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39화 (139/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52. 아픈데 또 찌르기! (2)

매우 수상했다.

로만과 산드리아 제국의 연관성?

그것이 무엇일까 고민을 해 보았다.

현 로만의 황제의 외가는 로만의 귀족이었다.

그럼 로만의 황가가 산드리아와 연관이 있나?

그것도 아니었다.

“로만의 황가 역시 우리처럼 뭔가가 내려오는 게 있다고 봐야겠지? 그게 지옥과 관련되었다는 것이고.”

카리엘의 물음에 타리온과 시종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산드리아와 로만의 연관성이라……. 대체 뭘까?”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래.”

조사해 보겠다는 말과 함께 밖으로 나간 타리온.

그러자 이번엔 시종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산드리아 쪽을 좀 더 주시하라고 해. 아무래도 로만의 황제와 그 부족들이 지옥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니까.”

“예.”

시종장에게 명령을 내린 카리엘이 미소를 지었다.

단순한 동맹이라면 산드리아 제국의 강력한 부족들과 접선했을 것이다.

하지만 변방의 약한 부족들과 접선을 했다.

“일부러 나에게 보여 준 느낌이란 말이지?”

분명 로만도 이그니트가 산드리아에 감시망을 촘촘히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이렇게 움직인 것은 일부러 그것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체 뭘까?”

로만의 황제가 무엇을 의도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이 보지 못하는 뭔가를 보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서 자신을 끌어들이려는 느낌이 강했다.

아직까진 로만의 황제가 그리는 큰 그림을 파악하진 못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있었다.

“이그니트를 이용하고자 하는 건가?”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고심에 빠져들었다.

로만의 황제가 지옥과 연관이 있다면?

그것도 산드리아의 고대 부족들과 연줄이 있다면 지금의 상황이 조금은 설명될 수 있었다.

시종장에 의해 산드리아를 계속 파 본 결과 그들은 마족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 사실은 지옥과 연관성이 있는 게 거의 확실한 산드리아가 아직도 마족과 손잡지 않을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산드리아의 다양한 부족들이 모시는 신들께 타락한 기운이 물들까 봐 꺼리기까지 했다.

그런 그들과 로만의 황제과 연관성이 있다?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끌어들이고자 하는 건 확실하군.”

자신이 지옥문을 지키는 가름을 찾듯이 로만의 황제나 산드리아 역시 무언가를 찾거나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수르트의 말대로라면 내가 지옥문을 찾을 수 있는 열쇠 같은 건가? 그렇다면 로만의 황제는 나를 이용해서…….’

거기까지 생각한 카리엘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전생에 끔찍한 존재들이 대륙에 튀어나온 게 설명되지 않았다.

“말이 안 돼.”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한숨을 쉬었다.

아직 결론이 난 건 없었지만 이번 일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게 생겼다.

1. 로만 황제는 자신처럼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이 지옥과 관련되었을 확률이 높다.

2. 로만이 그리는 대계에 자신이 필요하다.

3. 로만의 수도는 위험하다.

그의 대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로만의 수도에는 거대한 함정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어떤 함정인지 알 수 없지만, 굳이 당해 줄 이유가 없었다.

“로만의 수도로 진격하는 날은 전 국토를 집어삼킨 이후가 되어야겠지.”

이그니트의 주력군이 거인의 길에 묶여 있다 해서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

현재 로만에게 아픈 곳은 북쪽 지역이었다.

본래 상대에게 가장 큰 피해를 주는 방법은 아픈 곳을 반복해서 공격하는 것이다.

그걸 위해서 카리엘은 남은 병력을 계속해서 북쪽에 투입할 생각이었다.

얼마 뒤, 타리온이 다급하게 북쪽에서 보낸 서신을 가져왔다.

“폐하! 북쪽에서 온 서신입니다.”

“골란이 북쪽 평원을 거의 평정했군.”

“예.”

“그럼 우리도 답례를 해야지.”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빙그레 웃었다.

이미 카리엘의 명령으로 이그니트 제국은 교국까지 확대된 철도를 더욱 늘려서 북동부 끝자락까지 연결시키는 작업을 명령했다.

