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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20화 (120/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45. 서대륙을 흔드는 이그니트 연방

한때 가장 멍청한 국가라고 조롱받던 제국이 비상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다른 국가들은 빠르게 빛을 잃어 갔다.

그래도 여기까지라면 남부 국가들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제국의 비상을 막지 못한 이상 자신들의 약화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혁명 세력이 활동하면서 자신의 체제를 붕괴시키려 하고 있었고, 해적들을 비롯한 범죄 조직들이 자국의 힘을 자꾸 갉아먹으려 하고 있었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아이론까지 내주었건만 상황은 더 심각해져 가고 있었다.

남부 왕국들의 정보부조차 예상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제국에 몰려드는 용병들!」

「암흑 속에서 헤매는 방랑 기사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선 황제를 알현해야 한다!」

황제의 수련에 따라가는 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자, 많은 이들이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제국의 수도로 몰려들었다.

오직 자신 하나만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고 있다는 보고에 카리엘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정말이야?”

카리엘이 황당한 눈으로 타리온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타리온이 흐뭇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카리엘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이런 헛소문을…….”

“완전히 헛소문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소문처럼 엄청난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지.”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글렌과 월크셔 공작을 보고 난 후, 정말로 자신에게 엄청난 능력이 있는 건 아닐까 기대했었다.

수르트의 말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오만 걸 다 했다.

시작은 수도 방위군부터였다.

중앙군, 치안대, 나중에는 수도에 있는 용병들까지 시험해 보았다.

결론은 사기적인 능력까진 아니라는 것이었다.

글렌과 월크셔 공작이 벽을 허물기 시작한 것은 타이밍이 잘 맞은 것이었고, 황궁 기사들과 그림자들 역시 높은 충성심으로 인해 심적 변화를 일으킨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 말고도 몇몇 이들은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켰고, 실제로 단계가 상승한 이들도 존재했다.

‘전부 불과 관련된 능력자들이었지?’

마법사나 검사나 화염 계열의 마력을 가진 자들.

그런 이들이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켰다.

어찌 되었든 카리엘을 만나고 경지가 상승한 이들이 있거나, 좌절했던 이들이 다시 무기를 쥔 것은 사실이었다.

확률이 얼마나 되든, 사람들은 성공한 자들만을 바라보기에 황제한테 가면 희망이 있다는 것처럼 소문이 와전되기는 충분했다.

그렇기에 용병들부터 방랑 기사, 모험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들뿐이었다면 서대륙에 혼란이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부 왕국들의 기사들 중 일부가 제국으로 빠져나가면서 일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서대륙의 모든 국가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삼국 중 가장 심각한 것은 탈로스였다.

“정말 그 헛소문을 믿고 제국으로 가고 있다고?”

알탄 후작이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황제의 수련에 참가하면 뭐라도 얻어서 나온다는 헛소문에 휘둘리는 자들.

문제는 이것으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터진 것이다.

「불의 신전! 제국을 넘어 서대륙 전체로!」

제국 광장에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 현수막.

이그니트의 불의 신전. 이들이 제국을 넘어 타국으로 뻗어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현 황제가 즉위한 이후 빠르게 세력을 확장했는데 이젠 타국까지 뻗어 나갈 힘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예상외로 타국에서 불의 신전에 대한 반발은 크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은 성국처럼 신성력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불의 종교만을 섬겨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이들의 요구는 간단했다.

“정말 불을 믿는 것만으로 신전 소속이 되는 겁니까?”

“그렇소. 불은 어디에나 있는 법. 신성력으로 구분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지.”

불의 사제의 말에 용병이 감동한 표정으로 자신의 팔에 새겨진 문양을 바라보았다.

사제나 성기사만 받는다는 문양이 자신의 팔뚝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불의 축복을 받은 용병은 곧바로 몸 안에서 불의 기운이 느껴졌다.

“정말이군.”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불의 기운에 용병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대의 앞길에 불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사제의 말에 용병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서는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이들도 사제에게 불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들의 바람과 다르게 모든 이들이 불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존의 제국인들이라면 높은 확률로 불의 기운을 품고 있지만, 타국의 사람들의 경우 선천적으로 불의 기운을 품고 있어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불의 신전은 차별하지 않는다!」

「모든 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불의 신전의 이러한 발표는 신분제에 지친 이들에게 희망이 되어 주었다.

서대륙의 국가들에 혁명 세력이 만들어졌다지만, 이들의 과격한 행동을 싫어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불의 신전은 달랐다.

“불을 믿는 자들이라면 모두가 공평한 기회를 보장받아야 하는 법.”

힘과 권력의 차이는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기회만큼은 공평하게 보장받아야 한다는 이들의 논리에 많은 이들이 감화되었다.

실제로 불의 신전에서 성자라고 칭송하는 현 황제 역시 제국민들에게 최대한 많은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폐하, 탈로스에서 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타리온의 보고에 카리엘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로테온은?”

“아직입니다. 강력하게 정보를 통제하고 있어서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제국의 흔들기 작전에 로테온은 정보 통제로 대응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갈까?

상인을 완전히 막지 못하는 이상 결국 뚫릴 수밖에 없었다.

“성국도 아직이지?”

“그렇습니다. 태양신에 대한 믿음이 굳건합니다.”

태양신을 주신으로 섬기는 나라답게 불의 신전들이 들어가기 쉽지 않았다.

