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45화 (145/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54. 게이트 전쟁! (2)

얌전히 있어도 모자랄 판국에 또다시 전쟁터로 가겠다는 카리엘을 보면서 대신들은 애가 탔다.

대체 왜 이런단 말인가?

한 명은 남겨 둬야 할 마스터들도 죄다 보내 버린 판국에 이번엔 직접 전쟁터로 뛰어들겠다는 카리엘의 말에 대신들은 미칠 노릇이었다.

현재의 제국에 카리엘이 가진 입지는 절대적이었다.

황위를 이를 동생들이 있다지만 카리엘을 잃었을 때 일어날 혼란은 결코 그들만으로는 잠재울 수 없었다.

“폐하, 꼭 가셔야겠습니까?”

“불의 사제들만 보내도 되지 않겠습니까?”

대신들의 설득에 카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지옥의 존재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내가 가야 돼.”

카리엘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이번만큼은 안 된다는 듯 대신들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서대륙도 아니고, 동대륙이었다.

거인의 요새에 얌전히 쳐박혀 있는다 했으면 고민이라도 해 볼 것이다.

그런데 카리엘은 로만을 직접 견제하겠다 말한다.

당연히 대신들 입장에선 결사반대를 외칠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다.

“마왕이 완전히 깨어나기 전에 결판을 봐야 한다.”

“하오나…….”

대신들의 반대에 카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 위험했다.

전생의 경험을 통해 마왕이란 존재가 얼마나 무지막지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반드시 막아야 했다.

글렌이 그랜드 마스터가 되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렌은 아직 약했다.

전생의 절대적인 힘을 갖추기 전까진 시간을 벌어 주어야 했다.

‘마왕의 소환을 막을 수 없다면 글렌이 성장할 시간이라도 벌어 주어야겠지.’

마왕이 이미 소환되었다면 마족들의 세력이라도 약화시키고, 덤으로 마왕에게 치명상이라도 입혀 놔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제국의 모든 전력을 마족에게 집중시킬 필요가 있었다.

바로 이걸 위해서 카리엘이 동대륙으로 가려는 것이었다.

“로만을 견제할 병력을 위로 올려보내야 해.”

“하오나…….”

“제국에 그랜드 마스터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짐은 이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카리엘의 말에 대신들의 입이 꾹 다물렸다.

“그랜드 마스터보다 강할지도 모르는 존재의 넘어오는데 안전을 위해 손 놓고 있는다? 그것이 정녕 그대들의 바람인가?”

카리엘의 물음에 이번에도 대신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짐을 믿어라. 반드시 살아돌아 오겠다.”

카리엘의 말에 대신들이 고개를 들어 자신들의 황제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말한 것은 지키고자 하는 이그니트의 지존은 스스로 약속한 바를 대부분 지켜 내며 서대륙 통일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로만을 불태우고 올 테니 믿어라. 그리고…… 반대는 오늘까지만 듣는 걸로 하지. 일이 많이 밀렸어.”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반대하는 대신들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갔다.

당당하게 대전을 나가는 카리엘의 뒷모습을 보며 대신들이 한숨을 쉬었다.

“저리 강경하시다면…….”

“막기 어렵겠지.”

재무대신의 말에 재상이 한숨을 쉬었다.

“하오나 막아야 하옵니다. 지금의 제국은 폐하께서 계시기에 겨우 유지되는 것입니다.”

성국과 남부 왕국들을 점령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게다가 마족들과 지옥의 존재들까지 나타난 상황 속에서 이그니트가 이렇게 큰 혼란 없이 유지되는 이유가 카리엘이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그의 리더십 없이 과연 중앙이 제대로 컨트롤이 될지가 의문이었다.

“그래도 해야겠지. 폐하께서 바라시지 않는가.”

재상의 말에 대신들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언제나 자신들에게 어려운 과제를 주는 황제.

매일같이 야근을 시키고, 산더미 같은 일더미만 안겨 주는 못된 황제였지만 막상 없으면 그리워하는 묘한 존재였다.

