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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57화 (157/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59. 지옥문을 막아라!

「인류 연맹의 대승!」

「대승의 주역은 로칸 바르사유 이그니트 동대륙 총사령관!」

「로만, 병력의 절반 이상이 전사」

「마족 다수 전사, 마왕의 행방이 묘연해지며 뿔뿔이 흩어지다!」

인류 연맹의 대승에 모든 이들이 기뻐했지만 진실을 아는 자는 도리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마왕과 로만의 황제를 놓쳤다는 것.

그리고 결국 지옥문이 열리는 것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그니트가 지옥문을 막고 있지만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고, 도망친 이들이 언제 다시 지옥문을 탈환하러 올지 알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이그니트를 제외한 다른 국가의 수장들은 고민에 빠졌다.

반면에 지옥문을 막고 있는 이그니트의 주력군은 평온했다.

“점점 나오는 숫자가 줄어들고 있군.”

“그렇습니다.”

로칸이 아귀들이 나오는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수척한 얼굴에서 근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군을 2개로 나눠.’

황제의 이 명령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지옥의 존재와 마족들을 상대할 병력을 나누라는 뜻이었다.

이미 수차례 전투를 반복하면서 어떤 부대가 지옥의 군대를 더 잘 상대하고, 어떤 부대가 마족들을 더 잘 상대하는지 정도는 파악이 끝났다.

문제는 카리엘이었다.

부관들이 물러나고 홀로 남게 된 로칸은 고심에 빠졌다.

“후…… 미치겠군.”

지옥문이 빠르게 닫히는 이유는 자신의 황제인 카리엘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의 황제가 지옥의 군대에 가장 압도적인 힘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로만의 군대 대부분은 지옥에서 불러온 존재들이었고, 이들의 핵심은 강함보다는 압도적인 물량이었다.

기괴한 생김새, 독, 정신력을 갉아먹은 지옥의 기운들이 문제였다.

반면에 마족은 순수한 무력 자체가 강했다.

그렇다면 군을 어떻게 나눠야 할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후…… 폐하와 일부 병력만 연합군에 보낸다고 하면 미친놈 취급하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로칸이 한숨을 쉬었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이그니트의 주력군 대부분은 마족들을 소탕하는 데 쓰고, 카리엘과 붉은 유령, 불의 사제들을 주축으로 한 특수군을 만들어 연합군이 만든 방어선을 돌아다니면서 지옥의 군대를 쓰러뜨리는 것이다.

문제는 특수군의 핵심 인물이 자신의 황제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황궁 기사단과 그림자들을 더해서 특수군을 조직하는 게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게 쉬울까?

“황제 폐하를 사지로 밀어 넣는 건가?”

“감히 폐하를 최전선으로 밀어 넣어?”

“선을 넘었다!”

당장에 생각나는 반발만 해도 이 정도였다.

군부라고 다를까?

그들의 충성심은 제국민들 이상으로 강했다.

특히 직접 보급선 작전에 뛰어들어 병력들을 지켜 주었던 일화는 많은 병사들에게 감동을 안겨다 주었다.

그렇기에 로칸 역시 이런 결정을 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폐하의 뜻을 따르는 게 도리겠지.”

이번 결정으로 그동안 쌓은 명예에 먹칠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것이 단순히 황제의 바람이 아닌, 지휘관 입장에서 보기에도 합당한 결정이었기에 결국 로칸이 미뤄 두었던 서류에 사인을 하고 말았다.

「대지옥전 특수군.

특수군 구성 : 붉은유령 전원, 불의 사제 200명, 그림자 전원, 황궁 기사단 전원, 동부군 특수여단. 중앙군 공중 부대 1개.

지휘관 : 카리엘 프레드리히 폰 블레이저.」

이들을 통해서 산드리아와 로만과 함께 몰려올 지옥의 군대를 견제한다.

그동안 이그니트의 힘만으로 마족들을 처리한다.

그리고 그 후에 동진하면서 지옥의 군대를 밀어내고 모든 지옥문을 여는 것이 이 계획의 최종 목적이었다.

* * *

“결국 사인했나?”

“꼭 이렇게 하셔야겠습니까?”

