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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66화 (166/201)

166-62.마왕군

인간 중에 자신과 맞설 자가 있다는 생각에 흥분한 마왕.

하지만 결코 자신을 이길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벽을 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모든 게 미숙한 이에게 당하기엔 마왕이 살아온 세월이 너무 치열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천재를 넘어선 괴물이 존재하는 법.

서걱!

- 희귀한 능력이군.

처음 봤을 때도 느꼈지만 글렌의 능력은 희귀했다.

마스터급에서도 공간이 일렁일 정도의 힘을 갖고 있던 검격인데 벽을 넘고나서는 아예 공간 자체를 갈라 버리고 있었다.

- 적어도 힘의 집중만큼은 나 이상인가?

마왕이 표정을 찡그리면서 글렌과 자신과의 차이를 인정했다.

힘의 절반도 못 쓰는 것도, 쓸데없이 힘을 많이 소모한 것도 핑계가 되진 않았다.

- 제법이다만······ 아직은 내가 우세하군.

힘의 절반도 못 쓰는 현시점에도 마왕이 글렌보다 훨씬 우세했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공간마저 가를 참격을 보고 난 후, 마왕은 공격하는 방식을 바꿨기 때문이다.

모든 부분에서 압도적인 마왕이지만, 오직 한 점에 극한까지 힘을 압축한 글렌의 검격은 마왕의 힘을 전부 갈라냈다.

그렇다면 한 점에 힘을 압축하지 않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공격을 하면 되었다.

- 아직 그 공간을 가르는 참격에 힘을 배분하기 쉽진 않아보이는데······ 어찌 막을 생각이냐?

마왕의 물음에 글렌은 대답 대신 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글렌의 곁에 선 마스터들.

“혼자 싸울 생각 없다.”

글렌은 애초부터 혼자서 마왕을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카리엘이 당부하길 마왕의 힘은 모든 이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이 될 것이라 했다.

그렇기에 설사 글렌이 벽을 넘었더라도 절대 혼자 싸우게 만들지 말라고 했다.

중요한 건 마왕의 발을 묶는 것.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카리엘이 보기에 마왕이 절반 그 이상의 힘을 갖고 왔을시에, 이그니트 군은 버티기만 해도 성공이었다.

- 재미없군.

적극적으로 싸우기보다 방어를 목적으로 하는 자세를 보이는 글렌을 보면서 흥이 식은 마왕.

하지만 이전처럼 싸울 수는 없었다.

조금만 빈틈을 보이는 순간, 글렌의 공간을 가르는 검이 자신의 목을 노릴 것이기 때문이다.

- 귀찮게 되었어.

오직 마왕 하나를 막기 위해 뭉친 거인의 요새의 병력들.

글렌과 마왕의 차이를 다수의 군인들과 마스터급 전력으로 막으면서 시간을 끈다.

단순히 시간을 끄는 것만이라면 마왕에게 이득이다.

그렇기에 귀찮아도 이그니트의 주력군 다수를 이곳에 묶어 두면서 마계에서 더 많은 마족들이 넘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판단이 큰 착오였다는 것을 느낀 것은 보름뒤였다.

그저 소일거리 삼아서 요새를 툭툭 건드리던 마왕은 상대의 대응이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느꼈다.

콰아아아!

- ······

글렌이 지쳐 휴식을 취하는 사이, 자신을 막기 위해 몰려드는 군대들.

철저히 글렌의 체력을 갉아먹으려던 마왕의 계획은 이그니트의 군대로 인해 무너졌다.

마왕을 중심으로 떨어지는 엄청난 양의 폭탄들부터, 개조된 거대한 마도포가 마왕의 진격을 늦추었다.

그 모든 걸 뚫고 요새를 향해 힘을 발휘하려하면, 마스터들이 공격을 시작한다.

- 성가시군.

귀찮게 하는 인간들.

그렇다고 분노해서 예전처럼 힘을 끌어모아 한 방에 날려버리려 하면, 글렌의 참격이 날아든다.

- 전투 중에도 성장하는가? 괴물만이 문제가 아니게 되었어.

인간의 군대가 자신과 싸우면서 성장해 가는 것을 보면서 마왕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글렌의 성장이었다.

마왕과 싸우면 싸울수록 글렌의 검은 더 날카롭게 벼려지고 있었다.

힘의 배분, 그리고 좀 더 적은 힘으로 공간을 갈라낼 수 있게 되면서 마왕과 싸우는 시간이 점점 늘어 가고 있었다.

이렇게 성장했다간 나중에 무서운 존재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인간의 군대마저 성장해 버리니 이대로 계속 성장하게 둘 수는 없었다.