“움직이세. 폐하께서 저리도 간절히 바라신다면 따라 드리는 게 도리겠지.”

결국 재상의 말에 무릎을 꿇고 있던 대신들이 하나둘 일어나면서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모든 대신들이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자 짧게 한숨을 쉰 재상은 조용히 황제의 궁으로 찾아갔다.

* * *

“설득은?”

“끝났사옵니다.”

“수고했네.”

카리엘의 말에 재상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폐하, 이제 그만 소신을 놓아주시지요.”

하루하루 가파르게 늙어 가는 재상이 초췌한 몰골로 카리엘에게 간청했다.

하지만 카리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루터가 성장하면 놓아준다 했잖아.”

전생의 천재는 현재 아카데미에서 착실히 성장 중이었다.

그렇기에 카리엘은 그가 졸업을 하고 정식으로 관료로 들어오기 전까진 재상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현재 제국에 재상만큼 연륜 있고 중심을 잡아 줄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성장하는 걸 기다리다 소신이 먼저 죽겠습니다.”

“사제들보고 더 극진히 관리해 달라 명을 내리지.”

“…….”

안 그래도 노신으로 야간까지 하는 재상이 안타까워 사제들에게 지속적으로 관리토록 하고 귀한 약재들을 다달이 보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초췌한 몰골을 보니 그것으로도 부족한 것 같았다.

“정 그러면 좀 더 일찍 불러들여.”

“예?”

“루터 말이야. 비상 체제이니 꼭 졸업반이 아니어도 불러서 쓸 수 있잖아.”

카리엘의 말에 재상의 표정이 묘해졌다.

“아직 어리지 않습니까? 좀 더 경험이 필요할 텐데요.”

“불러서 써 보고 아니면 다시 돌려보내.”

카리엘의 제안에 재상이 고개를 갸웃거렷다.

“폐하께선 그 청년을 신뢰하시는군요.”

재상의 말에 카리엘이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보면서 확신을 얻은 재상이었으나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 카리엘이 루터를 잘 키워 보라고 명령했을 때, 재상은 카리엘이 루터를 차기 재상으로 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재상부에서 일하게끔 하고 직접 키워 보라고 명했으면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었다.

문제는 그가 아직 어리다는 것이다.

“내가 왜 그 청년을 신뢰하는지 궁금해?”

“……예.”

“나와 동류거든.”

카리엘의 말에 재상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지존이었지만 그가 보기에 카리엘은 괴물이었다. 그런 존재와 동류라고?

“잘할 거야. 그러니 믿어 봐.”

“……알겠습니다.”

여전히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짓는 재상이지만 지금은 그저 믿어 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괴물로 보는 자신보다 몇 배는 유능한 루터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지금보단 훨씬 더 안정적인 체제를 구축할 것이다.

이미 루터와 동생들을 중심으로 모여든 젊은 천재들은 벌써부터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그들이 아카데미에서 내는 아이디어들은 당장에 쓸 만한 것도 몇 개가 있을 만큼 혁신적이었다.

“잘하겠지.”

과거 비운의 천재라 불리는 동생들.

그리고 제국을 자신이 죽을 때까지 버틸 수 있게 한 루터라는 희대의 천재.

전생엔 전쟁으로 사라졌던 수많은 천재들.

그들이 있다면 자신이 없어도 제국은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반역자 출신의 베이커와 쿠리우스 튜링이라는 천재들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체계도 잡혀 있었다.

무기학 박사 베이커.

연금학과 화학의 신 쿠리우스.

공학의 아버지 튜링.

반역자 출신으로 세일럼에 겨우 등용시켰던 그들이 이제는 수도에서 핵심 사업에 뛰어들어 각 분야에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였다.

카리엘의 친위대들이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중앙 마탑주를 겸임하는 아르슈나.

제국의 기초 운동과 병사들의 기초 수련법의 체계를 정립 중인 토토.

