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64.최후의 전쟁!
위대한 황제가 결국 일을 냈다.
동대륙을 이 지경까지 몰고 온 원흉 중 하나인 로만을 끝냈다.
동시에 그들을 죄인 삼아 지옥에서 온 과거의 잔재들을 정리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이 소식은 뒤늦게 온 연합군에 의해 먼저 알려졌다.
「이그니트의 위대한 황제! 기어코 지옥의 궁전을 무너뜨리다!」
「신마저 이긴 위대한 황제!」
「카리엘 프레드리히 폰 블레이저! 그의 위상은 이제 초대 황제를 넘어섰다!」
동대륙을 구원한 위대한 서대륙의 황제를 찬양하는 기사들.
하지만 서대륙에서는 반발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그니트의 신이라 추앙받는 초대 황제를 뛰어넘었다는 말에 겉으로 내색은 안 하지만 심적으로는 반발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조차 카리엘 전용 비공선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쿠구구구!
폭음과 함께 무너지는 탑.
그리고 망령들로 되돌아가는 여신의 모습.
그걸 보면서 제국민들은 환호조차 하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그니트의 수도에 있는 거대한 영상구에서 나오는 카리엘의 활약상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
“와······.”
“저분이······ 우리의 황제?"
신화시대에 존재했던 거대한 개와 거인, 늑대를 조종하면서 신을 압박하는 모습은 가히 경이로울 정도였다.
마스터인 타리온과 아켈리오가 엄두도 못낼 정도로 강력한 힘을 보이는 카리엘의 모습은 기록으로만 존재하는 초대 황제의 아성을 넘어섰다.
특히 거대했던 신을 무너뜨렸을 때의 쾌감은 자신이 이그니트의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울 정도였다.
「누가 감히 '신'을 의심하는가!」
이젠 대놓고 카리엘을 신이라 칭하는 기사가 나와도 누구 하나 의심하는 이가 없었다.
신을 이긴 존재이니 신이라 불려도 이상할게 없다는 논리였다.
물론 어떤 학자들은 카리엘이 이긴 존재가 진짜 신이 아니라 하지만, 이미 제국의 사람들에게 그런 논리는 먹혀 들어가지 않았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완전히 개화한 영웅.
그를 중심으로 적을 물리치고 평화를 되찾는다는 흔해 빠진 스토리였지만, 현실의 사람들에게는 그 흔해 빠진 스토리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가 있었다.
위대한 영웅이 도무지 집을 안 온다는 점이다.
제국민들이야 환호하고 난리 났지만 밖으로만 나도는 집주인 때문에 집을 관리하는 이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폐하는 복귀하시지 않으려는 건가?”
한 대신의 물음에 모두들 침묵했다.
모두 이유는 알고 있었다.
「이 혼란을 진정시키려면 동대륙에 퍼진 과거의 잔재들을 처리하는 게 선결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를 들면서 카리엘은 직접 연합군을 이끌고 과거의 잔재들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마왕군과 제대로 싸우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잔재들과 그들로 인해 자꾸만 열리는 지옥문을 확실하게 닫아야만 했다.
문제는 그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폐하께선······.”
재무대신이 말끝을 흐리면서 말하지 않았지만 대전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은 뒷말을 알고 있었다.
‘황궁으로 복귀하지 않으실 생각인 거야.'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고심에 빠졌다.
그동안 카리엘이 없는 동안 나름 국정 운영을 잘했다고 평가받는 이그니트의 현 수뇌부지만, 사실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황제없이 황태자만으로 국정 운영이 제대로 될 리도 없을뿐더러 카리엘과 루피엘의 정치력의 차이도 너무 컸다.
무엇보다 카리스마의 차이가 컸다.
“내가 직접 폐하를 데려오겠소.”
모두의 한숨 속에서 루피엘이 당당히 일어나 말하자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본 재상 윈스턴이 말했다.
“전하, 전하께오선 자리를 지키셔야지요.”
“동생이 가야 설득을······.”
“그럼 그동안 밀린 결재는 누가 합니까?”
