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37화 (137/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51. 드러나는 로만의 전력 (3)

철벽과 거인의 요새의 중간 부분에 요새가 지어지면서 이그니트 제국의 주요 병력들이 공격을 멈추고 새로 지어지는 요새를 중심으로 집결했다.

동시에 로만을 제외한 동대륙의 국가들 역시 점령지를 관리하면서 주요 지역에 요새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소식은 곧장 로만의 황제에게 전달되었다.

“장기전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를 말려 죽이려는 속셈이군.”

황제가 그렇게 말하면서 피식 웃었다.

로만에서는 이그니트의 황제에 대한 성향은 진즉에 파악하고 있었다.

나이답지 않은 현숙함과 결단력 그리고 초대 황제의 힘을 완벽하게 계승한 인물.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1. 흑마법사나 마족에 관한 정보를 자세히 알고 있음.

-비밀 수호대 혹은 황제에게 내려오는 정보로 알았을 가능성이 높음.

-황실 혈통으로 인한 알 수 없는 힘으로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

※이그니트 황제가 소환한 소환수들에게 정보를 제공받을 가능성이 큼.

2. 피해를 줄이고 전력을 보존하려는 성향이 큼

-마족과의 전쟁을 대비하려는 것일 가능성이 큼.

-자신이 파악하지 못한 위협에 대비하려는 성향이 큼.

-피해를 줄이는 데 자신을 희생시킬 가능성도 있음.

로만이 파악한 카리엘의 성향은 대략적으로 이러했다.

이번에도 역시 전력을 보존하려는 의미가 컸다.

‘이그니트의 황제는 어디까지 보고 있을 것인가?’

자신이 보는 미래만큼 계획을 짜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신이 감춘 비밀만큼이나 이그니트 황제가 감춘 비밀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쯤은 직접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싶군.’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를 지을 때였다.

“폐하! 제국의 그림자들이 북쪽 지역을 공격하고 있다 합니다.”

시종 하나가 다급히 달려와 부복하며 보고를 하자 황제가 차분한 표정으로 물었다.

“마족들은?”

“이미 발각되었습니다. 반마족을 비롯한 마족 다수가 그림자들에게 죽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군단장이 날뛰고 있겠군.”

“……예.”

로만의 황제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자 보고를 하러 들어온 남자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보면서 로브를 쓴 남자가 황제를 바라보았다.

“이그니트 쪽에서 저희가 마족들을 컨트롤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로브를 쓴 남자의 말에 황제가 한 방 먹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로만과 마족들의 관계는 동맹일 뿐이다.

이그니트의 황제는 이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그니트 쪽 혈통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내려오는 정보일까?”

마족들에 통제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지 못하는 이상 내리기 어려운 결정.

“마군단장이 자신들을 습격한 인간들을 쓸어버리겠다고 날뛰고 있습니다. 명령을!”

“그가 없으면 마계 게이트 확장이 느려진다는 것을 본인이 가장 잘 알 터. 그럼에도 날뛴다는 건가?”

“인간 몇 명을 쓸어버리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거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마군단장 중에 한 명이 이그니트의 마스터를 막기 위해 가 버리느라 마계 게이트 확장 속도로 굉장히 느려졌다.

그런 상황에서 남은 군단장 한 명까지 빠져 버린다면 시간이 매우 지체될 것이다.

가속도가 붙은 게이트 확장공사가 멈춰지게 되면서 다시금 정상 속도를 만드는 데에 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기는 마군단장을 보면 마족이란 생명체는 이성보다 본능을 우선시하는 놈들이 맞아 보였다.

“불가능할 것이다.”

마군단장의 말에 로만의 황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며칠 안에만 돌아오면 큰 문제가 없는 건 맞았다. 하지만 자신이 보기엔 마군단장이 며칠 안으로 이그니트의 그림자들을 전멸시키고 돌아올 것 같지가 않았다.

‘이그니트 황제가 어설프게 공격했을 리 없다. 마군단장이 공격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대비해 놨을 터.’

로만의 황제가 이렇게 생각했지만 마군단장을 통제할 방법은 없었다.

“짐의 생각은 반대이나…… 그가 말을 들을 것 같지는 않군. 그대들이 알아서 하시게.”