동시에 옛 성국의 영토 끝부분에 비공선들이 내릴 수 있는 비행장을 만들라 지시했다.

이제 그것을 사용할 때가 된 것이다.

매번 막대한 물자를 남쪽의 해역을 빙 돌아서 제공하는 것이 힘들었었다.

그렇다고 거인의 산맥을 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혹한의 협곡 중간 지점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을 트는 것이다.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그나마 거인의 산맥 중 낮은 지형이었기에 작업이 가능했고, 이제 그것이 실현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신들 불러.”

“예!”

카리엘의 명령에 모든 대신들이 대전에 소집되었다.

“드디어 우리가 세운 비밀 작전을 실행할 때가 되었다.”

카리엘의 말에 모든 대신들이 흥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류 연맹 초기에 만들어 두었던 계획에서 유목 민족들이 통합된 이후의 계획 역시 세워 두었다.

마족들을 상대하는 유목 민족들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

그것에는 거인의 산맥을 넘어서 다량의 물자들을 수송하는 방안 등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 작전을 본격적으로 공개할 생각이었다.

“현재의 로만은 혹한의 협곡 지대를 견제할 능력이 없다. 마족들 역시 마찬가지.”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대전 한쪽 구석에 세워진 지도를 바라보았다.

“유목 민족들이 마족들을 견제해 준다면 우리가 혹한의 협곡을 완전히 집어삼키는 게 가능할 터. 그렇다면 이곳을 기점으로 아래까지 내려온 유목 민족들에게 직접 물자를 건네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빙그레 웃었다.

“동시에 우리 군 역시 넘어가 거점을 만들 수 있겠지.”

마족들이 유목 민족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이그니트의 군대가 협곡을 넘어 요새를 건설할 것이다.

양쪽의 요새를 통해 협곡의 길을 보다 안정화하면서 마계 게이트를 노리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현재 로만이나 마족들이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마계 게이트의 확장이다.

마왕이 넘어오게끔 하는 것.

그것이 핵심인데, 그것이 위협받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될까?

“군부대신. 이후의 상황은 어떻게 진행되지?”

“일단 로만과 마족 진영에 혼란이 야기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거인의 요새를 점령할 가능성이 높아지겠나?”

카리엘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군부대신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흑마법사들의 전력 일부가 북쪽으로 빠진다 가정하면 거인의 요새는 함락될 것이옵니다.”

“좋군. 그다음은?”

“로만의 전력이 요새를 버리고 수도에 집결된다면 그때부터는 아군 역시 적극적으로 동대륙에 간섭할 수 있게 될 것이옵니다.”

그렇게 말한 군부대신이 거인의 요새와 혹한의 협곡을 점령한 이그니트군이 로만의 서쪽 지역에 대규모 보급망을 건설하면서 압박하는 장면을 설명했다.

동시에 동대륙 국가들의 연합군까지 로만으로 몰려든다면 로만은 중심부를 제외한 모든 국토를 잃어버릴 것이다.

“문제는 이 이후입니다.”

이그니트가 로만의 영토에 진입한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예 병력이 생존한 상황이라면 아무래도 이그니트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보급망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족들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

“섣부르게 움직였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언제나 보수적으로 전략을 바라보는 군부대신답게 앞으로 상황 역시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대신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군에 어떤 피해가 올지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쉽사리 의견을 내지 못했다.

이럴 때는 황제인 자신이 길을 만들어 주어야 했다.

“마족과 로만, 둘 중 하나를 택한다면?”

카리엘의 물음에 군부대신을 비롯한 다른 대신들이 서로 의견을 내었다.

일단 병력 입장에서는 그나마 가까운 로만의 수도를 치는 게 편하다.

타국의 병력들과 합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급망 비용도 아낄 수 있으니 재무대신이나 내무대신 입장에서도 이게 편할 것이다.

하지만 군부대신 입장에선 마족들을 먼저 치고 싶어 했다.

“마계 게이트가 더 확장되기 전에 마무리 짓는 게 깔끔할 것입니다.”

마왕이 나오기 전에 마계 게이트를 처리하는 것.

