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57. 전쟁은 모르겠고 일단 낚아 보자 (3)
카리엘이 대로만전을 준비하며 만든 특수부대.
지옥과의 전쟁을 대비해 만든 결전 병기가 움직였다.
당연히 로만 측은 예상과는 다른 결과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악마 사냥꾼인가?”
“아닙니다. 그들은 지금 주력군과 같이 오고 있습니다.”
마족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힘을 보여 주었던 이그니트의 대 마족 전용 특수부대.
한데 그들은 지옥의 존재에 대해서도 힘의 상성을 바탕으로 우위를 보여 주었었다.
이는 로만 역시 충분히 알고 있었던 상황이라 그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이 아닌 다른 특수부대라고?”
부하의 보고에 혼란스러워하는 지휘관.
문제는 그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와중에도 이그니트의 주력군은 파죽지세로 북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준비했던 기존의 계획들이 예상하지 못한 특수부대로 인해서 망가지자 로만의 지휘부는 곧바로 혼란에 휩싸였다.
그 모습을 본 로만의 황제가 피식 웃었다.
“숨겨 둔 한 수가 있었는가?”
마지막까지 자신들을 속이기 위해서 연기를 한 이그니트 군대를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황이 급박하군.”
“……송구합니다.”
황제는 자신의 앞에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인 마도사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대계를 위해서 제국에 충성하던 이반 형제와 최고의 사령관마저 버림패로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만의 계획이 무너지게 생기자 이제는 그가 나설 차례가 온 것이다.
“1번.”
“예! 폐하.”
“짐이 직접 움직이겠다.”
그렇게 말한 로만의 황제는 검은 협곡으로 움직일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그건 마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직접 움직인다.”
마왕의 말에 마군단장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가 대륙으로 넘어오면서 목표로 했던 본래 힘의 1할.
그 목표는 아직까지 채워지지 못하고 있었다. 본래보다 빠르게 깨어난 상태에서 글렌이 마지막에 보여 준 일격이 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내상을 감수하고 움직일 정도로 상황이 급박했다.
사실 이그니트의 소식을 듣는 즉시 양군이 전투를 멈추고 물러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하필 이그니트의 소식이 들려오기 하루 전에 유적지의 흔적을 발견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둘 다 물러설 수 없었다.
결국 마족과 로만의 군대가 격렬한 전투를 이어 가면서 유적지를 찾는 동안, 이그니트의 주력군은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 * *
“제대로 낚였군.”
그림자들에게 보고를 받은 카리엘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목표로 했던 지옥문이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이제 와서 멈출 수 있을까?
이그니트라는 맹수의 아가리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탐스러운 열매에 눈이 돌아가 더 격렬하게 싸우는 토끼들.
그런 그들을 보면서 카리엘은 월척임을 느꼈다.
“지옥의 군대는?”
“안 보입니다. 아무래도 ‘그들’에게 계속 당하자 완전히 철수한 듯싶습니다.”
타리온의 보고에 카리엘이 미소를 지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이그니트는 로만이 숨겨 둔 한 수가 무엇인지를 예상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이그니트의 앞을 가로막는 가장 무서운 적은 마족보다도 로만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렇기에 로만의 작전을 몇 가지로 나눠 예상하고 준비해 왔다.
마지막까지 서로 의견이 분분한 상태에서 로만의 주력군이 동진하는 것을 보고 완전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붉은 유령’이 활약해 주는군.”
“폐하의 은혜를 입은 것이니 당연합니다.”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타리온에게서 건네받은 대 지옥 결전 부대인 붉은 유령에 대한 보고서가 들려 있었다.
「붉은 유령의 활약상에 대한 보고서」
지옥의 군단을 상대하기 위해 만든 특수부대은 붉은 유령은 악마 사냥꾼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첫째, 마족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악마 사냥꾼은 불의 힘을 사용하면 지옥의 군단과도 상성상 우위를 점할 수 있지만 그들이 가진 무기는 어디까지나 신성력을 기반으로 한 것.
반면에 붉은 유령은 철저하게 불의 축복을 받은 무기만을 사용한다.
둘째, 악마 사냥꾼은 불의 신전에서 축복을 받거나 불의 힘을 개화한 자들이라면, 붉은 유령은 전원 황제의 축복을 직접 받은 이들이다.
셋째, 붉은 유령은 전원 불의 신전에서 ‘특수한 훈련’을 받은 이들로만 구성되었다.
