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50. 인류연맹 창설! (2)
사전에 마족들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숨겨진 정보들을 박박 긁어서 동대륙의 왕들에게 알렸다.
마족들에게 카리엘이 어느 정도 정보를 갖고 있는지 드러나는 것조차 감수할 정도로 이 일에 진심으로 임한 것이다.
‘단 한 곳이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카리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당초의 목표는 이미 이루어 냈지만 사람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는 법.
로만의 동맹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중부 지역의 국가를 노렸다.
많은 곳도 필요 없었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단 세 곳만 집중적으로 팠다.
분명 한 곳 정도는 흔들리는 곳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으나 마족과의 계약이 컸나 보다.
‘하필 중부 지역 왕들이 전부 나이가 많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보통의 사람이라면 인간으로 죽는다는 것보다 살아남는 것에 더 관심이 기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설령 마족들의 하수인이 된다는 결과가 될지라도.
“기대가 너무 컸나?”
카리엘의 중얼거림에 시종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폐하, 이미 당초의 목표는 이루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시종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카리엘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쉽군.”
한 곳만 흔들렸어도 로만의 동맹 체제를 흔들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부를 인류 연맹에 끌어들이는 것도 좀 더 빨라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로만을 에워싸서 두드려 팰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인류 연맹을 더 견고히 하는 것으로 만족할까?”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릴 때였다.
“폐하! 타리온 정보부장이 들었습니다.”
“들라 하게.”
카리엘의 명에 타리온이 황급히 들어와 고개를 숙이고는 검은 서신을 전달했다.
“걸려들었군.”
“그런 것 같습니다.”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하는 타리온.
그런 그를 보면서 카리엘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한데 마족들이 계속 접근한다고?”
“그렇습니다.”
마족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제국이 동대륙에 손을 쓰고 있다는 것쯤은 눈치챘을 것이다.
자신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마족들도 수를 쓸 것이다.
“여러 가지 제안을 하는 것 같습니다만 일단 고위 마족 수준의 대접을 약속하는 것 같습니다.”
“또?”
“끝까지 거절할 것을 대비해 귀족들을 포섭하는 것 같습니다.”
타리온의 보고에 카리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여차하면 반란을 일으킬 생각이군.”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도와줘야겠지.”
“그림자들을 더 파견할까요?”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두 국가도 더 접근해 봐. 아직 마족과 계약만 하지 않았다면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을 테니까.”
“예.”
카리엘의 명령에 타리온이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다행이네.”
3국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국가가 넘어왔다. 유목 민족들과 닿아 있는 국가.
로만에서 멀리 떨어져 남부 국가와 유목 민족 사이에 끼어 있는 국가라서 그런지 앞으로의 계획을 실행하기 딱 좋았다.
이제 남은 것은 기존의 계획을 더 앞당기는 것이다.
“아직 지옥문은 못 찾았지?”
“그렇습니다. 송구합니다.”
시종장이 고개를 숙이면서 말하자 카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있을 만한 곳을 알아보라는 건?”
“사서가 찾고는 있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지옥문이 열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
바로 초대 황제의 시기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지만 지옥과 관련된 문건은 별로 없어 보였다.
그마저도 황실의 직계만 출입할 수 있는 도서관을 개방해야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자료가 없었다.
“더 찾아보라고 해. 일이 터지기 전에 막을 수 있으면 그것만큼 좋은 건 없으니까.”
“예, 폐하.”
시종장이 물러가자 카리엘이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처음엔 마계 게이트를 찾으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사료를 찾아본 결과 그게 아니었다.
“지옥문이라…….”
지옥문이 있는 곳엔 가름이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시종장의 보고에 따르면 마족들 역시 가름이 잠든 곳을 찾고 있다고 했다.
지옥의 하수인이나 다름없는 그들조차 지옥문이 어디 있는지를 모른다는 뜻이었다.
-일단 마족들부터 때려잡아.
어느새 나타난 수르트의 말에 카리엘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결국 내가 동대륙으로 넘어가야 하나?”
카리엘의 물음에 수르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혈계 능력을 통해 가름과의 계약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면 지옥문이 있는 근방에만 가도 카리엘의 몸이 반응할 것이다.
