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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51화 (151/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57. 전쟁은 모르겠고 일단 낚아 보자

동북부에서 마족과 로만이 충돌한 이후, 서로 짜기라도 한 듯 북부에 있던 마족들의 대군과 로만의 전 병력이 동진했다.

마치 이그니트가 오기 전에 먼저 선점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로만의 주요 물자들이 전부 동쪽으로 이동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동쪽으로 이동했다.

마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이트조차 2순위로 밀어 버릴 만큼 동쪽에 모든 힘을 쏟아 냈다.

마족과 로만 둘 중 하나가 결판나기 전까진 후방은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그니트는 이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빈집털이도 못하면 제국이란 이름이 아깝겠지?”

카리엘의 물음에 곁에 있던 아켈리오와 타리온이 고개를 숙였다.

주력군이 빠진 로만의 수도에 마스터까지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카리엘은 로만의 수도를 점령하면서 발전한 제국의 무기를 점검하기를 원했고, 그것은 새로이 동대륙 총사령관이 된 로칸 바르사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작해라.”

로칸 바르사유의 명령에 모든 지휘관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비공선들이었다.

거대한 비공선들이 하늘을 뒤덮고 그 안에서 마력을 동력으로 하는 작은 비행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로만도 곧바로 대응했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언제까지고 발전이 멈춰 있을 리 없었다.

“전 세대 버전인가?”

“그런 듯싶습니다.”

카리엘의 물음에 타리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그니트의 초기 버전보다 약간 발전된 형태의 비공선들.

로만의 진영에서 그것들이 수백 기나 떠오르며 진격해 오는 이그니트의 공군에 대항했다.

동시에 수도 전체에서 불타는 날개를 가진 괴물들이 상공으로 튀어 올라왔다.

“예상외로 준비가 철저하군.”

카리엘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주력군을 비롯한 대부분의 인원들을 동쪽으로 이동시킨 시점에서 수도를 버렸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로만의 수도는 이그니트와 남부연합군에 포위된 형태였다.

게다가 마족들 역시 이제는 명백한 적.

그렇기에 오랫동안 로만의 중심으로 자리했던 수도를 버리고 산드리아 쪽으로 이동한 것이라 판단했다.

“2단계 작전을 시작하라.”

예상외로 강력하게 저항하는 로만의 군대를 보면서 로칸이 다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이그니트 진형에서 포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로만 측에서도 포격이 시작되면서 로만의 수도로 접근하는 병력을 차단하려 했다.

“마도포도 비공선도, 무기도 모두 이그니트보다 딸릴 텐데 잘 버티는군.”

로만의 무기는 이그니트보다 몇 세대는 뒤쳐진 물건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칸의 파상공세를 꿋꿋하게 버텨 냈다.

그것을 보면서 옆에 있던 로칸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수도에 에쉬타르가 남은 것 같습니다.”

“로만의 총사령관이 남았다라…….”

이그니트에 로칸이 있다면 로만엔 에쉬타르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명장.

그런 그가 직접 수도에 남아 진두지휘하며 버텨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압도적인 병력으로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로칸의 공격에 조금씩 전선이 밀려나면서 수도 근방에 위치한 요새들이 하나 둘 함락되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보다 더 방어가 단단하군.”

“송구합니다.”

카리엘이 질책하는 줄 알고 고개를 숙이는 로칸.

그런 그의 모습에 카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탓하는 게 아니야.”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저 멀리 보이는 로만의 수도를 바라보았다.

“총사령관은 충분히 잘해 주고 있어. 그저 상대가 그것 이상으로 잘 버텨 내고 있을 뿐.”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로칸을 바라보았다.

“마스터들을 전부 투입했으면 얼마나 걸렸을까?”

“지금 단계에선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답한 로칸이 로만의 수도를 바라보았다.

“저 안에 뭐가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다만…… 최소 일주일 이상은 붙잡혔을 거라 판단됩니다.”

“지금처럼 여유롭게 공략하지 않았을 테니 피해는 더 컸겠지?”

“그럴 것입니다.”

“그러면 대군이 부상자들 때문에 질질 끌렸겠군.”

카리엘의 물음에 로칸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로만의 작전은 간단했다.

