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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54화 (154/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58. 지옥문!

무너진 협곡 내부로 들어간 순간, 카리엘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 정도의 힘의 파동이 느껴졌다.

-하나는 마기인 것 같고, 다른 하나는 지옥의 힘인가?

수르트의 말이 끝나는 순간, 주변 환경을 파괴하면서 잿빛 기운과 검은 기운이 폭발했다.

폭발의 여파를 막아 내면서 전진하자  마왕이 게이트 주변으로 몰려드는 잿빛 거인들을 모조리 박살 내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로만의 황제?”

유적지의 상층부에서 지팡이를 휘두르는 로만의 황제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지옥의 힘을 다룰 수 있을 것이라는 추정은 해 왔기에 큰 충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사용하는 것은 놀라웠다.

“이 정도로 강했나?”

카리엘이 고유한 능력으로 마스터에 가까운 힘을 사용하는 것처럼 로만의 황제 역시 지옥의 존재들을 부리는 것으로 비슷한 힘을 보이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이미 게이트의 유적지에 독특한 파장이 퍼져 나가면서 잠들어 있던 유적지의 힘이 조금씩 깨어나고 있었다.

부서졌던 게이트의 파편들이 검은 파장에 맞춰서 하나둘 맞춰지고 있었고, 사라진 조각들은 협곡의 돌들이 검은 마력에 깎여 나가 비어 있는 부분을 채워 나갔다.

-저걸 막아야 할 거 같은데?

수르트가 불로 이루어진 손으로 게이트를 가리키자 로만의 황제를 보고 있던 카리엘이 그곳으로 눈을 돌렸다.

“저건…….”

게이트의 흔적으로 보이는 유적에 마기를 내뿜는 보석 하나가 박힌 것이 보였다.

마기에 잠식되어 게이트 전체가 검게 물들고 있었지만, 사이사이 회색빛이 감도는 것이 로만의 황제도 게이트 내부에 힘을 불어 넣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상황을 지켜봐야 하나?”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이대로 양패구상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최선이지만, 지옥문에 완전히 열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수르트의 이야기를 나누던 바로 그때, 마왕과 로만의 황제가 동시에 전투를 멈추고 카리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이 대 일 싸움이 될 것 같은데?

“그나마 마왕의 힘이 예상보다 약하다는 게 다행인가?”

마왕이 전생의 힘만 복구했어도 자신이 막아 볼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에 감사해하면서 카리엘이 수르트에게 말했다.

“혼자서 마왕을 상대할 수 있겠어?”

-물론.

자신감을 보이는 수르트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카리엘은 스콜과 아그니를 로만의 황제에게로 보냈다. 그런 뒤 수르트의 손을 타고 땅에 착지한 후, 그를 마왕에게 보냈다.

불의 거인이 마왕을 향해 달려들면서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신기하네.”

카리엘이 신기하다는 듯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파장을 향해 불덩이를 날렸다.

그러자 마기에 의해 기묘한 파장을 퍼뜨리던 힘이 소멸되어 가는 것이 보였다.

환한 빛가루가 되면서 순수한 마나의 형태로 변해 가는 것을 확인하자 카리엘도 본격적으로 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비록 전투는 소환체들이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마의 문양을 드러내면서 불의 파장을 만들어 내자 유적의 중심부로 모이던 조각들이 하나둘 힘을 잃고 떨어져 내렸다.

-…….

“…….”

카리엘이 사용한 힘을 본 마왕과 로만의 황제가 입을 다물고는 카리엘을 노려보았다.

마왕과 로만의 황제가 가는 길은 다를지라도 지옥문을 연다는 목표만큼은 동일했다.

그런데 그 목표가 카리엘로 인해 방해받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열기는 글렀군.

이미 카리엘로 인해 유적지가 갖고 있던 힘 일부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을 느끼자 마왕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그건 로만의 황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힘을 제대로 이어받은 것인가? 골치 아파졌군.”

자신의 예상보다도 더 강력하게 이어받은 힘에 로만의 황제가 처음으로 얼굴을 완전히 찡그렸다.