그렇다는 건 결국 지옥문을 찾기 위해선 카리엘이 직접 가야 한다는 뜻이 되었다.
“일단 유력한 후보지는 두 곳인데…….”
카리엘이 지도를 보면서 고민에 잠겼다.
두 개의 후보지.
1. 로만의 황량한 고원.
2. 산드리아의 죽음의 사막지대.
이 두 가지가 가장 의심되었다.
수르트가 말한 지옥의 특징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단 지옥문이 열릴 경우 문이 열린 곳에는 생명체가 살기 힘든 지형으로 바뀐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두 곳이 생각났다.
생명체가 살기 척박한 땅은 북부의 유목 민족이 있는 곳도 있었지만,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곳은 아니다.
그렇기에 배제하고 단 두 곳만 정한 것이다.
“넌 로만의 고원이 의심된다 이거지?
-그래. 마족 놈들도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으니 그 근방에서 일을 꾸미고 있겠지.
수르트의 합리적인 의심에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산드리아도 마음에 걸렸다.
오랫동안 지옥을 섬겨 온 부족들이라면, 그들 중 하나가 지옥문에 관련된 정보를 알고 있을 확률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 미치겠군. 최상의 결과가 도출되고 있는데 불안하네.”
-그래도 전생보단 나은 거 아니야?
불안해하는 카리엘을 본 수르트가 팔짱을 끼고 지도를 살폈다.
수르트에게는 자신의 죽음 이후 일어난 일에 대해 설명해 주었기에 지옥문이 열리고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수르트만큼은 전부 알고 있었다.
특히 신화시대 때 지옥을 직접 겪어 보았던 수르트였기에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보기에 이그니트는 충분히 강했다.
이대로 더 성장한다면 지옥문이 열린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전선을 유지시킬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 정도.
물론 결국에 가선 지옥에 집어삼켜질 가능성이 높지만 적어도 전생처럼 쉬이 무너지진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음 단단히 먹어. 일단 네가 죽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해.
“……그래.”
지옥문이 열린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일단 카리엘이 살아만 있다면 지옥문이 열려도 다시 닫을 수 있다.
제국의 황제이기에 조심해야 하는 건 맞지만 그 이상으로 카리엘은 사려야 했다.
제국은 자신이 없어도 대체할 존재가 있지만, 지옥문은 아니었다.
“그래도 답답하긴 하네.”
지옥문의 위치도 모르고 언제 열릴지도 모르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품속에 품고 있는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는 걸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옥문이 열리기 전에 봉인할 수 있다는 기대감 하나만으로도 지금의 노력을 들이기엔 충분했으니까.
그렇기에 마족들에 관한 정보는 차츰 그림자에게 넘기고 비밀 수호대는 지옥문을 찾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향후 비밀 수호대가 맡고 있는 동대륙에 관련된 모든 일들은 그림자에게 넘겨지게 될 것이다.
-고민은 그만하고 오늘 할 수련이나 시작하자.
“후…… 그래.”
수르트의 말에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지옥문을 찾아도 가름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말짱 꽝이니 화기를 다루기 위해 수련장으로 했다.
그렇게 카리엘이 다시금 수련에 열중하는 동안 제국은 빠르게 변화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제국을 컨트롤하기 위해 내무부와 기술부, 재무부 등은 허리가 휘어져라 일했으며, 외무부와 정보부는 동대륙과 관련된 일로 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녔다.
그 덕분인지 인류 연맹에 관련된 일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폐하, 한 곳이 더 제국의 연맹에 가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여기라면…… 마족들에게 거의 넘어갔다 생각했던 곳 아니었어?”
타리온의 보고에 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예, 그래서 정보부에서도 허위로 가입하려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마족들의 끄나풀인 상태로 인류 연맹의 정보를 빼내기 위한 간자 노릇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정보부의 보고서.
하지만 카리엘은 곧바로 사인을 해 버렸다.
“상관없어. 우리가 이용하면 그만이니까.”
저들이 인류 연맹의 정보를 이용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정식으로 연맹에 가입하는 순간, 겉으로나마 로만과는 적대해야 할 것이고, 남부 국가들이 그 국가에게 개입하기 훨씬 쉬워진다.