몇몇 대신들과 관료들은 이러한 군부대신의 의견에 찬성했고, 몇몇 대신들은 깔끔하게 로만을 밀어 버리고 다국적 군으로 한 방에 북상하는 게 편할 것 같다는 의견에 찬성했다.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모두가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마계 게이트부터 처리하지.”

군부대신에게 손을 들어 준 카리엘의 결정에 재무대신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로만의 북쪽까지 보급망을 연결하려면 엄청난 자금이 소모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게 봐선 로만의 수도를 점령하는 게 옳겠으나 마왕을 막을 수 있다면 이게 더 남는 장사다. 그리고…….”

카리엘이 말끝을 흐리면서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마계 게이트를 공략할 때는 짐도 친정을 하고자 한다.”

카리엘의 말에 대신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마족 놈들이 있는 지형에 지옥문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확인해 두고 싶어서였다.

수르트의 도움으로 지옥문이 로만의 영역에 없다는 것만 확인된다면 한결 일이 수월해졌다.

‘그때는 산드리아를 완전히 적으로 규정해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폐하! 아니 되옵니다!”

“절대 아니 되옵니다! 폐하의 옥체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제국은 그 즉시 혼란에 빠질 것이옵니다!”

“폐하! 전장에 나간 장수들을 믿어 주시옵소서! 그들이 잘 해낼 것이옵니다!”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반대하는 대신들.

평소 카리엘의 명령을 잘 받아 주는 시종장조차 무릎 꿇고 반대했다.

타리온은 말할 것도 없이 결사반대였다.

“동대륙에는 짐의 안전이 확보된 이후에 움직일 것이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가 없사옵니다.”

타리온이 대표로 말하자 모두들 무릎 꿇고 외쳤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는 신하들을 보면서 카리엘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반대하는데 뭐라 할 수도 없었기에 한숨만 푹푹 쉬면서 고민에 빠졌다.

한참을 침묵하던 카리엘이 입을 열었다.

“짐이 직접 가서 확인해야할 것이 있다. 짐이 아니면 확인하기가 어렵다.”

“……지옥과 관련된 것이옵니까?”

타리온의 물음에 카리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너무 위험하옵니다.”

다시 한번 반대하는 타리온의 모습에 카리엘이 대신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 역시 고개를 숙이면서 결사반대를 하자 결국 한 발자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짐의 친정은 좀 더 고민해 보지.”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그날의 대전 회의를 파했다.

하지만 계획된 바는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어느새 거인의 산맥 인근까지 밀고 들어온 유목 민족들.

그런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 대부분의 마족들과 흑마법사들이 움직이자 마침내 이그니트가 혹한의 협곡을 점령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는 동안 연합군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마룡들 일부와 마인들이 북쪽으로 빠져나가자 그 틈을 노려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 * *

“로만 입장에선 굉장히 아프겠군.”

아직은 큰 변동이 없는 거인의 요새를 보면서 남부 사령관 로칸이 중얼거렸다.

가장 아픈 곳을 푹푹 찌르는 이그니트 때문에 로만의 견고했던 방어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에쉬타르라도 지금의 상황은 뼈아플 수밖에 없었다.

“흑마법사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마도구로 감시하던 장교가 황급히 보고하자, 로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움직일 준비를 하자.”

로만이 흔들리기 시작했으니 더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저들이 다시금 안정되기 전에 단숨에 요새를 무너뜨려야 했다.

그렇게 이그니트의 대군마저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하자 로만의 진형이 당황했다.

“당황하지 마라! 침착하게 적들의 공격에 대비하라!”

사방에서 공격이 들어오는 최악의 상황.

그런 상황에서도 베테랑 지휘관들이 최선을 다해 로만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들의 견고한 방어선에 가장 먼저 균열이 일어난 건 남쪽의 요새였다.

윙사르의 국왕이자 마스터인 브라이튼이 기어코 성문을 박살 내면서 안으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뚫렸다! 모두 안으로 진입하라!”

남부 연합군이 기세를 끌어 올리며 안으로 진입할 때였다.

“저게…… 뭐지?”

윙사르 국왕의 물음에 모두들 성안에 만들어지는 붉은 회오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날, 급보를 통해 이그니트 수도에 한 가지 소식이 날아들었다.

「남부 연합군 패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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