카리엘이란 존재가 자신의 예상보다도 더 까다로운 존재였던 것이다.

이대로 꾸준히 성장한다면 자신의 대계가 완성되더라도 유지될 수 없을 가능성이 있었다.

무엇보다 유적지를 통해 지옥문을 개방하여 시간을 벌려던 계획 자체가 무산되기 생겼기에 처음으로 당황했다.

지금도 카리엘의 불의 파장에 자신이 만든 지옥의 존재들의 신체가 실시간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나와는 상성이 너무 좋지 않군.’

로만의 황제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힐끔 마왕을 바라보자 그 역시 로만의 황제를 바라보았다.

‘지금 상황에서 모든 것을 갖긴 힘들다.’

-그렇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둘 다 같은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빠르게 유적지의 중심부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카리엘의 소환체들이 재빨리 뒤쫓았다.

-이런 미친!

자신을 뒤쫓을 거라고 예상한 로만의 황제가 지옥의 괴물 몇을 카리엘에게로 보냈다.

그러자 수르트가 당황하며 쫓던 것을 멈추고 뒤돌아서려 했다.

-괜찮으니까 저들을 막아!

수르트의 머릿속으로 울리는 카리엘의 음성.

그러자 고개를 돌려 카리엘을 바라본 불의 거인이 다시금 마왕과 로만의 황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동안 불의 힘을 수련해 왔지만 동시에 무투술 역시 익혀 왔다.

고대 웨어 울프의 강체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카리엘의 무투술은 강력한 화염의 힘이 더해져 몰려오는 괴물들을 상대로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자 이 정도라면 쉬이 당하지는 않겠다는 확신이 든 수르트가 거대한 주먹을 둘에게 날렸다.

단숨에 박살 내려는 듯 화염의 폭풍까지 휘감은 팔이 둘에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시도는 막힐 수밖에 없었다.

-막혔다고?

현시점에서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격에도 중간에 가로막혀 조금도 전진하지 않은 그의 주먹.

어느새 생성된 회색빛 방어막이 유적지를 지키기 위해 발동되었고, 그로 인해 수르트는 더 전진할 수가 없었다.

-저걸 부숴!

그렇게 말하며 수르트가 전력으로 유적지를 부수려 했다.

그러자 아그니와 스콜 역시 자신들의 팔을 휘두르면서 빛을 뿜고 있는 유적지를 파괴하려 했다.

쿵! 쿵!

거대한 세 소환체의 주먹질에 견고해 보이던 잿빛 방어막에 균열이 일어났다.

세 소환체 모두 카리엘의 힘에 의해 소환되었기에 유적지의 중심부에 만들어진 잿빛 방어막은 실시간으로 부서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없군.

“……그래.”

마왕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한 로만의 황제가 중심부를 뒤졌다.

“난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녀’를 깨우는 게 목적인가? 그것만으로는 힘들 텐데?

“수천 년간 우리가 놀고만 있을 거라 생각했나?”

로만의 황제가 하는 말에 피식 웃은 마왕이 빈정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겨우 과거의 잔재를 부활시키는 것이라……. 버려진 자들답군.

그 말에 로만의 황제가 마왕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마왕 역시 지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서로의 중간 목적지가 같았기에 일시적으로 손잡았을 뿐, 둘은 오랫동안 이어진 원수나 다름없었다.

“그러는 너 역시 완전히 목적을 이룰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군.”

그렇게 말한 로만의 황제가 비웃듯이 입꼬리를 말아 올린 후,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반쯤 완성되다 만 건축물에서 잿빛 폭풍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파삭! 파삭! 파삭!

로만의 황제가 차고 있던 뼈로 만들어진 팔찌부터 목걸이, 발찌, 허리띠 등이 하나둘 부서지면서 잿빛 폭풍은 점차 안정화되어 갔고, 마침내 막대한 양의 지옥의 기운이 뿜어지는 문이 완성되었다.

“반쪽짜리 성공이라도 이루기를 바라지.”