재상의 물음에 루피엘의 입이 조가비처럼 다물렸다.
“그런 의미로 쓸모없는 제가······.”
“재상, 수작부리지 마시오.”
이번엔 루피엘이 재상을 막아서며 눈을 부라렸다.
의외의 모습을 보이는 루피엘.
매번 자신을 붙잡느라 실실 웃음을 흘리던 루피엘이 이런 강경한 모습으로 나온다?
'전하도 은퇴를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단번에 루피엘의 의도를 눈치챈 재상이 빙긋 웃었다.
은퇴를 간절히 바라는 두 사람이 서로 눈짓하다가 한숨을 쉬었다.
일단 뭐를 하려고 해도 카리엘이 돌아오지 않는 이상 성립되지가 않았다.
그렇기에 대신들과 머리를 맞댔다.
굵직한 현안들이 널려 있었지만 그것들은 이미 뒤로 밀려났다.
어느 때보다 길어진 대전 회의는 오직 한 가지 현안만을 토의하고 있었다.
「황제 폐하를 복귀시킬 방법1」
「황제 폐하를 복귀시킬 방법2」
「황제 폐하를 복귀시킬 방법3」
(후략)
그 어느 때보다 맹렬히 돌아가는 대신들의 머리는 수많은 방법들을 만들어 냈고, 그것들을 종합해서 카리엘이 돌아오도록 압박할 계획을 세워 나갔다.
* * *
한편 대신들이 자신의 소중한 은퇴의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 계획을 꾸미고 있는 것을 꿈에도 모른 채 웃으면서 동대륙을 돌아다니고 있는 카리엘.
- 그래서 언제 돌아갈 건데?
“마왕이 움직일 때쯤.”
수르트의 물음에 웃으며 대답하는 카리엘.
그런 그의 대답에 수르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그냥 지금 치는 게 어때?
“아직 준비가 부족하지.”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글렌을 생각했다.
현재의 마왕의 전생보다 더 많은 힘을 갖고 돌아왔다.
어쩌면 본래의 모든 힘을 전부 회복했을 수도 있다.
전생보다 더 강력한 모습을 보이는 마왕.
그에 반해 글렌의 힘은 더 강해지기는커녕, 전성기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물론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시점이 훨씬 빨라졌다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최소한의 기준 정도는 갖춰줘야겠지.”
- 으음······
“그리고 시카리오 후작도 기대해 볼 만하고.”
전생엔 자신이 굴려 보기도 전에 죽은 시카리오 후작이었으나, 이번 생은 달랐다.
어쩌면 글렌에 이어 또 한명의 벽을 넘는 자가 나타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기다려야했다.
“완벽한 타이밍을 재야지."
마왕이 얼마나 강력할지 알 수 없는 지금, 조금이라도 완벽한 타이밍에 전쟁을 해야 했다.
- 그건 알아야 돼. 우리가 강해지는 만큼 저들도 강해진다는 거.
이미 마족들이 과거의 잔재들을 사냥하면서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걸 보고받았다.
그렇기에 카리엘 역시 제국군에게 직접 과거의 잔재들을 사냥하라고 명을 내렸다.
그들이 과거의 잔재들을 통해 강해질 방법을 찾는다면 인류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잔재가 부활한 것이 대륙에 꼭 안 좋은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신화시대 이후 사라졌던 힘이 돌아왔다!」
「실전된 고대 마법을 찾았다.」
「과거의 잔재로부터 부활한 고대의 영령들.]
「사라졌던 존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륙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분명 과거의 잔재들은 타락한 존재들이다.
지옥을 오염시켰던 힘은 대륙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내면의 힘의 영향은 신화시대에 이후 사라졌던 무언가에 영향을 준 것 같았다.
몇백 년간 찾아보기 힘들었던 요정족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정령이 깃든 영수들이 곳곳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의 등장으로 인해 「고대 정령술」과 「고대 영수 계약법」 같은 것들이 발전할 수 있었다.
또한 고대 주술을 통해 마법 역시 활용 폭이 넓어졌다.