“……최선을 다해 막아 보겠습니다.”

황제의 말에 로브를 쓴 남자가 조용히 일어나 사라졌다.

로만과 흑마법사들 사이에서 맺은 밀약.

그 중심이 되는 내용에 위반되는 행동이기에 말을 잘 하면 마군단장을 통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로만의 황제는 통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버려 두는 이유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폐하, 저대로 내버려 두어도 괜찮겠습니까?”

시종이었던 이가 몸을 일으켜 로만의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황제가 웃으면서 말했다.

“짐이 말해 보았자 잠시 듣는 척만 할 뿐. 결국 제멋대로 굴 것이다.”

“하오나…….”

“1번. 넌 언제나 걱정이 많구나.”

황제에게 1번이라 불린 사내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마음으로 어찌 검은 달을 이끌겠느냐. 느긋하게 상황을 볼 줄도 알아야 하느니.”

“송구합니다.”

고개를 숙인 검은 달의 수장인 1번.

이그니트에 그림자가 있다면 로만엔 검은 달이 있다.

“언젠가 그림자 놈들과 부딪쳐야 할 텐데 그래서야 쓰겠느냐.”

“더 정진하겠습니다.”

황제의 말에 이를 악물면서 답하는 1번.

황제 직속 단체인 이들은 이그니트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의 직속 단체인 그림자를 보고 필요성을 느껴 창설했으며, 이그니트가 숭배하는 불과 태양과 반대되는 의미로 이름 지었다.

그렇기에 검은 달은 그림자에 대한 적대감이 강했다.

“이러다가 그림자들에게 지는 건 아닌가 모르겠구나.”

“……저희들의 현재 전력만으로 그림자는 물론 그들이 자랑하는 비밀 수호대도 박살 낼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보이는 1번을 보면서 황제가 빙그레 웃었다.

허언을 하지 않기로 유명한 1번이기에 고개를 끄덕인 황제가 1번에게 말했다.

“마족들은 내버려 두거라.”

어차피 마족들은 황제에게 쓸 만한 말에 불과할 뿐이다.

마왕 역시 로만의 황제를 그리 생각할 것이다.

서로가 목표를 이룰 도구로 생각하는, 언제라도 깨질 동맹 관계.

그렇다면 황제가 믿는 구석은 무엇일까?”

“……부족에게 연락하거라. ‘그들’을 조금 빌려야겠구나.”

“예.”

황제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들은 1번이 조용히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과연 이그니트의 황제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군.”

자신이 부른 그들을 보았을 때, 카리엘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기에 하루빨리 그날이 오기를 바랐다.

숱한 위기를 극복하고 결국 로만을 여기까지 몰아붙인 ‘그’라면 로만의 땅에 그들이 나타났을 때 이게 어떤 의미인지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로만의 황제가 생각하는 진짜 전쟁은 바로 그때부터일 것이다.

* * *

카리엘을 대한 로만 황제의 기대감.

그리고 로만 황제를 향한 카리엘의 경계심.

서로를 인정하는 두 황제와 달리 상황은 점점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허수아비 로만. 진짜 ‘적’은 흑마법사와 마족들!」

「고서에만 존재하던 마군단장. 마왕 강림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일까?」

전쟁 중에 발생한 이들이 동대륙 전체로 퍼지는 데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보다 심각한 일은 과열되었던 전쟁의 양상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것이다.

대신 로만의 모든 길이 막혔다.

그런 상황에서 마족들이 날뛰기 시작하면서 로만의 국경 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고립된 로만. 이대로 있다가는 고사될 것이다.」

「날뛰는 마족들. 로만의 봉쇄를 풀 열쇠?」

이그니트의 수도에까지 퍼진 이 사실에 카리엘은 피식 웃었다.

“잘하고 있네.”

카리엘이 그림자들을 칭찬하자 타리온이 작게 고개를 숙였다.

로만을 봉쇄하는 것.

분명 효과적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애초에 이 전쟁을 시작한 명분인 마족들을 막는 것.

그것을 위해서 카리엘은 마족들을 건드리기로 했다. 그림자들을 혹한의 협곡 쪽으로 보내서 지속적으로 마족들과 마인들을 견제했다.