비웃듯 말했지만 로만의 황제는 진심으로 마왕이 목적한 바를 이루길 바랐다.

이미 자신이나 그나 완전한 성공은 어려워졌기에 시간을 벌고 이그니트의 힘을 분산하기 위해서라도 마족들의 힘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본래 계획에도 없던 신물들을 희생하면서까지 불완전하게나마 지옥문을 완성시켜 준 것이다.

진심어린 말을 전한 로만의 황제가 다시 한번 지팡이를 휘두르는 순간, 날개가 달린 지옥의 존재가 로만의 황제를 데리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것을 가만두고 볼 수르트가 아니었다.

도망가려는 로만의 황제를 붙잡기 위해 거대한 팔을 뻗었지만, 불완전하게나마 열린 지옥문에서 잿빛 폭풍이 몰아치면서 수르트를 뒤로 밀어냈다.

-……선물인가? 대가는 마족 전체가 치러야겠군.

그렇게 말한 마왕은 로만의 황제가 사라진 천장을 바라보았다.

본래라면 지옥문을 완전히 열고 마족 전체가 지옥문에 들어가 새로운 힘을 각성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는 사이 자신은 ‘마신’을 깨워 더 강력한 힘을 갖는 것.

로만의 황제 역시 지옥의 여신을 깨울 기반을 이곳에서 다지고 싶었을 것이다.

결론은 둘 다 실패했다.

그러니 최소한의 목적이라도 이루어야 했다.

-그대의 바람대로 놀아나 주마.

로만의 황제를 생각하며 중얼거린 마왕이 목걸이를 한쪽 손으로 움켜쥐었다.

-마신이여…… 그대가 묻혀 있는 곳으로 저를 안내해 주십시오.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검은 빛이 지옥문을 향해 똑바로 쏘아져나갔다.

잿빛 폭풍으로 휘감긴 문이었으나 마왕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바로 그 순간, 수르트의 거대한 주먹이 잿빛 방어막을 깨뜨렸고, 동시에 스콜과 아그니의 거대한 팔이 잿빛 폭풍으로 만들어진 지옥문으로 두드렸다.

-우리 힘으로는 무리야.

무식하게 상처를 입어 가면서 두드리는 스콜과 아그니를 보면서 수르트가 말했다.

이미 열려 버린 지옥문은 자신들의 힘으로 닫을 수는 없었다.

완전하게 열린 문은 아니었기에 강제로 닫으려 하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최소 전성기 시절 자신의 힘에 1할은 필요했다.

그렇다는 건 그랜드 마스터의 힘으로도 혼자 닫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 되었다.

“안 부수고 뭐 해?”

어느새 유적지의 중심부로 다가온 카리엘의 물음에 수르트가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가만히 두고 보라고?”

-본래라면 그 방법밖에 없겠지. 다행히 완전히 열린 게 아니라 저 구조물이 부서지면 자연스레 사라질 거다.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는 구조물들을 보면서 말하는 수르트.

부서지는 속도로 보자면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네가 있으니 더 가속화할 수는 있겠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카리엘이 전력으로 힘을 내뿜었다.

이마의 문양이 터질 듯 빛을 내뿜으면서 잿빛 폭풍을 밀어냈다.

하지만 열려 버린 문에서 나오는 지옥의 기운을 완전히 소멸시키기엔 카리엘의 힘이 너무 부족했다.

-네 힘으로 이 문을 완전히 닫을 정도가 되려면 ‘가름의 인정’을 받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수르트의 말에 카리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런데 왜 가름의 흔적이 없지?”

카리엘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르트와 소환체들이 마왕과 로만의 황제를 상대하고 있을 때, 카리엘은 힘을 최대한 넓게 퍼뜨렸다.

자신의 힘에 반응할 가름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가름은커녕 그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여기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데……. 나도 잘 모르겠군.

수르트가 그렇게 중얼거릴 때였다.

카리엘의 힘과 지옥의 힘이 격렬하게 충돌하자 유적지 아래쪽에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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