“태양신과 불의 신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으로 접근해 봐.”

“불의 신전에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카리엘의 명령에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는 타리온.

“예정보다 빨라지네.”

적어도 2~3년 후에나 계획했던 바를 실행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터지면서 계획이 빨라졌다.

문제는 이게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제국의 준비가 끝나지 않았다는 게 문제인데…….”

카리엘은 중얼거리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마탑을 무너뜨리고 귀족들의 이권을 가져오면서 기반은 다졌다.

하지만 사람들이 성장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것만큼은 돈으로 안 되는 일이기에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도 속속 기술자들이 수도로 모여들면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카리엘이 만족할 만큼 성장 속도를 내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저질러 봐?”

이미 제국은 능력자들을 우대하는 정책으로 가고 있었다.

귀족원이 최대한 저지하고 있었지만 이조차 카리엘이 의도한 것이었다.

급격한 변혁은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

그렇기에 귀족원으로 하여금 이것을 개혁을 늦추게 해서 속도를 조절한 것이다.

그런데 카리엘이 그 고삐를 풀어 버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귀족들이라…….”

귀족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컸다.

지금도 많은 부분을 양보한 상태이기에 귀족들에게 만족할만한 무언가를 내주어야 했다.

귀족들을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아있었다.

타국들이 자신들의 기술자를 빼내가는 걸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려 할 것이고, 막아 낼 수 없는 흐름으로 간다면 답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전쟁이 빨라지는 것도 문제인데.”

여기서 고민이 된다.

시간을 더 두고 만전을 기한 상태에서 전쟁을 할 것인가? 아니면 적들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전쟁을 할 것인가.

만전을 기하고 전쟁을 할 경우 피해는 줄일 수 있었다.

반대로 전쟁을 앞당길 경우, 좀 더 빠르게 동대륙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피해를 줄일 것인지, 재앙을 더 빨리 대비할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라…….”

쉽사리 결정할 수 없는 문제에 고심하던 카리엘은 다급히 시종장을 불렀다.

“내무대신과 외무대신, 군부대신을 불러오게.”

“예!”

카리엘의 명령에 시종들이 다급하게 세 명의 대신들을 부르러 사라졌다.

얼마 뒤, 대신들이 집무실에 모이자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했다.

“타국의 기술자들을 끌어오면 귀족들에게 무엇을 내주어야 할까?”

“국가사업에 대한 입찰 제한을 좀 더 푸셔야 할 것입니다. 대출을 비롯해 몇몇 사업의 경우 몇몇 귀족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방향을 트셔야 할 것입니다.”

“그것만으로 될까?”

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내무대신을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귀족들에 대한 권한 몇 개 정도는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흠…… 그럼 안 하느니만 못할 것 같은데…….”

“그래도 이건 협상의 여지는 있을 것입니다.”

내무대신의 말에 이번엔 외무대신을 바라보았다.

“귀족들은 설득했다 치고, 타국의 반발을 언제까지 무마시킬 수 있지?”

“어렵습니다. 곧바로 전쟁이 터질지도 모르옵니다.”

“사과의 의미로 대충 몇 가지 이권을 던져 줘도?”

“……그렇다면 시간을 끌 수는 있겠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외무대신의 말에 카리엘이 고심에 빠졌다.

“전쟁이 당겨지면 계획대로 진행했을 때보다 얼마나 더 많은 피해가 예상되지?”

“적어도 3할에서 4할 이상은 더 피해를 입을 것이옵니다.”

군부대신의 말에 카리엘이 침음성을 삼켰다.

“역시 계획대로 가야 하나?”

카리엘의 말에 세 명의 대신들이 머리를 조아렸다.

바로 그때, 외무대신이 눈을 빛내면서 의견을 냈다.

“폐하, 지금 이런 고민을 하시는 것이 정체되어 있는 기술 발전을 빠르게 하기 위함 아니옵니까?”

“그렇지?”

“그렇다면 꼭 수도로 기술자를 불러들일 필요는 없는 것 아니옵니까?”

외무대신의 말에 카리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렇지. 그럴 필요는 없지.”

“타국의 기술자들이 꼭 제국으로 넘어올 필요가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중립 지대를 이용하자?”

단번에 알아들은 카리엘이 피식 웃었다.

그러자 외무대신이 자신의 생각을 추가적으로 설명했다.

“트리아 남부 지역을 남부 왕국들의 중립 지대로 설정하면…….”

“그곳에 우리의 기술자들과 마탑을 짓고 타국의 기술자들을 불러 모은다면?”

제법 재밌는 그림이 그려지자 카리엘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군. 시종장!”

“예! 폐하.”

“지금 당장 재무대신을 불러와.”

재무대신까지 불러오라는 명령을 내린 카리엘이 내무대신을 바라보았다.

“귀족들이 반발할 수 있으니 트리아에 귀족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봐.”

“예, 폐하.”

“외무대신은 방금 말한 방안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오고. 군부대신은 중립 지대에 삼국이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병력이 어느 정도일지 계산해 봐.”

“예!”

두 사람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카리엘은 재무대신이 도착하자 본격적으로 계획을 구체화하기 위한 회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더 계획이 구체화되어 갈수록 카리엘은 확신했다.

‘어쩌면 남부 왕국들을 더 크게 흔들어 볼 수도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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