처음에는 그림자들뿐이었지만 이제는 성기사들까지 합류해서 본격적으로 마족들을 조지기 위한 작전에 들어갔다.

「대마족 특수부대 창설! ‘악마 사냥꾼’」

그건 바로 마족들을 위해 특수부대까지 창설한 카리엘이 성기사와 사제, 그림자 일부를 섞어 특수부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거기다 마족들에게 효과적인 무기까지 배치하면서 혹한의 협곡으로 계속해서 병력을 밀어 넣었다.

“마군단장은?”

“분노해서 날뛰고 있습니다. 저희를 찾지 못해 애꿎은 로만의 백성들만 죽이고 있다 합니다.”

“저런…….”

타리온의 보고에 카리엘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인의 산맥에서도 보일 정도로 막강한 힘을 발산하며 애꿎은 사람들만 죽여 대는 마군단장.

전쟁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평민들이 죽는 건 안타까우나 어쩔 수가 없었다.

현시점에서 로만은 적이기 때문에 그들 역시 이그니트의 적일 뿐.

“마족들의 움직임은?”

“몇몇 이들이 특수부대를 낚기 위해 함정을 파는 시도를 했습니다.”

“슬슬 녀석들도 진심으로 우리를 막고자 하는군.”

처음엔 대수롭지 않은 피해였다.

일부러 하위 마족 몇 명이나 마인들 수십 정도만 죽이고 물러났다.

마족들 입장에선 다른 곳이 더 급하니 대수롭지 않은 피해는 무시했다.

하지만 그게 매일같이 반복되고, 심지어 여러 곳에서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피해가 누적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마족들이 참을 수 있는 한계가 넘어간 것이다.

“애들은 다 뺐지?”

“예.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아 마군단장이 직접 혹한의 협곡으로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격 급한 황소 새끼가 많이도 참았군.”

황소 뿔을 가진 마군단장.

전생에서 겪어 봤던 익숙한 놈이기에 카리엘이 잘 알았다.

오직 힘으로만 군단장 자리를 따낸 강자이나 그만큼 무식했다. 일단 적이 보이면 냅다 돌진하는 또라이 같은 놈이었다.

“괜히 더 알아본다고 무리하게 접근하지 말고 완전히 빼 버려.”

“알겠습니다.”

카리엘의 명령에 타리온이 끄덕이며 답했다.

악마 사냥꾼을 육성하기 위해 카리엘이 들인 노력은 적지 않았다.

가뜩이나 모자란 자금을 빼서 마도 공방에 특수한 무기를 만들게끔 지시했고, 교국을 비롯한 각 지역의 신전들로부터 성기사와 사제를 모았다.

그리고 사제는 부족한 육체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레인저로 훈련시키고.

성기사들에게는 은신과 암살법을 전수했으며.

그림자들 중에 불의 교단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신성력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을 모았다.

그렇기에 마군단장과 맞닥뜨린다 해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북쪽은 이제 됐다. 요새를 방비할 인원만 남겨 둬.”

“남은 인원은 어찌할까요?”

“거인의 길 근방에 마인들이 날뛴다지?”

“그쪽으로 배치하겠습니다.”

카리엘의 명령에 타리온이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났다.

하도 당하다 보니 마족들과 마인들이 혹한의 협곡 근방에 함정을 파고 기다릴 정도였으니 슬슬 빠지는 게 맞았다.

뭐든 과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한 법.

목적한 바는 충실히 이행했으니 병력을 완전히 빼서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게 나았다.

“무식한 소 새끼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네.”

자신들을 괴롭히던 놈들이 약만 올리고 사라져 버렸다.

가뜩이나 화를 못 참는 무식한 놈이 분노할 대상을 잃어버렸으니 어떻게 나올까?

어떻게든 주체 못 하는 화를 풀어내기 위해 대상을 찾을 것이다.

“북쪽이 유력하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마군단장이 로만의 국경선을 넘는 순간, 이그니트가 동대륙의 북쪽에 간섭할 기회였다.

마족으로 인해 로만이 사방에서 견제당하는 상황이 완성되는 것이다.

“자! 그럼 슬슬 남은 수를 보여 주실까?”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지도에 그려진 로만의 수도를 ‘콕’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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