최대한 이그니트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져 시간을 버는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카리엘은 마스터들이 이끄는 별동대를 따로 빼서 운용했다.

남부 왕국 출신의 마스터들과 옛 성국의 마스터인 교황과 태양검을 한데 묶어서 먼저 동부로 보냈다.

빠른 동진으로 먼저 출발한 남부 연합군과 합류하기를 바란 것이다.

전부 최정예로 이루어진 별동대가 남부 연합군과 합류해 로만의 주력군을 공략하게끔 했으니 이그니트 입장에선 급할 게 없었다.

그러는 동안 후방 쪽도 가만있지 않았다.

데이비어 공작과 시카리오 후작은 북부에 있는 마계의 게이트를 처리하게끔 명했기 때문이다.

“선봉대를 보내고 후방의 안전까지 도모했어. 그러니 급할 게 없다.”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로칸 바르사유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급하게 갈 필요는 없으니 신무기들을 점검하고 최대한 피해를 줄여. 빠르게 치고 나가는 건 저곳을 점령한 이후에도 충분하니까.”

“예, 폐하.”

최대한 피해 없이 로만의 수도를 짓밟으라는 명령을 내리고는 타리온과 함께 지휘소를 빠져나왔다.

“북동부 상황은?”

“아직까진 큰 전투는 없었습니다. 다만 로만과 마족 모두 조금씩 한군데로 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찾은 건가?”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굳은 표정으로 타리온을 바라보았다.

“아직 정확히 찾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위치는?”

“검은 협곡입니다.”

타리온의 보고에 카리엘이 생각에 잠겼다.

이미 수차례 보고를 받은 것처럼 죽음의 땅은 굉장히 넓었다.

게다가 옛 신화시대의 흔적들 역시 동대륙에서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다.

지옥문이 잠들어 있을 만한 수많은 흔적들 중 검은 협곡으로 몰린다는 것은 그 부근에 지옥문이 잠들어 있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아직 못 찾았다면 낚을 시간은 충분한 것 같네.”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미소를 지으면서 타리온을 바라보았다.

“낚시 작전 1단계. 시작하라고 전해.”

“예!”

카리엘의 명령에 고개를 숙이고 사라지는 타리온.

그런 그를 바라보던 카리엘이 아켈리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슬슬 내가 움직일 타이밍을 잡아야할 것 같은데.”

“……준비시키겠습니다.”

아켈리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카리엘이 조용히 화기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카리엘의 주변으로 작은 불덩이들이 떠올랐다.

퐁! 퐁! 퐁!

앙증맞은 팔과 큰 눈을 가진 불덩이들이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슬슬 날뛸 시간이야. 준비됐어?”

카리엘의 물음에 세 불덩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날뛰어 줘야 해.”

카리엘의 말에 세 불덩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큼은 확실히 자신 있다는 듯 자신감을 보이는 불덩이들을 보면서 카리엘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대어를 낚아 보자고.”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저 멀리 보이는 로만의 수도를 바라보았다.

카리엘의 작전은 간단했다.

로만과 마족들에게 이그니트가 천천히 진군하면서 산드리아와 동북부를 제외한 모든 영토를 먹어치우면서 올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

그러기 위해서 카리엘은 별동대들에게 몇 가지 주문을 했다.

1. 점령지를 안정화 시키면서 진격할 것.

마계 게이트를 부숴버리기 위해 출불한 별동대는 물론이고, 남부 연합군과 합류하라고 보낸 선봉군 역시 점령지들을 확실하게 컨트롤 하면서 진격했다.

그 때문인지 먼저 출발한 것치고 진격속도는 늦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로만과 마족들을 안심시키는 어렵다.

2. 마족과 로만이 양패구상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연기하기.

이를 위해서 인류연맹의 다른 국가들까지 속였다.

「마족들과 로만이 전쟁을 시작하기 전까지 움직이지 마시오.」

카리엘이 직접 타 국가들에 부탁한 제안.

일부러 각 국의 핵심 수뇌부에게만 전달한 것이지만, 어딜 가나 배신자는 있기 마련.

각 국의 수장들만이 아니고, 지휘관들에게까지 전달한 내용이기에 로만에 이 정보가 들어가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의심 많은 로만의 황제라면 이것만으로는 낚이지 않을 것이다.