“다음 작전에 들어가. 연맹이 결성되는 순간 터뜨릴 수 있도록.”
“예.”
카리엘의 명령에 타리온은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인류 연맹을 결정하는 순간 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는 인류의 적으로 규정할 생각이다.
그것을 사전에 발표하고 서서히 동대륙의 중부 지역에 여론을 만들 것이다.
동시에 산드리아 제국의 부족들과도 본격적으로 접선할 생각이었다.
물론 이렇게 과격하게 움직일 경우 로만이 군대를 움직일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이미 대비를 해 놓았다.
‘로만이 움직이는 순간 전쟁 시작이지.’
그렇게 생각한 카리엘이 주먹을 꽉 쥐었다.
전생에 수없이 공격받았던 철벽. 그리고 로만에게 당했던 과거를 되갚아 줄 시기가 다가왔다.
카리엘의 명령에 타리온이 직접 동대륙으로 넘어가 작전을 시작했고, 카리엘이 예상했던 것처럼 동대륙의 중부 지역은 조금씩 혼란에 빠져들었다.
「인류의 적」
인류의 배신자란 타이틀은 같은 인간으로서 굉장히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국왕과 고위 귀족들이 타일러 보아도 이미 중부 지역의 왕국들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자 로만도 더는 참지 않고 군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류 연맹이 정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남부 왕국들을 압박하려 한 것이다.
“슬슬 움직일 때가 되었군.”
“준비하겠습니다.”
카리엘의 말에 데이비어 공작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카리엘이 비밀리에 황궁으로 들어온 시카리오 후작을 바라보았다.
“태양검은?”
“데려왔습니다.”
시카리오 후작의 대답에 카리엘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종장에게 옛 남부 왕국들의 마스터들과 함께 오라고 지시했다.
카리엘이 집무실에 들어서자 고개를 숙이고는 세 명의 마스터.
모두 월크셔 공작이 직접 만든 수갑을 차고선 가만히 서 있었다.
모두 위험인물이기 때문일까? 아켈리오와 글렌, 시카리오 후작, 월크셔 공작까지 집무실에 모여 있었다.
“그대들의 군대를 이끌 기회를 주지.”
“……전쟁입니까?”
피레스 공작의 물음에 카리엘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대로만 지켜 준다면 왕자들은 살려 두지.”
“…….”
“…….”
카리엘의 말에 클레타 공작과 피레스 공작이 침묵했다.
결국 왕의 목숨은 지켜지지 못했다.
그래도 한 나라의 국왕이라고 오랜 시간 법정에서 공방 중이지만 카리엘의 의지가 확고한 이상 죽음은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왕자들이라도 살려야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가족들을 살리고 옛 왕국의 국민들이 차별받지 않게 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함을 잘 알았다.
지금 옛 남부 왕국들의 도시들이 발전하고 있는 것이 전부 황제의 자비에 의해 일어난 일임을 알기에 군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대 역시 약속한 바를 지키게. 그럼 다시 제국의 수도에 신전을 짓도록 허하지.”
“……그리하겠습니다.”
태양검 역시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곳으로 오기 전 교황이 했던 말을 생각하며 굴욕감을 참아 냈다.
“황제의 말에 절대 복종하게. 우리가 다시금 제국의 중심 신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게끔 모든 굴욕을 감내하고 기어야 하네.”
철저히 굴복하는 자세를 보일 것.
그것이 교황이 원하는 바였고, 태양검은 그것을 충실히 이행할 생각이었다.
“풀어 주게.”
“위험합니다.”
카리엘의 명령에 곁에 서 있던 글렌이 손잡이에 손을 올리며 말하자 카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월크셔 공작이 한숨과 함께 수갑을 풀어 주었다.
“그대들을 믿어 보지.”
카리엘의 명령에 세 명의 마스터가 말없이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복종의 맹세와도 같은 그 모습에 카리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교국으로 위상이 떨어진 태양검과 옛 남부 왕국들의 마스터들에게 복종을 받아 낸 카리엘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동쪽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 * *
얼마 후, 아이사 군도에 동대륙의 정상들과 카리엘이 모였다.
그리고 그날, 제국을 비롯한 동대륙 전역에 단 하나의 기사가 퍼져 나갔다.
「인류 연맹이 만들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