두가 나간 대전에서 그렇게 중얼거린 루피엘은 소중히 품고 있는 사직서를 매만지면서 하루빨리 카리엘이 그곳에 당도하길 기도했다.

* * *

모두의 바람 속에 카리엘이 전속력으로 돌아오는 사이, 대륙은 이례적으로 평화로웠다.

모두가 조금만 더, 이 평화가 지속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마왕의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마침내 움직인 마왕! 드디어 전쟁이 시작되나?]

각국의 수뇌부가 마왕이 움직였다는 것을 전 대륙 사람들에게 알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평화에 젖어 있을 병사들을 다시금 소집하기 위한 명분이었기 때문이다.

“으아아앙! 아빠 가지 마!”

울며 매달리는 아이.

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아내.

그들을 두고 눈물을 흘리면서 무기를 짊어지는 병사.

그 역시 가기 싫었다.

하지만 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진다면 인류는 멸망이다.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목숨 걸고 싸우기 위해 다시 전선으로 복귀하는 병사들.

서대륙, 동대륙 할 것 없이 모든 병력들이 재소집되는 사이 마침내 카리엘이 대륙을 횡단하며 대륙 최대 요새인 거인의 요새에 도착했다.

이그니트의 주요 전력이 전부 모인 상황에서 중앙에 내려앉은 비공선.

그곳의 문이 열리자 모든 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폐하를 뵙습니다!”

모두의 외침 속에서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는 카리엘.

- 표정 좀 펴라.

인상을 구기고 있는 카리엘을 보면서 작게 속삭이는 수르트.

‘결국 오고 말았네.’

상황만 이렇지 않았다면 좀 더 뭉그적거려볼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동부에 죽치고 있다가 은근슬쩍 은퇴 각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황궁으로 안 돌아간 게 다행이라 생각해야하나?”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손짓으로 경례를 멈추라고 말한 후, 조용히 거인의 요새 중심부로 향했다.

이번에도 예전처럼 거인의 요새에서 죽치고 있다가 전투가 시작되면 움직일 생각을 한 카리엘.

그런데 왠지 분위기가 싸했다.

“뭔가 이상한데?”

카리엘의 중얼거림에 뒤에서 따라 걷던 타리온과 아켈리오가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다행히 그 모습을 보지 못한 카리엘은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촉이 지금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자꾸만 말하고 있었다.

“뭘까······.”

그렇게 중얼거릴 때였다.

“폐하를 뵙습니다!”

익숙한 목소리들이 우렁차게 들려왔다.

절대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들.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카리엘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자네들······ 아니! 루피엘! 네가 왜 여기에?”

카리엘이 당황한 표정으로 동생을 바라본 순간, 세리엘이 헛기침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너까지?”

그렇게 말하는 순간, 한창 폐관 수련 중일 시카리오 후작까지 나타나자 카리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머리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가며 지금 이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날 환영하기 위한 자리는 아닌 것 같은데······.”

카리엘이 슬쩍 뒤를 보며 타리온과 아켈리오를 째려보자 그들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했다.

대신들과 재상들이 자리한 곳 옆에는 수북하게 쌓인 자료들이 보였다.

그것을 본 카리엘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후······ 다들 짐의 복귀를 환영해 주어 고맙군.”

아무것도 모르는 척 걸어가면서 말하자 대신들을 비롯한 모든 관료들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 황좌까지 가져다 놨네.

황궁에 있어야 할 황좌까지 가져다 놓은 관료들을 보면서 수르트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어찌하여 황좌가 여기에 있는가?”

“폐하께서 계신 곳이 곧 황궁 아니겠습니까?”

루피엘의 말에 카리엘이 분노한 표정으로 말했다.

“감히 초대 황제 폐하 때부터 이어져 온 관례를 무시하는 것이냐!”

“송구하옵니다.”

황급히 고개를 숙인 루피엘.

하지만 곧바로 입을 열었다.

“하오나 현 황제 폐하께오선 이미 초대 황제의 그늘을 넘으신 분, 또한 대륙의 위기인 지금 상황에서 신의 위협을 이겨 낸 위대한 폐하께서 직접 제국을 이끄시는 게 마땅하다 판단되는 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숙인 루피엘이 조심스레 품속에서 보고서를 꺼냈다.

그것을 조심스레 받아 든 늙은 시종장이 카리엘에게 가져다주었다.

“전······ 시······ 행정?”

“예, 폐하. 전시 행정을 제안코자 하옵니다.”

카리엘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임시 황궁.

앞으로 모든 관료들이 카리엘을 따라다니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지금 장난하는가! 모든 체제가 집중되어 있는 수도를 버리고 뭐? 나를 따라다니겠다?”

카리엘이 분노하는데도 침착한 표정으로 다음 보고서를 들이미는 재상.

"폐하의 밀명으로 거인의 산맥을 중심으로 모든 물자를 집중시킬 수 있는 체제를 갖췄습니다.”

“또한 만약을 대비해 철벽의 성에 중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재상의 말을 이어 말하는 루피엘.

“군부 역시 거인의 요새에서 전군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준비해 놨습니다.”

세리엘의 말에 카리엘이 한숨을 쉬었다.

의도적으로 동부를 발전시켜 왔던 이그니트.

만약을 대비하던 움직임이 카리엘이 전시행정을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준비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어차피 주전장은 거인의 산맥이 될 터이니 카리엘이 전장을 나돌아 다녀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

“폐하! 부디 그 현명함으로 소신들을 직접 이끌어 주십시오.”

“이끌어 주십시오!”

루피엘의 선창에 모든 이들이 무릎을 꿇으면서 외쳤다.

그것을 보면서 수르트가 재밌다는 듯 키득거리며 말했다.

- 조졌네. 꼼짝없이 서류 지옥에 파묻힐 수밖에 없겠어.

작은 불덩이가 웃으면서 말하자 어느새 나타난 스콜과 아그니가 카리엘을 위로하듯 작은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새로이 소환체가 된 가름의 초록불 역시 작은 팔을 만들어내 카리엘의 머리를 툭툭 쳐 주었다.

“······알겠다.”

한참을 침묵하던 카리엘이 가까스로 대신들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환호하는 대신들과 관료들.

루피엘과 세리엘의 경우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표정을 구긴 카리엘은 곧바로 주요 현안들을 처리하기 위한 회의를 시작했다.

* * *

돌아오자마자 일하게 된 카리엘.

그와 달리 마왕은 여유롭게 거인의 산맥으로 움직였다.

마치 유람하듯 이곳저곳을 거닐며 과거의 잔재들이 있는 곳으로 움직인 마왕.

- 저곳인가? 신기하긴 하군.

유난히 우뚝 솟은 산을 중심으로 섬들이 둥둥 떠있는 모습은 신비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감흥은 극히 짧았다.

- 어떤 놈들이 기다리고 있으려나.

그렇게 중얼거린 마왕이 투기를 내뿜었다.

자신의 관심은 오로지 더 강한 존재와의 결투뿐이다.

그렇기에 마왕은 오로지 강자와의 싸움을 위해 움직이려 했다.

- 저희가 단독으로 저곳을 치려 한다면 뒤를 인간의 군대가 칠 것입니다.

- 저곳에는 나 혼자 간다. 너희는 인간의 군대를 막거라.

- 하오나.

마왕의 결정에 뭔가 말하려던 여우 귀를 가진 마족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 모든 것은 마왕님의 뜻대로······

고개를 숙인 여우 여인의 말에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 마왕은 홀로 거인의 산맥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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