근접전의 기초와 레인저와 특수부대를 양성시킬 무술의 기초를 다진 이리스.

몬스터들과 악마들의 약점을 연구하고 외과의 기반을 다지는 브리온.

동시에 친위대 역시 확장을 위해 이들이 직접 뽑은 인재들을 수련시키는 중이었다.

이미 카리엘이 뽑은 각 분야의 천재들이 기반을 다져 놓았으니 자신이 잠깐 수도를 비운다고 흔들릴 일은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 계산을 마쳤기에 카리엘도 동부로 떠날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 * *

며칠 후.

황제의 궁으로 찾아온 두 동생들을 보면서 카리엘이 미소를 지었다.

“수도를 잘 부탁한다.”

카리엘의 말에 동생들이 한숨을 쉬었다.

과거 카리엘이 수도를 비웠을 때를 떠올리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처럼 힘들지는 않을 거야.”

카리엘이 걱정 말라는 듯 말했지만 동생들은 믿지 않았다. 이미 자신들의 힘으론 카리엘의 빈자리를 메꿀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처절하게 학습했기 때문이다.

“미리엘이나 달래 주고 가십쇼.”

“예. 또 위험한 곳으로 간다니 우울해하고 있습니다.”

“……그래?”

동생들의 말에 카리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자신만 도움이 안 되고 있다고 자책하고 있습니다.”

세리엘의 말에 옆에 있던 루피엘이 한숨을 쉬었다.

자신들이 미리엘을 달래 주려 했지만 이번만큼은 쉬이 기분이 풀어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움이 되고 싶어 한다라…….”

“설마…… 형님, 미리엘을 벌써부터 부려 먹으시려는 건 아니겠죠?”

“그 정도로 양심이 없으실 리가…….”

두 동생들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카리엘을 보자 그런 동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울해하는 것보다 차라리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턱을 문지르면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궁이 어지럽긴 했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시녀장과 시종장이 권한을 나누어 궁을 관리하고 내무대신이 도움을 주고 있긴 한데 보고 체계가 어지러워 예산이 중구난방일 때가 많았다.

카리엘은 이 부분에 관해서 중심만 잡아 주는 형태로 미리엘에게 일을 맡길 생각이었다.

미리엘에게 내궁의 일을 맡긴다는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대신들과 동생들이 질렸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오히려 미리엘은 다부진 모습으로 두 주먹을 꼭 쥐며 말했다.

“할 수 있어요! 오라버니한테 도움이 되고 말 거에요!”

미리엘의 말에 다들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다들 미리엘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은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카리엘은 꼭 그렇지만도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전생의 경험을 생각해 봤을 때 미리엘의 재능은 루터에 버금갔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를 조기부터 교육시켰으니 밥값은 할 거라 믿었다.

“할 일은 다 끝났군.”

-이제 동대륙으로 가는 건가?

“그래.”

수르트이 물음에 카리엘이 밤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쫄지 마.

“안 쫄았다.”

수르트의 말에 뜨끔한 카리엘은 헛기침을 내뱉으며 말했다.

-쫄았구만.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카리엘을 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린 수르트가 피식 웃었다.

그런 수르트와 티격태격하면서 카리엘은 황궁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 * *

그리고 다음 날,

보급선을 지키던 월크셔 공작과 마밥사단이 일제히 북부로 이동하며 주력군에 합류했다.

그러자 빈틈을 노리던 로만이 일제히 보급선으로 몰려들었다.

엄청난 숫자의 지옥의 아귀들이 몰려들자 아켈리오와 타리온이라는 두 마스터가 있음에도 보급선을 지키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타리온에게 한 가지 급보가 날아들었다.

“남쪽 지역의 보급선이 안정화되었다 합니다.”

“불의 사제들이 도착했나?”

“예. 그런데 안정화된 이유가 그들 때문이 아닙니다.”

그림자의 보고에 타리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폐하께서 직접 참전하셨다 하옵니다.”

그림자의 말을 들은 타리온이 경악하며 기함을 토했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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