로칸이 사인하고 얼마 뒤, 보고를 받은 카리엘이 만족스레 웃었다. 반면에 타리온은 속이 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타리온과 아켈리오가 같이 간다지만, 이그니트의 주력군 거의 대다수가 빠진 채 이동하는 것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로만과의 전쟁 도중에 연합군에 배신자가 발생하면 위험해질 수 있었다.

“마왕을 상대하기 위해선 이 정도는 해야 해.”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한숨을 쉬었다.

“그랜드 마스터가 나오기 전까진 최소 다섯 명 이상이 마왕을 상대해야만 잠시라도 묶어 둘 수 있을 거야.”

전생에 글렌이 자신에게 말해 준 마왕의 전력.

현재의 마왕은 마스터 셋 이상이 기사단과 함께 싸워야 묶어 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만약 마왕이 본래 힘을 대부분 찾는다면 마스터 다섯과 기사단이 뭉쳐야 잠시라도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라 말했었다.

아직 글렌이 벽을 넘지 못한 이상 이그니트의 주력군 대다수를 투입해야 마왕이 이끄는 군대를 막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마왕이 다시 돌아오기 전에 ‘반드시’ 마족의 군대를 전부 정리해야 한다고 전해.”

적어도 지금 넘어온 마족의 군대는 전부 전멸시켜야만 했다.

몇 번이나 강조한 명령에 타리온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너야 마왕을 알고 있어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지만 로칸이란 놈은 대단하네.

“괜히 제국 최고의 지휘관이라 평가받는 게 아니지.

카리엘이 전생에 겪은 마왕이라는 강대한 존재를 알고 있기에 경계한다 치지만, 로칸은 북부에서 일어났던 일을 토대로 마왕의 강대함을 추정했다.

그리고 그를 토대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

그의 분석과, 전쟁에 관한 판단력은 제국 내 어떤 이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카리엘이 본인이 명령을 내릴 수 있음에도 일부러 로칸에게 짐을 지운 것이다. 제국의 다른 이들이 반발할 수 없도록 로칸으로 하여금 명분을 만든 것이다.

-그래도 도박에 가까운데. 너무 지옥의 군대를 무시하는 것 아니야?

“정 위험하면 그때 가서 불러들이면 되니까.”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지옥문을 바라보았다.

서서히 크기를 줄여 나가는 지옥문을 보면서 만족스레 미소를 지었다.

“위험하긴 해도 마음은 편하네.”

카리엘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지옥문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자칫 잘못했다가 지옥문을 잘못 자극했다간 큰일이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궁에 있을 때보다 마음이 편안했다.

-하긴…… 이곳에 넘어오고 나서 골치 아픈 일이 줄기는 했지.

수르트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말했다.

황궁에 있을 땐 매일같이 카리엘이 직접 명령을 내려야 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동대륙에 짱 박히면서 그런 일이 대폭 줄어들었다.

요새에 있을 때도 수련을 핑계로 복잡한 문서 작업은 대부분 수하들에게 떠넘겼고, 이곳으로 넘어오면서도 보고만 받을 뿐 직접 명령을 내리는 일은 대부분 로칸에게 떠넘겼다.

물론 한 국가의 수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긴 했지만 황궁에 있을 때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솔직히 이 정도면 황제 생활도 해 볼 만하지 않냐?

“그럴 리가.”

수르트의 은근한 말에 카리엘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지금과 같으면 황제란 자리도 해 볼 만은 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는 순간, 다른 이들에겐 평화가 찾아올지 몰라도, 카리엘에겐 지옥 같은 생활이 시작될 것이다.

“전쟁이 끝나는 즉시 동생에게 넘겨 버려야지.”

-과연?

“동대륙에 짱 박혀 있으면 알아서 황위를 물려받겠지.”

그런 카리엘의 말에 수르트가 코웃음 치면서 말했다.

-동대륙을 전부 점령하려 하지 않을까?

“대신들이 그렇게 경우 없는 놈들은 아니야.”

카리엘 때문에 정복 전쟁을 한다?

대신들의 성향상 말이 되질 않았다.

오히려 언제나 최대한 안정적인 판단만을 하려고 해서 카리엘이 속 터지는 날이 많았다.

-글쎄…… 과연 어떨까?

그렇게 말하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수르트.

그런 그를 본 카리엘은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들었지만 애써 떨쳐 버리고는 지옥문에 집중했다.