- 선택이라······

분명 벽을 넘은 인간은 이대로 놔두면 훨씬 무서운 존재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지금 제거하는 게 맞았다.

문제는 그러려면 자신 역시 어느정도 희생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차라리 처음부터······

글렌이 나타나기 전에 거인의 요새부터 지웠어야 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요새에 닿기 전까진 너무나 지루했기에 잠시간의 유희 정도는 필요했기 때문이다.

짧은 후회를 끝으로 상념을 털어낸 마왕이 거인의 요새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젠 정말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1. 이대로 위험을 감수하고 요새와 인간들을 지우는 것.

2. 이대로 물러나는 것.

분명 글렌의 성장이 너무 가파르다는 건 마왕에게 위기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흥분되는 것도 있었다.

'이 인간이 어디까지 성장 가능할까.’라는 기대감이 자꾸만 선택을 방해하고 있었다.

마계에서 오랫동안 절대자로 군림해 왔던 마왕에게 이런 긴장감은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너무나도 지루하기에 과거의 존재들까지 부활시키려 하지 않았나?

- ······물러나야 하나?

물러나는 것에 마음이 기울은 마왕.

사실 이대로 물러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완벽한 상태에서 이곳으로 넘어올 과거의 잔재들을 상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화시대에 신으로 군림하던 이들은 과연 얼마나 강할까.’

‘그런 신들과 싸웠던 거인들은 또 얼마나 강할까.’

‘어쩌면 자신의 정체된 이 경지를 한층 더 끌어올려 줄 자가 나타나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시작된 게 이번 계획이었다.

분명 이번 계획을 진행하면서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처음엔 마신을 부활시킨다며 마족들을 설득했고, 나중에 이 계획의 진정한 의도를 알았을 때는 수많은 반대파가 생겨났다.

그리고 마왕 혼자서 그 반대파를 전부 죽였다.

오로지 더 강한 상대, 그리고 이 지루한 삶에 한 줄기 긴장감을 가져다줄 존재를 찾기 위해 판을 깔았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글렌은 충분히 성장시킬 가치가 있는 존재였다.

마왕 입장에서 향후 마계에 위협이 될 존재를 제거하는 게 옳겠지만, 애초에 자신의 흥미만을 위해 살아왔던 삶이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자신만을 위한 결정을 내렸다.

- 다음에 볼 땐 더 맛있는 먹이감이 되어 있기를 바라지.

싹다 정리하고 신들과의 전장터로 만들 생각이던 마왕이 마음을 바꿔 먹었다.

글렌이 더 성장하기를 바라며 마왕이 물러나자, 그제서야 긴장감을 풀은 병사들이 하나둘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언제 마왕에게 몰살당할지 모른다는 긴장감에 휩싸인 채로 버텨 왔던 나날들.

그건 병사들뿐만이 아니라 요새의 모든 이들이 마찬가지였다.

기사나 마법사들뿐만 아니라 마스터들 역시도 마왕과 싸우는 건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막긴 막았군.”

월크셔 공작의 말에 태양검과 샤르도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타나자마자 3명의 마스터들을 죽일 정도로 압도적인 무력을 보인 마왕과의 전투는 마스터들에게 극한의 긴장감을 가져다주었다.

“다음에 올 때는 정말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해야겠어.”

월크셔 공작의 말에 샤르도나가 뒤를 바라보았다.

“그때는 저분도 더 성장해 있겠죠.”

“······마왕을 막을 정도로 성장하길 바라야겠군.”

그렇게 중얼거린 월크셔 공작이 한숨을 쉬었다.

마도사에 올랐을 때만 하더라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고, 마왕과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글렌을 보자마자 자괴감이 들었다.

자신이 흔하디 흔한 마법사가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후······ 그나저나 폐하의 선견지명은 놀랍군.”

카리엘이 명한 것은 절대 마왕과 처음부터 싸우지 말라는 것이었다.

최대한 글렌이 벽을 넘길 기다리는 것.

분명 큰 희생이 있었지만 이 작전은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벽을 넘은 글렌이 더 성장하기만을 기다릴 뿐.

거인의 요새가 마왕을 무사히 막아 낸 것처럼 북부 역시 마왕군을 무사히 막아 내며 거인의 산맥을 성벽으로 삼아 마왕군의 접근을 차단했다.

“지금부터 이그니트는 옥쇄에 들어간다. 마왕군이 절대 서대륙을 넘볼 수 없도록 두 곳에 모든 전력을 집중하도록."

“예!”