하지만 이것들은 아직 연구가 필요했고, 당장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인간들이 정령들과 영수들을 다루는 데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에 반해 현대 마법을 곧바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고대 룬문자」
과거의 잔재를 사냥하면서 얻은 고대 룬문자의 활용.
복잡한 마법진을 룬문자를 이용해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는 룬문자.
이것만 완성되면 제국과 인류는 몇 단계나 더 발전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카리엘을 비롯한 인류는 과거의 잔재를 사냥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마족 역시 과거의 잔재를 통해 발전하고 있기에 언젠가는 서로의 영역이 겹치게 될 터.
'인마 전쟁은 그때 비로소 시작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카리엘이 한숨을 쉬었다.
아직까지는 시간이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비롯한 마스터급 이상의 인류 최강자들이 발전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했다.
사라진 기술들을 찾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고무적인 것은 바로 마력 운용법이었다.
현대까지 이어진 마나 숙성법과 마나 정제법은 원류.
과거의 잔재들이자 '신'의 반열에 오른 이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순수한 마나의 힘을 이용하는 법을 보이고 있었다.
어쩌면 이들을 통해 보다 쉽게 마스터의 벽을 깰수도, 신화시대 이후 실전된 그랜드 마스터가 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들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폐하, 도착했습니다.”
타리온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난 카리엘이 저 멀리 보이는 번개의 폭풍을 바라보았다.
“강하네.”
한 지역의 신으로 추앙받았던 거대한 새.
천둥새 중에서도 가장 크고 강력했다던 새가 발산하는 뇌전은 순수한 마력에 의해 구름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접근조차 쉽지 않은 폭풍이 일어나고, 마스터조차 겁낼 정도로 강력한 번개를 마구 뿜어냈다.
“순수한 힘이라······.”
인류와는 전려 다른 방식으로 마나를 이용하는 천둥새를 보면서 카리엘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전생에 자신의 몸을 고치기 위해서 수많은 연구를 해 왔던 카리엘이기에 지금 보여 주고 있는 천둥새의 힘의 운용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천둥새뿐만이 아니었다.
신이라 추앙받았던 자들의 마나 운용법들을 기록해 연구한다면 인류는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으리라.
어쩌면 인간들 중에 신이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마왕이 그것을 기다려 줄 리가 없었다.
“사냥을 시작하지.”
“예!”
카리엘의 명령에 고개를 숙인 그림자와 기사들.
그렇게 카리엘이 신적인 존재를 사냥하고 있을 무렵, 마왕 역시 압도적인 힘으로 과거의 잔재들을 죽여 나갔다.
그런데 그때 대륙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지금껏 개별행동을 하면서 대륙에 영향을 끼치던 과거의 잔재들이 대규모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현대에는 볼 수 없었던 엄청난 크기의 거룡부터 거인, 심지어 거대한 새까지 어느 한 지점으로 이동했다.
과거의 잔재들의 대이동과 함께 잠잠하던 거인의 산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지금껏 참아 왔다는 듯 산맥 곳곳에서 화산이 폭발하더니 대륙의 정중앙에서 거대한 산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모여드는 과거의 잔재들.
그들이 모여들면서 유난히 높게 솟아오른 섬을 중심으로 수많은 부유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부유섬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공중 대륙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마치 신화시대에 표현된 신들의 땅이 재림이라도 한 것 같은 광경.
“아스가르드인가?"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영상구에 비친 구름 너머의 대지를 보았다.
“마왕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카리엘의 물음에 타리온이 곧바로 대답했다.
애초에 신을 사냥하기 위해 이 전쟁을 시작한 마왕이다.
마침내 자신이 죽일 만한 신이 나타났으니 기다릴 것 없이 그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런데 하필 그곳이 거인의 산맥에서 일어났다는 게 문제였다.
“더는 전쟁을 미룰 수가 없겠네.”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젠 정말로 인마 전쟁을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마왕은 아스가르드로 향할테고, 그 과정에서 마왕군은 방해되는 인류를 공격할테니 더는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후······ 가자, 제국으로.”
카리엘의 명령에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타리온과 아켈리오가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