3. 북동부 근방에 요새를 만들기.

선봉군과 남부 연합군이 도착하는 즉시 방어선을 만들고 요새를 만들 것이다.

동시에 산드리아의 사막 지역도 돌파할 것이다.

로만과 마족들을 북동부에 몰아넣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연기하는 것.

이것이 이 작전의 핵심이었다.

물론 의심이 많은 자라면 이래도 의심할 것이다.

그런 그들을 현혹하기 위해서 마계 게이트를 점령한 별동대들을 북동부로 빠르게 이동시킬 것이다.

마치 별동대들이 양패구상을 한 마족과 로만의 빈틈을 노릴 것처럼 보이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카리엘이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간단했다.

“로만의 수도를 점령하는 순간 빠르게 진격한다.”

로만의 수도에서 북동부까지 단숨에 치고나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 모든 힘을 보여 줄 필요는 없었다.

이그니트가 준비한 ‘진짜 전력’은 숨긴 채 로만의 수도를 점령할테니까.

그리고 그 순간, 로만이 준비한 방어선을 진짜 전력으로 격파하면서 빠르게 북동부로 향할 생각이었다.

핵심은 바로 타이밍.

이그니트의 주력군이 늦게 올 것을 생각하며 저들이 전력으로 부딪치며 빠르게 결판을 내려하는 그때.

주력군이 북동부에 도착해 양쪽 군대를 한 번에 쓸어버리는 것!

그것이 카리엘이 그리는 그림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로만의 수도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이그니트가 전력을 쏟아붓는 것처럼 연기를 해야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로만의 수도를 지휘하고 있을 에쉬타르를 떠올렸다.

분명 그는 명장이라 불릴 만하다.

그런 그가 로만의 수도를 그냥 내줄리 없었다.

분명 뭔가 계획하고 있는 바가 있을 터.

이그니트를 물고 늘어지면 대전쟁의 향방에 크게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그의 생각과 달리, 이번 전투는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폐하, 준비되었습니다.”

마침내 로칸으로부터 준비되었다는 말이 들려왔다.

수도까지 진격한 제국의 군대.

동시에 타리온으로부터 전해진 서신.

그 내용을 읽은 카리엘이 더는 기다릴 필요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 가 볼까?”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천천히 수도를 향해 움직였다.

이미 로만의 주변 요새들은 전부 점령당했고, 이제 남은 건 로만의 수도뿐.

그 수도조차 곳곳에서 불길이 일어나면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반 형제도 남았나?”

카리엘이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순간, 타리온과 아켈리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빠르게 달려 나갔다.

성문을 지키던 이반 형제마저 두 마스터에 발이 묶이자 순식간에 성문이 뚫리고 수많은 병력들이 안으로 진입했다.

바로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등장한 지옥의 군대들.

아귀.

불타는 군대.

투귀.

저주받은 망령.

이 모든 것이 성안에서 튀어나왔다.

“애초에 일반 제국민은 남아 있지도 않았군.”

성 안을 가득 채운 지옥의 군대를 보면서 카리엘이 자신의 힘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거대한 소환체들이 나타났다.

“자! 그럼 날뛰어 봐라.”

카리엘의 허락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날뛰기 시작하는 소환체들.

동시에 카리엘의 뒤에 정렬해 있던 불의 사제들과 불의 축복을 받은 무인들이 움직였다.

지옥의 존재들과 상극의 힘을 가진 그들의 힘에 빠르게 죽어 가는 지옥의 군대들.

그를 위해 뚫은 길을 따라 마침내 로만의 황궁에 도착한 카리엘.

그곳에선 이리될 줄 알고 있던 에쉬타르가 홀로 기다리고 있었다.

“서대륙의 위대한 황제를 뵈오.”

“준비한 것은 이게 끝인가?”

카리엘이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에쉬타르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럴 리가요.”

그렇게 답한 순간 수도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폭발?”

에쉬타르의 마지막 한 수.

그것은 수도 전체를 폭발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을 준비하려는 순간, 카리엘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를 보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준비한 마지막 한 수가 망했다는 것을 인지했고, 그런 그의 생각이 맞다는 듯 카리엘의 이마에 선명한 문양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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