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47. 숨겨진 한 방!
제국의 수도.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아우네트의 상공에 수상한 존재들이 나타났다.
그러자 만약을 대비해 만들어 둔 비공선들이 그 즉시 날아올랐다.
거의 대부분의 비공선들이 제국의 물류망을 만들기 위해서 투입되었지만 일부는 제국의 수도를 지키기 위해 무장을 갖춘 군사용 무기로 사용되었다.
마도포와 마도구를 탑재한 비공선들이 제국의 상공을 지키기 위해 날아오르는 순간, 구름 너머에 있던 수상한 존재들이 일제히 제국의 수도를 향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적이다! 적이 나타났다!”
절대 침범당할 리 없을 거라 생각했던 제국의 수도에 적이 나타났다.
그러자 중앙군이 패닉에 빠지면서 미친 듯이 적이 왔음을 알리기 시작했다.
땡! 땡! 땡!
적이 나타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수도에 있던 제국민들은 너도나도 건물 안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그렇게 광장을 비롯한 주요 도로가 싹 비워지자 중앙군이 움직였고, 치안대는 혹시라도 남아 있는 제국민들을 튼튼한 건물로 안내했다.
미리 만약을 대비하는 연습을 해 두었기에 가능한 일.
그렇게 수도가 갑작스러운 적습에 대응하는 동안 황궁 역시 빠르게 움직였다.
“폐하! 피하셔야 하옵니다.”
시종장의 다급한 말에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들이나 재상처럼 미리 피하는 게 아닌 이상 현시점에선 황궁이 제일 안전했다.
그렇기에 황궁에 마련된 비밀 대피소로 가기 위해 움직였다.
바로 그때, 황궁의 결계를 두드리는 폭음이 들려왔다.
콰아아앙!
수도의 결계를 뚫은 검은 빛줄기 세례가 황궁의 결계마저 두드리면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폐하!”
멀리서 황급히 달려오는 타리온을 향해 카리엘이 손을 들었다.
“진정해라. 황궁 기사들을 불러 모아 대응해.”
“폐하의 안위가 먼저…….”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슬쩍 눈짓을 했다.
그러자 카리엘의 주변으로 모여드는 친위대.
전원 6단계를 코앞에 두고 있는 친위대들이 카리엘의 주변에 서 있자 한숨을 쉰 타리온이 고개를 숙이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호각 소리와 함께 황궁 기사들이 한 곳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견고했던 황궁의 결계가 부서져 내렸다.
키에에엑!
“블랙 와이번인가? 아니, 그것보다 큰데. 드레이크?”
카리엘의 곁을 지키는 브리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몬스터 외과의사라 불리는 브리온조차 갸웃거리게 할 만큼 특이한 개체였다.
하지만 카리엘은 저것들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전생에 지긋지긋하게 보아 왔고, 한때 자신의 목숨을 위협했던 놈들.
“마룡들이군.”
“마……룡? 저게 마룡입니까?”
카리엘의 말에 브리온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책으로만 보았던 존재의 실물을 본 브리온이지만 흥분은커녕 표정만 찡그렸다.
언제나 새로운 몬스터를 보면 흥분하는 그조차도 마룡의 끔찍한 기운은 역겨울 정도였다.
“시종장.”
“예, 폐하.”
“마법사를 불러서 저것을 영상구에 담도록.”
“그리하겠으니 일단 움직이시지요. 여긴 많이 위험하옵니다.”
어느새 황궁 마탑이 나서서 결계를 복구 중이긴 하지만 마룡들이 계속해서 난입하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게다가 몇몇 마룡들 사이에서 뛰어내리는 존재도 몇몇 있어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폐하!”
“가지.”
다급하게 말하는 시종장과 함께 황급히 대피소로 가는 카리엘.
그사이 황궁의 주요 거점을 중심으로 황궁 기사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막아라!”
“적들을 막아!”
황궁 기사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치면서 근위병들을 닦달했고, 어느새 수도 방위군마저 합류하면서 황궁에 난입한 이들을 막아 내기 시작했다.
“저들을 잡아! 진입하게 두어선 안 된다!”