그렇게 카리엘이 지옥문에 집중하는 나날이 계속되면서 점점 넘어오는 아귀들의 숫자도 줄어만 갔다. 그 덕분에 한결 여유가 생긴 제국의 주력군은 마침내 도망간 마족들을 섬멸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폐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로칸의 보고에 카리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이 넘어오기 전까지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예! 페하.”

“그리고 그랜드 마스터가 탄생하기 전까진 절대 마왕과 어설프게 싸워선 안 돼.”

카리엘의 경고에 이번에도 명심하겠다는 듯 로칸이 고개를 깊게 숙였다.

현재 그랜드 마스터가 될 후보로는 글렌과 시카리오 후작이 있었다.

둘 중 누구라도 일단 그랜드 마스터가 된다면 그때부터는 한결 여유가 생기겠지만, 그 전까진 제국 측이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마왕이 온전한 힘을 가지고 넘어온다고 가정하고 진행해.”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믿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리 준비한 명령서를 로칸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로칸은 고개를 숙이면서 명령서를 소중히 갈무리하고는 물러났다.

* * *

얼마 뒤 마침내 정식으로 명령서를 받은 로칸이 주력군 전원을 이끌고 동대륙의 북부를 향해 움직이자 카리엘을 비롯한 대지옥전 특수군 역시 빠르게 부대를 재정비했다.

전원 최상위 전력으로 구성된 병력이 카리엘이 지옥문을 완전히 닫는 시점에 맞춰서 함께 움직였다.

「지옥문이 닫히다!」

카리엘의 특수군이 떠난 지 며칠이 지난 시점에 지옥문이 닫혔다는 정보가 흘렀고, 불안에 떨던 연합군과 사람들은 그제야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그니트의 주력군 대부분이 마족들을 섬멸하기 위해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제국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자신들만으로는 로만과 산드리아의 군대를 견제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불만은 현실이 되었다.

“산드리아의 대군이 나타났다!”

“로만의 군대다!”

동북부 근방에서 나타난 대군.

그런데 더 심각한 건 그들의 숫자보다 더 많은 수의 지옥의 괴물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전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지옥의 괴물들 뒤로 하늘 높이 솟구친 회색빛 기둥.

“저것이 소문으로 듣던 지옥문인가?”

연합군의 지휘관 중 하나가 멍하니 회색빛 기둥을 바라보았다.

“군단장님! 어떡합니까?”

“일단 본부에 지옥문이 열렸다고 전해.”

“예!”

지휘관의 명령에 황급히 뛰어가는 부관.

그들은 곧바로 연합군의 주력이 이곳으로 모이기를 바랐지만,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사막에 회색빛 기둥이 나타난 지역이 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며칠 간격으로 계속해서 나타나는 회색빛 기둥.

그리고 그곳엔 여지없이 지옥의 군대가 나타나고 있었다.

점점 수를 불려 가는 지옥의 군대는 오로지 연합군만을 향해 미친 듯이 몰려왔다. 그 때문에 한곳에 전력을 집중하지 못한 연합군이 어려운 싸움을 이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라면 연합군의 전선 자체가 붕괴될 상황.

바로 그때, 동북부에 있어야 할 제국군이 가장 위험한 전장에 나타났다.

쿠웅!

제국의 공중 함대가 나타남과 동시에 소환된 거대한 불의 소환체.

그리고 곧, 요새를 금방이라도 점령할 것 같았던 아귀 군단을 화염으로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쉽게 죽지 않는 지옥의 군대가 픽픽 쓰러질 정도로 압도적인 상성을 보여 주는 제국의 불의 사제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서는 이그니트의 황제가 불의 파도를 만들어 내면서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 주었다.

“역시 신의 사도인가?”

지옥의 까마귀를 통해 카리엘의 활약을 전해 들은 로만의 황제가 피식 웃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이그니트의 황제는 지옥문을 닫기 위해 나타났다.

사막 지역에 있는 수많은 지옥문을 전부 닫기 전까진 자신을 찾지 않으리라.

그동안 자신은 그토록 원하던 대계를 이룰 것이다.

“어머니…….”

나스트론드에 갇혀 고통받고 있을 어머니와 일족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대계는 완성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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