즉, 마족과 지옥의 군대를 전부 상대하는 악마 사냥꾼과 달리 붉은 유령들은 태생부터가 오직 ‘지옥의 군대’만을 상대하기 위한 부대였다.
지옥의 군대를 상대하기 위해 불의 신성력을 개화한 자들만 뽑은 것으로도 모자라 특수한 훈련까지 거쳤다.
그런 이들에게 카리엘이 직접 축복을 내려 주고 불의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무기를 주었다.
“나쁘지 않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카리엘을 보며 어느새 나타난 수르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카리엘이 지옥의 군대를 상대하기 위한 존재라면 그의 힘을 받은 자들 역시 그러할 터.
그들이라면 꼭 카리엘이 힘을 쓰지 않더라도 지옥의 군대를 박살 낼 수 있을 거라는 추측은 맞아 들어갔다.
그로 인해 로만의 계획은 완전히 무너졌다.
「지옥의 군대로 이그니트의 주력군을 상대로 시간을 끌 가능성이 높음.」
이제는 꼬질꼬질해져 버린 로만의 전략 보고서.
로만 입장에서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지옥의 군대를 활용하는 법이었다.
자신들의 주력군이 상하지도 않고, 오직 지옥의 군대만으로 철저하게 시간을 끌면서 목표한 바를 완수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전략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극상성이나 다름없는 특수부대에게 완전히 갈려 나갔다.
“남은 건 진격뿐인가?”
대어를 낚은 카리엘이 다 잡은 물고기를 요리하기 위해 빠르게 진군했다.
그러나 그렇게 이그니트의 주력군이 북동부로 빠르게 진격하는 동안 마족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 * *
쿠웅!
“압도적이군.”
검은 협곡을 박살 내다시피 하면서 움직이는 마왕.
유아기의 아이의 모습이었다는 보고서와 달리 어갈려 나도 큰 소년의 모습을 한 마왕은 압도적인 힘으로 로만의 군대를 뚫어 내면서 게이트를 향해 돌진했다.
마스터를 막기 위해 대 마스터 진형도, 지옥의 군대도 소용없었다.
매 전투마다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는 로만이었음에도 황제는 만족했다.
“무리하는군.”
멀리서 마왕의 행보를 보면서 로만의 황제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안 그런가?”
“맞습니다. 언뜻 보면 막강해 보이나 힘을 사용할수록 마기의 불안정이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마스터에 이른 검은 달의 수장이 매의 눈처럼 마왕을 보면서 말했다.
“황소가 또 오는군.”
“막고 오겠습니다.”
검은 달의 수장이 고개를 숙이고 사라지자 뒤이어 로만의 유일한 마도사 역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거대한 검은 뱀의 모습을 한 마군단장이 로만의 진형을 박살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산드리아 측의 주요 전력도 투입되었다.
주요 부족의 부족장들이 힘을 드러낸 것이다.
대지를 움직이는 마도사부터 지옥의 힘을 사용하는 주술사,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는 무인까지.
산드리아가 숨겨 왔던 전력들이 흑마법사의 수장과 마스터급 마인들을 상대했다.
“저건 네가 상대해야겠구나.”
황제의 말에 터번을 누른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러자 거대한 양머리를 한 마군단장을 향해 잿빛 폭풍이 작렬했다.
모든 것을 찢어발기는 압도적인 힘이 작렬하자 천하의 마군단장도 돌진을 포기하고 방어에 전념했다.
“저놈은 동생한테 맡겼으니 남은 건 마왕뿐인가?”
로만의 황제의 중얼거림.
동생은커녕 친족은 아무도 없다고 알려진 로만의 황제에게 숨겨진 동생이 있다?
그것도 저런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가?
대륙에 알려진다면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쯧! 비밀 수호대 놈들이 귀찮아지겠군.”
보급선 전투로 다수의 검은 달의 무인들을 잃은 후, 비밀 수호대를 상대했던 것은 그의 숨겨진 동생 덕분이었다.
또한 사막에서 비밀리에 지옥의 주술사들이 보급선 전투에 투입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그의 동생이 가진 힘 덕분이었다.
비밀 수호대를 찢어발겼던 압도적인 힘이 황제의 눈에 보이는 회색 폭풍이었기 때문이다.
콰아앙!
상념에 젖어 있는 사이 굉음과 함께 검은 협곡 일부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면서 유적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폐하! 유적지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가지.”
“예!”