세리엘의 명령에 서대륙의 병력 대부분이 혹한의 협곡과 거인의 요새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시카리오 후작이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

마왕의 힘이 예상보다 훨씬 강했고, 더 강해질 것이라 추정되는 이상 이대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마스터 중에 유일하게 벽을 넘을 가능성이 있는 시카리오 후작이 폐관 수련에 들어가면서 상황이 더욱 긴박하게 돌아갔다.

* * *

그렇게 이그니트군이 옥쇄 전략으로 가는 동안 마왕군은 옛 로만의 영토를 집어삼키면서 남부를 압박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북쪽만을 점령하면서 마계 게이트를 새로이 여는데 집중했다.

대체 무얼 노리는 걸까?

모두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다소 이상한 마왕군의 행보를 주시했다.

- 마침내 시작되는가?

마왕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빙그레 웃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과거의 잔재들.

그들이 지옥에서 다시 대륙으로 기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산 자였던 마왕이 지옥에서 추방된 것처럼, 과거의 잔재들이 힘을 회복하며 살아 있는 것처럼 강대한 생명력을 품게 되니, 하나둘 대륙으로 추방되기 시작한 것이다.

- 신이란 놈들은 얼마나 강할지 궁금하군.

분명 신화시대처럼 강력한 무위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편린 정도는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있었다.

그 정도면 앞이 막혀 깜깜한 지금 상태에 다음 경지로 향하는 빛 정도는 볼 수 있으리라.

그런 기대감에 어서 빨리 과거의 잔재들이 완전히 대륙으로 나오기를 희망했다.

그런 마왕의 희망처럼 지옥에서 추방된 과거의 잔재들이 대륙 곳곳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 거인이다!”

갑자기 산 하나를 뚫고 나타난 거인부터, 폭풍과 함께 나타나는 요정, 해일을 일으키는 괴물까지 신화시대에 기록되었을 법한 괴물들이 대륙 곳곳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사막의 동쪽 끝에서 회색의 빛기둥이 나타나면서 거대한 지옥문이 열려 버렸다.

이것을 막기 위해 연합군이 공격을 시도해 보았지만, 오히려 거대한 지옥문에서 빠져나오는 지옥의 군대에게 밀려 패퇴하는 수모를 겪었다.

“인류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기사왕이라 불리는 브라이튼이 붕괴되어가는 연합군을 보면서 탄식했다.

대륙 곳곳에 나타난 신화신대의 괴물들과 완벽하게 열려 버린 지옥문은 인류로 하여금 절망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모두가 절망할 때, 사막의 한쪽 지역에서 회오리가 일어나면서 그쪽 지역까지 퍼져 나가던 지옥의 군대를 완전히 소멸시켰다.

“후······ 오랜만이네.”

실로 오랜만에 지하에서 나온 한 남자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 지옥에 좀 더 있었어도 좋았을 텐데.

“개소리 마.”

작은 불덩이의 투덜거림에 곧바로 욕부터 박은 남자가 자신의 등장에 놀란 표정으로 다가오는 그림자들을 바라보았다.

“폐하!”

“오랜만이야? 그나저나 타리온, 네가 여기 있다는 것은······.”

“로만의 대군이 대기 중입니다. 속히 대피하시는 것이······.”

타리온이 그렇게 말한 순간, 일렁이는 아지랑이 속에서 엄청난 숫자의 지옥의 대군이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연합군은?”

“······연이은 패전으로 후퇴 중입니다.”

타리온의 보고에 카리엘이 가만히 적들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산드리아 쪽 군대는 연합군을 상대하느라 빠진 상황.

자신들은 로만의 군대와 지옥의 군대만 상대하면 된다는 점이었다.

“돌아오자마자 전투인가?”

- 잔재들을 없애기 전에 몸풀기라고 생각하자고.

여유로운 어투로 말하는 수르트를 보면서 빙그레 미소를 지은 카리엘이 타리온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모두 전투준비 하라고 해.”

“폐하!”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타리온에게 빙그레 웃은 카리엘이 말없이 적들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 모습을 보면서 뒤늦게 달려온 아켈리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폐하!”

황급히 만류하려는 아켈리오를 보며 타리온이 고개를 저었다.

항상 최악의 사정을 가정하는 게 카리엘이었다.

그런 그가 이런 자신감을 보인다?

“아무래도 저 밑에서 얻은 것이 큰가 봅니다.”

“하지만······.”

아켈리오를 보며 고개를 저은 타리온이 붉은 유령과 그림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아켈리오도 한숨을 쉬면서 황궁 기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폐하의 뒤를 따르자고.

설령 이곳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폐하의 뒤를 따르자며 비장하게 돌격 명령을 내리는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불덩이들이 비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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