황궁 기사의 고함 소리와 함께 몇몇 이들이 복면을 쓴 암살자들을 막으려 했지만 날뛰는 마룡들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
잠깐 동안 마룡에 묶여 있는 사이 사라져 버린 암살자들.
그들이 향하는 곳이 황제의 궁임을 깨달은 황궁 기사들이 사력을 다해 마룡들을 베어 내면서 황제의 궁으로 달려갔다.
갑작스러운 수도의 습격 소식에 제국 전역은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이 소식은 주요 통신망으로 순식간에 서대륙의 동쪽 끝 철벽의 요새에도 당도했다.
“황궁이 습격당했다고? 폐하는! 폐하께선 무사하신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장교의 보고에 동부 변경백인 노펠 아이언이 이를 갈았다.
“대체 어떻게…….”
“공중을 통해 공격해 왔다 합니다.”
“마법사들은 뭐 하고! 마력으로 감시를…….”
“탐지가 안 됐다고 합니다. 마룡으로 추정된다고 하는 걸 보아 고대의 마법 중 하나로 탐지 마법을 피한 것으로 보입니다.”
부관의 보고에 노펠 아이언이 입술을 깨물었다.
“소식이 들려오는 대로 바로 보고하도록.”
“예!”
노펠의 명령에 고개를 숙이고 사라지는 부관.
“공중이라…….”
마룡이라면 동대륙에 있을 흑마법사나 그들이 소환한 마족들에 의한 군대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자신의 책임이었다.
동대륙에서 제국까지 갈 동안 탐지조차 제대로 못하고 멍하니 길을 내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노펠의 악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서대륙의 동부에서 급보가 날아왔다.
「다수의 골렘 군단. 제국 동부를 침공했음.」
갑자기 탈로스의 국경 지대 부근에 나타난 엄청난 숫자의 골렘 군단.
그들이 비어 있는 제국의 국경 지대로 몰려들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제국의 수도가 습격당했다는 소식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그 소식을 들은 탈로스가 준비했던 회심의 한 수를 꺼내 든 것이다.
그러자 공국에 가 있던 동부군이 그 소식을 듣고 황급히 제국으로 회군을 준비했다.
“모두 서둘러라!”
“예!”
노펠 아이언의 명령에 황급히 동부 지역으로 갈 준비를 하는 동부군.
만약을 대비해서 동부군 일부를 남겨 두긴 했으나, 골렘들의 숫자가 워낙 많아서 그들만으로는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기에 서둘러 골렘 군단의 전진을 막기 위해 회군할 준비를 할 때였다.
철벽의 요새를 지키는 샤르도나가 노펠을 향해 다급히 달려왔다.
“로만이 움직였소.”
철벽의 수문장인 샤르도나 후작의 말에 동부 변경백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 말이오?”
노펠의 물음에 샤르도나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수준이오?”
“로만의 전력의 40% 이상이 이곳에 투입될 것이오.”
“그럴 리가…….”
노펠이 그럴 리 없다는 표정으로 샤르도나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제국이 모를 리가 없었다.
동대륙에 뿌려 놓은 첩보망이 얼마인데, 로만의 전력의 절반에 가까운 병력이 움직이면 그 즉시 알아챘을 것이다.
게다가 윙사르가 그걸 가만히 두고 볼 리도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로만의 국경이 비었다면 다른 국가들 역시 움직였을 것이다.
“설마…….”
“로만과 손잡은 국가들이 생긴 것 같소.”
정보 교란.
윙사르가 있긴 하지만 그쪽 방면만 그대로 둔다면 의심을 살 일은 줄어든다.
아무리 상인들이 정보가 빠르다지만 군부가 작정하고 속이려들면 알기 힘들다. 적어도 군대가 빈자리를 알기까지는 시일이 필요할 터.
로만은 그걸 노린 것이다.
“뒤는 골렘 군단에 앞은 로만이라…….”
노펠이 한숨을 쉬며 고민에 빠졌다.
로만이 움직였다는 말을 듣는 순간 단번에 저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깨달았기에 군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우리가 빠지면 이곳을 전력으로 공격할 셈이야.’
마스터가 두 명이나 있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로만이 전력으로 요새를 공격하면 천하의 샤르도나조차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골렘 군단을 저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일단 1개 군단만 빼도록 하지. 그리고 중앙에 연락해서 동부의 상황을 알려.”