황제의 명령에 그를 지키는 근위 기사들이 마족들을 베어 내며 길을 뚫어 냈다.
그러는 사이 마왕은 압도적인 힘으로 먼저 유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로만의 황제마저 무너진 협곡을 타고 유적지 안으로 진입하는 동안 마족과 로만의 군대는 치열하게 싸워 나갔다.
쿵! 쿵! 쿵!
마왕이 유적지 내부로 진입하자마자 자신을 가로막는 가디언을 박살 내면서 홀로 전진했다.
그러는 사이 로만의 황제 역시 기사단을 이끌고 안으로 진입했다.
“저것이 게이트인가?”
마왕이 망가뜨린 가디언의 잔해들을 뒤로하고 지옥의 게이트로 추정되는 유적지에 도착한 로만의 황제.
-한발 늦었구나.
마왕의 말에 로만의 황제가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마왕을 응시했다.
지옥문으로 추정되는 건물 안에 검은 보석을 올려놓은 마왕이 그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러자 검은 보석에 반응해 단순히 무너진 유적지로 보이던 건물들이 기묘한 파장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헬의 사도여, 아무래도 그대의 바람은 이뤄질 수 없겠구나.
자신을 헬의 사도라고 부른 마왕을 보면서 로만의 황제가 눈짓을 했다.
그러자 마왕을 향해 달려드는 기사들.
-같잖은 기사들로 짐은 상대하려느냐?
그렇게 말한 마왕이 로만의 황제가 보낸 기사들을 찢어발기면서 단 한 사람도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로만의 황제는 당황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기사들이 마왕을 뚫고 안으로 진입할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냉정한 눈으로 죽어 가는 기사들을 보면서 손을 휘젓는 로만의 황제.
그러자 붉은 기운과 함께 낡은 지팡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을 들어 올려 내려찍는 순간 유적지 주변으로 회색빛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공간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부족한 그대의 힘으로 이것을 얼마나 상대할 수 있을지 지켜보지.”
황제의 말에 마왕이 이를 악물었다.
로만의 황제가 들고 있는 지팡이의 정체를 추측한 마왕이 전력으로 힘을 끌어냈다.
하지만 아까와 달리 불안정하게 떨리는 마기.
-헬의 사도라 이것인가? 오냐! 와 보거라!
마왕이 잿빛 기운 속에서 탄생하는 괴 생명체들을 보면서 투기를 드러냈다.
그렇게 로만의 황제와 마왕이 전투를 시작하는 동안 엄청난 사상자를 내며 싸우는 마왕군과 로만의 군대 사이로 폭발음이 들려왔다.
콰아아앙!
“설마!”
-벌써 온 것인가?
자신들에게 맹렬한 공격을 퍼부으며 등장하는 하늘의 배들.
그들의 공격에 치열하게 싸우던 로만군과 마왕군이 약속이라도 한 듯 전투를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임시 동맹인가?”
-살려면 그리해야겠지.
검은 달의 수장의 말에 흥분을 가라앉힌 황소머리의 마군단장이 하늘을 향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그런 그를 향해 떨어지는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
동시에 검은 협곡에서 거대한 불의 거인이 소환되었다.
“모두 쓸어버리도록.”
불의 거인 위에 선 채 명령을 내린 카리엘.
그 순간 검은 협곡으로 진입한 이그니트의 대군이 로만군과 마왕군을 향해 돌격했다.
예상보다 이르게 도착한 이그니트의 군대에 제대로 된 대항도 하지 못하고 쓸려 나가는 마왕군과 로만군.
그러는 사이 카리엘은 눈을 감고 붉은 파장을 만들어 냈다.
“이 느낌인가?”
-그래. 확실히 지옥문이 여기 있네.
카리엘의 말에 감각을 공유한 수르트도 느껴진다는 듯 말했다.
“가자.”
카리엘의 명령에 수르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대한 몸을 움직였다.
그런 그를 막기 위해 마왕군과 로만의 군대가 합심해서 공격해 왔으나 스콜과 아그니가 소환되며 그런 그들을 밀어냈다.
두 소환체로 인해 뚫린 길을 통해 수르트가 안으로 진입했다.
그렇게 카리엘이 유적지 안으로 진입하는 것을 확인하자 그를 막으려는 마군단장의 앞을 아켈리오와 타리온이 막아섰다.
“폐하를 방해하려거든 우리부터 뚫어 보거라.”
그렇게 말한 아켈리오가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