“예!”
노펠의 명령에 고개를 숙이고 황급히 달려가는 부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샤르도나가 노펠 아이언을 향해 물었다.
“가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샤르도나의 물음에 노펠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버텨 볼 테니 처리하고 오시지요. 이대로 내버려 두면 세일럼도 위험할 겁니다.”
제국의 핵심 항구인 세일럼마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고에도 노펠은 고개를 저었다.
세일럼이 타격을 입는다면 아프긴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펠은 철벽에 남는 선택을 했다.
세일럼이 중요하다 해도 철벽의 요새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곳을 지킵시다. 골렘 군단은 나의 군대가 시간을 벌 것이오.”
자신의 군대를 믿는다는 노펠의 말에 샤르도나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부 변경백이 저렇게까지 말하면서 이곳을 지키고자 하니 자신 역시 그에 보답을 해야 했다.
언제나 그렇듯 목숨 걸고 이곳을 지키겠다 다짐하면서 몰려오는 로만의 군대를 기다렸다.
* * *
성국의 침공.
골렘 군단의 침공.
로만의 공격.
서대륙의 동부의 북쪽부터 남쪽까지 살벌한 전쟁터가 되자 중앙으로 보고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이미 북부군과 성국의 싸움이 시작된 지는 오래되었고, 동부의 급박한 상황까지 전해졌지만 제대로 명령이 하달되지 못했다.
제국의 수도 역시 상황이 급박했기 때문이다.
남부 왕국들의 비수가 하루 만에 연이어 제국을 찌르면서 혼란에 빠졌다.
“황궁은! 아직도 연락이 없는가!”
“예.”
“제길! 빨리 저것들부터 뚫어! 황궁으로 내가 직접 들어간다.”
수도 방위 군단장인 테르미스가 검을 뽑아 들고 직접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 곳곳을 활개치고 다니는 마룡들을 뚫고 황궁으로 향하는 건 어려웠다.
중앙군이 수도 곳곳에 퍼진 마룡들을 막는 데 어려움을 겪는 동안 황궁 역시 상황이 어려웠다.
황궁 기사와 그림자, 황궁 마법사가 총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리되지 않을 정도로 마룡들이 끈질겼기 때문이다.
검으로 베고 마법으로 공격해도 쉽사리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설령 치명상을 입힌다 해도 완전히 죽이지 않으면 회복해서 다시금 날뛰었다.
그러는 동안 황궁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카리엘을 암살자들이 찾아냈다.
“황제를 찾았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암살자의 목이 잘려 나가면서 그대로 절명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어느새 수많은 암살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앞을 황궁 기사들과 그림자들이 가로막았지만 암살자들이 강제로 길을 열면서 한 명의 사내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콰아앙!
“……친위대인가?”
암살자를 향해 거검을 휘두르며 앞을 가로막은 토토.
그 주위로 친위대원들이 서면서 암살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황태자 시절부터 유명했던 친위대를 앞에 두었으나 여유로운 표정으로 2개의 검은 단검을 들어 올리는 암살자.
“내 앞을 막기엔 실력이 부족하군.”
그렇게 말한 암살자가 검은 환영과 함께 사라지자 이리스가 황급히 토토의 옆에 나타나 암살자의 공격을 막아 냈다.
“쿨럭!”
“이리스! 제길!”
일격에 피를 토하는 이리스를 보면서 토토가 전력으로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사방에 기형적인 무기들을 날리는 브리온.
둘의 공격을 힘으로 뚫어 내려는 순간, 준비하고 있는 아르슈나의 고위 마법이 날아들었다.
친위대 세 명의 협공에도 불구하고 상처 하나 없이 버티는 암살자.
“제국의 천재는 아직인가? 아쉽군.”
“……마스터.”
내상을 입은 토토가 입술로 흘러내리는 핏물과 함께 암살자를 바라보았다.
“얌전히 죽어 주면 좋겠어.”
친위대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카리엘을 향해 미소를 그린 남자가 토토를 밀쳐 내며 카리엘을 향해 달려들려는 순간.
“날 찾았나?”
카리엘의 코앞에서 검을 쳐 내면서 나타난 글렌이 살기를 터뜨리면서 암살자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